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됨으로써,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다준 깨끗한 물과 안전한 음식을 누릴 수 있는 인구의 수가 점점 많아졌다. 여기에 가족계획이보급되고 교육이 개선되면서, 그런 요인들이 감염병 확산을 줄이는 데 백신이나 치료법보다 훨씬 더 크게 기여했다. ‘매큐언 가설McKeown hypothesis‘ 이라고 불리는 이 이론은 그 후 철저한 검증을 거쳐 입증됐다. 혹시라도 오해가 있을까 봐 밝혀두자면, 이 말은 약을쓰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의약품은 질병 희생자를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다만 그 공헌의 정도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
는 것이다.

치솟는 모양이 된다(그림 13), 이렇게 지수적 증가가 일어나는 상황에서는 한동안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가순식간에 많은 일이 벌어진다.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은 "수십 년간은 아무 일이 없다가 수 주 동안 수십 년 치 일이 벌어진다"
라고 했는데, 이런 현상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곡선이아직 평평한 상황에서 사람들을 행동에 나서게 하기란 무척 어렵다.

하지만 사람들이 아무리 손 씻기와 마스크 쓰기와 신체적 거리두기를 열심히 한다고 한들, 개인이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행동에는한계가 있다. 병원체의 확산을 저지하려면 집단행동이 필요하다.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모든 집단 개입 조치를 부담이 가장 작은 것부터큰 것의 순으로 살펴보자. 즉, 국경 봉쇄, 검사 및 추적, 집합 금지,
휴교, 마지막으로 미국에서 범유행 초기에 결국 발동했던 외출금지령을 차례로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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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심리상담사를 찾아간 내담자 중 상담사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한다. 상담사의 이야기가 그들이 원래 갖고 있는 이해와 충돌되기 때문에 설명은 귀로 듣지만자기 내면세계에서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귀로듣지도 않는다. 상담사의 이야기가 정확할수록 그들은 자신보다.
현명한 사람에게 조언을 듣고 있다는 생각으로 나르시시즘에 상처받는다. 이를 방어하고자 그들은 외부의 소리를 끊고 자존심을지키는 것이다.

나르시시즘, 특히 전능한 나르시시즘의 지배를 받으면 마지 하늘을 나는 느낌이다가 감정적 상처를 입게 되면 하늘에서 추락하는 느낌이 든다. 그로 인해 모든 문제가 자기 능력의 높고 낮은문제처럼 보인다. 그러나 주변의 이해와 사랑이 뒷받침되면 땅에견고하게 서게 되고 자신이 주변 사람들과 평등하다는 것을 알게된다. 상대와 동등한 감정이 정서적 만족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르시시즘이 너무 강할 경우에는 남들 위에 군림하는 만족감을 충족하려 들 수 있다. 그 결과 관계의 만족감을 주는상대를 경멸하며 멸시하게 되기도 한다.

개개인은 심리적으로 자기 체면 문제를 중요시한다. ‘누구든지 내 잘못을 지적해서 나의 체면을 잃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심각한 나르시시즘의 문제이다. 이는 너와 내가 하나의 자아로 합병된 공생 심리이다. 틀린 부분은 소멸되고 옳은 부분으로만 합병되기 때문에 옳고 그름의 문제가 생사의 문제가 된다. 반대로 나와 네가 분리되어 있다면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게 된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잘못은 반복된다. 이는 어떤 개인이나 집단도 마찬가지다. 잘못을 인정하려면 잘못이 허용될 심리적공간이 필요하다.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것은 타협적이고 관용적인 모습의 표현이다. 반대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과도한 나르시시즘과 편집증과 연결된다. 이제껏 항상 당신이 옳았다.
면 당신은 실속 있게 살아본 적이 없다는 진실의 반증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을 옳고 그름을 가리는 데 소비한다. 정의를 실현하고 지키기 위해 시비를 가리는 것 같지만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려움 때문이다. 자신이 옳고 그름에 집착한

결국, 자신이 완벽하다는 환각이 폭로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노력을 멈추게 만든다. 이런 심리는 복잡해보이지만 핵심은 간단명료하다. 세상 혹은 특정 대상이 자신의 소망에 정확하게 호응해주기를 바라는 요구이다. 그 소망이 정확하게 응답되는 순간자신이 전능하고 완벽하다고 평가받는다고 여긴다. 그 결과 그는어떤 것에도 몰입할 수 없다.

진실을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과 상대의 진실한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 적지않은 사람이 완벽한 상대의 출현을 기대하며 완벽한 기준을 제시한다. 인간관계는 일방적인 배려나 관심보다 상대의 진실한 모습에서 잊었던 사랑이 발견된다. 서로에게 진실하기는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기에 더 귀하다. 화해는 여기서 시작된다.

적지 않은 사람이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한다. 그중 일부는 진실한 자아를 감추기 위해 거짓을 꾸며댄다. 자신의 진실한 정보를 부끄럽게 느끼고 다른 사람과 교제할 때 자신의 정보를 수정해서 보여준다. 진실한 자아를 드러냈다가 긍정적인 반응을 받지못했을 때 그에 따른 수치심을 피하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한달수입에 대한 질문받았을 때 사실보다 높거나 낮다고 대답하는 것과 같다. 이는 이익이나 도덕과 상관없이 자기 보호의 방식이다.

가 존재한다. 거만함과 자신감은 다르다. 자신감은 진실한 관계에서 나타난다. 이 관계는 자신과 자신, 자신과 타인의 관계를 모두 아우른다. 자신의 우세한 조건을 내세우면 거만이 되지만 좋은 조건임에도 진실함이 동반되면 자신감이 되고 응원받는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자신의 좋은 조건만을 보고 우러러본다면 겉으로 즐거울 수 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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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인에게 그리스 고전기는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것은 유럽문명과 문화, 철학, 예술 등 모든 분야가 이때를 모범과 기준으로 삼기때문이다. 쉽게 말해 오늘날 유럽인은 자신들의 정신적 뿌리가 여기에있음을 잘 안다. 그래서 그리스 고전기 앞뒤의 역사를 알아두면 서양이라는 절반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우리도 핵심 사건을 중

이 기록되어 있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이 저술한 초기 대화편 <뤼시스>의 내용을 직접 듣고는 어린 플라톤이 자신이 결코 말한 적이 없는 내용을 너무 많이 썼다고 불평한다. 참고로 당시의 소크라테스는 60대였고,
플라톤은 20대 청년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둘을 구분해야 한다. 역사적 사실로서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소크라테스를 말이다. 이 구분이어렵다는 의미에서 사람들은 이를 ‘소크라테스의 문제‘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그가 제시한 거대한 철학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데아론이다. 이데아론은 플라톤 사상의 중심 개념으로, 핵심은 의외로 친숙하다.
그것은 ‘이데아 세계가 실재한다‘는 것이다. 이데아 세계란 절대적이고완벽한 불변의 이상 세계를 말한다. 현실의 모든 것은 낡고 늙고 병들어간다. 시간이라는 필연 안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란 없다. 반면에 플라돈은 변화하는 불완전한 현실과 구별되는 완벽한 이데아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이데아의 세계가 진짜 세계이고, 현실 세계

앞서 살펴보았듯 동양에서는 문명 초기에 이미 이러한 생각이 시작되었고 오랜 시간 많은 이에 의해 심도 깊게 탐구되었다. 하지만 서양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이후로 이원론적 세계관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고,
이것은 자아와 세계를 분리된 존재로 파악하게 했으며, 이로 인해 외부세계를 실재하는 세계로 받아들이게 했다. 외부 세계를 내면 세계의 반영으로 생각하는 입장은 근대 이전까지 등장하지 못했다. 그러다 17세기의 예비 단계를 거쳐 18세기 칸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진지하고 심도 있게 탐구되었다.

칸트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는 기존의 사람들이 외부에 존재한다고 당연히 믿어왔던 인식 대상의 위치를 인식 주체의 내면으로 옮기고 있는 것이다. 지금 당신 눈앞에 펼쳐진 외부 세계는 당신 바깥에 존재하는 세계가 아니라, 이미 당신의 인식 과정을 통해 내면에 그려진 현상 세계다. 칸트의 철학은 그래서 ‘관념론‘이 된다. 그는 실재론에서 벗어나 고대의 위대한 스승들처럼 눈앞의 세계가 그저 자아 내면의 현상임을 꿰뚫어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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즘의 상태를 지향하려 한다. 그러나 세상은 매우 복잡하다. 우리는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치열한 경쟁을 겪으며 자신을 낮춰야 할 때가 있고, 좌절과 실패를 감당할 능력을 키워야 할 때가 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나르시시즘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높은 수준의 나르시시즘을 추구해야 할 뿐만 아니라, 높고낮게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어떤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처신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의 걸음걸이에는 세 가지가 있다. 미래는 주저하면서 다가오고,
현재는 화살처럼 날아가고, 과거는 영원히 정지하고 있다.
실러

나르시시즘은 경쟁 사회에서 자신을 지키는 힘이다. 사회에서 상대적관점으로 자신을 바라보면 부족한 능력이나 허점의 구멍이 커 보이는데 이에 대처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자신을 아낌없이 보듬고 보호하기 위해 자기애에 푹 빠지는 나르시시즘이고, 다른 하나는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자존감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나르시시즘이다.

타인의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기본적인 나르시시즘이 형성되지 않은 경우이다. ‘나는 부족한 사람이다‘ 라는 내면의 메시지가 자아를 산산조각낼수 있기에 타인의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고 지적에 예민해지는것이다. 상대의 말 한마디에 수렁에 빠지는 것처럼 자신감을 잃고 의지를 잃으며 의욕을 상실한다. 그로 인해 자아가 지탱해내지 못한다.

큰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정無情‘이 필요하다. 상대가 전적으로 의지하고자 하는 욕구를 무시할 수 있고, 자신의 법칙에 맞지않는 방식을 시도할 수도 있다. 비위를 맞추지도 않고 자신의 의지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일 자체의 법칙을 따른다. 개인의 의지와 일의 특성과 성질을 고려하고 융합해 나가며 일을 처리하는것이다.

이기적이지 않다고 자처해온 사람이 오히려 이기적일 수 있다.
가끔은 스스로 이기심을 허락하고 상황에 따라 강하게 발휘한다.
는 점을 인정하는 것은 매우 큰 성장이다. 자기 내면에 이기심이존재하고 자아도취에 빠지기도 한다는 것을 깨닫고 인정한다면자신과 주변 사람의 관계가 훨씬 편해질 수 있다.

도덕성이 높은 사람은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참는다. 화가 나는상황에서 화를 내면 좋은 사람‘ 이라는 자기 정체성이 무너지기에 분노를 억누르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고 ‘상대방이 절대적으로 틀리다‘는 위치에 놓여야 반격할 수 있다고생각한다. 이런 대립감은 그들의 도덕적 주장을 더욱 강화시켜파괴적인 공격성을 드러내게 만든다. 이때의 반격에는 관계의 파괴가 수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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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몸에 좋은 김치를 들기름에 볶는다면, 들기름에 함유된오메가-3가 산화되어 몸에 염증을 일으키는 해로운 물질로 변하게 되는것입니다.


문지기를 제거하여 지방이 창고 밖으로 나와 에너지로 활용될 수 있는방법은 인슐린을 가장 많이 자극하는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지방 섭취는 인슐린을 자극하지 않습니다.


비타민B1은 탄수화물 대사 과정에 매우 긴밀한 작용을 하는 만큼 평소정제 탄수화물 위주의 식습관과 설탕이 많이 들어 있는 음식과 음료를 자주먹고, 술도 자주 마신다면 더욱더 비타민B1의 섭취가 필요합니다.


또한 과도한 카페인 섭취는 이뇨 작용을 유발해 우리 몸에 탈수 작용을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를 막는 한 가지 팁을 알려드리자면 커피에 소금을살짝 첨가해 마시는 것입니다. 이는 커피로 인한 탈수 작용을 막는 데도움이 됩니다. 소금은 될 수 있으면 정제된 소금보다는 각종 미네랄이함유된 천일염을 추천합니다.


다이어트를 위해 저염식을 해야 한다는 상식과 정반대로 오히려 소금을너무 적게 섭취하면 점점 더 살찌는 몸이 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연구논문에 저염식은 인슐린 저항성을 증가시키고, 인슐린 저항성은 체중증가와 매우 큰 연관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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