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신부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44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은선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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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뉴스나 영화 광고 등에 간혹 등장하는 내용 중에서 팜므파탈(팜파탈)이란 단어를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듯하다. 이 말은 19세기 유럽 낭만주의 문학에서 등장하기 시작하여 남성을 상대로 죽음이나 고통과 같은 상황으로 몰아 치명적인 가해를 입히는 악녀 또는 요부의 이미지로 확대되어 사용되어지다가 최근에는 상업적인 이미지가 더해져 고혹적이고 매력적인 여인의 모습으로 대변되어 사용되는 듯하다. 사실 팜파탈의 등장 배경은 지난 오랜 세월 동안 가부장적인 우리 사회의 모습 크게 반발하여 여권 신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여성의 심리 내면에 팜파탈적인 성향이 보이는 것은 아마도 지난 과거 시절의 억압되고 차별받는 과정에서 생겨난 자연스러운 현상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페미니즘적인 요소가 짙게 느껴지는 이 작품은 남자들의 삶을 파괴하는 전형적인 팜파탈의 모습을 하고 있는 지니아라는 한 인물을 통해 이와 관련한 세 여성의 복잡한 내면의 심리적 변화의 과정을 섬세하고도 심층적으로 표현하여, 여성의 입장에서 때로 심한 상처로 인해 자아를 잃고 심리적으로 위축된 불안한 삶을 어떻게 극복해 갈 것인가에 대한 것을 깊게 고민해보고자 했으며, 한편으로 책 속에 등장하는 세 여성이 경험하게 되는 현실을 통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두고 그것을 냉철하게 보려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방치하거나 혹은 과대 포장하게 될 때, 그것이 결과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옭아매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음을 지적하고 있지 않나 싶다. 더구나 남녀 간에 이루어지는 사랑에 관한 감정의 문제에서는 특히 이러한 경향이 더욱더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어쩌면 이 작품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가 냉혹하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이 문제는 자기 스스로가 아닌 그 누구도 해결해줄 수 없는 맥락이라고 생각해보면 그 나름대로의 충분히 공감을 표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책 속에는 모두 4명의 주인공 여성이 등장하는데, 대학교수를 지내면서 전쟁에 관한 역사의 내용에 흥미를 느껴 집과 학교에만 관심을 쏟는 토니와 사업가의 기질을 발휘하며 세상에 굴하지 않고 당당한 여성으로 살아가는 로즈, 여성스러운 면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몽상을 즐기는 캐리스, 그리고 아름다운 미모를 바탕으로 자신의 친구들의 남편을 유혹하여 그들의 삶을 파괴하고 악녀로 등장하는 지니아가 바로 그들이며, 책의 제목인 도둑신부는 평범한 남자의 가면을 쓰고 젊은 여자들을 잡아먹는 도둑신랑이라는 동화의 내용을 담은 제목에서 따온 것으로, 상황이 반대이긴 하지만 여기서는 팜파탈의 이미지를 가진 지니아의 모습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이야기는 그녀들의 성장과정에서부터 이후 그녀들이 겪게 되는 파란 만장한 인생의 이야기들이 흥미롭게 펼쳐져 있다. 각 캐릭터가 지닌 특징으로 볼 때 오늘날 대부분의 여성들은 대체적으로 이 범주 안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으며, 이러한 면에서 생각해보면 아마도 저자는 이 책에서 여성들이 남자들과의 관계에서 더러 생기게 되는 예기치 않은 혼란스러운 상황을 두고 전개되는 여자들의 복잡한 심리의 부분을 솔직하게 그려보고자 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다.

그녀들은 모두 메클렁 홀이라는 대학교 기숙사라는 공간에서 함께하는 동료로 지내지만 서로 마음을 터놓을 만큼 그리 친하게 지내지는 못하던 사이였다가, 졸업 후 각자 결혼의 시기를 거치면서 지니아가 그녀들의 남편들을 하나씩 농락하면서 가정을 파탄으로 몰아간 모두 비슷한 상처의 경험을 얻게 된 계기로, 이후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물어가며 그녀들의 기억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 지나간 과거의 동일한 상심의 후유증을 함께 치유해가면서, 앞으로 펼쳐질 그녀들의 인생 나머지 부분에 대해 각자의 생각과 의견을 주고받는 사이로 발전한다. 그런데 독자로서 책을 읽다보면 지니아를 제외한 나머지 그녀들의 성장과정에서 하나의 두렷한 공통점이 발견되는데, 이들은 하나 같이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 신뢰의 구석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즉 이들의 아버지에게서 나타나는 모습들은 대개 한때 바람을 피우면서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심정을 고통스럽게 만들거나 혹은 부모와 자녀 간에 이루어지는 충분한 교감의 시간들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다는 점이다. 더불어 토니의 경우에는 신체적인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으며, 캐리스의 경우도 어려서 인척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가지고 있어서, 이러한 과거의 기억들로 인해 그녀들은 어른이 되어서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남성들과 관계에 자신감을 잃게 되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래서 그녀들은 결혼 이후 남편으로부터 일방적인 처사를 당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반항하기보다 스스로를 합리화 시켜 위안을 얻는 자기만족에 그치고 만다. 이후 그녀들은 지니아가 그녀들의 남편을 유혹하여 그녀들의 가정을 내팽개치고 도망가게 만든 결과를 두고, 지니아를 만나 그녀의 의도적이며 악의적인 행동에 분개하지만, 돌이켜 그녀들 스스로 남편을 그렇게 만들어버린 일부의 책임감에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인식하게 되고, 따라서 그녀들은 지니아의 그런 행동은 분명 비난 받아야 된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마음의 한구석에는 지니아의 그런 팜파탈적인 면을 동경의 대상으로 삼아가기도 한다.

책을 읽으면서 전개되는 그녀들의 이야기가 소설 속 다른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않는 것은, 상황만 조금 다르다 뿐이지 이와 유사한 일들이 오늘날에도 여전이 계속 되고 있고 이로 인해 심리적인 방황에 놓인 여성들이 오늘 우리의 사회 안에도 많이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생각해보면 지니아가 지닌 강렬하고 매혹적인 팜파탈적인 요소가 필요해 보이기도 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연인을 온전하게 소유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는데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여성의 입장에서 어느 누구로부터의 시선에도 예외가 되지 않는 아름답고 매력적인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어 하는 마음 속 욕망을 부정하거나 이를 거부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 책 지니아라는 인물에서 보듯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해 볼만한 것은 그렇게 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타인에게서 혹은 자신의 연인으로부터 당연히 인정하고 바라봐주길 기다리는 수동적인 입장이 되기보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능동적인 것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것이다. 결국 이 책 등장인물로부터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이 그저 단순한 감성적 호소만으로 되는 쟁취되는 것은 결코 아닌듯하며, 자신의 부족함이 무언지를 깨닫고 이를 조금씩 채워 나갈 때 비로소 그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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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털 같은 나날
류전윈 지음, 김영철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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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에 따라 약간의 변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하루를 무사히 마친 것에 감사를 표하고 보일 듯 말듯 소박한 희망 하나 목전에 걸어놓고 내일을 바라고 살며, 작은 것에도 마음 아파하고 사소한 일에도 쉽게 상처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역사 속의 주체가 되면서도 그 누구 하나 기억해주지 않는 이들을 가리켜 우리는 소시민이라 부른다. 오늘도 무수히 많은 소시민들은 하루의 일상을 보내면서 일희일비하며 힘들고 고단한 삶을 영위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소시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넓게 생각해보면 권력의 힘 앞에 더러 굴종된 삶을 강요받아야 하고 가진 자들에 의해 교묘히 이용당하면서도 이를 어쩌지 못해 스스로 감내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한편으로 그러한 가운데서도 현실적인 것을 부정하지 못해 때로 자신을 속이는 비굴함을 보이기도 하고, 팔이 안으로 굽는 것 마냥 이기주의 편에 당당하게 서서 속물적인 근성을 드러내고야 마는 것이 바로 이들의 삶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생각해 볼 것은 그 안에 또렷하게 보이는 이들의 모습 이 바로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라는 것을 우리는 분명 주시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 누구도 자신에게 소시민으로 살아가라고 주장하거나 권유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들 중 대부분은 이 부류에 속해 있고 또한 스스로를 소시민이라 자처하며 살아가면서, 우리가 이를 객관화시켜 보려고 하는 노력조차도 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심히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고 여겨진다.

이 작품은 때로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그래서 한 없이 나약해 보일수도 있는 소시민적인 여러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사실적이면서도 적나라하게 표현하여 마치 거울을 통해 우리의 자화상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게 하면서도, 그 내용의 전개에 있어 풍자와 해학을 적절하게 가미되어 상황에 따라 시시때때로 변하는 인간의 본성을 과감하게 들추어냄과 동시에 모순으로 점철된 우리의 모습을 제대로 지적해내고 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일깨워 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옴니버스의 형태로 모두 3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소설은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소시민의 모습을 개인과 조직 그리고 역사라는 틀에서 그들의 모습이 어떻게 오늘 우리에게 비추어 지고 있는지를 재조명 하고자 했으며, 이와 관련하여 사회 부조리한 면을 은근히 비판하는 시각을 담고 있기도 하다.

책의 내용 중 닭털 같은 소제목을 달고 있는 첫 번째 단편은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하여 부인과 맞벌이를 하면서 구차한 삶을 살아가는 한남자의 일상생활이 그려져 있는데, 월급쟁이로 근근이 버티면서 매사 자신의 마음과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고민하는 나날을 보내게 되지만 스스로를 합리화하는데 점차 길들여지는 전형적인 인간의 모습을 담고 있으며, 두 번째 기관이라는 작품은 직장이라는 조직 속에서 벌어지는 여러 인간 군상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그렸는데,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점이나 편리를 위해서라면 그것이 결코 옳지 않음에도 편을 가르고 상대방을 끄집어 내리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조직 문화의 불편한 인간관계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적나라하게 잘 드러나 있어서, 비록 공산주의라는 폐쇄적인 분위기를 그 바탕에 깔고 있긴 하지만 본질적인 부분만을 놓고 생각해본다면 여러모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끝으로 세 번째 1942년을 돌아보다 라는 이 작품은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보았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가뭄과 기근으로 수백 만 명이 목숨을 앗아간 끔찍한 사건을 두고 당시 이를 마주하고 있는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 그리고 제 3자의 시각 차이에서 오는 커다란 괴리감이랄까 같은 것을 다시금 새롭게 느끼게 하지 않았나 싶고, 더불어 과거 중국의 상황과 똑같지는 않다 하더라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지나간 과거에서부터 오늘 이르기까지 우리 정치사의 모습을 곰곰이 되새겨 볼 수 있었던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어느 사회에서든 소시민의 일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삶의 방향 면에서 본다면 그리 큰 차이점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함께 공존해가야 하는 사회 속에서 이러한 소시민의 삶의 모습이 이 책에서처럼 각 개인의 이기주의와 서로 상충하면서 계속 이전투구 하는 양상을 보이게 된다면 그만큼 그들의 삶은 더욱 힘들고 고달파 질 것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책 속에서 소시민의 여러 모습들을 통해 겉과 속이 다른 면을 부각시켜 자칫 자신을 모습을 되돌아보려 하지 않는 타성에 젖은 우리의 인습들을 지적함과 동시에 이를 부추기는 사회 제도의 불합리성과 또한 조직과 관료사회에서 자행되는 그릇된 행태들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어 독자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듯하다. 또한 한편으로 오늘날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관계에 내몰려 불안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을 보면서, 이 책에 나타난 가난하고 연약한 그들의 모습이 단순히 허구적인 것이 아닌 우리의 모습과 너무 흡사한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씁쓸해지기도 한다. 세편의 단편 작품임에도 그 내용을 생각한다면 개인적으로 적잖은 문학적 가치와 인간의 본성에 대한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생각이어서 많은 독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한번 눈여겨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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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삭이는 자 1 속삭이는 자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시공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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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범죄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태어나지는 않는다. 더구나 인간에게는 자신의 감정을 제어할 수 있는 이성이라는 힘을 가진 존재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서 그런지 스스로를 생각할 때 범죄자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오늘 우리의 사회에 벌어지는 범죄들을 보면 차원 높은 과학적인 수사기법이 발달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한편으로 보면 범죄자들의 그 범죄의 구성내용이 이전보다 점점 치밀하고도 대범하게 이루어지고 있어서, 때로 우리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는듯하다. 그런데 우리주변에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단순하고 일시적인 충동으로 범하게 되는 범죄의 행위는 그렇다 하더라도 연쇄살인과 같은 끔찍한 범죄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 이 작품은 현실에서는 좀처럼 생각하기 힘든 사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실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여아 어린이들을 납치하여 연쇄적인 살인을 저지르면서 그런 거북한 범죄행위를 두고 범죄자가 일종의 자신의 쾌락을 얻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간주하면서, 인간의 본성이 때로 얼마나 무섭고 얼마만큼 잔인해실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지 않나 싶고, 그것이 책을 대하는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단 한순간도 방심의 틈을 주지 않는 팽팽한 긴장감과 공포를 시종일관 유지시켜주는 것은 물론, 등장인물들의 심리적 묘사와 사건의 전개나 구성면에서도 치밀하고 박진감 있게 그려져 있어서 이러한 장르를 좋아 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한번 눈여겨 관심을 두어도 좋을 만한 작품이라 여겨진다.

일반적인 사건과는 달리 사회적으로 커다란 문제가 되는 강력범죄를 주로 다루는 행동과학 특별 수사팀은 어느 도시에서 아이들이 하나둘씩 연속적으로 감쪽같이 사라져 행방불명되면서 급기야는 이것이 해당지역 내에 상당한 사회불안의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고 받게 되면서 수사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 후 사라진 아이들의 신체일부가 발견되었다는 한 신고자에 제보에 의해 현장으로 급파된다. 조사 결과 그곳에서 발견된 것은 유괴되었던 다섯 아이들의 왼쪽 팔이었고 추후 조사에서 새로운 아이의 여섯 번째 팔을 발견한다. 즉 사건현장에는 시체는 어디로 온데간데없는 오로지 일정한 간격으로 아이들의 신체 일부분만 그곳에 매장되어져 있었으며 범죄자가 현장에 남긴 어떤 증거도 없었음을 확인 한다. 수사팀은 범죄학자인 게블러 박사를 필두로 전문 수사요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들은 즉시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사건 현장에서 수거해간 아이들의 팔을 분석한 결과에서 유괴된 다섯 아이들은 유괴 후 곧 살해되었으며 여섯 번째 소녀의 팔에서는 출혈을 멈추게 하는 특별한 약품이 쓰였음을 알고 이 아이가 현재 살해되지 않고 생존해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범죄의 행방을 추적하게 된다. 그러던 중 수사팀은 고속도로 순찰대의 검문에 의해 체포된 사람의 차 트렁크에서 처음으로 유괴되었던 아이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지만 체포된 당사자는 즉시 자살하게 되고, 수사팀의 최종 조사 결과 그는 아이를 유괴한 범인이 아니며 범죄에 이용당한 자에 불과하며 실제 범인은 상당한 의학 지식을 겸비했으며 고도의 두뇌를 가진 소유자로 자신의 쾌락을 위해 살인을 즐기는 자로 판명됨에 따라 이에 직면한 수사팀은 다시 암울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이 작품에서 특징적으로 보이는 것은 실화를 통한 다소 쇼킹해 보이는 연쇄적인 유괴살해사건이 사실적이면서도 극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도 그렇지만, 범죄심리학자인 게블러 박사와 납치전문 수사관으로 나오는 밀라라는 여형사, 그리고 연쇄살인 범죄자 간에 벌어지는 긴장감 넘치는 심리적인 묘사 부분이 독자로 하여금 책 속으로 자연스럽게 몰입시키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프로파일러인 게블러의 박사가 범죄의 행위를 추적해가는 과정에서 보통 연쇄 살인범죄자들에게서 나타나는 행동적 특이성과 그들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성향들을 분석해가는 부분은 마치 수사과정을 현장에서 보는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할 만큼 생생하게 느껴진다. 공포가 우리를 솔깃하게 만드는 것은 외부적으로 보이는 단순한 잔인함을 전해주는 것보다는 그러한 현상이 일어나기까지 진행되는 숨 막히는 과정에 있다. 이 작품은 그러한 점을 잘 살려 독자들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제공함과 동시에 한편에서는 범죄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기묘하게 펼쳐지는 미스터리의 부분도 상당해서 기존의 추리소설에 식상함을 느낀 독자들에게는 좋은 독서의 시간을 마련해주리라는 생각이다. 많은 추리 소설들이 출간되고 있지만 요즘 추리소설을 읽는 독자들의 눈높이가 상당히 높아져 있어 이에 상응한 작품이 의외로 그리 많지 않은듯하다. 따라서 실화를 바탕으로 공포와 추리 그리고 미스터리의 요소가 조화롭게 잘 어우러져 있으면서도 탄탄하고 치밀한 구성된 스토리의 전개 속에서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스릴과 서스펜스가 돋보이는 이 작품을 통해서, 독자들이 추리소설이 주는 각별하고도 색다른 묘미를 마음껏 만끽해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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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에 관한 간단한 고찰 2
박동선 글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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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속담 중에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이 주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아무리 오래기간을 서로 알고 지낸다고 해도 그만큼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기가 어렵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부딪치고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는 더러 나와 마주한 상대방이 이성이든 동성이든 간에 다른 사람보다는 그래도 조금은 가깝게 지내고 싶은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며, 이 중 일부의 사람들과는 그러한 관계 이상의 어떤 끈끈한 인간적인 유대를 계속적으로 유지하고 싶은 마음들이 분명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의 인간사라는 것이 언제나 애초 의도하거나 생각했던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듯, 우리의 인간관계역시도 처음에 맺었던 그 상태로 관계가 변하지 않고 진행되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아 보인다. 물론 그러한 과정에서 서로간의 관계를 도저히 지속시킬 수 없는 어느 한쪽에서의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면 모르지만, 그런 어떤 내세울 만한 특별한 사유가 없음에도 그 관계가 어느 순간 서서히 느슨해져 가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자신이 상대방을 대하는데 있어 서투른 방법의 차이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다시 말해서 서로 간에 주고받는 말이나 행동에서 그리고 습관적인 부분의 특성에 대해서, 어느 순간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생기는 오해의 부분이 조금씩 생기게 되고 이것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누적되어지면서 결국에는 이런 문제가 더 이상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에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에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에 대해 우리가 조금 생각을 달리하여 상대방의 그런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을 보인다면 우리의 인간관계가 이전보다는 훨씬 수월해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다.

이 책은 우리가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지니게 되는 혈액형을 그 기준으로 하여 대개 각 혈액형의 행동이나 심리적인 특징들을, 상황 설정에 따라 그 차이점을 적절하게 잘 잡아내어 간단명료하면서도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풀어 놓아서 부담 없이 편안한 생각으로 펼쳐보면 좋을듯하다. 물론 혈액형에 따라 저마다 사람들의 성격이나 행동적 특징을 몽땅 포괄하여 한마디로 단정해도 된다는 그 어떤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접근법이 우리에게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의외로 어떤 면에서는 상당부문 동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데다가, 우리의 인간관계를 어떻게 하면 원활하게 유지하며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그 어떤 명확한 해결점이 없다고 보면, 통계적으로 나타나는 혈액형의 특징에도 나름대로 우리가 참고해 볼 수 있는 좋은 점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개인적인 판단으로 먼저 이 책을 과학적인 혹은 논리적인 면에서만 한정해서 보면 자칫 건조해질 수 있으니, 그렇게 하기 보다는 저자의 의도한 우리가 매일 부딪치게 되는 현실적인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내용들에 관하여, 이를테면 상대방은 왜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행동했을까 하는 점에 중점을 두어 생각해 본다면 독자들이 이 책에서 많은 긍정적인 측면들을 찾아 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따라서 책에 나와 있는 대로 일부 내용을 근거로 살펴본다면 책상정리 스타일을 두고 각 혈액형의 특징들을 살펴본 내용에서 우리는 이들만의 뚜렷한 행동에서 다른 여러 부분을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 싶고, 충동구매가 심할 것 같은 내용을 다룬 부분의 경우 혈액형 각 스타일에 맞는 적절하고도 재미있는 그림과 설명을 통해서 우리가 잘 모르고 있었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리라고 본다.

공동체사회 속에서 보통 우리들은 우리라는 개념을 가지고 살아가게 마련이다. 이렇다 보니 대체적으로 인간관계에서 생각지 않았던 불미스러운 일로 우리는 많은 불가분의 스트레스를 안고 사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지닌 대부분의 불쾌한 스트레스 주범은 바로 이런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어찌 보면 불가한 일인 지도 모른다. 단지 상대방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우리가 조금 노력하는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사람의 일부분만을 보고 그 사람의 전체를 판단할 수는 없는 일임에도 우리는 은연 중 이러한 실수들을 곧잘 하곤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처한 환경이 틀리고 자라온 과정 모두 제각각이다. 그래서 나타나는 행동들의 형태가 모두 일률적일 수는 없을 지라도, 갑자기 무서운 것을 보면 우리가 대체로 놀라는 것처럼 사람에게는 일정한 패턴들이 분명 있지 않을까 싶다. 책 속에는 참으로 다양한 주제를 놓고 각 혈액형들이 나타내는 뚜렷한 행동의 특이성을 재미있게 나열해 놓아 독자들이 흥미롭게 한눈에 파악 할 수 있도록 잘 엮어져 있다는 생각이다. 이 책이 비록 혈액형이라는 전제를 달아 놓긴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어느 특정인의 심리나 행동에 대해 알고 싶거나, 더러 인간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서툴러 많은 고민을 안고 있는 독자가 있다면, 인간의 심리를 심층적으로 다룬 전문적인 책을 펼쳐보는 것도 좋을 수 있겠으나, 한편으로 간단명료하면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이 책을 참고해보는 것은 나름 괜찮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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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 비판 - 지식 경제 시대의 부와 분배
가 알페로비츠 & 루 데일리 지음, 원용찬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미국에 어느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1982년도 미국회사의 평균 CEO는 평균 노동자 보다 42배가 넘는 보수를 받았으며 2004년에는 무려 이보다 10배가 넘는 431배의 급여를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더불어 이후 조사한 내용을 보면 미국인의 상위 1퍼센트가 한해 국가가 벌어들인 세후 소득의 15퍼센트 정도를 가져간 것으로 파악됐다. 더불어 극히 일부인 이런 고소득자의 소득이 미국의 하위계층 1억2천만 명의 소득을 합친 것보다는 많다는 것인데, 이를 토대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지금 현재 미국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의 편중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를 나름 구체적으로 가늠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심각한 소득의 불평등 문제가 과연 미국자체만의 문제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며, 오늘 우리의 경제 현안에 비추어 놓고 보았을 때, 점점 중산층이 사라져 가는 현상들을 보면 우리나라 역시도 이런 지적에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데 있다. 많은 사람들은 말하기를 엄청난 부를 소유한 사람들은 그만한 부를 창조하는데 충분한 기여를 했으니 당연히 그럴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얼핏 생각하면 이 말은 자본주의 체제를 추구하는 우리 사회에서 아주 자연스런 이야기로 받아들여질지 모르겠지만, 사실 이러한 명제에 대하여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여러 사실들을 우리는 은연 중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오늘날 빈익빈 부익부를 양산하며 이를 부채질 하고 있는 소득 불균형의 문제에 관하여, 과연 무엇이 문제이며 이런 내용을 두고 그 동안 우리를 지배해왔던 그릇된 인식이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어 있던 것인지를 되짚어 보고, 극단적인 소득의 양극화로 불거지고 있는 오늘의 불편한 현실을 타개할 경제 정의에 대한 새로운 전환점을 구체적으로 모색해보고자 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나 학자들의 말을 인용해 오늘날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소득 불평등의 문제가 단지 개인적인 노력이나 숙련기술 혹은 그들이 지닌 재능 차이에 따른 자연스런 결과라고 단정 짓는데 대해 근본적인 잘못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빌게이츠나 워런버핏과 같은 일부 고소득자들을 예로 들면서, 그들이 수치를 논하기도 힘들만큼 엄청나게 벌어들이는 소득의 결과를 두고, 그것을 오로지 자신들의 능력만으로 이룬 것이라 주장하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러한 논리의 견해를 근거로 만약에 빌게이츠를 생산요소가 오로지 자연밖에 없는 어느 무인도에 홀로 놓아두었을 때에, 과연 그가 자신의 신체적인 노력과 지능만으로 그만큼의 수익을 얻을 수 있겠는가 라며 오히려 반문한다. 다시 말해 빌게이츠가 그런 소득을 올리게 된 그 근본적인 내용에는 지금까지 우리사회에 축적되어 있던 지식의 산물들을 이용한 결과라는 것이며,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과거로부터 아무런 대가 없이 물려받은 그러한 유산들이 없었다면 그가 얻을 수 있는 소득은, 우리의 일반 노동자들이 직접 생산물 창출하는데 있어 본인이 기여한 만큼만의 소득을 얻어가듯이 그도 별 차이가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이 책에서 지적한대로 기업가든 육체적 노동자든 모든 개인들의 벌어들이는 경제적 이득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에 의한 것이지 결코 그들이 현재 새롭게 창조해 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윤리적인 시각에서 봐도 이를테면 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이 감옥에 가지 않은 것처럼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로 처벌 받을 수 없듯이, 생산물을 만들어 내는데 있어 자신이 기여한 부분이 없다면 당연 이에 대한 소득을 주장할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하나의 전자제품을 생산할 수 있었던 것은, 과거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이루어 왔던 기술적 지식이 뒷받침되었기에 바로 가능했던 이유라고 해야 옳을 일이다. 따라서 이를 이용해 어떤 특정인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했다면 그 인센티브만큼의 일부 소득을 얻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당연 인정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를 논하기에 앞서 고려해봐야 할 것은 그 동안 축적되어왔던 지식의 산물이란 것이 유독 그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닌,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재산이므로 이에 대한 응당한 조치가 취해져야 하는 것이 마땅한데, 이를 무시하고 발생한 이익 모두를 그 사람의 소득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과거에서부터 비롯되어 온 여러 지식적인 배경이나 기술을 이용하지 않고도 오로지 자신의 독창적인 지식이나 재능만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면 그로 인해 얻어지는 이익은 말 그대로 홀로 독식해야 하는 것이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는 신의 영역에서나 가능할 수 있는 일이지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지금 우리에게까지 흘러온 기술의 축적 과정은 복잡했을지라도 이를 유추해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원시시대의 생활을 생각해보면 그들은 애초 아무런 경험이나 지식이 없이 자신의 몸으로 직접 사냥을 시작했었을 것이다. 그들은 어느새 그런 행위를 반복하면서 보다 나은 새로운 방법을 알게 되었던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후대에 이르러서는 이전보다는 또 다른 획기적인 연구를 통해 좀 더 발전적인 방법으로 진행되었을 것이며, 이는 다시 무상으로 또 다음세대로 전달된다. 결국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인류는 그 지식의 전파를 팽창하는데 점차 힘을 써왔던 것이고, 또한 그 중심에는 국가의 커다란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따라서 위에 여러 근거들로 볼 때 우리가 오늘날 이루어 온 경제 성장의 그 원천을 생각해보면 이는 과거로부터 누적되어 온 지식이 축척되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저자는 결론적으로 이 책에서 우리가 가진 부의 80퍼센트는 사회적으로 생산된 전체 세습 자산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들어, 오늘날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는 소득 불평등의 해결에 대한 방법으로 상위 고소득자의 소득분에 대해 과세를 증가해야 하며, 사회보장세를 인상하고 또한 기업에 대한 법인세 증가와 더불어 상속세에 관해서도 상속 후계자가 모든 유산을 받을 만큼 자신이 직접적인 대가를 치른 것이 없으므로 상당부분 인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거두어들인 조세수입을 정부는 국민의 건강의료와 같은 국가의 취약한 인프라 구축과 새로운 지식을 재창출하는 교육과 연구에 사용되어야 하고, 나아가서는 저소득과 중위 소득계층에 대한 지원의 기반으로 확장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저자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에 대해 논의되어야 할 부분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경제 성장의 그 바탕에 공동유산이 있음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고, 또한 이것이 어느 한 개인에게 아무런 대가 없는 독점적인 소유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되며, 앞으로 이 점을 공익적인 차원에서 어떻게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내야 할 것인가 하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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