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바이, 블랙버드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세상사의 모든 일들이 언제나 공식화 된 것처럼 그렇게 일반적으로만 흘러가지 않듯 우리의 인간관계도 조금은 황당하거나 당황스런 일들이 수없이 생기게 마련이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것과 같은 이런 일들은, 다행스럽게도 자신의 겪은 일이 아니라면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는 일로 간주될지 모르겠지만, 정작 당사의 입장에서는 심각하고 상당히 곤혹스러운 일로 여겨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아마 지금 이 시간에도 지구상의 어디에선가는 해외토픽 뉴스로 다룰 만큼 엽기적이고 아이러니한 일들이 분명 생겨날 것이고, 그런 사건들은 당사자를 제외한 많은 사람들의 눈과 귀를 분명 즐겁게 해줄지 모를 일이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현실적으로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부정할 수만도 없는 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자체가 워낙 요지경 속이다 보니 함부로 그리 쉽게 단정 지을 일도 아닌듯하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작가가 어떻게 이런 설정을 착안하고 이야기를 전개하려 했을까 싶을 정도로 그 구성자체가 의아하고 코믹스럽지만, 더욱 웃기고 재미있는 것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개성적인 각 캐릭터들이 토해내는 말과 우스꽝스러운 행동에서 독자들을 요절복통의 분위기로 빠져들게 요소들이 끊임없이 솟아 나오는데 있으며, 더불어 그 안에서 순수한 인간적인 면을 느낄 수 있는 감동적인 장면들이 곳곳에 나타나 있어 독자들이 한번 관심을 가지고 읽어 보면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작품 속 주인공 가즈히코는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채로 끌어다 쓰고 그 돈을 갚을 만큼의 여력이 되지 않아, 지금 채권자의 감시 속에 어디론가 알 수 없는 곳으로 끌려가야 하는 입장이다. 그의 곁에는 자신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철두철미하게 따라다니는 마유미라는 여성이 있는데, 그녀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여성이 아니다. 마치 스모선수를 방불케 할 만큼 큰 거구를 뽐내며 건장한 남자 서너 명쯤은 간단하게 제압 할 수 있는 힘과 무술을 지녔으며, 상대방을 위한 배려나 매너는 눈곱만큼도 허락하지 않는 다혈질적이며 냉정한 성격의 소유자다. 한번 끌려가면 다시는 인간으로 살아 돌아 올 수 없을 것이라는 마유미의 우악스러운 말에, 가즈히코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지금 자신과 사귀고 있는 다섯 명의 여자들이 만약 아무런 연락도 없이 사라지면 깊은 상처를 받을 것이라며, 그녀들을 만나 이별을 고할 시간만이라도 달라고 간곡한 부탁을 하게 되고 이에 간신히 허락을 맡는다. 다만 그 만남의 장소에 마유미가 반드시 동행해야 한다는 것과, 그녀가 그의 약혼자로 곧 결혼을 할 것이라는 소개를 해야 하며, 그의 여자 친구들에게 그녀가 어떤 가슴 아픈 상처의 말을 건넨다 해도 이에 전혀 토를 달지 않겠다는 다소 황당한 전제조건이 붙어 있다. 가즈히코가 이별의 말을 전하기 위해 개별적으로 만나게 되는 다섯 명의 여자들은 직장여성에서부터 이혼녀, 톱 여배우까지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갑자기 그녀들 앞에 나타나 지금까지의 연인 관계를 끝내자는 뜬금없는 남자의 말에 어이없어 하며 그녀들은 충격을 받지만, 결국 선선히 이에 응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체념한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반전의 상황이 나타날 조짐을 보인다.

이 작품이 흥미롭고 감동적인 것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의 이별을 접하게 되는 다섯 여자들의 반응들과 그리고 개개인에 얽힌 다양한 사연의 전개과정이다. 주인공은 마지막 이별을 고하면서도 자신의 잘못으로 벌어진 이런 황당한 일을 두고 미안한 마음에 그녀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인간적인 배려를 보인다. 얼핏 생각하기에 독자의 입장에서 주인공은 양다리도 아니고 무려 다섯 명의 여자와 동시에 사귀는 마치 카사노바의 모습이 연상되지만, 작품 속 그는 특별히 훤칠하게 외모적으로 잘 생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을 펑펑 써대며 여자를 유혹하는 남자도 아니며, 자신의 성적 쾌락을 즐기기 위해 여자를 이용하는 그런 종류의 다소 불쾌적인 남자는 더더욱 아니다. 그는 여자 친구를 위해 양푼에 한가득 채워 나오는 뜨거운 점보라면을 30분 만에 먹어치워야 하는 일이며, 뺑소니를 당해 침울해 있는 사연을 듣고 범인을 잡아주려는 뜬금없는 용기를 내보이기도 하고, 유방암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며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낸다는 여자 친구의 말에 안절부절 정신을 못 차리기도 하는, 마치 어린 아이와 같은 순수함 마음을 가진 청년의 모습으로 등장하여, 독자들에게 그리 느끼하게 만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 엄청난 거구를 자랑하는 마유미의 무대포적이며 돌발적인 모습이다. 그녀는 자신의 외투 속에 언제나 두툼한 국어사전을 지니고 다니는데, 그 사전 속에는 수많은 단어들이 까맣게 지워져 있다. 그래서 그녀는 어느 누구든 상대방에게서 고상한 말이나 매너적인 말을 듣게 되면, 문득 자신의 사전을 꺼내 들춰 보이며 자기 사전에는 그런 말이 없다는 식으로 상대방을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하고 무안하게 깔아뭉개는 행태를 보이고, 또한 백화점과 호텔과 같은 분위기상 예의를 지켜야 할 만한 장소에서도 주위 사람들의 껄끄러운 눈길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거만하게 코나 귀를 후벼 파는 행동을 보이거나, 논리적이지 않은 즉흥적인 엉뚱한 말들을 큰소리로 떠들어대는 식의 행동을 보이며,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당혹스럽게 만들면서도 일면 유쾌하게 다가서고 있다는 점이다.

이야기의 전개 상황설정도 그렇고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두 인물인 가즈히코와 마유미의 조합 역시 독자로서는 사실 조금은 이해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러한 것들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어색하게만 생각되지 않은 것은, 아마도 글을 이끌어 나가는 작가의 특유의 역량이 이 작품 속에 깊이 배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이 소설은 억지로 웃기는 것처럼 보여도 한편 그것이 전혀 억지스럽지 않고, 다소 의도적임에도 그것이 어느새 자연스럽게 느껴져 독자들을 시종일관 책 속으로의 몰입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듯해 보이는 작품이다. 따라서 예기치 않은 엉뚱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 지극히 평범한 한 남자와, 그의 곁을 졸졸 따라다니며 사사 건건 시비와 돌발적인 행동을 보이며 대담함을 보여주는 한 여성과 콤비를 이루며, 우리에게 무한한 웃음과 재미를 선사하는 이 책의 이야기를 통해 많은 독자들이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즐겁고 잔잔한 감동의 시간들을 한번 맛보았으면 어떨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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