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평점 :
일본의 소설 중에서 국내에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 가운데 하나는 바로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가 아닐까 싶다. 이 소설은 조금은 바보스러운 이미지를 가진 정신과 의사 이라부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해학과 풍자를 바탕으로 유쾌하면서도 감동적인 스토리를 담아 독자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가 발표한 여러 작품을 둘러보면 그와 같이 위트를 가미한 코믹한 소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대학졸업 후에 잡지편집과 카피라이터로 오랜 활동을 해오다가, 40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작가로 문단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후 그가 발표했던 전반적인 작품내용을 살펴보면 대개 일본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날카롭게 파헤치며 비판하는 미스터리 스릴러를 포함해 다양한 형태의 장르작품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더불어서 그가 작품을 통해 꾸준히 독자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구가할 있었던 주된 이유는, 대부분의 작품 내용에 사회적 약자에 관한 소재를 다루면서 건전한 가치관의 부재에 따른 우리의 도덕적 해이와 편향적인 시각을 일깨우는 것과 동시에, 건조하고 메마른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적셔주는 애틋하면서도 잔잔한 감동의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경향이 그렇듯이 독자들에게 새롭게 선보이는 이번 나오미와 카나코 역시도, 결혼 이후 가부장적인 성격을 소유한 남편이 아내의 기본적인 인권을 유린하고 상습적인 폭력을 가하는 이른바 가정폭력에 대한 실체를 고발하는 사회의식이 짙은 내용을 다루고 있어 눈길을 이끈다. 특히 이 소설은 예전 국내에 영화로 개봉되어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던 델마와 루이스라는 작품의 전개 흐름을 연상케 하는데,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폭력에 대항하는 두 여성의 과감하고 용기 있는 모습이 역동적이면서 스릴 있게 그려져 있어 독자의 입장에서 제법 흥미로운 작품이 될듯하다.
작품 속 주요 등장인물이 되는 나오미는 실업난에 따른 여파로 대학 졸업 후에 큐레이터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백화점 외판부에서 일하며 평범한 생활을 보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따분한 회사생활의 스트레스를 친구와의 수다로 날려버리기 위해 학창시절부터 친한 친구사이로 오랜 인연을 지내왔으며, 지금은 결혼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신혼의 기간을 보내고 있는 가나코를 만나기 위해 그녀의 집을 방문하게 된다. 흔치 않은 만남이라 나오미는 가나코와 함께 재미있는 저녁시간을 보낼 것으로 생각했지만, 기대와는 달리 친구의 얼굴에는 어딘가 모르게 그늘이 드리워져 있음을 알고, 그동안 무슨 일이 있느냐는 기나긴 추궁 끝에 그녀로부터 은행의 사무원으로 일하는 남편에게서 이유 없는 폭력에 시달리며 항상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만 충격에 빠지고 만다. 왜냐하면 나오미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향한 아버지의 무자비한 폭력을 보아 왔는데, 그러한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이제는 결혼을 쉽게 결정할 수 없을 만큼의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아버지로부터 폭력을 당하면서 인고의 세월을 버티어내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나오미에게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의 결혼 생활은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따끔한 충고를 건네며 친구에게 당장 이혼할 것을 종용한다. 그러나 가나코는 마음속으로 이혼해야겠다는 결심을 하면서도 막상 이혼을 결행할 경우 감당하기 힘든 남편의 보복이 두려운 나머지 쉽게 결정을 하지 못하고 폭력을 용인하는 생활을 지속하게 된다. 그런 그녀의 심정을 알게 된 가나코는 이혼의 후환이 두렵다면 치밀한 계획으로 차라리 남편을 살해하고 증거를 은폐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면서 나오미를 설득하여 마침내 실행에 옮기기로 약속한다.
이 소설은 하나의 사건을 발단으로 시작하여 결말에 이르는 일정한 흐름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구성적인 면에서 보면 과거 어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폭력을 목격하고 어린 시절을 보낸 나오미와 후환이 두려워 남편의 폭력을 수용하고 고통을 혼자 가슴속으로 삭혀내는 내성적인 성격의 가나코라는 두 명의 여 주인공의 시각에서 각기 개별적인 스토리가 진행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남편에게 매를 맞고 사는 아내의 상황을 두고 폭력의 부당함을 고발하는 것과 동시에, 두 여성이 폭력에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방식으로 이를 되갚아나가는 흥미진진한 스릴러의 광경이 펼쳐져 있다. 더불어 탄탄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쉽게 읽혀지는 뛰어난 가독성을 자랑하고 있어 이야기 속으로의 몰입을 체감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조금 아쉽게 다가오는 것은 전체적인 내용을 볼 때 피해자의 입장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정당방위를 넘는 자칫 범죄의 합리화를 조장하는 느낌이 있으며, 또한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작가의 작위적인 스토리의 전개가 도드라져 보인다는 점이다.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은 대개 사회적으로 한 번쯤 이슈가 되어야 하는 소재를 기반으로, 복잡한 연결 구도를 가급적 배제하고 군더더기가 거의 없는 간결하면서도 공감할만한 문장으로 감동적인 분위기를 독자들에게 전달해주는 강점을 지니고 있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이번 소설은 작가의 그러한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지 않나 싶다. 소설은 재미있어야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작품 안에 작가 나름대로의 메시지를 담아 독자들에게 잊히지 않는 감흥을 전달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이 작품은 그에 준하는 사실감 넘치는 내용으로 독자의 눈을 즐겁게 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많은 독자들이 이 작품을 통해 부당한 폭력에 맞서 새로운 삶을 꿈꾸는 두 여인의 행보에 함께 동행해보기를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