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주 나남창작선 118
이병주 지음 / 나남출판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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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나라의 역사를 보더라도 언제나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정치, 경제적으로 힘든 난세의 시기이거나 혹은 획기적인 성장을 이루게 되었던 때에도, 그에 상응하는 영웅적인 인물들의 사상이나 행적들은 훗날의 세대에게 좋은 본보기가 된다. 최근 TV 사극을 통해 조선의 건국에 초석을 마련했던 정도전의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그동안 과소평가되어 왔던 그의 정치적 업적이 다시금 재조명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조선시대의 역사과정에서 조선왕조가 오백년의 역사가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여러 가지가 이유가 있겠지만 새로운 왕조를 개창하는 과정에서 그 기반을 다지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던 정도전의 과업을 결코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은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이제라도 대중들에게 폭넓은 시각에서 다루지고 있다는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라 여겨진다. 그런데 정도전에 대한 인물의 공과 사를 논함에 있어 함께 다루어져야 할 할 인물 중에서 우리들이 간과할 수 없는 이가 있다. 그는 다름 아닌 고려말기의 충신으로 대변되는 포은 정몽주가 아닐까 싶다. 아마도 역사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지 않는 독자들이라면, 정몽주라는 인물에 대하여 단순히 학교 교과서에서만 봐왔던 것이 전부라고 할 만큼 그 상세한 내용을 알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정몽주라는 인물이 우리에게는 단순히 조선개국에 반대하는 고려충신의 이미지로만 알려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소설이라는 한계적인 측면과 다소 저자에 의한 주관적인 관점이 개입되어 있기는 하지만, 역사의 사료를 바탕으로 하여 정몽주가 밟아온 그의 일생을 추적해 보면서, 고려 말 핵심적인 정치인으로서 그의 모든 것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정몽주가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관료로서의 첫발을 내딛게 되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고려 왕조를 계속적으로 이어가려는 그의 정치적 신념을 반대한 이성계 일파에 의해 선죽교에서 피살되기까지, 역사사료를 바탕으로 한 그의 생애가 생생하게 재구성되어 그려져 있다. 그런데 정몽주의 삶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당시의 시대배경을 고려해봐야 한다. 그가 정치인으로서 활동을 구가하던 시기는, 고려의 왕조가 조선의 시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대내외적으로 무척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왕권의 약화와 더불어 내부적으로는 권문세족과 같은 기득권층들의 부패가 극에 달했으며, 외부적으로는 중국이 원에서 명나라로 교체되어 가는 어수선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런 연유로 그는 고려왕조가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언제 어느 곳이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대화와 타협으로 원만한 해결책을 도모했으며, 주위로부터 적잖은 신임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새 왕조를 일으킨 이성계가 어떻게든 그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는 점에서 여실히 증명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몽주는 급진적인 개혁의 방향보다는 고려왕조의 정통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낡고 잘못된 것을 고쳐나가려는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했는데, 이 부분에서 정도전과 적대적인 관계에 놓임으로서 억울한 희생양이 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책에는 정몽주가 행해왔던 정치의 두 가지 측면이 비교적 크게 부각되어 전개되어 있다. 그 중 하나는 과거시험을 통해 나타난 그의 능력을 조정에서 높이 인정하여, 명나라와 일본과의 국제관계에서 오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외교사절로서 활동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그가 남긴 글들을 보면 상대국에게 예절을 다하되, 대신 신뢰를 얻어 실리적인 외교를 이끌어 왔음을 볼 수 있고, 또 한 가지는 국내의 정치활동에서는 친원세력과 친명세력 어디에도 적을 두지 않는 중립적인 위치를 고수하면서, 세력 간의 화합을 통한 상생을 고수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 작품을 읽은 독자의 입장에서 이 책을 읽기 전에 독자들이 우선해서 감안해야 할 것은, 저자도 책의 말미에서 밝혔지만 정몽주의 생애와 관련하여 아쉽게 여겨지는 부분이 몇 가지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외에 그의 정치적 활동을 상세하게 되살펴볼 수 있는 많은 역사적 자료가 남아 있지 않는데다가, 그것 역시도 세종과 문종 때 왕명에 의해 편찬된 것이어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을 견지한 사료라고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점과, 또한 그 시기의 역사사료들이 그렇듯이, 그 내용에 있어서도 구체적이기보다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표현들이 많아서, 이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아무래도 저자의 임의적인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부분을 어느 정도 감안해서 읽어보았으면 싶다. 이 작품에는 정몽주가 관료로서 중심이 되어 활동하던 시기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 당시 고려의 대내부적인 여러 문제점을 고려해볼 때, 그의 정치적 입지는 어쩌면 숙명에 가까운 것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을 해본다. 소설 속 주인공 정몽주는 고려 말 무능한 왕권과 기득권층들의 부패가 날로 극심해지는 가운데에서도, 제 역할을 다하며 충신으로서 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당시의 시대흐름으로 볼 때, 그의 처신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끝까지 우국충정의 마음으로 올곧게 자기 소신을 지켰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 현대의 시각에서 보면 정몽주는 이익에 있어서 개인보다는 국가가 우선순위가 되는 보수주의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시기에 정몽주가 택한 정치적 신념이 과연 옳았던 것인가 하는 점은 별개의 문제로 다뤄져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정당성을 잃은 이성계 세력에 의한 쿠데타에 동조하지 않았음은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고려왕조에 대해 신하로서 충과 의를 다했던 그의 정신은 어떠한 경우라도 폄훼되어서는 안 될 것으로 생각하며, 아울러 이러한 그의 모습이 독자들은 물론이고,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작금의 국내 정치인들에게도 하나의 좋은 본보기가 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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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리 2014-06-02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포은과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