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은 소비에트 연방 시절의 ‘주도권‘을 다시 되찾아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거듭나려는 자신의 야심찬 목표를 미국이 의도적으로 방해하고 있다고 믿었다. 사실 모스크바와 워싱턴 사이의 관계가 아무리 불안했다 해도 양국 정상회담이 열렸다면 최소한 어느 정도의 협력 관계나 의사소통 창구들은 회복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가 미국정보부 역사상 최악의 배신자로 여겨지는 스노든에게 피난처를 제공한 이상 오바마가 푸틴을 만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결국 2013년에 예정되어 있었던 정상회담은 취소되었고 나중에 오바마는 여기에 쐐기를 박듯 러시아가 그저 "특정 지역의 강대국"일 뿐이라며 폄하하는발언까지 하게 된다.
한편 우크라이나는 여전히 러시아와 서방측 사이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모스크바는 이른바 ‘유라시아 경제연합(Eurasian EconomicUnion)‘, 즉 과거 소비에트 연방 소속이었던 새로운 독립국들을 러시아의 주도하에 하나로 묶겠다는 계획을 구상 중이었다. 그렇게 하면 관세 제도가 하나로 합쳐지고 경제 구역 역시 하나로 통일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 P147

 그렇지만 우크라이나는 같은 시기에 유럽연합과 더 큰 규모의 경제적 통합을 위한 ‘연계‘ 협약을 논의 중이었고, 그것이 성사되면 우크라이나 경제에는 큰 개혁이 일어날 터였다. 유라시아 경제연합과 유럽연합과의 연계 협약은 서로 완전히 상반되는 개념이라 절대 양립될 수 없었다. 완전히 다르게 통일된 관세 제도 두 가지가 우크라이나에 동시에 적용되기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만일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과 합의한다면 푸틴이 주도하는 유라시아 경제연합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와 유럽연합이 합의에 이를 경우엔 중요한 지정학적 영향력이 발생하게 된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영향력으로부터 완전히 멀어지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와 유럽연합 사이의 논의는 지정학적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오히려 기술적 측면에 관심을 두고 진행되었다. 서방의 입장에서 우크라이나는 그저 유럽연합과 미국이 어떤 식으로든 관심을 기울이는 수많은 이해관계 당사자들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러시아 입장에서의 우크라이나는 오바마 대통령이 훗날 확인했던 것처럼 "핵심적" 이해관계의 당사자였다. 러시아 측 주장에 따르면 키예프 공국 시절은 물론 1654년 카자크족이 모스크바 대공국에게 충성을 맹세한 이후부터 우크라이나는 계속해서 러시아의 일부였다. 푸틴은 이런 주장을 요약해서 설명했다. "우크라이나는 아예 독립된 국가라고 볼 수도 없다. 우크라이나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인가?
일부 영토가 동유럽에 속해 있다고는 하지만 그 대부분은 결국 러시아에서 양보해준 것이 아닌가?" 나중에 그는 러시아 내전 당시 어느 백 러시아군 사령관이 했던 말까지 인용했다.
- P148

" 대(大)러시아와 소(小)러시아가 있다. 물론 여기서의 소러시아는 우크라이나다. (...) 다른 어느 누구도 이 둘의 관계에 끼어들 수 없다. 이는 언제나 러시아가 직접 알아서 처리해온 문제였다. " 우크라이나의 경제는 영망진창이었고 도처에 부패가 만연했다. 그리고 그 부패의 정점에는 다름 아닌 대통령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자리하고 있었다. 2005년 대통령 선거전을 치르고 물러났던 이 전직 권투 선수는 정치라는 경기장에 또 한 번 뛰어들어 재경기를 치른 끝에 2010년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13년 야누코비치는 유럽연합과의 협정에 합의하려 했고 러시아측에서는 우크라이나가 유라시아 경제연합에 참여하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러시아는 즉시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휘두르기 시작했다. 양자택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야누코비치는 유럽연합으로부터 다시 등을 돌렸는데, 그 대가는 러시아가 제공하는 150억 달러 규모의 차관이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격분했다. 2013년 말 50만 명에 달하는 시위대는 키예프 독립광장에 몰려들어 유럽연합과의 협정 포기에 항의했고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부정부패와 러시아의 간섭에 대항하려 했다. 몸이 얼어붙을 것 같은 12월의 추운 날씨 속에서 미국 국무부 유럽담당 차관보 빅토리아 눌런드(Victoria Nuland)는 시위대 사이를 돌아다니며 과자를 나누어주고 사람들을 독려했으며 상원 의원 존 매케인역시 광장의 시위대에 합류했다. 이에 대해 모스크바에서는 시위대를
"신자치주의자와 파시스트들"이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2014년 2월,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고 수백 명이 사망했다.
- P149

당장에라도 내전이 일어날 듯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세 명의 유럽 외무부 장관이 서둘러 우크라이나로 날아와 야누코비치와 야당 정치인들을 설득해 새롭게 대통령 선거를 치르려 했다. 그렇지만 우크라이나 정부는 붕괴 중이었고 야누코비치의 경호 부대도 모습을 감췄다.
결국 야누코비치는 러시아로 도주해버렸고 미국과 유럽연합은 즉시 새로운 과도 정부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과도 정부의 첫 번째 조치는 우크라이나에서 우크라이나어와 함께 당시까지 공용어로 사용되었던 러시아어의 사용을 금지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의 여러 지방, 특히 동부 지방과 크림 반도에는 이미 많은 러시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이 어리석은 실수는 바로 철회되었지만 후유증은 컸다.
‘유럽 측에서 우크라이나 정부를 가로막고 나섰겠지만 그 정부가 이미 무슨 뜻을 품고 있는지는 전해졌다. "푸틴의 말이었다.
이런 혼란의 와중에 러시아 남부 도시 소치(Sochi)의 눈 덮인 산맥에서는 2014년 동계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소비에트 붕괴의 망령에서 완전히 돌아온 러시아를 축하하는 성대한 행사였고 이 행사의 주역은물론 블라디미르 푸틴이었다. 개회식에서는 러시아 역사에 대한 헌사가 장대한 음악과 함께 대대적으로 펼쳐졌다. 여러 국가 원수들이 내빈으로 참석했고 그중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있었다. 하지만 미국의 대통령 오바마나 부통령 조 바이든(Joe Biden)은 참석하지 않았고, 러시아 측의 귀빈인 에드워드 스노든도 그 자리에 없었으며, 오바마 행정부가 규탄했던 러시아의 동성애 관련 새 법률도 문제가 되었다.
미국 대표로 참석한 사람은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토안보부 장관을 역임했고 지금은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총장이 된 재닛 나폴리타노(Janel Napolitano)였다. - P150

그리고 올림픽의 영광과 환희가 빛나던 어느 순간 러시아 정부, 그러니까 아마도 푸틴을 중심으로 했을 측근들은 결단을 내린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기존의 비상사태 대책에 의거하여 러시아의 비공식 전투 부대는 흑해로 뻗어 있는 우크라이나의 영토인 크림 반도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준군사 조직의 등장은 크림 반도에 살고 있는 ‘억압받는‘ 러시아 국민들을 보호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러시아는 곧 크림 반도를 자신들 손아귀에 넣었다.
지난 수백 년 동안 그림 반도는 여름철의 화창한 아열대성 기후 덕분에 황제를 비롯한 귀족들이, 그 후엔 공산당 간부들은 물론 수많은소비에트 연방의 인민들도 즐겨 찾는 휴양지였다. 그런데 1954년 소비에트 연방의 지도자 니키타 흐루쇼프(Nikita Khrushchyov)는 이 크림반도를 연방 소속의 우크라이나 사회주의 공화국에게 갑작스럽게 양도했다. 표면적으로는 카자크족이 모스크바 대공국에 충성을 맹세한1654년 이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공식적으로 합병된 지 300주년이되는 해를 축하하기 위해서라 했지만 당시 흐루쇼프는 1년 전 스탈린이 세상을 떠난 후 벌어지고 있던 권력 투쟁에서 우크라이나 공산당의 확실한 지지가 필요한 입장이었다.
물론 소비에트 연방 시절에는 크림 반도를 선물로 내주었다 해서 주권과 관련해 문제될 것이 전혀 없었다. 그렇지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별개의 국가로 갈라지고 나자 상황이 복잡해졌다. 이제는 그저 휴양지나 과거의 향수가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림 반도의 항구 도시세바스토폴(Sevastopol)은 러시아 해군이 사용할 수 있는 흑해 유일의부동항(不東港)으로 당시 우크라이나와 일종의 임대 계약을 맺은 상태였다. - P151


2014년 3월 중순 크림 반도에서는 모스크바가  주도하는 국민 투표가 시행되었고 그중 대략 95퍼센트가 러시아와 합병되는 속에 표류줬다. 이튿날 푸틴은 크림 반도와 러시아의 ‘재통일‘을 발표했고 이에 충격을 받은 미국과 유럽현합 측은 러시아가 유럽이 승인한 경계선을 넘어섰다고 선언하며 제재를 결의했다.
우크라이나 역시 러시아의 이런 일방적인 합병 조치에 격렬히 저항했다. 러시아는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에 합의하면서 우크라이나의 핵무기를 가져가는 대신 영토 보존을 약속한 바 있었다. 그렇지만 러시아는 해당 각서가 이미 그 효력을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그들에 따르면 서방측이 사주한 것으로 추정되는 ‘군사 정변‘으로 우크라이나의
"합법적인 정부가 전복되었으니 지금의 정부와 양해각서 내용을 지킬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 분리주의자들과 준군사 조직, 그리고 휴가를 받은 러시아정규군 병사들은 우크라이나 남동부의 돈바스에서 군사 작전을 시작했다. 돈바스는 우크라이나 최대의 공업 중심지이며 특히 방위 산업 부문에서 러시아 경제와 여전히 밀접하게 연결된 곳이었다. 러시아와의합병을 지지하는 분리주의 세력은 도시 여러 곳을 점령했고 우크라이나 내란은 이제 러시아의 지원 및 직접적 개입을 통해 본격적인 전쟁으로 발전했다.
2014년 7월 16일부터 미국은 러시아의 금융, 국방, 그리고 에너지부문에 대한 제재 조치를 단계적으로 강화하기 시작했다. 다만 경제적으로 더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유럽 측이 여기에 동조할지는 아직분명치 않았다. 그러나 이튿날인 7월 17일, 분리주의자들이 우크라이나 공군기로 여기고 러시아에서 지원받은 지대공 미사일로 공격해 격추시킨 비행기가 실은 민간 항공기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전 세계는 큰 충격을 받는다.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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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은 살고 있는 지리에 큰 영향을 받아 형성되며, 누가 이웃인지 여부가 우리의 건강, 교육, 소득 및 미래 직업을 예측하는 데 좋은 지표가 된다. 거주지는 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빈민가에 살다가 일자리와 기회가 많은 역동적인 도시로 이주했을 때, 이전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것은 오랜 경험에서 증명된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조차 힘들어졌다. 집값이 폭등하면서, 몇몇 도시의 경우 거주지를 구하는 것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졌고, 인구 밀도도 높아졌으며, 대중교통비가 오르면서 장거리 통근의 장점 또한 사라져 버렸다. 결국 국가와 도시 내 지역별 차이가 점점 심해지면서, 불평등의 기준이 거주지가 되어버렸다.  ...... 오스트레일리아처럼, 중국도 부가 동부 해안지방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
브라질 남동부 지역이 북서부와 북동부 지역보다 잘 산다는 점, 그리고 이탈리아북부에 부가 집중되어 있다는 점 등이 잘 드러난다.
- P214

교육은 불평등을 극복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다. 차후 언급하겠지만, 국가간, 국가 내 교육 수준에는 상당한 격차가 존재한다. 부유한 부모가 자녀에게 취학전에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가능성은 가난한 부모가 그렇게 할 가능성보다 5배 이상 높다. 초등 교육 때의 불평등은 향후 수년 뒤에도 영향을 미친다. 영국케임브리지대학과 옥스퍼드대학 학생 중 80퍼센트가 상위 2개 사회 계층 출신이다. 35 기회의 불평등은 심지어 더 심하다. 영국 성인 중 1퍼센트 미만이 옥스퍼드대학 또는 케임브리지대학 출신이지만, 영국 내 100개 남짓한 대학 중 이 두 대학에서만 총리, 원로 법관, 고위공무원 중 절반 이상을 배출했다. 54기회를 위한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마련하는 것은 형평성 차원에서 더 공평할 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 위해 반드시필요하다. 이는 특정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도움이 된다. 이렇게 하지 못했을 때 따르게 될 대가는 위험할 정도로 분명하다. 관련 연구에서는 극심한 불평등은 경제 성장률 침체, 범죄율 증가, 질병 및 우울증을 포함한 사회, 경제적 문제의증가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불평등의 심화는 포퓰리즘과 경제 보호무역주의의 부상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이것은 추후에 다루기로 한다.
불평등의 감소가 필요한 윤리적 이유도 충분하다.  - P219

정부는 불평등을 극복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불평등을 줄이는 것은 단순히 소득 증가나 경제 성장률 상승보다 훨씬 큰 범주의 문제이긴 하지만, 여전히 핵심적인 사안이다. 교육, 보건, 에너지, 인터넷 및 기타 서비스에 평등하게 접근 가능한 것과, 최저 기준을 보장하는 것은 똑같이 중요하다. 국가마다 불평등수준이 서로 상이하고, 나라별로 불평등이 감소한 분야가 다른 이유는 대부분 정부 정책 때문이다. 이는 불평등은 당연한 현상이 아니며, 현명한 정책을 통해 큰변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 P224

일반적으로 불평등이 심해질 경우, 도시의엘리트 계층과 정부를 향한 분노 또한 치솟기 마련이다. 
불평등이 사회 결속력을 느슨하게 만들었을 때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포퓰리즘과 국수주의의 부상이다.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그리고 유럽 전역에 퍼진 포퓰리즘 정당과 반동단체 모두 독발직전인 불평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주마 대통령(2009-2018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재임)과 보우소나루 Baler 대통령 (2018년 10월 브라질 대통령으로 선출) 당선도 이와 같은 맥락의 결과이다. 비극적인 사실은 이와 같이 대중의 인기에 영합한 지도자들이 시행하는 정책이 다수가 아닌 소수에게 혜택을 주어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지속시킨다는 것이다. 희망이 있다면 포퓰리즘에 입각한 이 지도자들이 무능하고, 그래서 임기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것 정도이다.
허울뿐인 공약만으로는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 소위 말하는 아메리칸 드림은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장밋빛 환상일 뿐이다. 한 사람의 지성, 교육, 혹은 직장에서의 근면성실함보다.
미래의 성공을 훨씬 분명히 예측하게 하는 요소는 바로 그 사람 부모의 재산이다. 역경을 이겨낸 놀라운 성공담은 축하받아 마땅하나, 사실 이는 극소수에 해당한다. 불평등을 극복하려면 근본 원인을 해결해야 하며, 빈곤층과 취약 계층이그들 앞에 놓인 터무니없이 높은 장애물을 넘어야 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빈곤과 불평등이 전례 없이 심각해졌다. 불평등은 저 멀리 있는, 추상적인 위협이 아니다. 이는 현실이며 실질적인 위험이다. 인류와 지구의 행복을 우선시한다면, 반드시 불평등을 극복해야 한다.
- P226

기원전 3700년부터 서기2000년까지 진행된 도시화 
도시는 국민국가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하지만 인류는 존재한 이래 대부분유목 생활을 하였고 도시에 정착하지 않았다. 영구 정착은 1만 년에서 1만 2,000년 전이 되어서야 처음 등장하기시작했다. 
- P126

도시 취약성 심화: 아프리카 도시의 90퍼센트이상은 취약하다.

급속히 성장하는 도시가 모두 같은 양상을 보이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부국과 빈국들 모두 마찬가지로 일부 도시는 후기 산업화 단계에 진입한 반면, 여전히 제조와 사양 산업이 중심인 도시도 있다. 민주국가에서 고군분투하는 도시가 있다면 독재주의속에서도 번성하는 도시도 있다.  인도의 수라트, 중국의 이같은 도시는 두 자릿수 경제 성장률을 구가하고 있지만 이라크의 모술과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는 경제 성장의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으며, 도움을 받아 겨우 연명하는 수준이다. 정치적 격변과 경제 불안으로 타격을 받은 도시에서는 지방 정부와 도시거주자의 결속을 책임지는 사회 계약도 전부 붕괴하고 있다. 왜 어떤 도시는 다른 도시에 비해 취약한 걸까? 코린트나 폼페이 같은 고대 도시는 살아남지 못했다. 이들 도시는 전쟁, 지진, 화산과 같은 대격변으로 인해 사라졌다. 아누라다푸라와 티칼처럼 인구 밀도가 낮은 도시의 경우 부실한 계획과 불운으로 인해 너무나 쉽게 자원이 고갈되고 말았다.  도시 취약성의 원인은 한 가지로 귀결되지 않는다. 높은 불평등과 빈곤 수준, 통제없이 늘어난 인구, 치솟는 실업률, 혼잡과 오염, 폭력 범죄, 자연재해 노출과 같은 다양한 스트레스 요인이 누적된 결과이다. 
도시 취약성은 불변 상태가 아니며 시간 경과에 따라 변동하지만 일부 위험 요인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인구가 매년 3퍼센트 이상 증가하는 도시에 심각한 소득 불평등이나타나고 치안 및 형사 사법이 결핍되면 그 도시는 다른 도시보다 더 취약한 경향이 있다. - P152

향후 가장 심각한 도시 안보와 개발 문제는 아프리카에서 발생할 것이다. 아프리카는 전 세계에서 가장 젊고 빠르게 성장하는 대륙이며 지구상 그 어느 곳과 비교해도 가장 빠르게 도시화되고 있다. 아프리카의 인구는 약 11억 명이고 2050년까지 2배 증가할 것이며 그중 80퍼센트는 도시와 도시의 슬럼에서 증가할 것이다. 1폭발적 속도로 진행되는 도시화와 급증하는 젊은 인구(이들은 대부분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할 것이다)는 시한폭탄과 같다. 현재도 아프리카인구의 약 70퍼센트는 30세 미만이다. 아프리카 도시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수많은 젊은 인구를 통해 경제력을 높이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 P155

AI가 가난한 국가의 일자리를 위협한다

개발도상국에는 숙련된 노동력보다 저비용, 중간 단계 숙련도의 노동력이풍부하다. 개발도상국들은 저소득 국가에서 중소득, 나아가 고소득 국가로 발전하기 위해 이러한 풍부한 노동력을 활용해서 빈곤을 극복하고 성장한 국가들의 선례를 따를 토대를 마련했다. 한국, 싱가포르, 홍콩 대만은 빈곤을 극복하고 동아시아의 호랑이로 불렸고 이후 중국, 대만, 베트남이 발전을 이루었다. 우려되는 점은 숙련도가 낮은 반복적인 일자리가 이전에는 개발 사다리를 오를 수있게 했던 중간 단계 역할을 했는데, 지금은 이러한 일자리가 자동화 프로세스로 대체되면서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인구 챕터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프리카에서 향후 10년간 1억 명의 젊은 인구가 노동 시장에 편입될 것으로 추정된다.
AI와 로봇공학이 3D프린팅 등 다양한 새로운 기술과 결합하여 아프리카의 젊은 층은 양질의 일자리를 찾기가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자동화와 3D프린팅 등의 새로운 산업 기술로 소비자들은 옷과 신발, 처방약등의 제품을 맞춤형으로 주문하고 며칠 또는 몇 시간 내로 집으로 배송받을 수있게 되었다. 제조 설비를 상대적으로 저렴한 노동력을 제공했던 멀리 떨어진 곳에 두는 것이 비용상 장점이 줄어들고 있고, 고객 서비스를 고객과 가까운 곳에서 제공하는 것의 장점이 늘면서, 개발도상국에 생산을 아웃소싱하는 시대가 빠르게 저물고 있다. 보호무역주의 정치가 이를 더 가속화한다. 제조 시설을 다시자국 내로 가져오려는 선진국들의 수요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데, 물론 함께 들어오는 건 일자리가 아닌 자동화된, AI 기반의 로봇 프로세스이다. ‘미국 우선주의‘가 미국을 장악하고 있고, 중국과 유럽, 영국에서도 국수주의가 대두되고있다. 여기에 기술을 이용해 제조업을 고객과 가까운 곳에 두고 고객의 니즈를 빠르고 더 저렴하게 충족할 수 있게 되면 글로벌 공급망의 파편화가 정점에 치닫게 될 수도 있다. -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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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냐는 기차에서도 잠들지 못하고 줄곧 딸과 남편에게 펼쳐지고 있는 멋진 삶에 대해, 자기 주위에서 피어나는 젊음의 만개에 대해 생각했다.
다 지나가버린 자신의 삶이 안타까웠다. 지나간 날들에 참 행복했었지하는 생각도 스쳐 지나갔다. 소네치카는 흔들거리는 기차에 몸을 맡긴채 앞으로 20년 후에 찾아올 틱 장애를 예고라도 하듯 늙은이처럼 고개를 까닥거렸다. - P74


의미심장한 만남들이 이상한 우연의 일치들이, 그리고 꼭 들어맞는놀라운 일들이 삶에 가득하긴했지만 메데야는 우연을 믿지 않았다. 언젠가 만났던 사람이 많은 세월이 흐르고 나서 운명의 물길을 돌리기 위해 되돌아오곤 했다. 실들이 늘어나다가 만나 고리들을 만들었고, 해가갈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무늬를 이루었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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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테러집단에 대해 규정하기를,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영웅과 같은 광신도라고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테러집단을 악마로 보는 관점의 실상을 폭로하는 것이다. 이것이 더 강하고 효과적이다. 오래전 니체는 서구 문명이 어떻게 최후의 인간이 등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는지를 간파했다. 최후의 인간은 열정도 없고 헌신도 하지 않는 무심한 존재다. 사는 데 지쳐버려 꿈도 꿀 수 없는 최후의 인간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은 채 오직 안전과 편안만을 추구한다. 이것은 타인에 대한 관용을 보여주는 태도이기도 하다. " 독약도 조금만 먹으면 때로 달콤한 꿈을 일으킨다. 독약을 많이 먹으면 결국 편안하게 죽는다. 최후의 인간은 낮에도 즐겁지 않고 밤에도 즐겁지 않다. 그들은 건강을 염려한다. 최후의 인간은 눈을 깜박이며 ‘ 우리는 행복을 발견했어요‘ 라고 말한다." - P17

결국 다음과 같은 현상이 나타날 것 같다. 무엇이든 허용하는 제1세계가 자신에게 반발하는 근본주의자에게 맞설수록, 물질과 문화의 부를 향유하며 만족스럽게 사는 것과 초월적 대의에 생명을 바치는 것의 대립도 커질 것이다. 이 적대관계는 니체가 말한 "수동적" 허무주의와 "능동적" 허무주의의 대립을 뜻할까? 우리 서구인은 이제 니체가 말한 최후의 인간이다. 우리는 그저 일상의 평범한 쾌락에 빠져 있다.
반면 이슬람 근본주의자는 기꺼이 모든 것을 걸 수 있다. 그는 스스로를 파괴할 때까지 싸운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가 쓴 「재림」은 오늘날 우리가 처한 궁지를 완벽하게 기술한 것 같다. "가장 나은 인간은 신념을 모두 잃어버렸지만, 가장 나쁜 인간은 열정이 넘친다." 예이츠는 빈혈에 걸린 사람처럼 창백한 자유주의자와 열정이 충만한 근본주의자의 대립을 탁월하게 기술했다. "가장 나은 인간"은 상황에 개입할 능력이 더는 없는데, "가장 나쁜 인간"은 인종주의와 종교적, 성차별적 광신에 적극 가담한다. - P17


하지만 근본주의를 신봉하는 테러집단이 정말 그런 인간들일까? (티베트 불교도와 미국 아미시 공동체[현대문명과 단절한 채 자신들만의 전통을 유지하며 생활하고 있는 침례 종파 집단의 일종] 같은 진정한 근본주의자에게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특징도 유독 그들에게는 없다. 진짜 근본주의자에게는 시기도 원한도 없다. 그들은 불신자가 사는 방식에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오늘날 소위 근본주의자가 진리로 가는 길을 찾았다고 정말로 믿는다면, 그는 왜 불신자에게 위협을 느끼는 것일까? (그는 왜 불신자가 위협한다고 느끼는 것일까? 왜 근본주의자는 불신자를 시기하는 것일까? 불교도가 쾌락주의를 신봉하는 서구인을 만날 때, 그가 서구인을 정죄하는 일은 거의 없다.
불교도는 쾌락주의자가 행복을 갈구할수록 불행해진다고자상하게 지적할 뿐이다. 유사 근본주의자이자 테러리스트는 진짜 근본주의자와 반대다. 죄로 얼룩진 불신자의 삶은그를 방해하고 괴롭게 한다. (심지어)그는 불신자처럼 살고 싶어하는 유혹에 시달린다. 여기서 우리는 느낄 수 있다. 죄인과 싸우는 사람은 사실 자기 자신이 느끼는 유혹과 싸운다. - P18

예이츠가 제시한 진단이 부족하다는 것이 여기서 드러난다. 테러리스트가 보여준 열정은 오히려 그에게 진짜 확신이없음을 증거한다. 그가 가진 믿음이 얼마나 연약했기에 풍자 주간지에 실린 한심한 만화를 보고 위협을 느꼈겠는가!
이슬람 근본주의가 휘두른 폭력은 자신이 남보다 우월하다는 확신에서 나오지 않았고, 세계를 소비시장으로 만들려는문명에 맞서 문화적·종교적 정체성을 지키려는 욕망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를 괴롭히는 문제는 무엇일까? 우리가 그들을 열등하게 여기기 때문에 괴로워하는가? 아니다. 그들이 스스로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보다 우월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확신하지만, 그 태도가 거꾸로 그들을더 화나게 하고 복수심을 품게 한다. 여기서 요점은 문화 차이가 아니다. 그들이 정체성을 지키려고 애쓴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거꾸로 근본주의자는 이미 우리와 비슷하며, 우리가 세운 기준을 슬그머니 이용해 자신을 판단한다는 것이요점이다. 역설적으로, 자신이 우월하다는 진짜 ‘인종주의‘
다운 확신이 이슬람 근본주의자에게는 부족한 것이다.
최근 이슬람 근본주의의 추세를 보면, 발터 벤야민의 오래된 통찰이 옳았음을 알 수 있다. "하여간 파시즘이 부상한다는 것은 혁명이 실패했음을 입증한다. "
즉 파시즘의 부상은 좌파가 실패했음을 뜻한다. 그러나 파시즘의 부상은 동시에 좌파가 미처 동원할 수 없었던 혁명적 잠재려과 불만이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 P19

어떤가? 자유주의는 근본주의자의 맹습에 맞서 자유와 평등을 지킬 만큼 강하지 않다. 이것은 역설이다. 자유주의에 실제로 내재하는 결함에 대한 반응이 바로 근본주의다. 물론 근본주의는 잘못된 반응이며 사태를 신비화하는 반응이다. 이런 이유로 자유주의는 끊임없이 근본주의를 양산한다. 자유주의를 내버려두면, 자유주의는 서서히 붕괴해버릴것이다. 갱신된 좌파만이 자유주의의 핵심 가치들을 구할수 있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유산을 유지하려면 급진 좌파는 형제처럼 자유주의를 도와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근본주의를물리치고, 근본주의의 뿌리를 잘라낼 수 있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에 직면하여 사고한다는 것은 무엇이든 허용하는 자유주의자의 거들먹거리는 자족을 떨쳐낸다는 뜻이다. 그리고 자유주의적 방임과 근본주의의 대립은 결국 가짜 대립임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두 세력은 대립하는 것 같지만 상대를 전제하면서 서로를 만들어낸다. 호르크하이머는 이미 1930년대에 파시즘과 자본주의의 관계를 논했는데, 자본주의를 비판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파시즘에 대해 논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호르크하이머의지적은 오늘날 근본주의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비판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종교 근본주의를 논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는 전근대적 현상인가, 근대적 현상인가? - P21

반식민주의가  다시 부상하는 흐름 가운데 IS의 등장은 마지막 단계에 속한다.(반식민주의가 다시 떠오르면서 제1차 세계대전 후에강대국이 자의적으로 그어놓은 국경이 재조정되고 있다.) 동시에 세계 자본이 민족국가의 힘을 잠식하는 방식에 반대하는 투쟁이 전개되면서 IS가 나타났다. 그러나 (세계 자본이 가져온) 경악과 두려움을 똑같이 일으키는 주체가 바로 IS 체제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IS 정권의 공식 입장은 늘 분명하다.
국가 권력의 주요 과제는 대중의 복지를 조정하는 것이 아니다.(국민 건강을 증진시키고 궁핍을 해소하는 것이 국가 권력의주요 과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국가 권력이 해야 할 정말 중요한 과제는 종교생활이다. 공공생활이 모두 종교법에 따라 이뤄지도록 신경 쓰는 것이 국가의 일이다. 그래서 IS는 자신이 다스리는 지역에서 벌어진 반인륜적 참상에 무심한 것이다. IS가 내세우는 국정 과제는 이렇다. "종교를 돌보면 복지는 저절로 이뤄질 것이다." 이것이 IS가 실행하는 권력과 현대 서구 국가가 실행하는, 이른바 "생명 권력의 차이다. (생명을 규율하는 권력이 생명 권력이다.) 다시 말해 IS가 다스리는체제는 생명 권력 개념을 완전히 거부한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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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역서 시리즈 가운데의 세 번째 권인 ‘중국 현대 단편소설선3‘은 1937년 7월 7일 중일전쟁의 발발로부터 1949년 10월 1일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에 이르기까지 발표되었던 단편소설 12편을 번역하여 실었다. 이 시기에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은 제2차 국공합작을 맺어 통일전선을 구축함으로써 항일투쟁에 함께 나섰다.
-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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