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번째 사도의 편지 1 뫼비우스 서재
미셸 브누아 지음, 이혜정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13번째 사도의 편지.

종교에 대해 완전 백지 상태가 되어 버린걸까? 13번째 사도란 무엇을 말하는지 솔직히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열심히 교리 공부하여 세례도 받았지만 나 자신 종교가 있다고 내세울 수 있을 정도로 종교에 귀의하지 않았다고는 하나 이렇게 무지할 수 있는지 약간 화가 나기도 한다. 나 이외의 많은 분들은 이 책에 대해 이리 저리 추리하기도 할텐데 난 완전 백지 상태로 이 책을 집어들었다. 그래서일까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와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판단할 능력도 잃어버리고야 말았으니. 

여느 추리소설과 마찬가지로 첫 시작은 나의 흥미를 자극시킨다. 모든 사건이 끝나고 난 후 닐 신부가 은둔하고 있는 아브루치 산지를 찾아가는 '나'라는 인물은 어찌 보면 이 책을 읽는 내내 닐 신부와 대면하고 있던 나 자신이 아니었을지. 그가 이끄는데로 나는 점점 미궁속으로 빨려들어가게 되었다.  

이 글의 모티브는 예수는 부활하신게 아니라 여느 인간들처럼 고통도 느끼고 유한한 생명으로 인해 죽음도 받아들이게 되는 존재라는 것이다. 최후의 만찬에 참석한 예수에게 사랑받는 제자 13번째 사도의 증언을 통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수를 에세네파의 한무리가 그의 몸을 사막 어딘가 안치함으로써 예수가 부활하신게 아니라 그저 우리와 똑같이 고통을 느끼고 유한한 생명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라는 증언을 통해 세상에 점차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부활하셨다고 그를 신격화 시킨 것은 그저 삶의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는 우리라는 말이다.  

물론 부활하셨다는 믿음은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이겨내고 감내하는 사람들에겐 분명 희망적인 메세지이나 왜곡된 진실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13번째 사도의 증언들을 통해 점점 사건은 역사의 전면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결코 예수 그 자신이 원한 것이 아니었기때문에. 이 사실을 은폐시키려는 기독교와 역사의 흔적을 찾아 나서는 안드레이와 닐 신부의 한판 승부 허나 안드레이 신부는 살해당하고 그의 유지를 받들어 닐 신부가 홀로 싸워나가게 된다.

 첫 장 분명 닐 신부가 살아있음으로 이야기가 시작이 되나 읽는 내내 그가 어찌 될까 왜그리 조마조마 하던지 전체적인 흐름을 보아 그에게 끼칠 위험을 타인을 통해 먼저 알았기 때문일까? 모든 문제를 덮고 그의 손을 잡고 멀리 멀리 떠나보내고 싶어지니. 하지만 난 그를 통해 결말을 지켜보고 싶은 욕망도 느꼈다. 하나씩 진실에 근접해 가는 그를 보며 그 끝이 어찌 되려는지 두렵기조차 했으니. 허나 결말은 없다. 그저 이 모든 사건들이 닐의 인생을 바꿔놓지는 않고 신에 대한 믿음도 결코 변하지 않으리라고 말하는 닐을 통해 희망적인 메세지를 전달할 뿐이다.

 전혀 생각지 않았던 이야기들이라 독실한 기독교인을 잡고 "정말이냐?"고 물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책일 뿐. 현실과 혼동하지 않기 위해 나는 무던히도 애쓰면서 읽어야 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종교에 대해 "종교란 이러 이러한 것이다." 라고 명확하게 정의 내릴 순 없지만 살아가는데 있어 분명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잡아주는 마음 든든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유약한 인간에게 주는 선물.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싶다. 어쩌면 닐도 이렇게 마침표를 찍고 싶지 않았을까? 어떤 상황에도 가톨릭교회는 이제까지 교회가 해온 역할을 계속할 것이며 그것을 위해 모든 교회는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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