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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블로그 - 익명의 변호사
제레미 블래치먼 지음, 황문주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수신: 익명의 변호사
발신: 고소공포증있는여자
날짜: 3월 30일 오전 2시 40분
"지금 행복합니까?"
익명의 변호사의 블로그를 엿보면서 나도 메일을 보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어떤 내용을 보낼까 고심하다가 이렇게 써 보았다. 로펌에 일하는 매니저 외에는 인간취급도 안하는 사람에게 난 이렇게 묻고 싶었던 것이다. 만약 익명의 변호사에게 답변이 온다면 어떻게 왔을까. 아마도 "나에겐 돈이 많이 있습니다. 한끼 식사로 몇 천달러를 쓸 수도 있지요. 마트에서 손님이 주는 돈을 받거나 장사를 하는 것과 비교도 할 수 없어요. 그런 나에게 행복하다고 묻는 겁니까? 미쳤군요"라는 답변을 들을 것 같다. 이런 답변을 받아도 기분이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 최고의 자리를 탐하고 있지만 그에게서 풍겨오는 외로움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절대 권력을 휘두르지만 어디까지나 그도 인간임을 드러내고 있으니 말이다. 사람을 감시하고 판단하는데 있어 오로지 개인적인 감정으로 비서의 사탕을 집어가는 사람에게 "내 비서고 내 사탕이야" 라고 비록 블로그에서 소리치지만 이런 모습은 꼭 어린아이 같아 오히려 이런 인간적인 모습에 '쿡'하고 웃음이 나게 된다. 솔직히 싸우다 보면 옛일까지 들춰지고 좀 유치하게 싸우지 않는가. 그래서 '익명'이라는 것은 속 마음까지도 표현할 수 있어 오히려 더 솔직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도박만 중독성을 가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도박을 해 보지는 않았지만 컴퓨터도 부팅을 하고 자리에 앉으면 몇시간을 훌쩍 넘기며 정신없이 빠져들게 된다.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는 것이 힘들어지고 '익명'이라는 이름으로 클릭 한번으로 갈 수 있는 곳이 많아 대단히 유혹적인 공간임에 틀림이 없다. 익명의 변호사 역시 아무도 보는 이가 없었다면 이렇게 블로그에 빠져들 수 있었을까. 보이지 않는 존재끼리의 대화는 짜릿한 느낌마저 들고 속내 풀어내며 로펌에 일한다는 대단한 자부심, 고용 변호사와 비서, 인턴들을 휘두를 수 있는 절대 권력을 가진자로서의 여유로움을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름을 밝힐 수 없어 "쭉쭉빵빵", "벽장의 레즈비언", "가수지망생", "아부쟁이" 등으로 표현한 방식은 그 사람들을 보지 않아도 어떤 인물인지 상상할 수 있어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살아가는 동안 내가 로펌에 일할 일은 없겠지만 나도 그곳에 등장한다면 그에게 난 어떤 별명으로 불리우게 될까 고민하다가 결정한 것이 "고소공포증이 있는 여자"다. 인라인 스케이트, 스키 등을 타지 못하는 나를 보면 아마 이런 별명으로 쓰고 있지 않을까.
세상에 비밀이 어딨나. 이렇게 일기형식으로 풀어내다 보면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많을텐데 "설마"하며 블로그를 드나드는 그는 단조로운 인생에서 약간의 스릴까지 맛볼 수 있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이런 스릴이 독자에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선사한다. 늘 몰래카메라에 노출될까 두려워 하고 개인 정보가 유출됨은 물론 비밀보장에 익명성은 바랄 수도 없는 곳에 살면서 나를 완벽하게 숨겨줄 수 있는 공간이 있을리 만무하지만 오히려 방문자가 늘어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블로그란 존재는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일기장 같은 곳이 아닐까. 어린애 같은 행동을 했다고 써도 누군가의 욕을 쓴다고 해도 '나'라는 존재가 드러나지 않으므로 '익명' 이라는 이름으로 할 수 있기에 오히려 나약하고 인간다운 모습에 오히려 정을 느끼게 될 것 같다. 하지만 이 익명의 변호사가 별종이긴 하다. 이것은 본인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머저리'보다 방이 조금 크다는 걸 좋아하다니. 대체 이 사람은 세상을 어떻게 보는 것일까? 만날 수 있으려나.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