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서툰 사람들
박광수 지음 / 갤리온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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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고들 말한다. 생각해보면 사람들에게 저마다 주어진 인생의 그 길은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일련의 과정인 것이며, 그 안에서 우리는 수행자로서 인생의 그 깊고 참된 의미를 깨닫기 위해 서툰 몸부림으로 오늘도 애쓰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분위기는 이상하게도 언제부턴가 상식적인 것과 원칙적인 것을 지키며 이를 존중해주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진, 그래서 목적을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기주의적인 경향을 띠고 있는 듯해 보인다. 우리가 디디고 있는 이 땅의 공간이 언뜻 생각하기에는 넓어 보일지는 몰라도, 높은 산위에서 이를 내려다보면 그곳은 좁디좁은 하나의 작은 공간에 불과할 뿐이다. 그럼에도 그 협소한 곳에서 우리는 네가 잘났느니 내가 잘났느니 하고 티격태격 서로 드잡이를 하고 핏대를 세우며 얼굴을 붉히고 살아간다. 또한 자신의 잘못되고 부끄러운 부분은 뒤로 숨기고 상대방의 약점을 잡아 그것이 마치 대단한 일인 양 확대하여 스스로의 우월감을 가지려하며, 겉으로 화려하게 꾸미고 치장해서 으스대고 잘난 척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일은 결코 아닐 것이다. 누구도 완벽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모든 것이 처음엔 서툴 수밖에 없고 그러한 이유로 우리는 때로 이별도 하고 아픔도 겪고 눈물지으며 고통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마련인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나이 40가까이의 삶을 살아가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서툰 자신의 과거들을 회상하며, 서툰 것이 결코 남들에게 비난받고 조롱 받아야 할 일은 아니며, 그런 엉성한 서투름이란 어느 특정인에게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오늘도 우리 모두는 그러한 서투름을 통해 조금씩 정신적으로 성장해가고 있음을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풀어가고 있다. 그는 스스로를 향해 지금까지의 삶을 살아오면서 자신은 언제나 패배자였다고 말한다. 뚱뚱한 외모로 인해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그는, 늦게 한글을 깨우치고 한때 불량스런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입시에 낙방하는 실패를 경험했고, 어른이 되어서는 자신이 그린 만화가 한때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이후, 불미스러운 개인적인 일이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면서 사람들에게 따가운 눈총과 지적을 받아야 했으며, 결혼에서 실패하고 사업에서도 각각 회복하기 힘든 쓰라린 아픔의 시간을 겪었다고 겸허한 자세로 독자들에게 고백한다. 그러면서 그는 그러한 연속된 실패의 경험들이 앞으로 언제 또 어떤 형태로 자신을 괴롭힐지 불안해하면서도, 우리가 애초 어느 것에도 익숙해있지 않았던 것처럼 담담하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한때 사람에 치이고 사랑으로 인해 아픈 상처의 기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의 글 속에는 여전히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갈구들이 짙게 배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상이 때로 살기 힘든 것은 그의 말대로 우리가 삶에 대처하는데 능숙하지 못해 서툴러서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 서투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며, 내일은 또 어떠한 일이 우리 앞에 나타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사 우리가 때로 세상사에 지쳐 고통스런 일을 겪었다 해도 결코 용기를 잃지 말고 살아갈 일이다.

희망이란 것은 우리가 스케치북에 명확하게 그려낼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많은 사람들은 막연히 희망을 기대하며 오늘을 살아간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의 인생의 길이란 것이 우리가 바라는 대로 그리 만만하게 펼쳐지지 만은 않는다는 점이다. 인생은 마치 정글의 숲과 같아서 우리는 더러 깊은 늪에 빠지기도 하고 사나운 맹수에 의해 목숨의 위협을 받기도 하며, 느닷없이 불어대는 거센 비바람과 폭풍우에도 시달려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희망이란 바로 그런 긍정적인 기대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것이며, 또한 그러한 고난의 역경을 이겨냄으로서 우리는 조금씩 강인해지고 세상에 능숙해질 수 있을 것은 아닐까 싶은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어떤 술수나 잔꾀는 그 순간을 잠깐 모면할 임기응변의 식의 방편일 뿐이다. 따라서 그것보다는 조금은 서툴더라도 진심을 담아 우직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책 속 이야기에서처럼 우리가 일에 패배하고 사랑에 패배한 것은 어쩌면 서투르기 때문에 그것을 제어하지 못해 가져온 결과물 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서투른 과정이 없었다면 과연 지금의 우리가 존재했을까 싶다. 아기들은 일어서기 위해 수천 번의 넘어지는 실패를 경험해야 한다. 비록 오늘의 실패가 우리를 우울하고 힘들게 만들지라도 내일 일어서기 위한 작은 시도였노라고 여기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오늘의 태양은 언제 석양 속으로 사라지겠지만, 내일 또다시 태양은 우리의 머리를 뜨겁게 비추인다는 사실을 언제라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서투름으로 인해 낙담한 우리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감싸주는 한편의 포근한 에세이다. 따라서 많은 독자들이 편한 마음으로 그의 따뜻하고 유쾌한 말 한마디에 귀를 한번 기울여 보는 것도 좋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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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바이, 블랙버드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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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의 모든 일들이 언제나 공식화 된 것처럼 그렇게 일반적으로만 흘러가지 않듯 우리의 인간관계도 조금은 황당하거나 당황스런 일들이 수없이 생기게 마련이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것과 같은 이런 일들은, 다행스럽게도 자신의 겪은 일이 아니라면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는 일로 간주될지 모르겠지만, 정작 당사의 입장에서는 심각하고 상당히 곤혹스러운 일로 여겨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아마 지금 이 시간에도 지구상의 어디에선가는 해외토픽 뉴스로 다룰 만큼 엽기적이고 아이러니한 일들이 분명 생겨날 것이고, 그런 사건들은 당사자를 제외한 많은 사람들의 눈과 귀를 분명 즐겁게 해줄지 모를 일이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현실적으로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부정할 수만도 없는 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자체가 워낙 요지경 속이다 보니 함부로 그리 쉽게 단정 지을 일도 아닌듯하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작가가 어떻게 이런 설정을 착안하고 이야기를 전개하려 했을까 싶을 정도로 그 구성자체가 의아하고 코믹스럽지만, 더욱 웃기고 재미있는 것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개성적인 각 캐릭터들이 토해내는 말과 우스꽝스러운 행동에서 독자들을 요절복통의 분위기로 빠져들게 요소들이 끊임없이 솟아 나오는데 있으며, 더불어 그 안에서 순수한 인간적인 면을 느낄 수 있는 감동적인 장면들이 곳곳에 나타나 있어 독자들이 한번 관심을 가지고 읽어 보면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작품 속 주인공 가즈히코는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채로 끌어다 쓰고 그 돈을 갚을 만큼의 여력이 되지 않아, 지금 채권자의 감시 속에 어디론가 알 수 없는 곳으로 끌려가야 하는 입장이다. 그의 곁에는 자신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철두철미하게 따라다니는 마유미라는 여성이 있는데, 그녀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여성이 아니다. 마치 스모선수를 방불케 할 만큼 큰 거구를 뽐내며 건장한 남자 서너 명쯤은 간단하게 제압 할 수 있는 힘과 무술을 지녔으며, 상대방을 위한 배려나 매너는 눈곱만큼도 허락하지 않는 다혈질적이며 냉정한 성격의 소유자다. 한번 끌려가면 다시는 인간으로 살아 돌아 올 수 없을 것이라는 마유미의 우악스러운 말에, 가즈히코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지금 자신과 사귀고 있는 다섯 명의 여자들이 만약 아무런 연락도 없이 사라지면 깊은 상처를 받을 것이라며, 그녀들을 만나 이별을 고할 시간만이라도 달라고 간곡한 부탁을 하게 되고 이에 간신히 허락을 맡는다. 다만 그 만남의 장소에 마유미가 반드시 동행해야 한다는 것과, 그녀가 그의 약혼자로 곧 결혼을 할 것이라는 소개를 해야 하며, 그의 여자 친구들에게 그녀가 어떤 가슴 아픈 상처의 말을 건넨다 해도 이에 전혀 토를 달지 않겠다는 다소 황당한 전제조건이 붙어 있다. 가즈히코가 이별의 말을 전하기 위해 개별적으로 만나게 되는 다섯 명의 여자들은 직장여성에서부터 이혼녀, 톱 여배우까지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갑자기 그녀들 앞에 나타나 지금까지의 연인 관계를 끝내자는 뜬금없는 남자의 말에 어이없어 하며 그녀들은 충격을 받지만, 결국 선선히 이에 응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체념한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반전의 상황이 나타날 조짐을 보인다.

이 작품이 흥미롭고 감동적인 것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의 이별을 접하게 되는 다섯 여자들의 반응들과 그리고 개개인에 얽힌 다양한 사연의 전개과정이다. 주인공은 마지막 이별을 고하면서도 자신의 잘못으로 벌어진 이런 황당한 일을 두고 미안한 마음에 그녀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인간적인 배려를 보인다. 얼핏 생각하기에 독자의 입장에서 주인공은 양다리도 아니고 무려 다섯 명의 여자와 동시에 사귀는 마치 카사노바의 모습이 연상되지만, 작품 속 그는 특별히 훤칠하게 외모적으로 잘 생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을 펑펑 써대며 여자를 유혹하는 남자도 아니며, 자신의 성적 쾌락을 즐기기 위해 여자를 이용하는 그런 종류의 다소 불쾌적인 남자는 더더욱 아니다. 그는 여자 친구를 위해 양푼에 한가득 채워 나오는 뜨거운 점보라면을 30분 만에 먹어치워야 하는 일이며, 뺑소니를 당해 침울해 있는 사연을 듣고 범인을 잡아주려는 뜬금없는 용기를 내보이기도 하고, 유방암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며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낸다는 여자 친구의 말에 안절부절 정신을 못 차리기도 하는, 마치 어린 아이와 같은 순수함 마음을 가진 청년의 모습으로 등장하여, 독자들에게 그리 느끼하게 만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 엄청난 거구를 자랑하는 마유미의 무대포적이며 돌발적인 모습이다. 그녀는 자신의 외투 속에 언제나 두툼한 국어사전을 지니고 다니는데, 그 사전 속에는 수많은 단어들이 까맣게 지워져 있다. 그래서 그녀는 어느 누구든 상대방에게서 고상한 말이나 매너적인 말을 듣게 되면, 문득 자신의 사전을 꺼내 들춰 보이며 자기 사전에는 그런 말이 없다는 식으로 상대방을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하고 무안하게 깔아뭉개는 행태를 보이고, 또한 백화점과 호텔과 같은 분위기상 예의를 지켜야 할 만한 장소에서도 주위 사람들의 껄끄러운 눈길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거만하게 코나 귀를 후벼 파는 행동을 보이거나, 논리적이지 않은 즉흥적인 엉뚱한 말들을 큰소리로 떠들어대는 식의 행동을 보이며,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당혹스럽게 만들면서도 일면 유쾌하게 다가서고 있다는 점이다.

이야기의 전개 상황설정도 그렇고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두 인물인 가즈히코와 마유미의 조합 역시 독자로서는 사실 조금은 이해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러한 것들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어색하게만 생각되지 않은 것은, 아마도 글을 이끌어 나가는 작가의 특유의 역량이 이 작품 속에 깊이 배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이 소설은 억지로 웃기는 것처럼 보여도 한편 그것이 전혀 억지스럽지 않고, 다소 의도적임에도 그것이 어느새 자연스럽게 느껴져 독자들을 시종일관 책 속으로의 몰입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듯해 보이는 작품이다. 따라서 예기치 않은 엉뚱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 지극히 평범한 한 남자와, 그의 곁을 졸졸 따라다니며 사사 건건 시비와 돌발적인 행동을 보이며 대담함을 보여주는 한 여성과 콤비를 이루며, 우리에게 무한한 웃음과 재미를 선사하는 이 책의 이야기를 통해 많은 독자들이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즐겁고 잔잔한 감동의 시간들을 한번 맛보았으면 어떨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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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여기에 홍신 세계문학 4
미우라 아야코 지음, 정성국 옮김 / 홍신문화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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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힘들게 느껴지는 것 중 하나는 아마도 우리가 어떤 이유로 인해 자신에 삶의 목표를 잃고 중간에 방황하게 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 문제는 자신이 그동안 염두 해두었던 인생의 의미자체를 송두리째 앗아가는 것과 같아서, 이를 대체할 다른 어떤 대상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을뿐더러, 더불어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인생이 마치 쓸모없는 허무한 감정만을 가져다주게 되어 심각한 우울증의 늪으로 빠져들게 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인생의 길이 그렇게 외길로만 이어져 있지만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때로 망각 하고 사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가깝게는 자신을 사랑스런 눈으로 지켜다보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있어 위로와 함께 용기를 내는데 그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며, 설사 그런 환경이 주어져 있지 않다 하더라도 눈을 좀 더 넓게 뜨고 바라보면, 미처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또 다른 희망의 싹이 움틀 수 있다는 가능성의 일면이 있음을 모르고, 우리가 인생을 간혹 너무 비관적 혹은 부정적으로 단정 짓고 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겉으로만 보았을 때 다른 누군가의 인생의 길이 마치 지름길만을 거쳐 온 손쉬운 삶인 것처럼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떠한 인생도 그 나름대로의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여곡절이 있게 마련이고 호락호락 하리만큼 편안하게 이루어진 삶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인생이란 수많은 변곡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생각으로, 한때 자신의 인생 일부분이 세상의 험한 파도에 의해 휩쓸려나갈지라도 이에 굴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 살아갈 일이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소설 <빙점>의 작가이며 현재 일본의 대표적인 기독 작가로 알려져 있는 미우라 아야코가 13년의 투병생활을 거치며 허무로 점철된 기구한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 어느 누구의 인생도 저마다의 주어진 길이 있는 것이며 어떤 경우에라도 희망을 잃지 말고 자신의 삶을 직시하여 살아갈 것을, 자서전의 형식으로 자신의 생각과 심정을 솔직하고도 담담하게 담아내어, 독자들에게 감동은 물론이고 종교의 긍정적인 부분을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책이어서 많은 독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한번 읽어 봐도 좋을듯하다.

그녀는 초등학교 교사로 7년 동안을 재직하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자신의 유일한 삶의 낙으로 알고 가장 순수하고 열정적인 마음으로 활동하던 중, 자신의 조국이었던 일본이 연합국과의 전쟁에서 패전함으로서 그 동안 아이들을 가르쳐왔던 자신의 교육방침에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에 회의를 느끼고 교사로서의 생활을 그만두게 된다. 그와 동시에 결혼할 생각으로 약혼 날짜를 받아 두었다가 약혼하기 며칠 전 돌연 폐결핵으로 쓰러지는 상황을 맞는다. 당시 폐결핵은 특별한 치료법이 없기도 했지만 전쟁에서 패한 일본의 상황이 암울했던 터라, 그렇지 않아도 교사 일을 그만두면서 자신을 조금씩 지배해왔던 허무적인 생각은 이런 일련의 사건과 더해지면서 그녀 자신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어 간다. 이후 그녀는 요양소에 들어가 한 번의 자살 실패를 경험하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자신의 인생을 두고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어 점점 자학적이고 방탕적인 형태로까지 번지게 된다. 그러던 중 그녀의 나이 27살이 되던 해에 우연하게 자신의 어렸을 무렵 소꿉친구였던 한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그녀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의학도이자 신실한 기독교 신자로 그녀가 삶의 의욕을 잃고 힘들어 할 때마다 따뜻한 마음으로 그녀를 위로하고 감싸게 되며, 그의 그러한 진실한 모습을 통해 그녀는 조금씩 자신의 변화된 삶을 모색하며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한 힘찬 재기의 날개를 펴는 동기부여의 기회를 얻게 된다.

이 작품은 작가가 지난 시절 자신에 조국의 패전과 교직을 그만두고 설상가상으로 심각한 병마에 시달리면서 삶의 의미를 잃고 방황하던 당시 상황을 고백하면서, 한 남자와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사랑에 눈을 뜨고 기독교라는 종교적 신앙에 귀의하면서 새로운 삶을 개척해가는 과정을 비교적 생생하게 그리고 있어 독자들의 가슴에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켜준다. 언제 나을지도 알 수없는 상태에서 그녀가 겪었던 13년간의 투병생활은 그야말로 크나큰 고통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척박한 땅에서도 꽃은 피고 새로운 삶이 잉태되듯이 그녀의 암담한 인생의 여정에도 희망의 돌파구는 있었다. 하지만 이전에 그녀가 한때 자살을 결행했고 그 결과로 죽음을 맞이했다면 지금의 그녀가 안고 있는 행복의 시간들은 아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먹구름이 낀 하늘을 쳐다보면 밝게 빛나는 태양이 어느새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잠시 동안 가려져 있을 뿐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스스로의 인생이 어떤 이유로 인해 비바람에 휘둘리고 흐려져 있을 때는, 그러한 점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희망이 영영 사라져버린 것처럼 우리는 착각하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말하기를 아무리 험한 상황에 있다하더라도 결코 희망을 버리지 말기를 말한다. 그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있을 때 비로소 우리가 원했던 삶에 목표도 되살아나는 것이고, 자신이 한때 바라던 사랑도 행복도 얻을 수 있는 것임을 우리에게 손수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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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왜? 1 - 그해 겨울의 까마귀
임종욱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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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누구나 한번 보았을 법한 날개의 작가였던 이상을 가리켜 일부에서는 박제가 되어버린 비운의 천재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 한편에서는 시대가 낳은 기형아라며 다소 폄훼하는 시각이 있는 등 여러 인식들이 있는듯해 보인다. 시인 이상의 작품을 두고 국내 문학계에서는 지금까지 수백편의 논문들을 발표하여 왔지만 그의 문학에 대한 해석은 아직까지도 현재진행형인 것으로 보이며, 다만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불치의 병마로 인한 짧은 생애와 더불어 격동적인 시대상황에 임하면서도 치열한 문학적 삶을 지탱해 온 것만은 확실해 보이지 않나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읽고 싶었던 것은 문학가로서 그의 평범하지 않았던 삶이 우선하여 궁금한 점이 많았고, 일반인들의 시각에서 쉽게 이해하기 힘들었던 그가 발표한 여러 작품들을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상기해 보고자 했던 이유에서였다. 물론 이 책이 나의 바람대로 그의 지나온 문학적 행보들을 충분하게 보여주었다고는 생각지 않으나, 이 작품이 비록 허구적인 가상적 상황을 담은 소설의 형태를 빌렸다 해도 우리에게는 행여 잊혀져버렸을 수도 있는 이상이라는 인물을 새롭게 부각시켜 생명력을 불어넣음으로서, 색다른 각도에서 그를 바라보고자 했던 작가 나름대로의 자구적인 노력과, 또한 작품의 내용을 통해서 지난 우리의 쓰라린 과거 역사의 내용을, 단지 불미스러웠던 일로 치부하려는 일부 위험하고 그릇된 인식들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있다는 점에 그 의의를 두고 싶고, 더 나아가서는 독자의 입장에서 문학적 상상력을 키워주는 이런 형태의 문학의 시도들이 더러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이 소설은 두 가지 시간과 공간의 배경에서 출발한다. 그 하나는 1937년 이상이 국내에서의 문학적인 활동을 접고 아픈 몸을 이끌고 일본으로 무작정 건너와 그곳에서 이상이 숨을 거두기까지 그 과정의 시작이 그렇고, 그리고 또 하나는 2010년 소설가라는 직업을 가진 책 속 “나”로 지칭되는 인물이 등장하여 이상이 어떤 이유로 도쿄에서 일본의 경찰에 체포되어 죽음을 맞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다가, 이상의 흔적을 찾아 도쿄로 오게 되는 시점이다. 글의 구성을 보면 과거와 현재라는 시대를 번갈아 교차적으로 등장하게 되며, 글의 생생함을 살리기 위해 사실적 묘사에 치중하려한 저자의 세심한 배려가 엿보이며, 더욱이 당시 백범 김구 선생이 설립한 비밀암살단의 이야기와, 일본의 극우 세력들이 벌이는 일련의 사건을 소설 속으로 끌어들여 추리적인 요소를 가미함으로서 시종일관 독자들의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있어 나름대로 상당한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작품 속 두 개의 줄기를 이루고 있는 이야기 중에서 먼저 이상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를 보면, 이상은 지난 국내에서의 여러 사업의 실패로 인한 극빈의 생활과 결핵으로 인한 병마에도 불구하고 불현듯 일본으로 건너오게 된다. 사람들은 그의 이런 행위에 대해 현실도피라고 말했지만, 그는 현실에 대한 패배를 인정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새로운 삶의 좌표를 찾기 위한 하나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라고 생각한다. 그는 도쿄의 어느 허름한 하숙집에 묶게 되는데, 당시 시대상황이 일본인의 입장에서 볼 때 조선인은 상당히 배타적일 수밖에 없었지만, 일본인 하숙집 주인이 이상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과거 명성황후의 시해에 가담한 일로 평생 속죄에 대한 뉘우침 때문이었다. 따라서 소설 속 이상은 하숙집 주인과 그의 딸이었던 마리코와의 만남은 그에게 일본에서의 삶을 유지시켜주는 중요한 하나의 계기가 된다. 그러나 이상이 머물렀던 그 시기에 묘하게 일본군의 고위 장교와 관리들을 암살했던 국내암살단의 움직임들이 일본군부의 내부에 포착되는데, 이에 따르면 암살단들이 조만간 일본 천황을 일시에 제거하려 한다는 것이며 이 소식은 암암리에 널리 퍼져간다. 하지만 그동안 이상이 안고 있던 일본에서의 그의 현실적 문제는 궁핍한 가난과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자신의 불치병, 그리고 고향에 두고 온 자신의 부모와 아내의 걱정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있어 조국의 독립문제는 마치 남의 나라의 일로 간주되었지만, 뜻하지 않게 천황암살과 관련하여 자신의 의사와 생각과는 상관없이 이에 돌연 휘말리게 된다.

또 하나 현재 시점에서의 이야기를 다룬 내용을 보면 주인공인 정인택은 이상의 석연치 않은 의문의 죽음을 두고 에에 대해 어떤 정보를 얻기 위해 일본으로 잠시 떠나게 되는데, 그곳에서 일본으로 건너오기 전 우연히 알게 된 일본인의 도움으로 소조라는 재일교포여성을 소개 받게 된다. 그는 그녀의 도움으로 일본에서 죽음을 맞이했던 이상의 지나간 흔적을 조사하던 중, 우연하게 그녀와 친하게 지내던 후배가 억울하게 살인 누명을 쓰고 쫓기는 일에 가담하게 된다. 그는 일본의 극우단체의 소행으로 보이는 엄청난 음모 속에 치밀하게 자행되는 연이은 살인사건 속에서 한때 목숨의 위협을 느끼지만, 이미 고인이 된 소조의 할아버지와 이상과의 사이에서 어떤 미묘한 관계가 있었음을 알게 되면서, 할아버지 남긴 유품들 중에 그가 몰랐던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알고 이를 밝혀내는데 주력하게 된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바에 의하면, 시인 이상은 그가 국내에서 벌였던 여러 사업의 실패로 갑자기 자신의 가족들을 외면하고 돌연 일본으로 건너가 체류하던 중, 일본 경찰로부터 체포되어 심문을 받으며 34일간의 옥살이 끝에 병보석이라는 이유로 풀려나지만 며칠을 견디지 못하고 동경대학 병원의 한 모퉁이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인데, 그 자세한 내막은 베일에 가려진 채 아직까지 의문으로 남아 있다. 따라서 작가는 이 작품에서 이상이 죽기까지 6개월 동안의 흔적을 토대로 픽션의 형태를 빌려 좀 더 구체적으로 다루어 보고자 했던듯하다. 당시 시대상황으로 볼 때 일본인들은 조선인에 대한 시각이 상당히 적대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따라서 이상의 체포 과정도 그러한 이유와 연관 지어 생각해본다면, 가능한 여러 가지의 상황들을 우리가 유추해 볼 수 있지 않나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그러한 유추 가능성에 기반을 둔 하나의 가정의 틀로 이해하면 좋을듯하다. 물론 작품 속에서 작가의 비약적인 발상에 따른 이상의 모호한 행적의 과정을 두고 조금은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많아, 이점이 여러 비평가들로부터 심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을 법도 하지만, 반대로 작가가 이상의 마지막 숨을 거두기까지의 과정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표현한 이러한 시도는 분명 독자의 입장에서 얼마든지 신선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이 작품을 통해 생각해 볼 것은, 이상이 실제 독립운동에 관여했는지 아닌지를 떠나 과거 일본인들이 저지른 국내에서의 수많은 만행들이, 어떤 이유에서라도 우리의 기억 속에서 결코 희석되어서는 안 된다는 역사 인식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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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P는 틀렸다 - '국민총행복'을 높이는 새로운 지수를 찾아서
조지프 스티글리츠 외 지음, 박형준 옮김 / 동녘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한동안 경제뉴스와 관련하여 국내 GDP의 성장률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정부의 발표를 인용한 언론보도의 내용을 자주 보았던 기억이 난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민들에게 약속했던 747의 공약(7퍼센트의 성장, 국민소득 4만 불, 7대 강대국으로 도약)을 의식해서 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정부정책을 보면 복지나 소득의 균형적인 배분정책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GDP 중심의 성장전략에만 온힘을 기울이는듯해 보인다. 경제지표상으로 볼 때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오늘 우리의 경제현황을 보면, 지난해 실질 경제성장률은 6퍼센트를 넘어섰으며 무역의 흑자는 사상최대치를 경신했고, 코스피 지수 역시 2천 포인트를 넘는 등, 불황에 시달리는 세계경제의 여건 하에서도 우리는 꾸준한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어, 마치 튼튼한 경제구조를 구축한 것 같은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러나 정부의 말대로 이러한 경제지표대로라면 사실 오늘 우리의 가정경제나 피부로 느끼는 체감경기는 그에 못지않은 만족감을 주어야 마땅할 것인데, 대부분의 일반 국민들은 이와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가 발표한 경제성장의 내용이 거짓이 아님에도 국민들이 실제 체감하는 경제의 부분과 깊은 괴리가 있는 것은, 과연 어떤 이유에서인지 우리는 당연히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역자는 이 책의 말미에서 1990년대 이후로 우리나라의 자본 성숙도는 이전과 달리 이미 상당부분 선진국의 수준에 근접하게 도달했지만, 그동안의 우리사회는 재벌을 위시한 일부 기득권 세력들이 사회적 양극화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왔으며, 또한 현재 정부가 이를 등한시함으로서 결국 우리의 경제 현실이 왜곡 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에 대하여 우리는 이를 깊이 주시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지금까지 굳게 믿어왔던 GDP의 경제지표는 이제 새로운 시대정신에 발맞추어 많은 부분에서 바뀌어져야 하며, 따라서 오늘 우리의 경제정책도 GDP의 성장에 맞춰 사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던 지난 시대를 반복할 것이 아닌, 현실에 맞는 실질적인 경제지표의 필요성이 대두되어야 하는 것과 비교하여 앞으로 경제성과의 측정방식이 획기적으로 변화되어야 함을 역설한 책이라 할 수 있겠다. 보고서의 형식을 따른 이 책은 지금까지 GDP와 관련한 수치들의 문제점과 사회복지 수단으로서 이 수치들을 사용함으로써 야기되는 광범위한 여러 곤란한 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그 대책으로 만들어 졌으며, 이 보고서가 추구하고자 했던 가장 기본적인 목표도 다름 아닌 경제성과를 측정하는 지표인 GDP의 한계를 파악하고, 좀 더 포괄적인 그림을 만들기 위한 추가적인 정보를 고려하며, 그 대안이 될 만한 측정 수단을 창출하는데 있음을 우리는 관심 있게 지켜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는 GDP의 지표는, 한 국가의 국민이 이룩해놓은 성과의 총량을 가지고 이 소득이 어떻게 국민들에게 배분되어져야 할 것이며, 또한 현재의 성장 기대가 과연 앞으로도 얼마만큼 계속 지속적으로 유지될 것인지, 그래서 만약 그것을 이루는데 어떠한 문제점을 우리가 예의 주시해야 하는지에 구체적인 예측들을 우리는 할 수 없었다. 물론 이 보고서의 내용을 근거한 새롭게 만들어진 경제지표가 과연 얼마만큼 우리에게 실질적인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을지 아직까지 명확하게 증명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현재 GDP가 지니고 있는 여러 취약점들을 해결한 만한 5가지의 방법의 제안 내용이나, 권고사항들 즉 생산보다는 소득과 소비에 주목할 것, 소득과 소비는 반드시 재산과 함께 고려하여 측정되어져야 할 것, 경제주체로서 가계의 관점이 상당부문 강조되어야 할 것, 소득의 측정을 비시장적인 활동으로까지 확대되어야 한다는 보고서의 의견은 우리가 깊이 한번 새겨볼만 하다는 점이다. 특히 이 보고서를 만든 위원들이 밝혔듯이 이 책의 내용은 일반국민들 보다 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정치지도자들이나 정책 입안자들에게 우선하여 고려되어져야 할 것으로 본다.

전 세계는 지난 20여 년 간의 시간동안 많은 분야에서 상당한 경제 발전을 이루어 왔다. 일례로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지금처럼 자동차의 보급률이 일반화된 상태에서, 우리는 이제 단지 자동차 한 대를 더 생산하는 양적인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닌, 얼마나 더 효율적이고 품질 좋은 자동차를 생산 할 것인가에 관심을 가질 만큼 그 인식의 변화정도가 많이 달라져 있고, 또한 허울 좋은 성장 중심의 경제 보다는 어떻게 하면 우리의 삶이 지금보다 질적으로 나아지 질 것인가에 관심이 쏠려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우리의 정부의 인식은 성장이 우선이고 분배는 나중이라는 논리로 오늘의 우리 경제를 이끌어 가고 있으며, 더욱이 이마져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왜곡된 방식으로 우리의 눈을 현혹 시키고 있는듯하다. 경제 통계지표들은 사회적 진보를 위한 정책을 설계하고 평가하는데 있어 실질적인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전과 달리 지금 우리의 의식과 교육수준은 상당히 높아졌으며, 이에 따라 더 좋은 선택을 위해 통계를 활용하는 사람들도 수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그런데 만약 우리의 경제측정방식이 잘못되었다고 한다면, 이는 우리의 판단과 결정을 심히 왜곡할만한 우려되는 일이어서 하루라도 시급히 조정되어져야 할 문제다. 따라서 이 보고서에서 논의된 대로 지금까지의 계량 방식에서 여러 가지의 부분에 걸쳐 문제가 존재하는 만큼, 우리의 경제방식에 맞게 상당 부분 재조정 되어야 하며, 이러한 인식들도 점차 널리 확대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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