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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꽃, 눈물밥 - 그림으로 아프고 그림으로 피어난 화가 김동유의 지독한 그리기
김동유 지음, 김선희 엮음 / 비채 / 2012년 11월
평점 :
먼저 말하자면 난 그림엔 관심이 없다. 여기에다 덧붙여서는, 그림을 해석할 줄 모른다 해야하나. 어쨌든 "예술가"는 나에게 거리가 먼 사람이고, 물론 거기에 '화가'도 포함되어있었다. 그런 무지한 나도 오며가며 본 작품 중 하나가 화가 김동유의 <마릴린 먼로 vs 존 F. 케네디>라는 작품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이 그림이 붉은 실처럼 되어 저자와 연결되는 끈처럼 되어있었던 것이다. 그 그림 한장을 보고는 화가 김동유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궁금했다. 그래서 펼친 책이 김동유의 자전적 에세이로 그에 대한 이야기가 녹아져 있는 <그림꽃, 눈물밥>이다.
화가 김동유는 본인에 대한 이야기를 수줍어하면서도 차근 차근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비록 자신의 모든 것을 글로 풀어나갈 수는 없지만 본인의 생각들을, 끝없이 묻고 또 물었던 이야기들, 타인이 생각하는 오해 등에 대해서 담담히 써내려간다. 손쉽게 무언가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어찌보면 당연하기도 한 이 말을 다시금 깨달았다고 해야하나. 저자는 자신의 지독하게 가난했던 그 시절을, 돈이 없어 축사에서 생활했던 그 시절을 다시금 회상하며 그 때의 마음을 잊지 않도록 다짐하기도한다. 지방대를 나왔고 지방에서 활동하는 그는 누구보다 꽃을 피우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떤 시련에도 꿋꿋이 본인의 일을 해왔던 그는 '주목'을 받기 시작했을때 어떤 감정을 지녔을까. 얼떨떨했을까?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러서야 그 떨림이 멎을 수 있었을까.
무명작가 김동유. 나는 지방에서 활동하며, 지방대학교를 나왔다. 학연도 지연도 없었다. 그런 내가 주류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란 힘들었을 뿐더러 그런 희망 또한 일찌감치 버렸다. 이제 와서 어찌어찌 인맥을 만든다고 한들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그래서 내가 결심한 건 내공을 쌓는 일이었다. 언젠가 기회가 단 한번 주어질 때 멋진 승부수를 던지리라, 진검승부를 하리라 하고 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내가 주류를 놀라게 했다고 말한다. 그토록 원했던 아웃사이더의 반란을 나도 조금은 이룬 걸까.
-p.338~340
앞을 향해 내딛는 걸음이 불안하다 느낄때 저자는 어떻게 행동을 했는지 되새김질하듯 생각해야겠다. 섣불리 희망에 부풀어오르지않고, 포기하지않으며 꾸준히 한 길만을 걸어갔다. 자전적 에세이라 공감되지 않은 글귀만 있으면 어떻하나 걱정했지만, 저자의 그림과 더불어 기억에 남는 문장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아아, 나도 이렇게 열정을 쏟아부을만큼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야될텐데. 책을 덮고나서도 여러 가지 감정이 떠올랐다. 나를 더 채찍질하도록, 나태한 나를 채찍질하여 움직이게 만드는 듯했다.
완전한 역전을 꿈꾼다면 내가 하고 있는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 아닐까. 어찌 될지 모르는 불안한 마음을 덮어두고 그저 행하는 것, 이것만이 역전의 길이 아닐까. 그러므로 역전이란 결국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무언가를 했던 내 안에서 오는 것이지 싶다. 누군가는 다 이뤘으니까 하는 소리라고 비난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진심으로 노동자처럼 무식하게 한 우물을 파는 화가였다. 만약 우물파기를 그만두었더라면 막 물을 쏟아내려는 좋은 땅을 버리게 되는 것이고, 평생을 후회하며 살았으리라. ㅡ(중략)ㅡ 그러니 과정 없는 역전은 없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p. 188~190
내 습작의 모든 과정을 선보인 이 전시 덕택에 나는 혜성처럼 나타난 운 좋은 아웃사이더가 아닌, 성실히 작품활동을 해온 작가로 알려질 수 있었다. 나는 다양한 그림을 시도했으며, 현재의 이중그림 또한 어느 날 갑자기 그리게 된 것이 아니다. 나의 마지막 행보 또한 이중그림은 아닐 터였다. 나는 또 다른 이미지를 만들 것이고, 언제나 머릿속으로 다음을 구상한다. 결코 순간이 영원일 수 없는 것처럼. 화가는 기질이 아니고 직업이다. 그러니 지금 곧 죽을 것 같아도 내일의 태양은 다시 뜨고, 내일을 살기 위해 오늘도 일해야 한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자신이 속한 곳이 비주류라고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기만을 바란다. 나처럼 우직하게, 바보처럼 작업하는 후배들이 앞으로 더 많이 나와주기를 바란다.
-p. 350
앞으로도 죽는 날까지, 붓을 들 힘만 있다면 캔버스 앞에서 그리다 사라지고 싶다. 나는 화가 김동유다.
-p. 3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