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girl)로 돌아가고 싶어서 읽느냐고? 아님 30대 초반 전업주부로서의 길도 허무하고 미래가 보이지 않아 읽으냐고? 아마 둘 다 일거 같다. 젊음은 젊음 하나만으로도 빛이 나니까 좀 더 누려보지 못한 소녀시절을 아직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청바지에 면티 하나만 걸치고 나가도 그렇게 이뻐 보일수가 없고 노란고무줄 달랑 하나만 질끈 묶고 흰운동화를 신고 나가도 참 이쁘게 보인다. 어른들에게 "살아가는 동안 제일 이쁠 때가 언제냐?"고 물어보면 왜 눈부시게 아름다운 시절은 고등학생 시절이라고 이야기 하는지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제일 이쁜데 무슨말이야"라며 의아하기만 했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풋풋한 시절이기에 가슴 시리도록 아름답다는 것을. 요즘 더 어리게 보이고 싶어 피부를 탱탱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든지 아줌마이면서도 "아줌마"라고 불리면 왜 그렇게 발끈하게 되고 눈물이 나도록 서글픈지 이 책을 통해 기운을 좀 받아봐야겠다.
어랏, 근데 이게 무슨 내용이야? 책을 들고 소녀적인 감상을 엿보아도 기죽지 말자고 다독이며 옹골찬 마음을 들이대고 읽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5명의 여성 아니 주변인들까지 하면 더 많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내 나이 또래의 여성들이다. 젊은 시절이 빨리 지나감을 한탄하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자기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지르는 커리어우먼들의 이야기였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동지를 만난 느낌일까? 하지만 직장에서 당당히 자기 목소리를 내는 그네들을 보니 맘을 당차게 먹고 읽어도 부러워지고 내가 작아지는 느낌은 벗어 던져지지가 않는다.
내가 남녀평등주의자는 아닌데도 불구하고 사회 통념적으로 여자에게 가해지는 질시와 억누름은 가슴 콩닥이게 신경질내며 읽게 된다. 직장 상사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주간지를 들여다보며 거들먹거리며 앉아 있는 '아마이'의 모습은 화가 나서 왜이러냐며 멱살잡이라도 하고 싶어진다. 이거 왜이러나 내가 독립투사도 아니고 진정하자. 아니 머리에 띠라도 두르고 나가 열렬히 "남녀는 평등하다"는 팜플렛이라도 뿌려야 하는거 아닐까? 나 같으면 아마 지레 의기가 꺽여 직장을 박차고 튀어나왔을지도 모르지만 당당하게 "여자가 없는 스모협회나 가라"고 소리치는 세이코의 모습에 나까지 뿌듯해지는건 왠말인가. 같은 성별을 가진 동질감? 어쩌면 내가 가질 수 없는 모습에 대리만족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머리뿔로 치 받는게 아닌 내 목소리를 내는것 조차 두려워 하는 나는 이래서 전업주부로서의 타고난 소질도 못내지만 내가 안주할 곳은 가정이라고 목소리를 조그맣게 내며 후퇴하는지도 모른다.
아름답게 보이고 싶고 꾸미고 싶은 건 여자의 본능이려나 나는 이제 결혼해서 집에만 콕 박혀 편한 옷만 찾고 사랑하는 반쪽이 생겼다는 명분으로 꾸미고 있지 않으니 뭐 이제 어쩌겠냐 하는 심보도 있지만 '난 여자이기를 포기하고 사는 걸까?'하는 생각도 들고 내 자신이 참 초라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멋진 커리어우먼도 자신의 인생에 대해 불안해 하고 결혼하여 아이 둘 쯤 낳은 전업주부를 부러워 하는 것을 보면 조금은 기분이 업 되기도 하지만 왠지 인생이 밑지는 듯한 느낌은 버릴수가 없다. 생활에 대한 안정을 얻었다고 하지만 돈에 대한 강박증은 늘 가지고 사니 안정되었다고 말하지도 못하고 그저 감정적으로야 결혼을 했으니 인생의 한고비는 넘긴 거라는 생각은 하지만 뭐지? 이 황량한 느낌은? 손에 맛있는 것을 쥐고 있다 쏙~빠져나간 느낌이다.
요즘 드라마중에서 "달자의 봄"을 즐겨본다. 유쾌하기도 하지만 30대에 들어선 여인의 적나라한 심리묘사가 공감이 가서 보게 되는 듯 하다. 직장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올랐지만 결혼이라는 결말을 잡기위해 이리저리 따져보고 재는 모습을 보면 아무래도 내가 우위의 위치에서 보게 되는가 보다. 물론 성공적인 직장생활에는 박수를 보낸다니까. 단지 그녀보다 아줌마가 일찍 되었다는 것에만 우위라는 말이다. 달자의 모습은 '요코'의 모습과 닮아있다. 신참으로 들어온 띠동갑의 연하남 '신타로'가 아마 장동건처럼 정신나가게 잘 생긴 사람으로 묘사되어 지지만 넋이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요코'를 보면 조금 추하다는 느낌도 가졌다. 하지만 감정조절을 잘해서 남자가 아닌 직장인으로 대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면 "연상연하의 로맨스"를 기대한 나에게 단편으로 끝나버리는 내용은 어딘가 바람이 푹~하고 빠지는 느낌이다.
20대를 추억하며 그네들의 탱탱한 젊음을 부러워 하지만 켜켜히 쌓인 인생 노하우도 무시할 수 없는 법 지나간 젊음을 생각하기 보다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이 땅의 여성들에게 무한한 존경과 박수를 보내면서 멀지 않은 시일내에 나도 거기에 편승하길 기대한다면 그것이 욕심이라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겠지? 아직은 젊으니까 걸(girl)이 아니면 어떠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을. 내가 젊다고 생각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테니까 소녀가 아니라고 결코 우울해 하지는 않는다. 아직도 걸이 부러운가? 당신은 걸(girl)보다 아름답다 용기를 가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