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 가이도 다케루의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1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지금 우리나라엔 "하얀거탑"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얻고 있다. 이 드라마를 보며 일각에선 환자는 없고 의사만 있다고 성토하기도 한다. 의사 가운부터 침대시트 등 온통 배경이 하얀 곳이라 더 냉정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바티스타 수술팀"이 있는 공간 또한 '환자'가 없다. 다만 D(사망)라고 쓰인 카르테가 부각되며 죽은 환자에 대한 조사만이 있을 뿐이다. 죽은 환자에 대한 "유족들에겐 사과를 하겠습니다" 라고 변명하고 끝을 맺음은 생명을 경시하여 일어난 사태에 너무나 간단한 단 한줄의 사과인지라 한동안 멍한 상태가 되며 내 주위에서도 심심찮게 일어나는 일이라 화가 나게 된다.

의학드라마를 보게 되는 이유는 아마도 사람냄새가 나기 때문이 아닐까. 죽어가는 사람이 살아나고 또 기적이 일어나서 가망 없는 사람이 살아나게 되는 내용은 그 자체로도 가슴을 울리는 감동일테니까.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면서도  그런 상황이 되면 '나에게도 희망이 나타나길' 바라는 마음이 그곳으로 나의 시선을 잡아끌게 되는 것 같다. "좌심실 축소성형술"이라는 바티스타 수술의 용어는 난생 처음 듣는다. 뭐 다른 수술이라고 익숙한 용어들은 아니겠지만 먼저 현대의 의학기술의 발전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정말 가능한 이야기일까? 의문을 품으면서도 책속에 빨려들어가는 '나'는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된다.  

'의료사고'는 쉽게 다룰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명백히 일어나고 있는 문제이지만 쉬쉬하며 감추어지는 문제들이다. 환자의 입을 통해 가까스로 듣게 되는 누가 가해자고 피해자인지 갈수록 헷갈리게 되는 문제를 여기서는 메스를 들고 철저하게 해부해 나간다. '고도의 심리전' 다구치 선생이 바티스타 수술팀 한명 한명 면담할 때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으나 후생노동성의 "시라토리"가 투입되고 난 후부터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고도의 심리전이라는 전쟁을 치른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연이어 터지는 사망사고. 수술집도의 '기류'는 분명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다카시나 병원장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면서 이 사건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충분히 위험성을 지니고 하게 되는 수술이라 수술중 있게 되는 사망사고라고 말할 수 있는 문제이나 분명 집도의는 과감하게 치부를 드러냈다. 누가 범인일까? 답답한 마음에 몇번이나 결말부분을 들춰보았다. 하지만 추리소설의 묘미를 자를수는 없는일. 하나씩 풀려가는 사건의 실마리들, 어느새 나는 시라토리의 괴변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의료사고'라고 생각한 나의 생각에 일침을 가하는 시라토리. 그의 접근 방식은 '살인'이라고 규정짓고 증거들을 놓치지 않으려 자신의 논리를 정리해 나간다. 살인이라니? 의료사고라고 생각할때는 일어날 수 있다는 가정하게 생각의 고리들이 막히나 '살인'이라고 규정짓고 바라보게 되는 증거들은 점차 윤곽이 잡히게 된다. 이 괴짜같은 인물은 뭐야? 이런 생각을 할때쯤이면 이미 시라토리의 마수에 걸려들었다고 보면 된다. 그의 괴변에 동조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나'는 뭔가? 참 혼란스럽지만 멋지다는 생각과 함께 명쾌한 그의 의견에 마음까지 상쾌해지는 듯 하다.   

끝까지 등장하지 않는 환자들. 카르테속에만 존재하는 그들을 보며 피해자임에도 오히려 단 한마디의 외침도 등장하지 않는 환자들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 사건이 종결되며 발빠르게 대응하는 병원 관계자들. 어찌 보아야 할까? 한편의 연극을 보는 느낌이다. 손발이 척척 맞는 매스컴의 동조를 구하기 위해 대본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울화통이 치민다. 아마 내가 가진자가 아닌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약자이기 때문에 세상을 옹졸하게 밖에 바라볼 수가 없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트에 누워서 의사의 메스를 기다리는 환자는 '나'가 될 수도 있고 누구든 될 수 있는 문제이기에 추리소설이라고 하기엔 이처럼 매정한 사회에 왜 나는 괴리감마저 느끼게 되는 것일까?  

결말은 없다. 선이 이기고 악이 지는 구도 따윈 없다. 악이 졌다고 생각되는 '나'만 있을 뿐이다. 모든 일이 풀어지고 다 잘 되었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사람냄새가 나지 않는 공간에 따뜻한 피가 흐르기를 바랄뿐이다. 가슴 섬뜩한 책을 읽어서 일까 따뜻한 커피 한잔이 생각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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