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숲속의 유리 온실.
그곳에서 밤이 깊도록 유리벽 사이를 오갔을어떤 온기 어린 이야기들.
해지는 저녁, 하나둘 불을 밝히는 노란 창문과 우산처럼 드리운 식물들.
허공을 채우는 푸른빛의 먼지. 지구의 끝도 우주의 끝도 아닌,
단지 어느 숲속의 유리 온실, 그리고 그곳에서 밤이 깊도록유리벽 사이를 오갔을 어떤 온기 어린 이야기들을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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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내가 남들보다 잘하는 재주가 하나라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로 공부는 학창 시절 내내 나의 정체성이자 자존감의 근원이 되었다. ‘공부 잘 하는 학생‘이라는 이미지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내가 끝까지 공부를 해낼 수 있는 큰 계기가 되었다. 공부는 의무감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공부 동기라는 감정이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첫 중간고사 때 이후로 가장 큰 위기의식이 느껴졌다. 나는 3학년이 되면서 내 생활을 100퍼센트 수험생 모드로 바꾸었다. 그 좋아하던 게임도 끊었다. 마치 공부 기계가 된 것 같았다. 이 정도는 되어야 고3 수험생의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공부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1년을 보냈다.

공부를 많이 한다는 것은 혼자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 즉 자습시간을 많이 갖는다는 의미다. 남이 설명하는 것을 듣기만 하는것은 공부가 아니다. 제아무리 스타 강사가 하는 설명이라도 예외가 아니다. 스케줄에 자습 시간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학원과인강만 채워 넣는다면 그저 돈 낭비, 시간 낭비, 정신 에너지 낭비일 뿐이다.

내가 재미있어하는 것은 공부가 아니라 따로 있다. 바로 게임이다. 하지만 게임은 공부만큼 잘하지는 못한다. 게임 경력이 20년이 넘지만 내 게임 실력은 잘한다고 내세우기엔 부족하다. 편을 가르고 하는 게임에서는 못한다고 핀잔을 먹기 십상이다. 단 한 번도공부만큼 치열하게, 의무감을 가지고 게임에 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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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조언들의 전제는 ‘당신이 원하는 것(데이트 승낙을 얻거나,
물건을 팔거나, 최상의 조건으로 계약을 하거나, 회사에서 승진을 하는 것등)을 얻어내려면 규정된 방식대로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듣기는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도록 도와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상대에게 귀를 기울이는 유일한 동기라면, 사실상 연기를 하는것이나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진정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을 곧알아챌 것이다. 하지만 진실로 상대방에게 주의를 기울인다면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척 연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예외적인 친구관계는 대부분 삶의 특정 시점에 나눈 깊고 긴 대화를 통해 형성된다고 한다. 감정적으로 예민한 시기에 사귄 친구들과 유년기나 대학 생활 동안에 사귄 친구들, 질병이나 이혼 같은 위기를 겪은 기간에 사귄 친구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건 마치 먼 훗날 만났을 때 상대방에게 엄청난 양의 관심을 쏟아부을 수 있도록교감을 저장해두는 것과도 같다. 말하자면 과거에 자주 만나 깊이있는 유대감을 형성해두었기 때문에, 예컨대 말싸움 같은 일 때문에 오래도록 떨어져 있었다 해도, 다시 예전과 같은 수준의 교감을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주로 불안한 십대들이 자신의 정체성과 집단에 대한소속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자신을 노골적으로 표현했다(고스족이나 펑크족, 운동부, 오렌지족, 날라리, 덕후, 깡패 등을 떠올려보라). 하지만 요즘에는 이런 현상이 전 연령대로 확산되고 있다. 계속해서 파편화되고 있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타인과 신속하게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자신의 소속, 특히 정치적이거나 이념적인 성향을 훨씬 더 뚜렷하고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와 같은

누군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말은 그 사람의 마음속에무엇이 들어 있는지 귀를 기울인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때 동원되는 주의력의 강도는 관계의 깊이와 수명을 결정 짓는다. 가까운 사람들을 아주 잘 안다는 안일함에 빠지는 것은, 고정관념을 바탕으로 낯선 사람을 평가하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다. 특히나 낯선 사람의 뚜렷한 사회적 신호에 의해 강화된 고정관념은 극복하기가매우 힘들다. 하지만 듣기는 그런 덫에 걸려들지 않도록 당신을 보호해준다. 듣기가 당신의 예상을 뒤엎어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잠시 멈추고 귀를 기울이지 않을 때 당신은 중대한 기회들을 놓치게 된다(그리고 바보처럼 보일 수조차 있다). 게다가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당신의 지식에 아무런 보탬도 안 된다. 다시 말하지만,
당신은 당신 자신을 이미 잘 안다. 대화를 다 마치고 난 뒤에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한번 던져보라. 방금 나는 저 사람에 대해 무엇을배웠는가?‘, ‘오늘 저 사람의 주된 관심사는 무엇이었나?‘, ‘우리가나눈 대화에 대해 저 사람은 어떻게 느꼈을까?‘ 이런 질문들에 답할 수 없다면, 듣기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 "이미 모든 것을 다 안다는 태도로 대화에 임한다면 성장하고 배우고 교감하는 당신 자신의 능력을 제한하게 될 것입니다." 노에스너가 말했다. "저는 개

지능이 높을수록 옆길로 새는 성향이 적을 것이라는 생각도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똑똑한 사람들이 흘려듣는 경우가 더 많다. 대화 도중 생각할 거리를 더 많이 떠올릴 뿐 아니라 상대가 하는 말을 이미 안다고 가정하기도 더 쉽기 때문이다. 또한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더 신경증적이고 자의식적인 경향이 있는데, 이는 크고 작은 근심거리에 마음을 사로잡힐 가능성이 그만큼 더 높다는 것을의미한다.

니컬스에 따르면, 잘 들어주는 사람들은 여분의 관심을 잡념으로 허비하기보다 상대의 말을 이해하고 그의 의도를 직감하는 데쏟아붓는다고 한다. 그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려면 상대방이 하는말이 타당한지, 그리고 당신에게 그 말을 하는 동기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론은,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걱정하는 태도가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긴장을 풀고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면, 반응의 질도 더 좋아질 것이고, 유대감도 더 강화될것이며, 마음 상태도 더 편안해질 것이다. 또한 이런 태도를 취하면더 많은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만큼, 대화가 훨씬 더 흥미로워질 것이다. 이 경우 당신은 단어를 들을 뿐 아니라, 여분의 정신력을 활용해 화자의 신체언어와 어조는 물론 맥락과 동기까지도

하지만 상대를 향한 경각심이나 이념 대립을 촉발하는 "아냐,
이 멍청아!"와 같은 격렬한 반응을 누그러뜨리는 것은 가능하다.
질리언 토드가 학생들에게 말했듯이 분노나 짜증, 경각심 대신 고요하고 개방적이고 호기심 넘치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면 이런 반응들을 가라앉힐 수 있다. 게다가 상대방에게 귀를기울이면 상대가 어떻게 그런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는지 이해할수 있고, 그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그것이 당신의 견해를 변화시키는 뒷받침하든)도 알아낼 수 있다. 그러니 반대 의견을 품은 사람들에게 적대감을 표출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마다 숨을 고르면서 질문을 던지도록 노력해보라. 상대방의 논리적 결점을 드러내기 위한 질문이 아닌, 그들의 입장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그런 질문들 말이다.

‘적극적 경청‘ 이라는 용어를 도입한 심리학자 칼 로저스에 따르면, 반대되는 관점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이 인간적으로 성장하는유일한 길이라고 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여전히 제 생각을 재조정하는 걸 싫어하고, 인식하거나 개념화하는 오래된 방식을 포기하는 것도 싫어하지만, 좀 더 깊은 차원에서는 이런 고통스러운 재조직 과정이 바로 흔히들 말하는 ‘배움‘이란 사실을 깨닫기시작했습니다. 20

듣는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동의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단지 상대의 관점도 타당할 수 있다는 사실과 상대에게도 배울 만한점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다수의 진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과, 그 모든 진실을 다 이해할 경우 더 큰 진리에 도달하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을의미한다. 듣기 능력이 훌륭한 사람들은 이해의 과정이 이분법적이지 않다는 점을 잘 안다. 즉, 이해는 하거나 못 하거나의 문제가아니다. 언제든 향상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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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그렇게 얘기하면 "나쁜 한나라당이 있는데, 우리끼리 싸우면 어떡하냐" 고 해왔는데요.
우 역사에 ‘우리‘가 어디 있냐는 거죠. 역사는 옳은 것, 그른것, 혹은 잘 모르는 것으로 구성될 거 아닙니까? 우리라고 하는데, 누가 우리냐 이거죠. 프랑스도 그렇고 독일도 그러는데요.
사회당이 휩쓸 때 예술가들이 사회당 꼬집고 그래요. 미테랑웃긴다고 하지, 기립박수 치거나 용비어천가 부르는 일은 별로없어요. 남세스럽잖아요.

한 것이거든요. 그래서 사람이 그런 곳에 살다보면 황폐해져요. 언제나 좋은 게 아니거든요. 골프장 위주로 해놓잖아요. 그러면 경제가 나빠질 때가 되면 주민들이 못살게 되거든요. 그런 것을 몇 번 겪다보면 정서적으로 황폐해지니까 지역경제를구성할 때는 경기 민감도가 높은 거랑 낮은 거랑 적절한 비율로 구성할 필요가 있거든요. 그런데 난개발하고 그럴 때는 아무 생각 없거든요. 자기한테 직업을 선택하라고 할 때 한탕 하고 노는 직업을 할 거냐, 경기랑 상관없는 것을 할 거냐 하면 다안정적인 것을 한다고 그럴 거잖아요. 지역경제도 마찬가지거든요.

우 뭔가 좌파, 우파 양쪽이 다 얘기할 수 있는 중립지대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좌우토론을 하느냐하면 그런 것도 아닌 것 같구요. 논의 자체가 실종된 상태죠. 우파에서 얘기하면 좌파들이 생까고, 좌파들이 얘기하면 우파들이 생까구요. 토론이 좋은 것은 직접 싸우는 것보다 말로 싸우는 게 더 부드럽잖아요. 그리고 말로 이렇게 해보면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 여러 가지 드러나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얘기는없고, 행동만 많은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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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요즈음에는 이러한 강박이 콘텐츠 소비문화와 맞물려 새로운 양태로 펼쳐진다. 20대 전문 연구기관인 대학내일에 따르면, 적막에 대한 거부감과 효율적 시간 사용에 대한 강박이 팟캐스트나 브이로그 등스트리밍 콘텐츠 선호로 이어진다고 한다. 빈 시간을빈 상태로 남겨 두지 못하고 무언가를 듣거나 보면서여백을 지운다. 밥을 먹거나 길을 걸으면서도 콘텐츠를 소비하는, 바야흐로 멀티태스킹의 일상화다.

여행이 삶의 환유라면, 인생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모든 인연은 헤어짐을 전제로 한다. 다만그 길이와 밀도가 다를 뿐. 때문에 ‘어차피 헤어질 건데‘라는 말은 사실 모든 인연에 해당되는 숙명과도 같다. 어차피 헤어질 인연이니 마음을 내어주지 않겠다.
는 것, 추억으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것은 삶 전반에대한 태도에 다름 아니다. 생의 끝자락에서 바라보는추억의 가치는 시간의 길이에 비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슬래셔(Slasher)‘는 영단어 ‘slash(/)‘에서 온 말로 여러 직업으로 다채로운 삶을 사는 사람을 뜻한다.
"/‘로 직업을 나열하기에 붙은 명칭으로 국내에서는
‘N잡러‘라고 한다. 요즘은 주변에서 이러한 이들을 어렵지 않게 마주한다. 출간 작가, 강사 정도의 투잡은이제는 흔한 축에 속하며 회사원이면서 유튜버, 웹 소설 작가 등을 겸한다.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여유 시간이 늘어난 것도 한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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