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니발 라이징
토머스 해리스 지음, 박슬라 옮김 / 창해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섬뜩하게 다가오는 책 표지를 보며 나름대로 한니발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놓았는지도 모른다.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닌 악당 내지는 괴물로 말이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전쟁으로 인한 상처받은 영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감정까지 혼란스럽다. 그가 괴물로 변할 수 밖에 없는 상황들에게 어떤 당위성을 부과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동생 '미샤'의 죽음은 그에게 감정을 사라지게 만든 큰 충격적인 사건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 상황이 되면 누구든 변할 수 밖에 없겠지만 그는 너무도 잔인한 모습으로 변했다. 감정이 없는 빈껍데기를 가진 모습으로 말이다. 책을 펼치고 마지막까지 시종일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무렵 올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살인, 학살, 굶주림 등 사람으로서 견디기도 힘든 인권이 유린되는 상황들을 거치면서 내가 이들과 함께 그 당시 살았다고 해도 도저히 제정신으로 살아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생존했을지조차 의심스럽다. 그래서 굶주림에 지쳐 인육을 먹게 되는 모습은 섬뜩하게 다가오며 구역질이 나지만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 하필 한니발의 여동생 '미샤'를 먹게 되는 행동이 훗날 뼈져리게 후회를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목숨마저 내 놓아야 할정도로 위험천만한 일이었음을. 전쟁이라는 특수한 경우라고 해도 그것을 목격한 사람에게는 얘기가 달라진다. 지켜주지 못한 아픔과 마지막 모습은 분명 가슴에 상흔이 되어 절대 떨어지지 않으니 말이다.  

법의 심판을 받게 해도 좋으련만 굳이 한사람씩 처단하는 한니발. 나의 예상과 다르게 엉성하게 처리하는 복수, 어쩌면 인간적인 모습을 엿보인게 아니었을까. '미샤'의 팔찌를 차고 있는 아이를 죽이지 않고 그저 팔찌만 가져오는 모습은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그루타스를 죽이는데 실패하여 레이디 무라사키가 그루타스에게 납치 당하는 모습은 아직은 한니발이 괴물로 완전히 모습을 바꾸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듯 하여 그의 영혼도 쉴수 있게 되지 않을까 조금의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자신의 영혼을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인 레이디 무라사키가 그의 인생에 존재하는건 그래서 작은 축복일 것이다.  

내 안에 나도 모르는 잔악한 면이 숨어있었는가 보다. 한니발이 처단하는 사람들을 당연히 죽어야 하는 사람으로 분류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전범이고 많은 사람을 학살했으므로 법의 심판 없이 죽이는 한니발이 잘못 되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책을 읽으며 충분히 동조를 하고 있었던 듯 하다. 시종일관 불안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으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박함은 찾을 수가 없다. 치밀하게 두뇌를 회전해야 하는 두뇌게임조차 장치되어 있지 않다. "양들의 침묵"을 보고 이 책안에서 한니발과의 심리전을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책을 읽기 전에 미리 무슨 내용일까 유추하는 재미가 있지만 이 책은 그 기대감을 반감시킨 책이다. 잔인한 악당으로 묘사되었다면 꼭 잡아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거나 희대의 살인마로 묘사되었다면 온갖 욕을 하며 등골 서늘함을 간간이 느끼며 책을 읽었을 것이다. 여기엔 그저 누구나 한니발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한 인간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한니발 렉터는 분명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존재이고 그의 악마적 본성은 가슴을 섬뜩하게 만드니 이 책을 읽기 전에 따뜻한 가슴을 꽁꽁 싸매고 읽기 바란다. 그에게 나의 따뜻한 감정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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