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헤스와 불멸의 오랑우탄
루이스 페르난두 베리시무 지음, 김라합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V자로 죽어있는 시체와 탁자위에 있는 카드 3장.  

이것으로 살인자를 밝혀야 한다. 이는 살인사건 현장을 처음 목격한 포겔슈타인의 증언을 통해 드러난 단서이다. 경찰이 도착하기전 시체마저 훼손되어 있고 탁자에 있다던 카드 3장도 사라진 상태로 어떻게 파헤칠지 두통만 온다는 쿠에르보와 포겔슈타인, 보르헤스 이렇게 세사람이 로트코프의 살인범을 잡기 위해 모였다. 과학적인 수사를 하고 싶은 쿠에르보와는 다르게 포겔슈타인과 보르헤스는 에드거 앨런 포의 문학과 살인수법을 비교하며 추리를 하니 쿠에르보 못지 않게 수사의 방향을 지켜보는 나도 참 답답해진다. 어찌 보면 셜록홈즈의 사건 해결 방식을 보는 듯 하여 하나씩 풀어질 범인의 모습에 기대를 걸며 이 두사람의 문학적인 추리에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보지만 '불멸의 오랑우탄'까지 범인으로 지목하는데는 나도 두손두발 다 든 상태다. 

모름지기 추리소설은 긴박감이 있어야 하는데 좀체 긴장감을 주지 않는다. 대체 범인을 잡을 수는 있을 것인가? 보르헤스에게 이야기 하는 형식으로 이 사건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포겔슈타인은 천부적인 이야기꾼은 아니다. 어찌나 지루한지 한장 한장 넘기기가 힘이 들 정도이니 추리소설 작가를 하기엔 무리가 따르는 듯 하다. 문학사를 헤집으며 대화하는 그들속에 자세한 설명을 곁들인 인물들 소개까지 정보는 다양하지만 정작 나에게 보여주고자 한 주제는 비켜간 듯 하다. 황당한 추리 같지만 어쩌면 로트코프 시신의 V자 모습을 X에서 O로 계속적으로 추리를 해 나가는 모습은 포겔슈타인의 머릿속에 있던 시신의 모습이 좀 더 정확성을 보임에 따른 모습의 변화이지만 조금씩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듯 해 보이기도 한다.  

으례 사건이 벌이지고 나면 범인이 누구인지 대충 유추하기 마련이라 문을 빼꼼히 열어두고 같은 층을 쓰는 로트코프를 지켜보고 있던 이 사람이 범인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칵테일 파티에서 로트코프가 두번을 밀어 넘어 뜨렸다고 해서 사람을 죽일 증오심을 가졌다고 보긴 힘들지만 의외로 범인이라 생각하지 않던 사람이 범인으로 나타나는 예가 많으므로 내 나름대로 고민을 했으나 단지 근거도 없는 추론이라 설득력을 가지긴 힘들어 보인다. 살인에 사용된 칼이 발견됨으로써 사건이 진전하는 듯 보이나 점점 미궁속에 빠져드는 모습은 성질 급한 사람이 읽으면 숨 넘어갈만큼 전개가 느리다.  

현미경으로 칼에 묻은 피를 찾아내는 모습은 현대에 살고 있는 내가 봐도 참 답답한 노릇이다. 이래서 언제 범인을 잡겠나? 문학에 빗대어 범인을 추론하는 두사람 포겔슈타인과 보르헤스만이 여유로운 모습이다. 지문 채취도 하는데 이때는 어떻게 채취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이 펼쳐진채로 발치에 떨어져 어떤 단서를 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 하는 부분에선 죽은 사람만 불쌍해지는 듯 생각된다. 죽은 사람은 V자로 무얼 보여주려고 한 것일까? 범인의 이니셜? 아니면 왜 죽게 되었는지 이야기 하는 것일까? 이 궁금한 마음이 책을 한장씩 넘기게 하였으나 점차 시간이 갈 수록 범인이 누구일까의 관심보다 어서 범인이 잡혔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든다.  

보르헤스에게 사건을 주제로 쓴 글을 주며 결말을 부탁하는 포겔슈타인, 보르헤스에게 동경하는 마음을 가진 것은 알겠으나 살인사건의 결말인 꼬리부분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은 보르헤스의 말대로 쿠에르보에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에게 결말을 부탁한다면 난 보르헤스가 만든 결말과 다르게 앞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로트코프를 지켜보고 있던 일본인을 범인으로 만들 것이다. 독자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는 책을 만들지 나도 자신할 수 없지만 어쨌든 내가 생각하는 범인을 내세워 추리소설을 완성해 갈 것이다. 쿠에르보에게 던저질 결말을 여러분은 어떻게 마무리 지을 것인가. 다른 사람은 어떤 이야기를 이끌어 가게 될지. 어떤 결말을 지었는지 상상하게 된다면 나에게도 알려주기 바란다. 포겔슈타인과 보르헤스처럼 문학을 주제로 대화를 나눌 순 없으나 이 사건을 가지고 충분한 대화를 나눠 볼 수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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