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 왜? 1 - 그해 겨울의 까마귀
임종욱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학창시절 누구나 한번 보았을 법한 날개의 작가였던 이상을 가리켜 일부에서는 박제가 되어버린 비운의 천재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 한편에서는 시대가 낳은 기형아라며 다소 폄훼하는 시각이 있는 등 여러 인식들이 있는듯해 보인다. 시인 이상의 작품을 두고 국내 문학계에서는 지금까지 수백편의 논문들을 발표하여 왔지만 그의 문학에 대한 해석은 아직까지도 현재진행형인 것으로 보이며, 다만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불치의 병마로 인한 짧은 생애와 더불어 격동적인 시대상황에 임하면서도 치열한 문학적 삶을 지탱해 온 것만은 확실해 보이지 않나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읽고 싶었던 것은 문학가로서 그의 평범하지 않았던 삶이 우선하여 궁금한 점이 많았고, 일반인들의 시각에서 쉽게 이해하기 힘들었던 그가 발표한 여러 작품들을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상기해 보고자 했던 이유에서였다. 물론 이 책이 나의 바람대로 그의 지나온 문학적 행보들을 충분하게 보여주었다고는 생각지 않으나, 이 작품이 비록 허구적인 가상적 상황을 담은 소설의 형태를 빌렸다 해도 우리에게는 행여 잊혀져버렸을 수도 있는 이상이라는 인물을 새롭게 부각시켜 생명력을 불어넣음으로서, 색다른 각도에서 그를 바라보고자 했던 작가 나름대로의 자구적인 노력과, 또한 작품의 내용을 통해서 지난 우리의 쓰라린 과거 역사의 내용을, 단지 불미스러웠던 일로 치부하려는 일부 위험하고 그릇된 인식들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있다는 점에 그 의의를 두고 싶고, 더 나아가서는 독자의 입장에서 문학적 상상력을 키워주는 이런 형태의 문학의 시도들이 더러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이 소설은 두 가지 시간과 공간의 배경에서 출발한다. 그 하나는 1937년 이상이 국내에서의 문학적인 활동을 접고 아픈 몸을 이끌고 일본으로 무작정 건너와 그곳에서 이상이 숨을 거두기까지 그 과정의 시작이 그렇고, 그리고 또 하나는 2010년 소설가라는 직업을 가진 책 속 “나”로 지칭되는 인물이 등장하여 이상이 어떤 이유로 도쿄에서 일본의 경찰에 체포되어 죽음을 맞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다가, 이상의 흔적을 찾아 도쿄로 오게 되는 시점이다. 글의 구성을 보면 과거와 현재라는 시대를 번갈아 교차적으로 등장하게 되며, 글의 생생함을 살리기 위해 사실적 묘사에 치중하려한 저자의 세심한 배려가 엿보이며, 더욱이 당시 백범 김구 선생이 설립한 비밀암살단의 이야기와, 일본의 극우 세력들이 벌이는 일련의 사건을 소설 속으로 끌어들여 추리적인 요소를 가미함으로서 시종일관 독자들의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있어 나름대로 상당한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작품 속 두 개의 줄기를 이루고 있는 이야기 중에서 먼저 이상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를 보면, 이상은 지난 국내에서의 여러 사업의 실패로 인한 극빈의 생활과 결핵으로 인한 병마에도 불구하고 불현듯 일본으로 건너오게 된다. 사람들은 그의 이런 행위에 대해 현실도피라고 말했지만, 그는 현실에 대한 패배를 인정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새로운 삶의 좌표를 찾기 위한 하나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라고 생각한다. 그는 도쿄의 어느 허름한 하숙집에 묶게 되는데, 당시 시대상황이 일본인의 입장에서 볼 때 조선인은 상당히 배타적일 수밖에 없었지만, 일본인 하숙집 주인이 이상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과거 명성황후의 시해에 가담한 일로 평생 속죄에 대한 뉘우침 때문이었다. 따라서 소설 속 이상은 하숙집 주인과 그의 딸이었던 마리코와의 만남은 그에게 일본에서의 삶을 유지시켜주는 중요한 하나의 계기가 된다. 그러나 이상이 머물렀던 그 시기에 묘하게 일본군의 고위 장교와 관리들을 암살했던 국내암살단의 움직임들이 일본군부의 내부에 포착되는데, 이에 따르면 암살단들이 조만간 일본 천황을 일시에 제거하려 한다는 것이며 이 소식은 암암리에 널리 퍼져간다. 하지만 그동안 이상이 안고 있던 일본에서의 그의 현실적 문제는 궁핍한 가난과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자신의 불치병, 그리고 고향에 두고 온 자신의 부모와 아내의 걱정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있어 조국의 독립문제는 마치 남의 나라의 일로 간주되었지만, 뜻하지 않게 천황암살과 관련하여 자신의 의사와 생각과는 상관없이 이에 돌연 휘말리게 된다.

또 하나 현재 시점에서의 이야기를 다룬 내용을 보면 주인공인 정인택은 이상의 석연치 않은 의문의 죽음을 두고 에에 대해 어떤 정보를 얻기 위해 일본으로 잠시 떠나게 되는데, 그곳에서 일본으로 건너오기 전 우연히 알게 된 일본인의 도움으로 소조라는 재일교포여성을 소개 받게 된다. 그는 그녀의 도움으로 일본에서 죽음을 맞이했던 이상의 지나간 흔적을 조사하던 중, 우연하게 그녀와 친하게 지내던 후배가 억울하게 살인 누명을 쓰고 쫓기는 일에 가담하게 된다. 그는 일본의 극우단체의 소행으로 보이는 엄청난 음모 속에 치밀하게 자행되는 연이은 살인사건 속에서 한때 목숨의 위협을 느끼지만, 이미 고인이 된 소조의 할아버지와 이상과의 사이에서 어떤 미묘한 관계가 있었음을 알게 되면서, 할아버지 남긴 유품들 중에 그가 몰랐던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알고 이를 밝혀내는데 주력하게 된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바에 의하면, 시인 이상은 그가 국내에서 벌였던 여러 사업의 실패로 갑자기 자신의 가족들을 외면하고 돌연 일본으로 건너가 체류하던 중, 일본 경찰로부터 체포되어 심문을 받으며 34일간의 옥살이 끝에 병보석이라는 이유로 풀려나지만 며칠을 견디지 못하고 동경대학 병원의 한 모퉁이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인데, 그 자세한 내막은 베일에 가려진 채 아직까지 의문으로 남아 있다. 따라서 작가는 이 작품에서 이상이 죽기까지 6개월 동안의 흔적을 토대로 픽션의 형태를 빌려 좀 더 구체적으로 다루어 보고자 했던듯하다. 당시 시대상황으로 볼 때 일본인들은 조선인에 대한 시각이 상당히 적대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따라서 이상의 체포 과정도 그러한 이유와 연관 지어 생각해본다면, 가능한 여러 가지의 상황들을 우리가 유추해 볼 수 있지 않나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그러한 유추 가능성에 기반을 둔 하나의 가정의 틀로 이해하면 좋을듯하다. 물론 작품 속에서 작가의 비약적인 발상에 따른 이상의 모호한 행적의 과정을 두고 조금은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많아, 이점이 여러 비평가들로부터 심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을 법도 하지만, 반대로 작가가 이상의 마지막 숨을 거두기까지의 과정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표현한 이러한 시도는 분명 독자의 입장에서 얼마든지 신선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이 작품을 통해 생각해 볼 것은, 이상이 실제 독립운동에 관여했는지 아닌지를 떠나 과거 일본인들이 저지른 국내에서의 수많은 만행들이, 어떤 이유에서라도 우리의 기억 속에서 결코 희석되어서는 안 된다는 역사 인식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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