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하게 세속적인 삶
복거일 지음 / KD Books(케이디북스)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살아오면서 음식만 편식해서 섭취한 것이 아니었다. 복거일님이 누군지도 모르고 집어든 책 다수가 아는 작가임에도 난 처음 대면하였다. 왜이리 부끄러워 지는 것일까? 어떤 세속적인 삶이 놓여져 있을까 궁금하지만 지식조차도 먹고 싶은 것만 섭취한 내가 정면으로 대면할 수 있을지 살며시 책장을 넘겨본다. 

담담하게 자신의 마음을 펼쳐 보이는 글들 속에 고개 끄덕여 들여다 보는 나도 어지간히 세속적인 모양이다. 하지만 "세상이 어지러운 속에서 다른 사람들이 도덕과 규칙을 가볍게 어기는 상황이라 혼자 그것들을 지키는 것은 짐이 되고 때론 손해가 되는 것임을 알지만 그래도 도덕과 규칙을 지키는 것이 어기는 것보다 낫다"는 이야기는 많은 규칙들을 내심 모른체하며 어기면서 살아온 나에게 조금의 면죄부를 주는게 아닐까. 하지만 담담히 풀어놓은 일상의 이야기들과 사회적 문제들 끝에 생각의 꼬리를 남겨두는 이유는 "현명하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해답을 보여주려 함인 듯 하다. 쉽지 않게 다가오는 논제들이다. 3부까지 이루어진 짧은 글들을 읽노라면 가슴속에 잔잔한 파문이 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1. 나무타기의 비결 

내가 살아가면서 나이 들어 늙을 것이라는걸 알고 있음에도 꼭 그 시기가 오지 않을 것처럼 맹렬하게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머리는 하얗게 눈으로 덮히고 인생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젊음'이란 무엇을 시작해도 될 패기가 있고 꿈이 있으나 황혼의 나이에 이르면 제 2의 인생을 살기조차 두려워지고 점점 위축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회한의 시간을 갖기조차 힘들지만 '하산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할 시기이기도 하다. 오지 않을 것 같아 외면했던 시간이지만 정면으로 부딪쳐 올라가기보다 힘든 내려오는 길에 발을 헛딛지 않게 조심스레 내려오기 위해선 누구보다 세속적으로 살아온 자신의 인생과 대면해야 하기에 더 어려운 시간들이 될 것이다. 부모로서 '나', 자식으로서 '나', 사회적 존재로서 '나'는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들 속에 무엇을 찾을 수 있는지 성찰해야할 시기인 것이다.  

2. 예술은 사소한 것이다. 

예술가만큼 세속적인 논제에 크게 부딪치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예술을 택하자니 현실을 버려야 하고 현실을 택하면 예술을 버려야 하는 삶에서 현실에 적용할 물질적 수단을 지니지 못한 예술은 그래서 버려야 하는가? 하지만 비극과 재앙, 불행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예술은 한줄기 빛으로 위안으로 다가올 수도 있기에 어느쪽에 서야하는지 무엇을 위해 애써야 하는지  현실에선 정확한 해답을 찾을 길이 없다. 마음의 안식을 줄 고향냄새가 물씬 나는 풍경화 한점 들여놓을 여력이 안되는 삶이고 보면 고향을 찾아 발길을 옮기는 것조차 힘들어지는 현실이다. 도시가 생겨나고 먼길 오고가는 기차가 생기면서 먹고 살기 힘들어 마을을 떠날 수 밖에 없어 평생을 태어나 자라고 늙어 내 몸을 쉬게할 고향산하를 떠나야 함에는 그림같은 전원생활은 요원하고 그저 세속적인 아주 각박한 삶만 놓여있을 뿐이다. "사회참여"의 논쟁들 속에 그래서 예술은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는가 보다.   

3. 비명과 수의 

살아남아서 자식들을 남기기 위해 사는 삶은 힘들기도 하지만 작은 행복을 느끼는 시간들이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출가하여 손주를 보는 단란한 삶이지만 더 살고자 하는 몸부림은 행복하기에 더 놓기 힘든법이다. 세속적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키우는 자녀들도 지극히 세속적일수 밖에 없지만 내 한몸 묻힐 땅도 없는 세상에 좋은 옷입고 떠난들 기쁘게 그 길을 갈 수 있을까. 평소에 즐겨입는 옷을 입고 떠나도 될 길이지만 좋고 비싼 수의를 입혀드려 다음생을 위하는 자식들 마음이야 누가 세속적이라고 할 것인가. 하지만 살아가는 동안 100원하나 허투루 쓰지 못했던 삶이고 보면 죽어 가는 길은 화려하다 할 밖에. 이것이 세속적이라 말할 사람 누가 있을까 가는 길 검소하게 보내면 그게 더 세속적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세상이고 보면 말이다. 

짧고 긴 이야기들은 두서없이 일기식으로 나열되어 있으나 전체적인 내가 본 세 단락의 맥락은 이렇다. 오로지 작가의 생각과는 다른 나만의 생각이지만 지극히 세속적인 내 모습에 실망한 시간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게 살고 있고 조금 현명하게 세속적으로 살고자 노력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퍼지기도 했지만 평생을 도덕과 규칙속에 살아가야 하는 '나'이고 보면 100% 지키고 산다는 약속도 할 수 없음에 그저 현명하게 살고자 노력할 뿐이다. 저자처럼 삶을 반추하며 자신에게 던질 물음이 많아질 나이가 되면 이 물음표에 답도 그땐 쓸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쓰여질 답들을 위해 하루하루 도덕과 규칙을 지키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옛말씀에 도덕적 삶은 자체로 보답이라고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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