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추리소설 읽는 법 : 코넌 도일, 레이먼드 챈들러, 움베르토 에코, 미야베 미유키로 미스터리 입문 - 코넌 도일, 레이먼드 챈들러, 움베르토 에코, 미야베 미유키로 미스터리 입문
양자오 지음, 이경민 옮김 / 유유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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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글


장르소설과 순문학소설의 가장 큰 차이는 장르소설은 단 한 권만 읽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무협소설을 단 한 권만 읽는 사람은 없고, 로맨스소설을 단 한 권만 읽는 사람도 없듯, 탐정추리소설을 단 한 권만 읽는 사람도 없다. 탐정추리소설의 재미는 각 소설 간의 호응과 간섭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탐정추리소설 읽기를 즐기는 사람은 최후의 답안, 그 합리적이고 유일한 해석에 흥미를 느끼고 집착한다. 그렇지 않은가? 탐정추리소설을 어느 정도 읽고 나면 더는 당장 손에 쥔 책을 읽기만 하지 않는다. 책 뒤에 자리한 장르문학의 미궁으로 들어가, 손에 쥔 책의 수수께끼를 푸는 동시에 미궁의 출구를 찾는 놀이를 하게 된다. 시체, 단서, 밀실, 명탐정, 알리바이 증명, 범죄 심리, 주고받는 대화 속 두뇌 대결, 나아가 궁극의 추리논리에 이르기까지. 이 소설은 과거의 저 소설(들)을 계승하거나 저 소설(들)에 도전하고, 이에 따라 독자가 이 소설을 이해하고 추측하는 데 도움을 주거나 훼방을 놓는다. 6-7)


오래도록 고민한 끝에 나는 몇 가지 원칙을 정해 책을 선정했다. 첫째, 탐정추리소설이 가진 ‘장르’ 특성으로 돌아가, 장르에서 선구적인 의미가 있는 작품을 골랐다. 바꿔 말하면, 이후에 수많은 모방작이 나온 작품이다. 이런 작품을 읽으면 탐정추리소설의 규칙이 이루어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이해할 수 있고, 독자는 추리소설의 세계로 들어오기 위한 기초를 재빨리 닦을 수 있다. 둘째, 내가 다시 읽고 싶은 작품을 찾았다. 분량은 많을수록 좋았는데, 그러면 다시 읽기가 가져다주는 즐거움을 좀 더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작품 안팎의 텍스트에 일정 정도 복잡함이 있는 작품으로 선택했다. 내부 텍스트가 충분히 복잡해야 자세히 분석할 만하고, 겉으로 봐서는 한눈에 알 수 없는 깊거나 모호한 정보를 캐내는 맛이 있다. 외부로 연장된 복잡함은 한 시대, 한 사회의 특징과 연결 지을 수 있으며 다른 수많은 책, 다른 문화 현상으로 확장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9)


1 호기심의 시작


추리소설의 기원은 어째서 19세기일까? 이 시기의 유럽에서 범죄는 더 이상 개인의 일이 아닌 사회 현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사람들의 시선은 ‘sin’(죄악)에서 ‘guilt’(죄악감)로 옮겨 갔다. 교회의 지위가 추락하고, 기독교가 여러 방면에서 의심과 공격을 받으면서 ‘죄’는 더 이상 개인 양심의 문제이거나, 죽은 후 천국에 가거나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을 결정하는 요소가 아니게 되었다. ‘죄’는 ‘이 세상’에 있으며, 현실 세계에서 사회의 수단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인식이 바뀐 것이 19세기에 완성된 거대한 변화였다. 또한 19세기의 유럽에는 도시화가 폭넓게 일어났다. 누가 누군지 서로 잘 알고, 피차의 생활상을 훤히 아는 농촌에서는 범죄 행위가 다른 사람의 이목을 벗어나기 어려운 까닭에 범죄 욕망을 억누를 수 있었다. 그러나 도시 이주 후 누구도 나를 모르고, 누구도 내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신경 쓰지 않는 상황은 죄를 저지르고 처벌을 피하고자 하는 욕망을 부추기는 것과 다름없었다. 14)


# 추리소설의 3대 요소 : 탐정, 미스터리(수수께끼), 추리


초기의 탐정추리소설은 범인을 찾고 범죄 과정, 혐의에서 벗어나고자 시도한 수법을 설명하고 나면 사건을 해결한 것으로 쳤다. 그러나 어떤 작품은 ‘누가 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데 만족하지 못하고 ‘왜 했는가’에도 대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동기를 조사하고 범죄 동기에서 범죄에 대한 정보, 나아가 범죄가 일어난 사회와 관련된 정보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범죄는 매일 일어나고 그중에는 기이하고 다채로운 사건이 넘쳐난다. 만약 매체의 요란한 기사만을 본다면 우리는 깊은 인상을 받을지언정 그 사건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 사건은 우리와 다른 이상한 사람이 벌인 이상한 일일 뿐이라고 생각하리라. 그러나 추리소설은 독자가 범죄를 나와 상관없는 일로 여기도록 두지 않는다. 범죄 현상을 꿰뚫고, 범죄 행위를 해석하는 것은 보편적인 논리와 이치이며, 이는 우리 일상생활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고 일상 행동을 관할하는 것과 똑같은 논리와 이치다. 19)


코넌 도일은 장장 몇십 년간 수십 가지 이야기 속에 허구의 인물 한 명을 묘사하면서, 강한 인내심과 의지로 홈스의 일관성을 지켰다. 홈스의 외모부터 성격에 이르기까지,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어떤 사건의 의뢰자나 용의자를 만나든 홈스의 생각, 태도, 반응은 기본적으로 일치한다. 홈스는 겉으로 보면 논리만 보고 이치만 믿는 추리 기계 같다. 그는 감정이 일처리를 방해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소설에서 왓슨은 자기가 기껏 머리를 굴려 답이라고 말한 내용을 홈스가 비웃자 의기소침해한다. 홈스는 왓슨이 한 추리의 빈틈을 지적하지 않고 그가 감정적으로 구는 부분을 질책한다. 그러나 코넌 도일은 소설에 홈스의 부드러운 내면이 무의식중에 드러나는 자잘한 일화를 여기저기에 수없이 장치해 둔다. 홈스를 묘사하는 내용을 스무 번, 서른 번, 쉰 번 읽고 나면 우리는 같이 사는 사람만큼 홈스에 대해 훤히 알게 된다. 홈스는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달리 생각할 여지가 없다. 이것이 일관성이다. 26-7)


코넌 도일의 시대에 가장 일반적인 소설 서사는 전지적 시점이었다. 신처럼 모든 일을 다 아는 인물이 소설 속 이야기를 독자에게 들려주었다. 그러나 전지적 시점에는 문제가 있다. 객관적인 묘사와 서술로는 독자가 서술자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화자에게 이입하기 쉽지 않아서 공감하고 느낄 상대가 분명하지 않다. 일인칭 시점에도 한계가 있다. 그중 한 가지는 (홈스 같은) 극도로 특이한 인물에게는 감정 이입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코넌 도일은 세심하게도 전지적 시점과 일인칭 시점 사이, 객관과 주관 사이에 놓이는 신선한 서사 방법을 발명했다. 왓슨은 코넌 도일의 또 다른 돌파구이자 성과다. 코넌 도일은 추리소설뿐 아니라 소설의 역사에 독특한 서사 방식을 창조했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인물을 골라 주인공 곁에서 이야기를 말하게 하는 것이다. 소설의 문장과 사건 기록은 모두 왓슨의 시점을 거친 것으로 주관적 판단과 강한 호불호가 뒤섞인 그의 정서가 독자에게 전달되어 독자의 마음에 스며든다. 28)


왓슨이 있기에, 홈스는 우리에게 그의 모험이 얼마나 놀랍고 위험했는지 얼마나 대단했는지 말할 필요가 없지만 우리는 더 놀라고 더 위험하게 느끼고 더 대단하게 여기게 된다. 홈스가 있으면 왓슨이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끝없이 대비가 일어난다. 왓슨이 스스로 보기에 뭔가 끝내주는 해결책을 생각해 냈거나 더 이상 합리적일 수 없는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마다 그의 해결책은 달랑 두세 쪽이면 뒤집히고 아이디어는 오류임이 증명된다. 하지만 왓슨은 절대 광대 역할이 아니다. 코넌 도일도 일부러 왓슨에게 황당하고 어리석은 생각을 떠맡기는 게 아니다. 아니 왓슨의 생각은 대체로 우리가 떠올릴 법한 생각이기도 하다. ‘셜록 홈스 시리즈’를 읽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우리는 왓슨의 입장에 선다. 그러다 이따금 왓슨보다 훨씬 빨리 사건의 단서를 파악했거나 홈스가 입을 열기 전에 왓슨의 추리가 어긋났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우리는 왓슨과 홈스의 사이에 서게 되고, 그 순간 색다른 재미와 만족을 얻는다. 33)


우리가 ‘셜록 홈스 시리즈’를 한두 편이 아닌 전편을 모두 읽었을 때 사라지지 않을 즐거움 중 하나는 점점 분명해지는 ‘나의 친구 홈스’의 모습이다. 우리는 홈스를 알게 될수록 왓슨과 마찬가지로 이 사람에게 탄복하고, 이 사람을 좋아하고, ‘나의 친구’로 여기게 된다. 또 다른 즐거움도 있다. 홈스가 쓴 추리 수법은 기본적이고 일반적이다. 코넌 도일에게 추리의 기본 게임 규칙을 세울 자유가 있었던 덕분이다. 나중에 추리소설을 쓴 사람은 모두 코넌 도일이 세운 규칙을 지키는 한편 추리 수법에서 홈스를 뛰어넘을 아이디어를 궁리해야 했다. 따라서 이후의 추리소설에는 ‘셜록 홈스 시리즈’에서 보이는 어떤 단순함을 담기 어려웠다. 그 단순함이란 일반 과학 원칙과 경험 법칙에 의지하며, 지나친 기교를 부리거나 독자를 헷갈리게 하기 위해 연막탄을 피울 필요가 없고, 이야기의 흐름이 간결하며, 작가가 스스로 생각한 수수께끼에 의기양양함이 없고, 작가가 독자를 도발하거나 조롱할 일이 없는 것을 말한다. 37)


2 그리하여 그는 영웅이 된다


‘hard-boiled’는 보통 달걀을 익힐 때 쓰는 말로, 완숙 계란을 뜻한다. 달걀을 삶아도 삶은 달걀의 본질은 여전히 달걀이다. ‘하드보일드 맨’으로 번역되는 중국어 ‘硬漢’은 무척 억세고 강해서 사람을 때려 길바닥에 쓰러뜨릴 정도의 건장한 사나이를 상상하게 한다. 그러나 ‘hard-boiled’라는 단어를 보면, 특히 달걀을 생각해 보면 ‘하드보일드 맨’의 강함은 그런 강함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벽과 비교하면 ‘hard-boiled egg’는 여전히 약한 달걀일 뿐이다. 다른 점이라면 그렇게 약해 보이지 않는 척한다는 것이다. 날달걀과도 다르고 다른 알과도 다르다. ‘hard-boiled egg’는 벽에 부딪힌 순간 흰자위와 노른자위를 쏟아내 참담하게 패배한 불쌍한 모습을 보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벽에 대항할 수 있고 벽을 쓰러뜨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꽤 단단하다고 여겨 이따금 벽처럼 단단한 상대에도 대항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벽 앞에서 ‘hard-boiled egg’는 여차하면 강한 척하는 달걀로 돌아갈 뿐이다. 45-6)


‘하드보일드 맨’, 그중에서도 특히 ‘하드보일드 탐정’은 모두 ‘말수가 적다.’ 딱히 떠들 만한 것 없음. 헤밍웨이가 해밋과 챈들러에게 물려준 ‘하드보일드 맨’ 스타일이다. 우리는 이 딱히 떠들 만한 것이 없다는 태도를 보며 그가 뽐내지 않으려 하고 자랑하고 싶어 하지 않는 과거에 얼마나 요란하고 화려하며 웃고 울 만한 일이 있었는지 상상하고 추측하게 된다. 따라서 소설을 읽으면, 우리와 말로의 관계에는 챈들러가 드러낸 부분 외에 우리가 상상하여 참여한 부분이 존재한다. 이런 상상력을 갖추었거나 상상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여부가 독자가 챈들러의 소설에 들어갈 수 있는지, 얼마나 깊이 들어갈 수 있는지를 가른다. 헤밍웨이에서 해밋에 이르면서 ‘하드보일드 맨’은 ‘하드보일드 탐정’이 되었지만, 우리는 그 사이의 아이러니를 기억해야 한다. ‘하드보일드 탐정’에게 가장 눈에 띄는 동시에 사람을 매혹하는 부분은 ‘하드보일드 맨’의 모습 뒤에 숨겨진 연약함이다. 55)


챈들러는 설령 소설에서라도 한 사람의 죽음이 기록될 만하고 대답을 구해야 할 일이라면, 그 죽음은 우리를 곤란하게 하고 고심하게 할 만한 문명의 의제에 닿아야 한다고 말한다. “예술이라 불리는 모든 것에는 구원의 성격이 있다. 만약 수준 높은 비극이라면 그것은 순수한 비극일 것이며, 연민과 풍자가 있을 수 있고, 거친 남자의 왁자한 웃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비열한 거리를 걸어야 하는 남자는 비열하지 않고 오염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 사람이다. 이런 이야기 속의 탐정은 반드시 이런 사람이어야 한다. 그는 영웅이며, 모든 것이다. 그는 완전한 사람이어야 하며, 보통 사람인 동시에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어야 한다.” 상상의 문학, 고상한 문학은 인간 세상에서 벗어난 평범하지 않은 행동을 쓸 수 있지만 만약 실제 거리, 실제 세상을 쓰려고 한다면 다른 전략을 써야 하고 다른 주인공을 써야 한다. 이 주인공은 평범하되 평범하지 않아야 하며, 진실한 동시에 이상적이어야 한다. 57)


헤밍웨이에서 해밋과 챈들러까지, 그들은 ‘영웅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고민했다. 챈들러는 특히 진지하게 탐색했다. ‘지금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영웅이란 무엇인가?’ 챈들러는 영웅을 그리고자 했다. 천상이 아닌 지상의 영웅, 그리스 신화 속 영웅이 아닌 로스앤젤레스 거리의 영웅, 구체적으로는 1930년대 후반에서 1950년대 후반의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살았던 영웅을 말이다. 그는 복잡하고 시끄러운 실재하는 환경에서 산다.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읽은 후 이 복잡하고 시끄럽고 실재하는 주변 환경에서 따뜻함, 안전한 느낌, 신뢰감을 갖게 된다.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분명하게 설명할 수는 없어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느낀다. 아, 이런 사람이 있기에 우리는 절망하지 않을 수 있겠구나. 이러한 설정에서 우리는 말로가 ‘슈퍼맨’이 아니며 ‘홈스’가 아니라는 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홈스를 베이커 거리에서 1930년대의 로스앤젤레스로 데려온다면 그는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59)


챈들러는 말로가 ‘평범하게 좋은 사람’이기를 바랐을 뿐이다. 말로에게는 좋은 사람이 보통 갖고 있는 기질이 있다. 그는 사람을 해치지 않고, 일부러 남을 다치게 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속하지 않는 것을 갖고자 하지도 않는다. 그가 가진 원칙의 마지노선은 상황이 다르다고 바뀌지 않는다. 그는 로스앤젤레스의 다채롭고 기이한 환경에서 사는 평범하게 좋은 사람이지만, 그 다채롭고 기이하며 비상식적인 환경에서 그저 평범하게 좋은 사람으로 계속 사는 데에는 영웅 같은 용기와 의지가 필요하다. “좋은 사람이 되려면 먼저 영웅이 되어야 한다.” 사립 탐정인 말로는 사건이 얼마나 위험하든 조사가 얼마나 어렵든 사건에 얼마나 많은 이익이 걸려 있든 언제나 고객에게 하루에 이십오 달러를 지급하라고, 추가로 필요한 금액은 결산 때 보고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일하는 동안 그의 손에서 얼마가 나가든 일당 이십오 달러만 받는다. 사건을 맡기로 하면, 그는 나중에 어떤 변수가 나타나도 포기하지 않는다. 64)


챈들러는 또한 그의 이전에 형성된 탐정소설의 클리셰를 거부한다. 즉 소설의 끝부분에서 탐정이 여기에서 무엇을 보고 연이어 무엇을 찾아냈는지, 저기에서 무엇을 조사했는지, 마지막으로 결국 누가 어떤 수법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어떤 방법으로 감췄는지 같은 사건의 추리 과정을 경찰이나 피해자에게, 범인에게, 그리고 실제로는 덜 똑똑한 독자에게 자세하게 설명하기를 거부한다. 챈들러는 이런 일을 하지 않는다. 그는 말로가 만나는 일들을 독자가 따라가다 마지막에 스스로 단서를 이어 추리 과정을 풀길 기대한다. 단순한 세부 사항은 독자에게 넘겨 그 사람이 어떻게 죽었는지 정하도록 해도 된다. 전체 줄거리란 결국 일련의 범죄를 일으킨 은혜와 원한과 애정과 복수이고, 이 부분은 말로가 분명하게 밝힌다. 사실상 인간관계와 동기에 대한 통찰에 기대어서야 말로는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고, 말로와 그 배후에 있는 챈들러라 할지라도 반드시 범죄 과정의 모든 부분을 자세하게 알 수는 없었다. 71-2)


3 탐정추리의 곤경을 돌파하다


『장미의 이름』 이전의 에코는 서구 학계와 문화계에 약간 이름 있는 기호학자이자 중세사가였다. 현대 기호학은 기독교 신학의 성상학聖像學, iconography에서 연원한 부분이 있다. 기독교 문화에는 수많은 성상聖像, icons이 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하고 보편적인 것이 십자가 위의 예수와 성모상이라는 사실은 우리도 안다. 그러나 유럽의 오래된 도시의 옛 교회를 한 바퀴 돌다 보면 다양한 그림과 장식 문양, 각종 형태의 기물이 깊은 인상을 주어 절로 발을 멈추게 한다. 이 모두가 넓은 의미의 ‘성상’이며, 각각 대표하는 의미가 있다. 바꿔 말하면 모두 의미를 지닌 기호다. ‘성상학’은 성상에 담긴 상징 의미, 역사와 변화, 상징과 상징 사이의 연관성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에코는 이런 학문 기초를 가지고 자신의 탐정추리소설을 14세기인 1320년대로 설정했다. 이 시기는 기독교회 역사상 ‘대분열’의 재난이 일어났던 시기다. 로마와 아비뇽에 각각 교황이 나타나 서로 싸우는 기괴한 상황이 아직 끝나지 않은 시대였다. 91)


소설은 우리에게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수도사 윌리엄이 성 베네딕토 수도회에 속한 수도원에 간다고 말한다. 이 설정은 소설의 시작부터 충돌과 긴장이라는 조건을 만들어 낸다. 성 베네딕토 수도회는 ‘클뤼니 개혁’ 이후 수도원 규율을 명확히 세운 조직이다. 수도원에서 지내는 수사의 생활, 예컨대 몇 시에 일어나 몇 시에 성서를 읽고, 몇 시에 노동을 하고, 묵상을 하는지에 대한 상세하고도 엄격한 규정이 있다. 그리하여 성 베네딕토 수도회는 유럽 각지에 방대한 수도원 체계를 형성했다.성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성 프란치스코를 계승하며, 이 수도회의 가장 중요한 정신은 세속의 모든 재산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었다. 성 프란치스코는 평생 베풀며 전도했고 일생의 거의 대부분 동안 회색 수도복 한 벌 외에는 다른 물건이 없었으며, 그가 보인 생활상의 모범이 당시 기독교회를 놀라게 하면서 성인의 자리에 올랐다.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수도사는 윌리엄처럼 사방을 떠도는 생활을 했다. 93-4)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수도사 한 명이 웅장한 건물, 수도원 소유의 장원莊園, 안정된 식량 공급과 전속 공인, 하인이 있는 대규모의 성 베네딕토 수도원에 갔다. 수도원장은 윌리엄에게 재부의 정당성을 역설하며 윌리엄이 속한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신념에 은근히 도전하고, 그들이 세속의 아름다운 사물을 거부하는 태도를 물으며, 그들이 인식하고 경험하는 신의 가장 정밀하고 신묘한 뜻과 권위를 교란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수도원이 보유한 재산 가운데 가장 특별하고 진귀하며 유명한 것이 책, 커다란 장서관에 보관된 신화와도 같은 풍부한 장서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이 책들을 소장함으로써 스스로 기독교의 지식과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고 여긴다. 반면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윌리엄은 14세기의 진보적 인물이다. 그는 윌리엄 오컴, 로저 베이컨 등을 통해 새로 발전하는 논리 사고를 읽고 받아들이며, 여기에 세상을 합리적으로 바라보는 남다른 방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94)


수도원의 도서관은 악령이 지키는 듯 금지된 곳이다. 왜 이런 도서관이 있는 걸까? 도서관이 이런 방식으로 존재하는 이유는 윌리엄의 믿음과 반대된다. 그들은 책 속에 이 세계에 대한 모든 진리가 숨어 있다고 믿는다. 사람은 책을 통해 신의 진리를 파악할 수 있다. 그들은 책에서 말하는 것은 믿지만 사람에게 책의 지식과 진리를 평가할 능력과 자격이 있음은 믿지 않는다. 그들은 책에서 말하는 것, 책에 기록된 것이 스스로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현실의 현상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믿는다. 한쪽에는 지식이 세계에 대한 조사, 연구, 탐색, 귀납에서 온다고 보는 윌리엄이 있다. 다른 한쪽에는 도서관으로 대표되는 수도원 정신이 있다. 그들은 지식이 신에게서 오고, 책 속에 보존되어 있다고 본다. 뒤집어 보면, 잘못된 지식이나 잘못된 방식으로 지식을 받아들이면 인간의 영혼은 타락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지식이 반드시 엄중하게 관리되어야 하고 쉽게 개방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95)


에코가 『장미의 이름』을 쓸 무렵 기호학은 서구 학계에서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었으며, 기호학과 밀접하게 호응한 ‘포스트모더니즘’의 흐름도 나타났다. 기호학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장 중요한 연결점은 기표와 기의의 경계를 새롭게 정의하여, 기표와 기의를 우연하고 인위적이며 사회적으로 약속된 관계로 환원하는 데 있다. 우리가 ‘개’라고 말하는 동물과 ‘개’라는 이름 사이에는 본질적이고 필연적인 관계가 없다. 다른 사회에서는 ‘개’라는 동물에 다른 이름을 붙이며, 우리도 ‘개’를 다른 이름으로 바꿔 부를 수 있다. 우리의 생활은 기표와 기의 사이에서 비롯된 수많은 오해로 가득하다. 우리는 기표를 기의로 오해하고 이름을 본질이라고 여긴다. 포스트모더니즘에는 이런 오해를 운용하고 드러내는 부분이 있다. 형식과 내용을 나누고 우리에게 형식에 속지 말라고 알려 주다가도 어떨 때는 우리가 어떻게 형식이 오도한 함정으로 빠지는지 작정하고 비웃기도 한다. 98)


『장미의 이름』의 「서문」을 쓴 작가는 현대인(우리는 당연히 저자 에코라고 추측한다)의 말투로 어떻게 1968년에 오래된 수고手稿를 찾았는지 말한다. 그러나 당시 그의 연인이 원고를 가져가 버렸고 그는 어쩔 수 없이 다른 통로를 통해 원고의 내용을 손에 넣는다. 이 「서문」은 대단히 꼼꼼하게 쓰여서 진짜처럼 느껴지며, 이어지는 14세기 이야기와 현재의 작가가 멀리 떨어져 있다는 ‘틀’을 잡아 주는 작용을 한다. 「서문」은 우리가 읽을 글이 소설가의 손끝에서 나온 허구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전해졌으나 이제야 겨우 빛을 본 옛 수고라고 믿도록 한다. 그러나 「서문」에서 엄격한 학술 규칙에 맞춰 인용한 옛 문헌은 모두 에코가 지어낸 가짜다. 수고 역시 에코가 지은 이야기이고, 수고에서 옮겨 적은 척한 윌리엄의 사건 수사 과정 또한 당연히 에코의 창작이다. 빈 것은 채우고 찬 것은 비워, 우리가 기호에 대해 당연히 연상하는 것을 부수고 뒤집기. 이것이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심 사고다. 98)


4 추리소설 그 이상을 보여 주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일본 사회파 추리의 개조開祖이자 오늘날까지 추격당해 본 적이 없는 이정표이기도 하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제2차 세계대전 전 일본 탐정소설의 추리 수법을 가져와 전쟁 후의 사회소설에 도입했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제2차 세계대전 전에 태어나고 자라 전쟁의 광기와 잔혹을 겪었고, 전쟁이 가지고 온 파괴와 빈곤을 견뎌 냈다. 그는 날카롭게 전쟁 전후의 변화를 체득했다. 전쟁 전의 일본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이 그저 부평초처럼 떠돌며 지낼 뿐 어떤 발전이 없었지만, 전쟁이 끝나고 새롭게 일어나는 사회에서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전쟁 후 일본의 혼란과 모색 사이에서 일어난 사람으로 그것을 깊이 관찰하고 느꼈으며, 사회파 추리소설을 창조해 시대가 그에게 준 것에 구체적으로 보답했다. 그는 추리를 미끼로 삼아 이후 수십 년 동안 한결같이 엄숙한 사회 메시지를 전하고, 독자에게 ‘정의’란 무엇인지 관심을 가지고 사고하도록 요청하고 심지어 강요했다. 115)


마쓰모토 세이초의 소설에서 범죄 동기는 범죄 사실과 똑같이 중요하며, 심지어 범죄 사실보다 더 중요하기도 하다. 추리에는 추측과 조사가 필요하고, 그에 따라 범죄 사건의 경과뿐 아니라 범인이 누구고 어떤 수법으로 피해자를 살해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조사에서 도망치는지, 더욱 중요하게는 범인의 동기가 무엇인지 추론해 내야 한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소설은 기본적으로 올곧게 사건의 동기를 밝히는 길로 나아가며 그렇게 하고 나서야 사건을 종결짓는다. 그리하여 그의 손에서 발전한 특수한 서사 방식이 이후 사회파 추리소설에 전면적으로 계승되는데, 그 방식은 바로 사건 해결의 열쇠를 종종 범인의 동기에 숨겨 두는 것이다. 누구도 그것이 범인과 피해자의 일일 뿐이라고 모른 척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들이 함께 보내고 살아온 시대 속에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였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그의 소설로 일본인이 고개를 돌리고 도망가지 못하도록 압도적으로 몰아붙였다. 진정으로 ‘압도적’인 힘이었다. 117)


미야베 미유키가 수십 권의 작품을 출간하기는 했어도 ‘국민 작가’로서의 정도를 보려면 『모방범』이 가장 훌륭하고 표준이 될 수 있겠다. 원서 단행본 기준 1,400여 쪽 그리고 주요 등장인물 43명. 『모방범』을 읽고 토론할 때 반드시 거론되는 숫자다. 1,400여 쪽에 이르고, 43명의 인물이 움직이는 소설은 분명 한 가지 사건과 해결 과정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미야베 미유키는 소설 속의 놀라운 연쇄 살인 사건을 통해 ‘거품 경제 이후’ 일본 사회의 면모를 설명하고 묘사하고자 했다. 『모방범』은 전통 일본 사회에는 없었던 ‘거품 경제 이후’에야 나타난 새로운 현상, 전혀 다른 정신 상태에 대해 말한다. ‘거품 경제 이후’의 일본 사회는 어떤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고, 젊은이에게 어떤 준비도 시키지 못했다. 이 정신 상태의 출현은 거품 경제의 붕괴, 그러니까 오래 지속되리라 예측했던 번영의 급작스러운 정체 및 쇠락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나아가 ‘거품 경제 이후’ 일본 사회의 방향을 상당한 수준에서 주재했다. 122)


소설 『모방범』에서는 전지적 관점이 자주 쓰인다. 주요 등장인물 43명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소설에 43명의 인물이 나온다는 말이 아니다. 중요한 점은 43명의 등장인물 가운데 보조인물이 없다는 사실이다. 독자는 43명의 등장인물의 주관적인 시야로 거의 들어가다시피 하며, 소설은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두려워하는지, 무엇에 분노하는지, 또 무엇 때문에 두려워하고 분노하는지 보여 준다. 미야베 미유키는 독자가 편하고 쉽게 얻은 수수께끼 풀이의 성취를 이후의 무거움으로 뒤집는다.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독자의 부담은 커진다. 미야베 미유키가 마쓰모토 세이초와 닮은 부분이다. 두 작가는 독서를 마친 독자가 산뜻한 기분을 느끼도록 하는 글을 쓰지 않았다. 독자는 자신이 명탐정만큼 똑똑하다고 자축할 수 없고, 법망이 성글지만 촘촘하다는 단순한 믿음을 강화할 수 없다. 소설에는 결국 끝이 있으나 소설을 읽는 과정에서 우리는 끝없이 근심한다. 이 사건이 해결될까? 끝과 해결은 다른 문제다. 132)


그토록 많은 주요 인물이 병존한다는 말은 이 소설에 일반적인 의미의 ‘주인공’이 없다는 뜻과 같다. 『모방범』의 놀라운 특색은 이 작품이 주인공 없는 소설, 특히 추리하는 주인공이 없는 소설이라는 점이다.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든 추리소설에는 ‘추리로 수수께끼를 푸는 사람’이 주인공을 맡는다. 초기에는 홈스처럼 우리보다 백배는 똑똑한 사람이 주인공을 맡았다. 나중에는 말로처럼 우리보다 백배는 운이 없고 백배는 고통스러운 사람이 주인공을 맡았다. 또는 달리 선택의 여지없이 사건 조사와 추리가 자신의 일인 형사, 검사 혹은 검시관이 주인공을 맡기도 한다. 어찌 되었든 누군가는 사건을 조사하고, 사건을 조사하는 사람은 어찌 되었든 적당한 때에 나타나 우리에게 사건의 진상과 추리 과정을 알려 준다. 『모방범』에는 이런 주인공이 없다. 억지로라도 주인공을 찾자면, 범인이 탐정의 자리를 대신해 소설에서 가장 주인공에 가까운 자리를 차지한다. 135)


미야베 미유키는 일부러 독자가 아미카와 고이치의 어린 시절을 이해하도록 두지 않았다. 어떤 악은 일정 정도에 이르고, 일정 정도를 넘어서면 이런 방식으로 해석될 수 없다. 해석할 수 없는 게 아니라 도덕적으로 해석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 해석하지 않음은 하나의 가치 태도다. 악에는 반드시 인과관계가 있지만 어떤 행위의 한계선은 해석과 합리화가 섞이는 것을 절대 거부하도록 한다. 우리가 해석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일단 해석을 하면 이 사건 나름의 논리가 가진 의미를 따라갈 수밖에 없고, 악에 대한 우리의 절대적인 경악과 혐오와 비난 또한 감소하게 된다. 아미카와 고이치가 지나온 삶의 역정을 자세히 기술하지 않고, 그가 어떻게 한 개인에서 악인으로 변했는지 쓰지 않은 것은 미야베 미유키가 쓰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미야베 미유키는 악이 우리에게 주는 충격을 유지하고자 했고, 악이 가져온 수많은 고통과 괴로움이 다른 무엇에 섞이고 바래는 일 없이 똑똑하게 기억되기를 바랐다. 1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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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 - 권력에 밀린 한국인의 근본신앙, 개정판
최준식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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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한국의 고유 종교인 무교(巫敎)는 미신인가?


▷ 무교는 어떤 종교? 


"누구에게 확인할 것 없이, 대부분의 한국인은 무교(무당종교)를 두고, 종교가 아닌 '무속'에 불과하며 게다가 전근대적인 미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이 무당 종교를 지칭할 때도 '교'라는 단어를 쓰기보다는 '속'이라는 낱말을 써서 '무속'이라고 부른다. 무속이라는 단어는 조선시대에 사대부 같은 기득권 세력이 무교를 폄하하여 야속(野俗)하다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다. 그래서 미신과 소위 '정신(正信)'을 구별하지 않는 종교학에서는 무속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만일 불교나 그리스도교를 불속(佛俗) 혹은 기독속(基督俗)이라고 부르자고 하면 그게 가당하기나 한 생각이겠는가?" "통상 한국인은 무당을 이상한 귀신을 섬기는 한참 덜떨어진 기괴한 인간으로 생각하고, 상종해서는 안 되는 족속으로 여긴다. 그러다 자신이 해결하지 못하는 큰 문제가 생기면 무당에 대해 평소에 생각하던 것은 다 던져버리고 무당에게 달려가지만 말이다. 한국인이 무당에 대해 갖는 생각과 태도는 이렇게 이율배반적이다."(21-3)


"무교는 크게 볼 때 '신령과 무당과 신도'의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 세 요소는 굿이라는 무교의 고유한 의례에서 만나게 된다." "이 구조에서 무교는 신도가 무당이라는 특수한 사제 계급의 중개로 신령을 만나 도움받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한말에 선교사로 활약하던 호머 헐버트는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한국인들은 사회적으로는 유교도이고, 철학적으로는 불교도이며, 고난에 빠질 때는 영혼 숭배자〉라고 한 적이 있다. 이것은 한국인이 평소에는 유교나 불교적으로 살지만 문제가 생기면 무당에게 간다고 해석할 수 있다." "어떻든 이러한 중대한 사안을 가지고 무당에게 가면 무당은 신령과 교통할 수 있는 자신의 신묘한 능력으로 신령에게 해결책을 구한다. 그러면 신령은 각 사안의 경중에 따라 각기 다른 해결책을 제시한다." "신도가 신령과 교통하려면 반드시 무당을 거쳐야 하는데, 이는 그리스도교에서 사제를 통해서만 신에게 다다를 수 있다는 것과 같은 구조이다."(31-3)


"나는 무당을 '민간 사제'라고 부르는데, 이 주제와 관련해서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것은 무당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무당이 되기 위해서 가장 기본적으로 거쳐야 하는 단계가 있는데 그것은 내림굿을 받는 것이다. 내림굿을 받기 전에는 누구도 무당이 될 수 없다. 그러니까 쉽게 이야기해서 내림굿이란 '사제 서품식' 혹은 '목사 안수식'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무당은 정확히 말하면 내림굿을 받은 후부터 비로소 신자들과 신령을 중재하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그전에도 여러 신령들과 교통할 수는 있다. 그리고 그 신령들의 도움을 받아 점을 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시쳇말로 하면 아직 영계에는 정식으로 등록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아르바이트' 같은 것이다. 아직 등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만의 점방(店房)을 낼 수도 없다. 상호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신내림을 받아야만 그 신의 이름으로 간판을 내걸고 정식으로 점보는 일 같은 무업을 할 수 있다."(36-7)


"그런데 무당이 굿을 주재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이 모시는 신령, 즉 몸주신(Lord Spirit)을 모셔야 한다. 무당이 신령계와 통하게 되는 것은 이 몸주신을 통해서이다. 몸주신을 받는 것은 무당이 신령계와 통하기 위해 자신만의 채널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령계에는 신령들이 많기 때문에 자신만의 신이 있어야 통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무당은 영계에서 헤맬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무당이 모시는 몸주신은 일종의 영계 가이드인 셈이다." "내림굿을 받지 않았으면서 신점(神占)을 치는 사람들도 신을 모시기는 한다. 그러나 정식으로 내림굿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신은 신령계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다. 이런 점쟁이들은 사제가 아니라 술사(術士)들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죽으면 무당들은 '오구굿' 같은 사령제(死靈祭)를 통해 산 자와 죽은 자들을 위로하고 그들 사이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관계를 회복시켜 준다. 이런 것이 바로 무당의 사제 기능이다."(37-9)


"무당 후보자들은 왜 인간이 감내하기 힘든 신병을 겪어야만 하는 것일까?" "무당 후보자도 무당이 되기 전에는 속된 인간이다. 이 속된 인간이 성스러워지려면 자신을 정화해야 한다. 이전의 속된 인간을 벗어던지고 환골탈태(換骨脫胎)를 해야 한다. 그러려면 뼈를 깍는 듯한 고통을 겪어야 한다. 그런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만 이전의 속된 찌꺼기나 때가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더구나 무당 후보자가 내림굿을 받은 뒤에 무당이 되면 그다음부터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큰 문제나 고통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니 이런 사람들 마음속에는 온갖 고통과 번민이 가득 차 있을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무당은 자아가 매우 강해야 한다." "그래서 무당은 그 형용할 길이 없는 고통을 먼저 겪는 것이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는 물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과 같다.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제거하거나 고통을 나눔으로써 가볍게 해 주려는 사람은 거의 이러한 과정을 겪는다."(43-6)


▷ 굿은 어떻게 하나 


"별달리 손쓸 수 없는 상황이 닥치면 사람들은 초자연적인 힘을 빌리기 위해 무당을 찾아간다. 이때 무당과 신령 사이에 어떤 식으로 의견 교환이 이루어지는지 잘 모르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알던 만신은 이렇게 그 과정을 설명했다; 〈일반인들은 자기네들이 점을 칠 때 신령이 계속해서 모든 것을 말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사실과 아주 다르다. 실제의 경우에는 신령이 내담자의 상황에 대해 시시콜콜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두세 마디의 단어로만 아주 짧게 알려 준다. 그런가 하면 어떤  때는 단어 대신 냄새를 풍겨주는데, 무당은 이런 것을 바탕으로 내담자의 상황을 탐문해 간다. 이 경우 제일 좋은 것은 신령이 내담자의 문제와 그 해결책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것인데, 이런 일은 그리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때에는 신령이 아예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이럴 때면 무당은 유도신문과 같은 질문법으로 내담자의 상황을 염탐해서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적당히 넘겨짚어야 한다.〉"(57-8)


# 신령의 처방 수위

점괘 〉 부적 〉 치성(약식 굿) 〉 정식 굿


"굿이란 보기에 따라 노래와 춤이 그 핵심 내용을 이룬다는 의미에서 뮤지컬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판소리를 '1인 오페라'라고 하듯이 굿도 '1인 뮤지컬'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굿은 그냥 뮤지컬이 아니라 신과 교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신성한 뮤지컬이다. 그런데 온종일 하는 뮤지컬을 혼자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같은 의상을 입고 노래만 하는 판소리와는 달리, 굿은 거리마다 의상을 바꿔 입고 다른 춤을 춰야 한다. 그래서 세명(주 무당 한명, 보조 무당 2명)이 하는 것인데 그래도 버거운 것임은 틀림없다. 악사의 경우는 조금 융통성이 있다. 굿을 부탁한 신도가 돈을 많이 내면 정식에 해당하는 3인조 악사를 부를 수 있다. 이 밴드의 악기 구성을 보면 젓대(민속 대금)와 피리, 그리고 해금으로 구성되는데 이렇게 악기를 셋 '잡히면' 제일 규모 있게 하는 굿이다. 굿을 부탁한 신도가 돈이 없으면 악사는 아예 부르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경우에는 무당들이 돌아가면서 장구와 제금을 치는 것으로 대신한다."(64)


"각 거리의 기본 구조를 보면, 대체로 세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신을 초치하고(청신, 請神), 타령이나 노랫가락, 춤 등으로 신을 즐겁게 해서 공수(계시)를 받고(오신, 娛神), 신을 다시 본래 자리로 보내는(송신, 送神) 세 단계이다. 이 세 단계에서 무당은 노래와 춤으로 신령을 모신 다음 즐겁게 해주고 다시 보내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거리마다 무당은 격렬한 춤을 춤으로써 엑스터시(망아경, 忘我境) 상태로 들어가 신을 받는다. 그리고 자신의 입으로 신의 말을 전하는데 이것이 굿의 핵심이다. 이때, 각 거리에는 불러야 할 노래나 추는 춤, 그리고 의상 등이 모두 확실하게 정해져 있다. 굿 중에서도 이런 형식이 가장 잘 잡혀 있는 굿은 무당이 자기 자신(그리고 자기가 모시는 신령)을 위해서 하는 '진적굿'이다. 이 굿은 무당이 1~2년에 한 번씩 자기가 모시는 신령을 위해 많은 돈을 들여서 하는데, 자기의 몸주신을 위해 하는 것인 만큼 아주 격식을 잘 갖추어 굿을 한다."(75-6)


▷ 한국인의 근원 신앙인 무교 


"굿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좋은 운이 들어오게 하는 '재수굿'과 대표적인 사령제(死靈祭)인 '오구굿'이 가장 많이 연행된다. 이 외에도 진적굿이 있고, 병 고칠 때 하는 병굿, 그리고 환갑이나 결혼식처럼 집안에 기쁜 일이 있을 때 하는 여탐굿 등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만큼 굿 종류는 많다. 이 가운데 병굿은 상류층에서는 우환굿이라는 점잖은 이름으로 불리고, 기층에서는 우리에게 친숙한 '푸닥거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러한 굿들이 개인이나 가족에게 한정된 것이라면 마을 단위로 하는 굿도 많다. 강릉 단오제나 은산 별산굿, 하회 별신굿 등이 대표적인 것인데, 모두 마을의 번영과 안녕을 위해 하는 굿이다. 이런 굿은 규모가 크기 때문에 며칠에 걸쳐서 하는 경우가 많다. 이 가운데 은산 별산굿(제)은 백제 부흥 운동을 주도한 복신과 도침을 기리기 위해 하는 굿으로, 일반적으로 3년에 한 번씩 한다. 굿을 하는 전 기간이 15일이나 된다고 하니 그 규모를 알 만하겠다."(84-5)


"사람이 죽었을 때 가족들은 경황이 없어 그 영혼과 제대로 이별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특히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자식들은 항상 불효한 것 같아 감정의 찌꺼기가 남기 마련이다. 오구굿은 이런 경우에 하는 것이다. 부모의 혼을 불러 제대로 이별하기 위해 이 굿을 하는 것이다. 이 굿의 하이라이트는 부모의 혼이 무당에게 들어왔을 때이다." "자식들은 자신의 부모로 분한 무당에게 〈어머니, 이 불효자식을 용서해 주세요.〉와 같은 식으로 용서를 청하면 그 무당은 부모를 대신해서 〈아니다, 네 덕에 난 이생 잘 살았다.〉라고 답하는데 이런 대화를 통해 자식들은 죄의식에서 면책되는 것이다. 이런 '짜임새'는 매우 훌륭하다. 오구굿은 아주 상징적인 순서로 끝나는데 그것은 부모의 넋을 넋전 상자에 싣고 저승으로 가는 것이다. 이때 이 부모의 혼을 데리고 가는 신령은 그 유명한 '바리공주'이다. 이렇게 해서 굿이 끝나면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질서가 잡히고 모두 정상적이고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86-7)


"한국 무교의 신령들은 선악 개념이 불분명하다. 굿을 할 때 보면, 자신을 제대로 모시지 않았다고 진노한 신령이 금세라도 인간들에게 큰 벌을 내릴 것처럼 외치다가도 신도들이 싹싹 빌면 곧 관대한 신으로 바뀐다." "한국 무교의 신령들 사이에 위계적인 질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다지 명확하지 않은 것도 한국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한국 무교의 신령들은 단독으로 움직이며 자기를 몸주로 하는 무당을 매개로 현현하기 때문에, 신령들 간에 소통이 별로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냥 따로따로 존재하다가 자기를 섬기는 거리에 나타난 굿 한번 받아먹고 가면 끝이다. 잡신들은 하위 신령들로 여겨지기 때문에 아예 격외로 치지만, 무당들이 인정하는 이른바 정신(正神)들은 대체로 동등한 위계 구조에서 서로에게 무관심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무교에서 인기 있는 신 가운데 한이 많은 신령들이 대표급 신령으로 인정되는 것도 한국적인 특징이라 하겠다."(95-7)


Ⅱ. 왜 한국은 무교의 나라인가?


▷ 한국 무교 약사 


"한국이나 일본이 가장 중국적인 종교인 도교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양국에 이미 그 이전부터 토착 종교가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도교가 맡아서 하는 기능을 한국에서는 무교가, 일본에서는 신도가 한 것이다. 도교와 무교, 그리고 신도는 세 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민간신앙으로, 그 외양은 다르지만 작은 신들(lesser gods)을 신봉해서 재물과 건강 같은 세속적인 행복을 기구(祈求)한다는 점에서 그 속성이 같다고 하겠다. 그런데 문제는 동북아 3국 가운데 중국이나 일본은 자기들의 기층 종교를 인정하고 양성화한 반면, 한국은 철저하게 그것을 무시하고 미신으로 매도하여 결과적으로 음성적 문화로 만들었다는 데에 있다. 한국인들은 자신의 본성의 주요 부분을 구성하는 전통을 자신의 눈으로 보지 못하고 무교의 현재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신들의 뿌리를 무시한 것이다. 자신들의 정신적인 뿌리를 외국에서 들어온 종교(불교, 유교, 기독교)의 관점에서 스스로 폄하한 것이다."(117-8)


"무교와 신라 문화가 관계된 항목 가운데 화랑이나 처용을 무교와 관련지어 설명하는 학자들이 있지만, 어떤 것도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예를 들어 처용이 역신을 쫓아냈다는 의미에서 남자 무당일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 등이 그것인데, 이는 단지 하나의 설에 불과할 뿐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고려로 내려오면 서서히 무당을 억압하는 기사가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고려시대는 아직 주자학이 발흥되기 전일 뿐만 아니라 국교로도 자리 잡지 않았기 때문에 무교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하지는 않았다." "고려조에도 어김없이 무교가 성행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현상을 직접 기술한 것이 잘 발견되지는 않지만 편린적인 기록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종 때 궁궐에서 기우제를 지내는데 무당 300명이 동원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한 번에 이 정도의 숫자가 동원될 수 있었다는 것은 이보다 몇 배는 많은 숫자의 무당이 저자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니 그 정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126-8)


"조선조 때에는 무교를 탄압하기 위해 여러 방안이 강구되었다. 우선 불교 승려와 더불어 무당은 천민 계급으로 강등되고 도성 출입이 금지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무당들을 도성에서 쫓아냈다는 기사가 쉬지 않고 보인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만큼 도성 안으로부터 무당에 대한 수요가 계속해서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인지 무당들은 왕십리나 구파발같이 도성 바로 바깥에 자기네들의 근거지를 마련했다." "그런데 사실은 일반 국민만 무당을 필요로 했던 것이 아니다. 나라에서도 무당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있었다. 상대적으로 볼 때 유교는 종교적인 기능이 약하기 때문에 기우제 같은 종교적 의례를 행할 때는 어쩔 수 없이 무당이 필요했다. 그런가 하면 당시에는 병이 삿된 영에 의해 생긴다고 생각해 병을 치료할 때도 무당에게 퇴마하는 일을 맡겼다. 이를 위해 조선 정부는 성수청(星宿廳)과 활인서(活人署) 같은 기관에 무당을 소속시켜 각각 제사를 관장하게 하고 병자를 치유하도록 했다."(130-1)


▷ 무교의 현재 


"다른 왕조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조선조에 극심한 핍박 속에서도 무교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여성들에게는 이 무교가 절대적인 의지처였기 때문이다. 성리학으로 무장한 조선 지배층 남성들은 종교 이데올로기적으로 여성들을 배제했기 때문에 여성들은 무교를 그들의 중심 종교로 삼아 종교적 욕구를 채우지 않을 수 없었다." "굿판은 한마디로 여성들을 위한 장이자 해방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굿판에서만큼은 일상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금기가 풀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조선조 때 여성들이 시집을 오면 친정 부모에 대한 제사가 용인되지 않았다.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여성을 시가에 전적으로 예속시키기 때문에 여성과 관계되는 것은 대부분 억눌리고 그 권리가 박탈당했다. 그러나 그렇게 엄중한 가부장제에서도 굿은 예외였다. 주부(며느리/딸)가 죽은 자기 친정부모를 위해 오구굿만큼은 할 수 있었다. 굿만이 조선조의 여성들이 친정 부모를 위해 할 수 있는 의례였는지 모른다."(137, 140)


"유교 사회에서 주부가 제사를 지낼 수 있는 대상을 보면, 우선 남편 집안사람이어야 하고 동시에 남자이면서 결혼한 사람 뿐이었다. 그러나 이런 사람만 죽는 것이 아닌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아이들도 죽을 수 있고 결혼하지 못한 딸(그리고 아들)도 죽을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유교 사회에서는 주변인이라 할 수 있다." "유교 교리의 입장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기에 조선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그저 무시하거나 애써 외면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슬픔을 어찌 무시와 외면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조선조에 이런 영혼들을 잃은 부모의 슬픔을 달래기 위해 할 수 있는 의례는 굿밖에 없었다. 무당이 나서서 이 갈가리 찢어진 부모의 마음을 보듬어 주어야 했다. 무교가 여성과 같은 사회 주변인에 의해 지탱되었던 만큼 무교는 이러한 주변인 속으로 깊숙이 파고 들었던 것이다. 조선에서 무교가 보전되어 내려올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런 속사정이 있었다."(142-3)


"일제 때도 어김없이 무당에 대한 탄압이 있었지만 수천 년을 내려온 무교가 그리 쉽게 사그라질 리가 없었다. 게다가 무당들의 활동은 개인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탄압하는 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해방된 다음에 비록 종교의 자유는 보장되었지만 무당들에게 좋은 시절이 바로 오지는 않았다. 그리스도교나 서양 세력의 쓰나미 같은 유입과 이른바 '조극 근대화'의 물결에 휩쓸려 무교는 여전히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했다." "박정희에게 무교는 미신의 대명사일 뿐이었을 것이다. 아예 처음부터 무교 같은 저급한 신앙은 없었다는 듯이 무시의 대상조차도 되지 못했다. 그 결과 수십 개에 달하던 서울 지역의 굿당들이 몇 안 남고 다 없어져 버렸다. 뿐만 아니라 무당들에게 재충전의 성지였던 계룡산의 수많은 기도처가 박정희 정권 시절에 국가 차원의 대대적인 정화(?) 작업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무교는 더 밑으로, 더 주변으로 스며들어 간 것이지, 그 존재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145-8)


▷ 한국인의 근본 종교는 무교! 


"한국인들은 왜 노래를 그다지도 좋아하는 것일까? 한국 무당들에게 춤과 노래는 무엇일까? 이를 심증적으로 무교와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굿을 보면 시작부터 끝까지 노래와 춤으로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무당들의 가무는 놀이 차원에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신과 교통하기 위한 종교적인 수단이라 할 수 있다. 무당들은 노래와 춤을 통해 망아경 속에 빠져 신을 받는 것이다. 다시금 망아경이다. '한국인은 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시는가?'라는 질문을 무교와 관련해서 말해보면, 한국인들은 술을 통해 낮은 수준의 망아경에 가까이 가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과정을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춘다'라는 뜻의 '음주가무'라는 한 단어로 만들어 표현하는 것이다. 술만 먹고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소리를 지르면서 몸을 격렬하게 흔드는 것이 훨씬 망아경 속으로 들어가기 쉬울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인들은 밤마다 무당들이 하던 고대의 엑스터시 항연을 되풀이하는 것처럼 보인다."(161)


Ⅲ. 한국인의 종교적인 내면 세계


▷ 무교에서 바라본 불교와 그리스도교 


"특별한 장소에서 하는 의례가 아니더라도 특히 개신교인들은 교회서든 집에서든 기도를 많이 한다. 이들은 어떤 때에 어려운 일이 닥치면 기도를 '빡세게' 해달라고 서로에게 요청한다. 밥 먹을 때에도 그야말로 밥 먹듯이 기도를 한다. 이렇게 간구하는 기도의 내용을 보면 대부분 그들이 믿는 신께 '무엇을 해 달라'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편 불교는 그리스도교처럼 그렇게 대놓고 기도하지는 않는다. 대신 승려가 사제가 되어 불상 앞에서 신도의 이름을 부르면서 축원을 해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어찌 됐든 기도를 받는 대상이 있고 그 행위를 하는 인간이 있다는 점에서 이것은 기도의 가장 기본적인 구조라 하겠다." "이러한 구조는 우리가 앞에서 본 무교의 구조, 즉 '신령↔(무당)↔신도'의 구조와 다를 바가 없다. 무교의 구조에서도 신도가 직접 신령께 정성을 올릴 수 있고 무당이 대신 그 정성을 올릴 수도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 왜 그리스도교나 불교는 미신이 아니고 무교만 미신이라고 하는 걸까?"(171-4)


"무교에 대한 여러 비판 가운데, '무당이 신령께 정성을 바친다고 잔뜩 제물을 차려 놓고 굿을 하는데 그게 정말로 신령께 전달되는 것인가?' 하고 따지는 것이 있다. 신령이란 문자 그대로 신이라 육체를 갖고 있지 않은데 어떻게 인간들이 먹는 음식을 취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아울러 무당들은 신령은 기쁘게 하고 그들과 교통하기 위해 춤과 노래를 하는데 그게 신령에게 정말로 전달되는지 어떻게 아느냐는 것도 포함될 수 있겠다. 그리고 굿을 해서 어떤 일이 뜻대로 되었다면 그게 정말 굿을 해서 그런 건지 어떻게 아느냐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던질 수 있는 질문이다." "그러나 내 기도가 정말로 신에게 전달되는지 아닌지는 객관적인 현상으로 확인할 수 없는 믿음의 영역에 속한 문제이지, 과학적인 지식이 될 수 없다." "자기 믿음을 존중받으려면 다른 사람의 믿음도 존중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나 불교인들이 자신의 믿음을 존중받으려면 무당들이 신령들에게 기도하는 것도 응당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191-3)


▷ 종교 신앙은 일반적으로 다 같다 


"무교가 미신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데에는, 아주 단순한 이유가 있다. 권력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역사를 보면 무교는 계속해서 권력과의 거리가 멀어졌기 때문에 미신으로 취급받을 수밖에 없었다. 불교나 유교가 중국에서 들어오기 전까지 무교는 미신으로 천대받은 적이 없다. 아니 무교는 오히려 당시의 보편 신앙이었다. 그러나 불교나 유교 같은 수입 종교가 권력과 결탁하여 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한 다음부터 '무교는 미신'이라는 비난을 피해 갈 수 없었다. 게다가 다수가 이 종교들을 믿게 되면서 또 그 힘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원래 종교적 신념이라는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권력을 잡은 많은 사람들이 힘으로 밀면 그것이 진리가 되는 것이다." "무교는 '어떤 중심 교리를 믿는다'와 같은 확실한 교리 체계가 있는 것도 아니니 무당들과 신도들의 중앙집권적인 체제가 나올 수 없다. 인간 사회에서는 만일 조직이 없다면 그것은 힘이 없다는 것과 같은 소리이다."(208-11)


"가령, 무당 중에 걸출한 이가 나와 교리를 이론적으로 매우 정교하게 만들고 온갖 수를 써서 정치권과 결탁했을 뿐만 아니라 큰 종교 조직도 만들었다고 하자. 그렇게 되면 이런 무교가 사회에서 정통 신앙으로서 인정받을 가능성이 훨씬 커진다. 이것은 공연한 상상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예가 있어 하는 소리이다. 일본의 신도가 바로 그것이다. 일본의 신도는 기본적으로 한국의 무교와 다를 게 없는 원시신앙에 가까운 종교이다. 이렇다 할 교리도 없고 경전도 없다. 그냥 신령 잘 모셔서 복 받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신도는 일본의 정치권과 결탁하였다. 그래서 일본의 대표 종교가 되었다. 지금 세계 종교계에서 일본의 신도를 미신으로 매도하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신사에서 근무하는 궁사(宮士)들도 우상숭배자라고 지탄받기는커녕 사회에서 나름대로 존경받는다." "이런 것이 가능했던 것은 일본인들이 신도를 그네들의 정통 신앙으로 인정해 체제 안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222-4)


마치며


"서사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굿을 한국 문화의 보고라고 주장한다. 무당들의 노래가 너무나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바리공주 무가 하나만 해도 서너 시간을 구송하는 것이니 그 안에 탐구해야 할 것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런가 하면 남도의 시나위 굿판에서 태동한 시나위 음악은 한국 민속 음악의 백미 아닌가? 그리고 거기서 파생한 산조 음악은 '가야금 산조'나 '대금 산조'의 예처럼 예술성이 뛰어나다." "춤도 마찬가지이다. 굿판에서 연주되는 곡은 모두 무용 반주 음악이기도 하다. 시나위 음악에 맞춰서 추던 춤이 바로 세계적인 춤인 살풀이다." "그런가 하면 굿판은 한마디로 즉흥 연극판이라고도 할 수 있다. 큰 틀은 있지만 각본은 정형화되지 않은 연극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적인 연극을 연구하는 사람에게는 굿판이 매력적인 일차 자료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무교는 기본적으로 종교이다. 따라서 종교학적으로도 많은 함의를 갖고 있을 터이니 종교학자들은 이것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22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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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연출의 사회학 - 일상이라는 무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연기하는가
어빙 고프먼 지음, 진수미 옮김 / 현암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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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개인이 자신을 돋보이게 연출한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본 개인의 모습을 두 부분으로 나눈다. 그리고 개인이 작정하고 조작하기가 비교적 쉬운, 주로 말로 표현하는 부분과 개인이 별로 관심이 없거나 통제하지 않는 것처럼 암시적으로만 표현하는 부분을 대조한다. 개인의 암시 표현을 단서로, 개인이 잘 다스릴 수 있는 명시 표현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것이다. 여기서 의사소통 과정의 근본적 비대칭성, 즉 한쪽 의사소통 흐름만을 아는 개인과 다른 쪽 흐름도 다 보고 있는 목격자 사이의 비대칭성이 드러난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 점을 지적하고 싶다. 개인이 계산된 비의도성을 내보이려 시도해도, 그것을 꿰뚫어 보는 능력은 우리 자신의 행동을 조작하는 능력보다 더 발달되어 있다. '감추기-발견하기-위장하기-재발견하기'가 무한 순환되는 정보게임이 몇 단계에 걸쳐 이루어지든, 목격자는 행위자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유하므로 의사소통 과정 초기의 비대칭성이 유지된다."(18-20)


"개인이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설 때 상황에 대한 자기 나름의 정의를 투영하면, 비록 소극적 역할로 보이지만 다른 사람들 역시 상황 정의를 투영한다. 이 책의 주된 관심사가 바로 상황 정의에 담긴 도덕적 성격이다. 어떤 사회적 특성을 지닌 사람이든 타인들에게 적절한 방식으로 존중과 대우를 받을 도덕적 권리가 있음을 보장하는 원리에 따라 사회가 조직된다. 이때 자신이 어떤 사회적 특성을 갖고 있음을 암시하거나 명시하는 사람은 스스로 그 주장과 일치하는 인물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자기가 투영한 상황 정의에 맞춰 스스로를 암시하거나 명시한 사람은, 다른 이들에게 자기와 같은 부류에게 합당한 방식으로 자기를 평가하고 대우하라고 도덕적으로 요구하는 셈이다. 또한 자기가 드러내지 않은 특성과 관련된 권리주장은 내심 포기하고 그에 따르는 대우도 포기한다. 그래야 자기가 어떤 사람이며 자기를 어떤 특성이 '있는' 사람으로 봐주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는 걸 다른 사람들도 알아차린다."(24-5)


1장 공연


# 용어 정의

1. 공연performance : 개인이 특정 관찰자 집단 앞에서 계속하는 모든 활동, 그리고 관찰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행동

2. 앞무대front : 공연에서 개인이 의도하거나 자기도 모르게 택하는 전형적 표현 장치

3. 무대장치setting : 앞무대의 구성 요소로서, 가구, 장식품, 공간 배치, 공연 도중과 전후의 인간 행동에 필요한 온갖 소품들

4. 개인 앞무대personal front : 앞무대의 구성 요소로서, 공연자와 즉각 동일시할 수 있고 공연자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당연히 따라다니는 항목들(직책이나 직위 표지, 복장, 성·연령·인종 특성, 체구와 태도, 말투, 표정, 몸짓 등)


"개인은, 남들과 함께 있으면 보통 눈에 띄지 않을지도 모를 사실을 극적으로 확인시켜줄 신호를 자기 행동에 섞는다. 자기 행동을 남들이 중요하게 받아들이게 하려면, 개인은 〈상호작용을 하는 동안〉 자기가 전하고 싶은 의사를 표현할 행동을 해야 한다. 공연자는 상호작용에서 자기가 지녔다고 주장하는 능력을, 그것도 눈 깜짝할 사이에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심판이 야구 경기에서 확신에 따라 판정한다는 인상을 주려면, 자기 판정이 옳은지 생각하느라 머뭇거리는 순간이 없어야 한다." "배역 연기란, 공연자가 앞무대를 통해 다른 유형의 배역 연기에서도 하기 마련인 다소 추상적인 주장을 제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화 과정에서 중요한 또다른 면모는, 공연자들이 여러 방식으로 이상화된 인상을 보여주려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개인이 남들 앞에서 자신을 연출하는 공연은, 사실상 그의 행동 전체에 비해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된 가치를 더 많이 포함하고 입증하려는 경향이 있다."(45-6, 51-2)


"공연자는 자기가 던지는 사소한 암시를 공연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신호로 받아들여주는 관객에게 의존한다. 이 편리한 사실에는 불편한 진실도 들어 있다. 그 신호 수용 성향 때문에 관객은 공연자가 전달하는 암시의 의미를 오해하거나 공연자가 의도하지 않은 무의미한 몸짓에 엉뚱한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연은 표현의 일관성을 필요로 한다. 이 사실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우리의 자아와 사회화된 우리의 자아 사이에 결정적 불일치가 있음을 알려준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기분과 에너지에 따라 시시때때로 변하는 다양한 충동을 지닌 존재다. 그러나 우리가 관객 앞에 등장인물로 나설 때는 충동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뒤르켐이 지적한 대로, 우리는 우리의 고차원적 사회활동이 '신체적 감각과 의식처럼 신체 상태에 끌려다니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정해진 시간에는 어김없이 완벽하게 똑같은 공연을 한다고 믿을 수 있는 일종의 정신의 관료화가 필요한 것이다."(71, 77)


"관객으로서 우리는 공연자가 조성하는 인상이 그저 겉치레에 불과한지 진짜인지 '가짜'인지 당연히 의심을 품을 수 있다. 이러한 의심은 참으로 보편적이어서, 우리는 흔히 공연에서 조작하기 어려운 측면에 특별히 주목함으로써 오인하기 쉬운 암시의 신빙성을 판단하곤 한다." "중요한 점은, 개인이 배역 연기의 어느 한 부분에서 그릇된 인상을 보이면 관계 전체 또는 역할 전체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개인이 어느 한 영역에서 신용을 잃을 행동을 했음이 드러나면, 감출 게 없는 다른 행동 영역에서도 의심을 사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개인이 공연을 하는 동안 단 한 가지만 감추었을 뿐이고 그것도 공연의 어느 한 부분이나 단계에 겨우 드러낼 뿐이라 해도, 공연자의 불안감은 공연 전체로 확산될 수 있다. … 그렇다고 겉모습과 어긋나는 사실들이 꾸며낸 겉모습보다 더 참된 실체라고 주장할 근거는 없다. 여기서 중요한 사회학적 쟁점은, 일상의 공연에서 조성된 인상은 무너지기 쉽다는 사실뿐이다."(80, 88-9)


"영미 문화에는 행동을 개념화하는 두 가지 상식적 모델이 있는 듯하다. 하나는 진지하고 정직한 행동을 가리키는 참된 공연 모델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심각하지 않게 받아들이는 연극배우의 공연이나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기꾼의 작업처럼 철저하게 꾸며낸 거짓 공연 모델이다. 우리는 참된 공연을, 일부러 꾸며낸 것이 아니라 상황에서 나타난 사실에 개인이 무의식적으로 반응해 나타난 의도치 않은 결과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꾸며낸 공연은 즉각적 반응이라고 볼 만한 실체가 없으므로 하나하나 힘들여 거짓을 짜 맞춘 것으로 보곤 한다. 이런 이분법적 개념은, 정직한 공연자라는 이데올로기를 전제하기 때문에 공연을 하는 데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만, 공연을 분석하는 데는 빈약한 개념이다." "완벽하게 거짓임에도 성공하는 공연이 있고, 완벽하게 정직해서 성공하는 공연이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공연의 본질은 그런 극단적 유형에는 속하지 않으며 연극적 관점에서 권장할 만한 것도 아니다."(95-6)


"연극 공연이나 사기극에서는 배역 연기의 내용 중 말로 표현할 부분에는 치밀하게 구성한 대본이 필요하지만, '암시 표현'이 필요한 방대한 부분은 몇 가지 단서나 연출 방향 정도만 있는, 흔히 모호한 무대 지시만 주어질 뿐이다." "우리는 사회화를 통해 어느 한 가지 배역의 구체적 세목을 모두 학습하는 것은 아니며, 그럴 만한 충분한 시간이나 에너지가 없을 때가 많다. 개인은 어떤 배역을 맡든, 그 배역을 '채울' 만큼 표현법을 충분히 익혀두기만 하면 된다. 일상 삶의 진솔한 공연은 개인이 할 일이 무엇인지 미리 알고 또 원하는 효과를 겨냥해 '연기'하는 '연출'된 공연이 아니다. 암시 표현이란 그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이 연출된 연기를 하는 공연자처럼 자기의 시선과 몸 움직임을 미리 능숙하게 고안할 능력이 없다고 해서 자기의 행동 목록 중에서 이미 극화된 수단을 택해 자기 표현을 할 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요컨대, 우리는 모두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연기를 잘한다."(98-9)


2장 팀


"공연은 주로 공연 과제의 특성을 연출할 뿐 공연자 개인의 특성을 연출하지 않는다. 전문직이든, 관료조직이나 사업체의 직원이든, 기능직이든, 서비스 업무를 행하는 사람들은 활기찬 몸가짐이므로 자신들의 실력과 성실성을 표현한다. 그들의 몸가짐이 어떤 특성을 전하려 하든, 그 주된 목적은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나 제품에 관해 유리한 정의를 확보하려는 데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어느 한 참여자가 투영한 상황 정의는 여러 참여자들이 긴밀하게 협력하여 조성하고 유지하는 통합적 요소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팀이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공연 효과를 거두려면 팀 성원들은 배역에 따라 각기 다른 연기와 면모를 보일 필요가 있다." "일례로 미국 사회에서 부부가 저녁에 열리는 사교 모임에 참석하면, 평소 단둘이 있을 때나 오랜 친구들 앞에서 남편에게 까탈을 부리던 아내도 남편의 뜻과 견해를 존중하고 순종하는 모습을 보인다. 결혼으로 맺어진 한 팀의 성원으로서 각자의 배역을 연기하는 것이다."(105-7)


"팀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팀 성원은 누구나 공연을 포기하거나 부적절한 품행으로 공연을 망칠 힘이 있다. 성원 각자가 팀 동료들의 선행에 의지해야 하고 팀 동료들도 그에게 의지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팀 성원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상호의존적 유대가 생길 수밖에 없다. 간부와 실무자가 지위 차이로 분열하기 십상인 조직에서도 공연 팀들은 분열을 통합시키는 경향이 있다. 또한 관객 앞에서 팀 성원들이 협력해 주어진 상황 정의를 지켜야 한다면, 분명 자기네끼리 있을 때 주고받던 인상은 유지할 수 없는 입장에 처한다. 그러면 그들은 특정 면모를 유지하는 공모자로서, 서로 '사정을 아는' 사이, 특정 앞무대는 유지할 수 없음을 이해하는 사이가 될 수밖에 없다. 결국 팀 동료들 사이의 친밀성이란, 반드시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서서히 형성되는 유기적 관계의 친밀성이라기보다는 개인이 팀에 소속되는 순간 자동적으로 확대·수용되는 공식 관계에서 형성된 온기 없는 친밀성인 것이다."(110-1)


"우리는 팀 공연을 보고 있는 나머지 참여자들이 대응 팀을 형성하는 의미심장한 현상을 종종 발견한다. 각 팀은 서로 상대 팀에 대응해 나름의 배역 연기를 하는 것이므로 일방적 연기가 아니라 극적 상호작용이라 할 수 있고, 또 이 상호작용은 참여자 수만큼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형태가 아니라 두 팀이 주고받는 형태를 띤다." "지위 등급이 많은 대규모 사회 조직에서는 특정 상호작용이 지속되는 동안 일시적으로 지위가 다른 참여자들이 대개 두 팀으로 나뉘어 집단화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군대에서 중위는 어떤 상황에서는 동료 장교들 편에 서서 사병들과 대립하고, 선임 장교 앞에서 공연을 하는 상황에서는 부하 사관들과 한 대열을 이룬다. 분쟁의 중재 상황에는 세 팀 모델이 적합하고 경쟁적 성격을 띤 일부 '사교' 자리에는 다수 팀 모델이 적합할 것이다. 물론 팀 수와 상관없이 모든 상호작용은 참여자들이 협력해 잠정적 합의를 유지하려는 노력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할 수 있다."(120-1)


"팀이란, 상황 정의를 투영하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서로 긴밀하게 협력하는 일군의 사람들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공연이 효과적이려면, 협력의 성격·정도가 감춰지고 비밀이 지켜져야 한다. 팀에 비밀결사의 성격이 있음을 뜻한다." "팀은 사람들이 소속 집단의 극적 공연에 협력하는 과정에서 창조되지만, 자신과 소속 집단을 극적으로 연출할 때 그들은 집단 성원이 아니라 팀 성원으로서 행동한다. 그런 의미에서 팀은 비밀결사이다. 비성원들에게 팀 성원들은 아주 배타적인 비밀결사의 성원들로 알려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알려진 경우라면, 성원들이 팀으로 행동했다고 볼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이런저런 팀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음모자라는 일종의 달콤한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팀마다 특정 상황 정의의 안정적 유지에 골몰하는 과정에서 어떤 사실은 감추거나 하찮게 다루기 때문에, 우리는 얼마쯤 교활한 음모자 노릇을 실행하는 공연자일 수밖에 없다."(135-6)


3장 영역과 영역 행동


"무대 위에서 하는 개인의 공연은, 영역을 지키고 특정 기준을 실행하는 겉모습을 보여주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무대 위에서는 강조 표현된 면모의 겉모습이 나타나지만, 표현을 억제한 면모가 겉모습으로 나타나는 다른 영역, '무대 뒤' 또는 '뒷무대'가 있다." "무대 뒤에는 공연의 결정적 비밀이 있다. 또 공연자가 배역의 가면을 벗고 행동할 수 있는 곳이다. 때문에 관객에게는 무대 뒤 접근이 금지되거나 감춰진다. 뒷무대의 통제력은 노동자들이 조직의 단호한 요구에 맞서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작업 통제'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분명하다. 공장 노동자가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는 척하기에 성공하려면, 하루의 실제 산출량을 줄여 제출한다든가 하는, 꼼수를 감출 안전한 장소가 있어야 한다. 장의사가 유족에게 고인이 사실은 깊고 고요한 잠에 들어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하려면 시신을 염하고 화장을 시키는 따위의 마지막 장례 공연을 준비하는 작업실에는 유족의 출입을 금해야 한다."(140, 145-8)


"한 사회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가 있다면 그 가치를 물질적으로 만들어내는 장소를 두기 마련이고, 그런 장소는 인접 구역과는 대조적인 무대 뒤가 될 수밖에 없다. 미국 사회에서는 실내장식가가 기량을 발휘해, 서비스를 준비하는 곳은 검은색으로 칠해 앞무대와 분리하고 앞무대는 개방식 벽돌을 쌓아 흰색 벽토로 장식한다. 고정 장치를 설치해 분리하기도 한다. 고용주들은 보기에 좋지 않은 모습으로 일하는 종업원들은 뒤에 두고 '인상이 좋은' 종업원들을 앞에 배치하여 완벽한 조화를 이루려고 한다.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한 노동자들은 예비 인력으로 고용해 관객에 감추어야 할 일을 시킨다. 감출 필요가 없는 일을 시키기도 한다. 에버릿 휴스가 지적한 바와 같이, 공장 운영의 핵심 영역만 아니라면 흑인 화학자도 수월하게 간부직에 오를 수 있다. 그리고 기업주는 흔히 무대 뒤에서 일하는 이들에게는 기술 관련 기준의 실현을, 반면에 무대 위에서 일하는 이들에게는 표현 관련 기준의 실현을 기대한다."(159)


"어떤 영역은 공식적으로 무대 위 또는 무대 뒤로 정해져 있지만, 많은 영역들이 때에 따라 그리고 보기에 따라 무대 위 기능도 하고 무대 뒤 기능도 한다. 고위 경영진의 개인 사무실은 사무실 가구의 질이 그의 조직 내 지위를 강하게 표현해준다는 점에서는 분명히 무대 위 영역이다. 그렇지만 그곳은 그가 윗도리를 벗고,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술병을 가까이 두고 같은 직급 동료들과 정을 나누고 분방하게 행동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정기 공연을 위해 마련된 무대도 공연 전후로 무대 뒤로서 기능하는 때가 있다. 무대의 고정 장치를 수선·복구·재배치하거나 공연 전 최종 리허설이 이루어질 때다. 그와 같은 종류의 광경을 보려면 레스토랑, 상점, 가정집 문이 열리기 전에 단 몇 분만 보면 된다. 그렇다면 무대 위와 무대 뒤라고 말할  때, 우리는 특정한 공연을 준거로 삼는 것이고, 공연이 이루어지는 순간에 그 공간이 제공하는 기능을 말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161-3)


"특정 공연과 관련해 무대 위도 아니도 무대 뒤도 아닌 곳을 '외부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진행 중인 공연을 준거로 하면 외부인이 실제적·잠재적 관객이 될 수 있지만, 외부인들을 상대로 하는 공연은 진행 중이던 공연과는 아주 다를 수도 있고 비슷할 수도 있다." "바다에서 수영도 할 수 없는 엄격한 삶을 살고 싶어 하지 않는 목사라도 바닷가에서는 교구민들과 만나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한다. 바닷가에서 필요한 친밀성과 교구에서 필요한 거리감이나 존경심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연자는 현재 공연의 관객이 나중에 자기가 상반된 모습을 연출하게 될 공연에는 들어오지 않아야 편하고, 또 과거 자기의 공연을 본 관객은 그와 상반된 현재 공연을 보지 않아야 편하다. 현저하게 지위가 상승했거나 추락한 사람들은 단호하게 고향과 절연함으로써 관객을 분리한다. 공연자는 관객에 따라 배역 연기가 달라야 편하고, 같은 배역 연기라도 관객을 분리하는 게 더 편하다."(171-5)


4장 모순적 역할


"아마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모순적 역할은 사회 조직체에 위장 잠입한 이들의 역할일 것이다. 다양한 유형이 있다. 첫째, '정보원informer' 역할이다. 정보원은 공연자들에게 팀 성원으로 행세하며 뒷무대의 파괴적 정보를 얻어내 공공연하게 또는 몰래 관객에게 팔아넘기는 사람이다. 정치, 군사, 산업, 범죄 분야에 이런 역할이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둘째, '바람잡이' 역할이다. 바람잡이는 평범한 관객 행세를 하지만 실은 공연자들과 한통속이다. 그는 공연자가 관객에게서 얻어내려는 반응의 본보기를 보여주거나 공연의 전개상 필요한 순간에 관객의 호응을 유도한다." "사사로운 대화 모임에서 아내가, 탐편이 꺼낸 얘깃거리를 이미 여러 번 들었고 또 남편이 처음 말하는 것처럼 꾸민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재미있다는 듯 적절히 장단을 맞춰주는 일 같은 건 흔하다. 바람잡이는 관객처럼 보이지만, 실은 공연 팀을 위해 눈에 띄지 않게 정교한 솜씨를 발휘하는 사람이다."(185-7)


"감찰관은 꾸민 겉모습이 실체와 다르지 않음을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 공연자가 지켜야 할 기준을 점검하는 역할로 고용된 사람이다. 그런 감찰관 역을 맡은 사람은 공연자에게 미리 감찰이 있을 것임을 알리고 공개리에 감찰에 들어가기도 한다. 그러나 때로는 감찰관이 몰래 잠입하여 잘 속아 넘어가는 관객 행세를 하면서 공연자가 걸려들 덫을 놓기도 한다." "관객 가운데는 또 다른 특이한 일꾼이 있다. 공연 중에 눈에 띄지 않게 관객에 섞여 있다가 공연 팀의 경쟁자인 자기 고용주에게 간다. 그리고 목격한 바를 보고한다. 전문 정탐꾼이다." "모순적 역할에는 중개인 또는 중재자로 불리는 유형도 있다. 노사 분쟁을 조정하는 중재자는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두 팀이 서로에게 모두 이익이 되는 합의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기능을 한다. 결혼 중매인의 경우처럼, 중개인은 양쪽 당사자가 서로 간에 공개적으로 내놓으면 승낙하거나 거절하기가 곤란한 요구를 대신 전달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187-90)


"'서비스 전문가'는 의뢰인이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할 수 있도록 건설, 수리, 장비 관리를 해주는 것이 직업인 이들이다. 건축가와 가구 판매원은 무대장치를 설치한다. 치과 의사, 미용사, 피부과 의사는 개인의 앞무대 모습을 관리한다. 경제학자, 회계사, 변호사, 조사 연구자는 의뢰인의 토론 노선이나 지적 위상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도록 사실 관련 요소들을 구성해준다. 서비스 전문가는 구체적 조사를 토대로, 공연의 비밀을 알고 뒷무대의 관점을 공유한다는 점에서는 팀의 성원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팀 성원과 달리, 전문가는 관객 앞에서 연출되는 공연에 기여는 할지라도 위험 부담이나 죄 의식 또는 만족감은 공유하지 않는다. 또한 전문가는 다른 이들의 비밀을 알지만 다른 이들은 그의 비밀을 알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팀 성원과 다르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왜 전문가에게 직업윤리로 업무상 알게 된 공연의 비밀을 누설치 않는 '분별력'을 의무화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194-5)


"'믿을 수 있는 친구confidant'는 공연자가 자기 죄를 고백하고 공연에서 자기가 보여준 인상은 그저 보여주기 위한 연기일 뿐이라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자유롭게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를 말한다. 그들은 대개 무대 밖에서 공연자의 무대 앞뒤 활동에 대리 참여만 한다. 믿을 수 있는 친구는 직업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가와는 다르다. 믿을 수 있는 친구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에 대한 우정과 신뢰, 상대의 감정을 존중해서 이야기를 들어줄 뿐, 수고비는 받지 않는다." "'동료'는 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공연을 함께하는 팀 성원은 아니지만, 동일한 종류의 관객 앞에서 똑같은 배역 연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동료는 말하자면 운명 공동체라 할 수 있다. 같은 종류의 공연을 해야 하므로 서로의 관점과 어려움을 안다. 그들의 모국어가 무엇이든, 그들은 결국 동일한 사회적 언어를 쓰는 것이다. 남들 앞에서 유지하는 앞무대를 서로의 앞에서는 지킬 필요가 없으니 긴장을 풀 수 있다."(201-3)


"동료끼리의 선의를 다른 이에게 의례적으로 확대하는 것은, 일종의 평화 제안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당신 비밀을 지켜줄 테니 당신도 우리의 비밀을 누설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와 같은 동료 관계의 성격에서 우리는 사회 과정으로서 족내혼의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다. 족내혼은 계급·카스트·직업·종교·인종이 같은 집안으로 혼인 상대를 제한하는 경향을 말한다. 인척 관계를 맺은 사람들은 서로의 뒷무대를 볼 수 있는 위치가 된다. 기존 가족으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새로 가족이 된 사람들의 뒷무대도 자기네와 다를 바 없고 똑같이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다면 덜 당황스러울 것이다." "어떤 사람은 동료 의식이 지나치게 강해서, 또 어떤 사람은 동료 의식이 부족해서 문제를 일으킨다. 반감을 품은 동료가 공연 중에 배신자로 변해 옛 동료가 계속하는 연기의 비밀을 관객에게 팔아넘기는 일은 언제나 생길 수 있다. 언론은 늘 그런 고백과 폭로에 왕성한 흥미를 보인다."(206-8)


5장 배역에서 벗어난 의사소통


"관객이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무대 뒤로 가면, 팀 성원들은 대면 상황에서 관객을 대우하던 방식과는 판이하게 관객을 폄하하기 일쑤다. 서비스 업계에서 정중한 예우 대상인 고객이 무대 뒤에서는 조롱, 험담, 희화화, 욕지거리,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한다." "부재중인 관객을 가리킬 때는 존칭이 생략된 성, 그들이 눈앞에 있었다면 용납될 수 없었을 이름이나 별명, 경멸 조 발음이 이용된다. 의사들은 환자가 없을 때는 환자를 가리켜 '심장병'이나 '연쇄상구균'이라 부르고, 이발사도 자기들끼리는 고객을 '머리숱'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부재자 취급 방식'은 상호작용에 관해 일반화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이지만 그 이유를 지나치게 인간적 본성에서 찾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무대 뒤에서 이루어지는 관객 폄하는 팀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작용을 한다. 그리고 관객이 앞에 있을 때 공연자는 관객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편안하고 순조롭게 상호작용을 계속하기 위해서도 관객을 배려할 필요가 있다."(216, 219, 222)


"공연자가 한 모든 말이 그가 조성한 상황 정의와 일치하리라는 기대와 달리, 공연자는 상호작용 도중 배역에서 벗어난 의사 표현을 많이 한다. 그것도 상황 정의에 들어맞지 않는 어떤 요소도 관객 전체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는 방법으로 말이다." "이런 비밀스러운 의사소통에 동참한 사람들은 관객이 알면 용납할 리 없는 관객과 그들 자신에 관한 의사표현에 협력함으로써 그들만의 뒷무대 유대를 확인할 수 있다. 나는 관객의 환상을 깨지 않을 만큼 정교하게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을 '팀 공모共謨'라고 부를 것이다."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 제작 과정에서 조정실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공연자에게 시점 포착 따위의 연기 지시를 내리는 신호가 있다. 그래서 공식 의사소통을 통제하는 소통 체계가 작동함을 시청자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한다. 기업 조직에서도 재빨리 그러나 세련되게 면담을 끝내고 싶은 고위직 임원은 비서들이 적절한 구실을 찾아내 적절한 순간에 면담을 방해하도록 훈련시킨다."(224-5)


"또 다른 형태의 공모는 공연자가 진정으로 팀의 잠정적 합의를 지킬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맡은 배역을 연기할 뿐이라는 점을 확실히 하는 의사소통이다. 관객이 문제를 제기할 때 공연자가 자신을 방어할 수 있게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해두는 방법이다. 우리는 이런 의사소통에 '야유하기'라는 이름을 붙일 수도 있다. 팀의 잠정적 합의를 넘어설 만큼 관객을 찬양하는 야유도 있기는 하다. 그래도 은밀하게 관객을 폄하하는 야유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학생들은 교사가 잠깐만 자기네 짓거리를 볼 수 없는 자리로 움직여도 손가락으로 입에 열십자를 그리며 거짓말을 하고 교사를 향해 혀를 내민다. 직장인들 또한 흔히 상사가 볼 수 없는 각도에서 상사를 향해 얼굴을 찌푸리거나 무언의 저주를 몸짓으로 표현하며 상사를 향해 경멸과 불복종을 연기한다. 가장 소심한 야유는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체하면서 실은 '낙서'를 한다든가 상상의 놀이 공간으로 '도피'하는 것이다."(236)


"두 팀 사이에서 흔히 벌어지는 '관계 재구성', 즉, 관계의 노선을 우회하거나 건너뛰거나 벗어나는 행위에는 비공식적 불평, 교묘한 폭로, 이중화법 등이 있다." "그중에 '이중화법double talk'은 공모에 동참하는 당사자를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다른 형태의 공모와는 다르다. 공식적으로는 하급자의 능력과 권한 밖의 일이나 실제로는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문제로 상호작용할 때 나타나는 이중화법이 대표적이다. 하급자는 이중화법을 사용함으로써 자기가 행동 노선의 주도권을 쥐고 있음을 공공연하게 드러내지 않고 또 상급자와의 지위 차이를 위협하지 않으면서 주도권을 쥘 수 있다. 병원과 감옥은 이중화법이 가득 찬 곳이다. 또한 하급자가 상급자보다 실무 경험이 더 오래됐을 경우에도 흔히 이중화법이 사용된다." "더 중요한 점은 가정과 일터에서 관계에 영향을 주지 않고서는 차마 공개적으로 할 수 없는 부탁, 명령, 거절을 안전하게 할 수 있는 수단으로 이중화법이 쓰인다는 사실이다."(245-6)


"관객보다 지위가 높든 낮든, 관계 재구성에 나선 공연자가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으면 관객은, 그리고 연출자가 있는 경우에는 연출자도, 공연자에게 호감을 느끼지 못한다.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는 말단 성원들도 흔히 거부감을 느낀다. 앞서 팀이 정한 작업 속도를 위반한 성원을 다룰 때 지적했던 것처럼, 한 팀 성원이 지나치게 양보하면 다른 팀 성원들이 택한 입장을 위협한다. 또 앞으로 그들이 어떤 입장을 택해야 안전할지 알아내고 통제할 수 없게 만든다. 담당 학생들에게 깊이 연민을 느끼고, 쉬는 시간에 학생들과 섞여 놀이를 하고, 뒤처지는 학생들을 가까이 하는 교사가 있으면 다른 교사들은 교사로서 적절한 인상을 유지하려는 자신들의 노력이 위협받는다고 느낄 것이다. 실제로, 특정 공연자들이 적절한 선을 지키지 않고 너무 친밀하거나 방자하게 또는 적대적으로 굴면, 그런 행동이 지위가 낮은 팀, 높은 팀, 규칙 위반자에게 두루 영향을 미치는 반사작용이 악순환된다."(252)


6장 인상 관리의 기술


"팀이 택한 노선을 유지하려면, 팀 성원들은 분명히 일종의 도덕적 의무를 수락한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개인적 이익 때문이든 소신 때문이든 재량권이 없기 때문이든, 팀 성원들은 공연을 하지 않는 틈새 시간에도 팀의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 집안의 어른들은 남의 험담을 하거나 자기 허물을 인정할 때 그걸 들은 아이들이 그 비밀을 무심코 누설하는 일이 없도록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낸다. 아이들이 분별력이 생길 나이에 이르러서야 부모들은 아이들이 방에 들어와도 목소리를 낮추지 않는다." "덧붙여 팀 성원들은 공적인 무대 위를 자신의 개인 공연에 이용해서는 안 된다. 또한 팀 성원들은 공연을 팀 고발의 기회로 삼지 말아야 한다." "팀 성원의 불충으로부터 팀을 방어할 수 있는 한 가지 핵심 기법은 팀의 유대를 높이는 한편, 관객이 비인간으로 보일 만큼 관객의 뒷무대 이미지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러면 정서적·도덕적으로 면역이 된 팀 성원들은 관객을 쉽게 속여 넘길 수 있다."(268-70)


"팀 공연을 유지하기 위한 결정적 조건은, 팀 성원 각자가 연극적으로 단련이 되어 맡은 배역을 잘 소화하는 것이다. 단련된 공연자는 '자기 통제력'이 있는 사람이다. 공연자는 자기의 연기에 깊이 몰입하여 계산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주어야 하지만, 또 우발적 상황에 대처할 수 있을 만큼은 자기 연기에 대해 감정적 거리를 둘 수도 있어야 한다. 공연자는 자기가 하고 있는 연기에 지적·정서적으로 몰입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만 실제로 지나치게 몰입해서 공연을 망치는 일이 없도록 절제도 해야 한다." "더불어 남들에게 들키지 않고 긴장을 풀 수 있을 때가 언제인지, 냉혹한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도 시험에 들지 않고 공연자들이 최대한 위엄을 갖추고 완벽하게 배역을 연기할 수 있을 때가 언제인지 따위를 분별하는 연극적 용의주도함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공연자들에게는 팀을 위해 불의의 상황에 미리 대비하고 남아 있는 기회를 활용할 줄 아는 분별력과 주의력이 필요하다."(272-5)


"나는 공연자의 방어적 인상 관리 기법이, 관객과 외부인이 공연자를 도와주려고 발휘하는 요령 및 보호 성향과 짝을 이룬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무대 위와 무대 뒤 영역에 대한 접근 통제는 공연자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도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초대받지 않은 영역에는 자발적으로 가까이 가지 않는다. 그리고 통제된 영역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외부인은 그곳에 있는 이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거나 노크나 기침을 하여 미리 경고한다." "관객으로서의 자질에 관한 정교한 예법이 있다. 공연에 적절한 정도의 관심과 흥미를 보일 것, 지나친 이의 제기나 방해 또는 주목을 강요하는 따위의 행동은 억제하는 자제력을 발휘할 것, 실례가 될 언행을 삼갈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동을 피하려는 마음을 가질 것 등이다." "공연자가 조성된 인상과 상반된 감추어진 진상을 내비치는 실수를 하면, 관객은 그 실수를 '외면'하거나 공연자가 내놓는 변명을 선뜻 받아들이기도 한다."(286-9)


"공연자와 관객이 그 모든 인상 관리 기법을 이용하더라도 돌발 사건이 일어나고 관객이 공연의 뒷면을 우연히 목격하는 경우가 있다는 건 누구나 다 안다." "개인은 관객이 자기에게 나쁜 인상을 가질 수 있음을 알면, 공연의 맥락상 선의로 솔직하게 행동했어도 수치심을 느낀다. 그렇게 부당한 수치심이 들면, 어이 또 자기의 수치심이 들킬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된다. 들켰다는 느낌이 들면 또 그런 자기 모습이 관객의 잘못된 결론을 확인시켜주는 꼴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그는 실제로 떳떳하지 못할 때처럼 방어를 한 나머지 스스로의 처지를 더 위태롭게 만들 수도 있다. 우리는 모두 이런 식으로 부질없이 남들이 상상할 것 같은 우리 모습을 상상하기 때문에 최악의 인간이 될 수 있다." "누구나 겪는 자아 연출의 문제가 있다. 벌어질 일들에 대한 우려, 당연히 느낄 수 있는 수치심과 근거 없는 수치심, 자신과 관객에 대한 양가감정, 이 모든 문제는 인간이 직면하는 상황의 연극적 구성 요소들인 것이다."(293-6)


7장 결론


"남들 앞에서 개인은 알게 모르게 상황에 대한 정의를 투영하는데, 그중 중요한 부분이 개인의 자아 관념이다. 개인이 조성한 인상과 표현상 모순되는 사건이 일어나면 사회 실재의 세 층위에 의미심장한 결과가 동시에 나타난다. 첫째, 두 팀 사이의 대화로 규정한 사회적 상호작용은 어색하고 혼란스러운 상태로 중단될 수 있다. 그러면 상황은 정의되지 못하고 참여자들은 기존의 입장도 방어할 수 없어 행동의 방향을 잃는다. 다시 말해, 순조로운 사회적 상호작용으로 창조되고 유지되던 작은 사회체계가 와해되는 것이다." "둘째, 관객은 개인이 공연 중에 그가 속한 사회 조직·팀·동료 집단의 믿음직한 대표자로서 연출한 자아를 그 개인의 자아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또한 관객은 개인의 특정 공연을 그의 배역 연기 능력의 증거로, 심지어 어떤 배역이라도 연기할 수 있는 능력의 증거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매 공연이 사회 단위의 정당성을 새로이 검증하는 계기이자 개인의 항구적 평판이 걸려 있는 계기가 된다."(303-4)


"마지막으로, 우리는 종종 개인이 특정 배역·조직·집단을 자신과 동일시할 정도로 깊이 몰입하여, 자신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혼란에 빠뜨리거나 상호작용의 토대인 사회 단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사람이라는 자아 관념을 갖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런데 상호작용에 혼란이 생기면 개인 인성의 토대인 자아 관념이 무너질 수 있다. 이는 개인 인성 수준에서 나타나는 영향이다. 그러니까 상호작용의 혼란은 (개인의) 인성, (사회적) 상호작용, 사회 구조라는 세 추상적 층위에 모두 영향을 미친다. 상호작용의 종류에 따라 혼란이 생길 가능성은 매우 다양하고, 혼란이 초래하는 결과의 중요성도 다 다르다. 그러나 참여자들이 조금도 당황치 않거나 모욕감을 깊이 느낄 계기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상호작용은 없는 것 같다. 삶은 어떨지 모르지만, 상호작용은 도박과 아주 비슷하다. 사람들이 혼란을 피하려 하고 피할 수 없어서 수습하려 한다면, 그 노력의 결과는 세 층위에서 동시에 일어난다."(305)


"모든 사회적 상호작용의 바탕에는 근본적 변증법이 있는 듯하다. 남들이 있는 자리에 들어선 사람은 그 상황에 대해 여러 가지 사실을 알고 싶어 한다. 상황의 사실적 면모를 파악하려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사회적 배경을 알아야 한다. 또 상호작용을 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내밀한 속마음도 알 필요가 있다. 이 정도로 완벽하게 정보를 획득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개인은 신호·시험·암시·몸짓·지위 상징 같은 예측 수단을 활용하곤 한다. 요컨대, 개인은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현실을 즉각 파악할 수 없으므로 겉모습에 기댄다. 파악이 불가능한 현실에 관심이 많은 사람일수록 역설적으로 겉모습에 주의를 집중하는 셈이다. 개인은 자리를 함께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순간적인 인상을 토대로 그들의 과거와 미래를 짐작해 그들을 대하는 경향이 있다. 의사소통 행위가 도덕적 행위로 바뀌는 것이다."(312)


"사람들이 보여주는 인상은 묵시적 주장과 약속으로 간주되고 묵시적 주장과 약속은 도덕적 성격을 띤다. 사람들은 공연자로서 역량을 발휘해 자신의 됨됨이와 자신이 이룬 성과가 보편적 평가 기준에 부합한다는 인상을 유지하려 애쓴다. 기준은 아주 많고 널리 퍼져 있으므로, 사람들은 공연자일 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도덕적인 세계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공연자로서 개인은, 평가 기준의 실현이라는 도덕적 문제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다. 평가 기준에 부합한다는 인상을 설득력 있게 만들어내는 비도덕적 문제가 관심사인 것이다. 우리의 행동은 대체로 도덕적 문제를 다루지만, 공연자로서 도덕적 문제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도덕적이지 않다. 우리는 공연자로서 도덕성을 파는 장사꾼인 셈이다. 달리 표현해보자. 늘 확고한 도덕적 기준을 준수하고 사회화가 잘된 인물이어야 한다는 의무,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득, 이것이 바로 인간을 연극 무대에 선 공연자로 만든다."(3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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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시경을 읽다 - 고대 중국 문인의 공통핵심교양이 된 3천 년의 민가 유유 고전강의 16
양자오 지음, 김택규 옮김 / 유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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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천 년의 민가


『시경』에 수록된 글은 노래의 특성이 아주 강합니다. 『시경』은 중국 문자가 가장 일찍 소리와 결합된 예이지만, 말이 아니라 노래와 결합되었습니다. 노래의 언어는 일상생활의 언어보다 단순하고 규칙적이며 반복이 많습니다. 게다가 명확한 소리의 패턴이 존재하지요. 장편서사시를 기록할 수 없는 복잡한 문자라 해도 네 글자가 한 구를 이루며 같은 구가 계속 반복되는 짧은 노래 정도는 받아쓸 방법이 있었습니다. 『시경』을 읽어 보면 중국의 문자 체계가 어떻게 언어에 접근하려 시도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런 시도가 일정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면 그 문자 체계가 어떻게 중국에서 가장 높고 유일한 주류적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는지 설명하기 어려울 겁니다. 당시 사람들은 제한적으로나마 소리를 기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 도상기호와 소리 사이의 몇 가지 규칙을 수립했습니다. 다소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문자와 언어가 이런 방식으로 연결되었습니다. 16)


『시경』은 노래이자 가사입니다. 오늘날 유행가의 가사에는 요즘 사람들의 삶과 보편적인 가치관이 딱히 정확하고 풍부하게 반영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역시 『시경』을 통해 주나라 사람의 삶과 생각을 정확하고 풍부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믿을 만한 근거는 없습니다. 『시경』에 비교적 효과적으로 반영되어 있는 것은 주나라 사람이 노래를 부른 상황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 노래를 불렀고, 어떤 정서와 내용을 담아 표현했을까요? 또 그들에게 노래에 담기에 적당한 사건과 감정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시경』을 읽으면서 처음부터 전통의 늪에 빠지면 안 됩니다. 『시경』 「대서」大序와 『모시』毛詩 또는 주자朱子의 『시집전』詩集傳의 해석을 보면, 『시경』의 모든 시가 ‘미언대의’微言大義의 성격을 갖고 있어 저마다 역사적 암시와 도덕적 훈계를 담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주장은 우리가 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시경』의 작품에 불필요한 거리감과 혐오감을 갖도록 만듭니다. 18)


# 미언대의微言大義 : 간단하지만 심오한 말로 큰 뜻을 암시하는 방식


시, 서書, 역易, 예禮, 악樂, 춘추春秋는 서주西周 당시 귀족 교육의 핵심 커리큘럼이었습니다. 『서』書는 고대사로서 주나라 건립 과정에 있었던 중대한 사건과 그 사건들에 대한 선현의 검토와 교훈을 기록한 것입니다. 주나라는 자신들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들의 눈에는 너무나 강대해 보였던 대읍상大邑商, 즉 상나라를 격파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어떻게 이길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적극적으로 찾았으며, 이긴 과정과 이유 그리고 상나라 사람이 미신을 믿고 음주에 탐닉했다는 비판과 ‘천명天命이 무상함’을 경계하는 우환 의식 등을 『서』에 수록했습니다. 『서』에 대응하는 것이 『춘추』였습니다. 『춘추』는 당대의 역사이자 국별國別 역사였습니다. 여기에서 국國은 노魯·진晋·송宋 같은 봉국封國을 가리킵니다. 각 봉국의 역사가 수록되었는데, 연도를 크게 춘과 추로 나누어 상반기와 하반기에 각기 일어난 큰 사건을 기록하는 무척 단순한 형식을 취했기 때문에 ‘춘추’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19)


『예』는 행위 규범에 대한 가르침이었습니다. 봉건 질서에 필요한 규칙과 의식을 모아 놓은 총화였지요. ‘예’는 맨 처음에는 문자와 경서의 형식으로 존재하지 않고 실제적인 훈련으로 전해졌을 겁니다. 그래서 공자 시대에는 아직 ‘예의 시연’에 대한 견해가 보편적으로 존재했지요. 『역』은 당시 귀족 교육에서 철학 교육에 해당했습니다. 주나라 사람은 줄곧 ‘천’天의 문제를 사유했습니다. ‘천’은 인간이 좌우할 수도 도모할 수도 없는 초월적 힘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삶에서 ‘인’人은 일부였고 나머지 더 큰 부분이 ‘천’이었습니다. 우연적이고 예상할 수 없는 것이 ‘천’이었으며, 되돌릴 수 없는 운명도 ‘천’이었습니다. 그래서 좌우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변수와 힘을 어떻게 이해하고 거기에 대응해야 하는지가 철학 교육의 포인트 중 하나였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시’와 ‘악’입니다. ‘시’와 ‘악’이 과연 하나였는지 둘이었는지는 아직까지 정설이 없습니다. 고대 음악은 구체적인 형식으로 남아 있는 것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20)


『시경』 내용의 유래에 관해서는 전통적으로 채시采詩, 즉 시의 채집에 관한 설이 있었습니다. 서주의 ‘봉건’이 성립된 과정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바탕으로 채시의 의미를 설명해 보기로 하지요. 봉건은 어떤 종친이나 공신을 지정해 특정한 땅과 한 무리의 백성을 하사하는 것, 즉 봉封하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고서 그에게 자기 백성을 데리고 봉지封地에 가게 했습니다. 그 땅이 바로 그와 그 후손이 대대손손 소유하는 봉국封國이 되었습니다. 봉국은 아마도 멀고 낯선 땅이었을 겁니다. 효과적으로 그 땅을 소유하기 위해 처음에는 군사력에 의지해야 했겠지요. 하지만 계속 군사력에 의지하거나 군사력에만 의지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봉건영주는 반드시 그 땅에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이해해야만 했습니다. 그 땅의 민정民情을 잘 살피고 파악해 그들과 잘 지낼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지요. 채시는 그 땅의 민가를 채집하여 그 민가를 통해 사람들의 삶에 접근하는 합리적인 수단이었습니다. 20-1)


전통적인 『시경』 해석에는 여섯 개의 키워드가 있습니다. 바로 ‘풍아송’風雅頌과 ‘부비흥’賦比興입니다. 풍아송은 『시경』에 실린 시의 세 가지 서로 다른 장르이며, 부비흥은 『시경』의 표현에서 나타나는 세 가지 수법입니다. 풍아송은 시의 유래와 기능과 관련 있는, 주나라 시대에 존재했던 분류법으로 『시경』의 작품 자체의 차이에서 내적으로 증명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부비흥은 훗날 『시경』에 덧붙여진 설명이라 『시경』 자체와의 관련성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부’는 어떤 일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고, ‘비’는 어떤 사물로 다른 사물이나 일을 비유하는 겁니다. ‘흥’은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언급하고 이어서 어떤 일이나 또 다른 사물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양자 사이에 명확한 비유 관계가 없고 또 한눈에 알아챌 만한 관련성도 없습니다. 그 시구를 읊고 노래할 때 시인의 마음속에는 부비흥에 관한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개념을 적용해 작품의 형식을 제한했으니 정말 적절하지 못했습니다. 22-3)


시경』에는 ‘풍아송’이라는 세 가지 서로 다른 장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중 가장 많고 내용도 가장 풍부한 장르가 ‘풍’입니다. ‘풍’은 민간 가요에 속합니다. 다시 말해 앞에서 얘기한 채시와 관계가 가장 밀접하지요. ‘풍’은 ‘국풍’國風이라고도 불립니다. 그 가요들이 불린 봉국에 따라 배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풍’에 속하는 시는 모두 160수로, 『시경』에 실린 전체 305수 가운데 절반이 넘습니다. 국풍 15편 외의 장르에는 먼저 ‘대아’大雅와 ‘소아’小雅가 있는데, 이것도 노래이긴 하지만 귀족 사이에서 손님을 초대해 연회를 열 때 불리던 노래입니다. ‘대’와 ‘소’는 자리가 얼마나 공식적인가에 따라 나누는 명칭입니다. 세 번째 장르는 ‘송’입니다. ‘송’은 확실히 구술 내용을 문인들이 정리한 집단의 역사 혹은 집단적 정신교육 자료입니다. 그 성격은 말하기 좋고 기억하기 좋게 만든 『상서』의 구어판에 가깝습니다. 사람들은 ‘송’을 낭랑하게 부르면서 거기에 담긴 과거의 역사적 교훈을 쉽게 흡수하고 내면화했을 겁니다. 25)


2 귀족의 기본 교재


귀족 신분이었던 사람들은 모두 『시경』을 읽고 『시경』의 시구를 줄줄 암송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 시구들은 그들이 서로 소통하는 일종의 코드화된 언어가 되어, 직접적으로 말하기 불편하거나 부적합한 의미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기능했습니다. 더욱이 봉건제도에는 엄격한 상하 질서가 있어서 계층 간 존비尊卑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말해서는 안 되는 것과 말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이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시경』의 시구로 이뤄진 코드화된 언어가 매우 중요하고 또 유용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춘추시대 이후 갈수록 복잡해진 국가 간의 관계에서 코드화된 언어는 자연히 외교에까지 이용되었습니다. 아직까지는 전국시대만큼 그렇게 노골적인 ‘힘’과 ‘이익’의 추구가 부각되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예법이 일반 귀족의 행위를 고도로 구속하는 힘으로 작용했지요. 그래서 외교 현장에서 힘이 약한 나라가 봉건 예법을 교묘하게 이용해 강국의 침탈을 막을 수도 있었습니다. 37)


외교적 절충에 관여한 이들은 모두 전통적인 귀족 교육의 수혜자였습니다. 그래서 『시경』의 갖가지 내용을 이용할 수 있었고, 예의를 지키면서 암암리에 힘을 겨루고 관계를 맺었습니다. 가끔씩 『상서』와 『역경』을 끌어와 인용하기도 했지만 범위와 빈도 면에서 『시경』에는 한참 못 미쳤습니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행해진 ‘단장취의’(시의 일부를 완전히 다른 문맥에 끼워 넣어 이용한 것)는 후대 사람들이 『시경』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었습니다. 『시경』의 시를 인용한 문헌 속의 수많은 기록은 훗날 중국의 ‘주석 전통’의 중요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단장취의’가 낳은 의미들이 마치 그 시구의 본래 해석인 것처럼 간주되었습니다. 특히 시구가 정치 외교 분야에 옮겨져 쓰인 경우에는 각 시가 마치 정치적 도덕적 함의가 있는 것처럼 해석되었지요. 결국 이로 인해 『시경』 「대서」의 ‘미언대의’라는 논리가 나와 독자에게 ‘대의’의 안경을 씌우는 바람에 시의 본래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게 되고 말았습니다. 37-9)


이런 입장에서 『시경』에 어떤 제재의 시가 실려 있는지 점검해 보면, 전통적인 해석과 정반대로 대다수의 시가 군주와는 무관합니다. 특히 국풍에 수록된 시와 소아의 일부는 전부 그렇습니다. 『시경』의 요체는 서민의 관심을 표현한 시입니다. 그들은 무엇에 관심이 있었을까요? 결혼과 가정, 그리고 이 두 가지와 관계된 의식儀式과 감정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런 관점으로 『시경』을 읽으면 오히려 전통적인 독법보다 더 쉽게 시대적 간극을 뛰어넘어 주나라의 인간과 사회를 더 깊이 인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당시 서민 사이에도 봉건 질서의 토대가 깊게 자리 잡고 있었으며, 가정과 결혼과 인륜이 사람들의 주의를 끄는 아주 중요한 관심사였음을 알게 됩니다. 가정이 으뜸이고 온 세상이 가정에서 확장된 거대한 질서 체계라는 것이 서주의 모든 계층 사람들이 공히 갖고 있던 신념이었습니다. 이것은 갑골문에 나타난 상나라 사람의 관념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40)


전통 독법에서 흔히 홀시되고, 심지어 일부러 무시하는 사실은 『시경』에 여성의 목소리가 가득하다는 겁니다. 전통적인 해석에서는 관습적으로 여성의 목소리와 가정, 감정에 관한 사연을 비유나 환유로 간주하고, 남성 작가가 정치적 교훈을 주기 위해 위장한 채 표현한 것으로 설명합니다. 그런데 시에 많은 여성의 목소리와 감정이 반영되는 현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성중심주의의 하부에서 계속 이어졌습니다. 훗날 중국의 시사詩詞에는 여성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특이한 전통이 줄곧 존재했습니다. 가장 유명하고 눈에 띄는 것이 규원시閨怨詩와 대부분의 사詞입니다. 작가가 남자여도 당연하다는 듯이 여성 화자를 내세워 여성의 섬세하고 구슬픈 감정을 토로했습니다. 이것은 물론 사가 본래 여성 가인歌人의 노래 가사였다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중국의 전통에서 부정되었지만 사라지지 않은, 오랫동안 은밀히 존재해 온 시의 오랜 장르적 특성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결과이기도 합니다. 40-2)


# 규원시閨怨詩 : 남편이나 연인을 잃고 홀로 남은 여인의 한을 노래한 시


3 서민 생활의 단편들


▷ 「곡풍」谷風


첫 구는 역시 자연현상입니다. 〈골짜기에 간간이 바람 불더니, 날 흐리고 비 내려요. 習習谷風, 以陰以雨.〉 그다음에는 바로 시적 화자의 토로가 이어집니다. 〈애써 한마음으로 살았는데, 화를 내면 안 되지요. 黽勉同心, 不宜有怒.〉 아마도 부부 간의 불화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순무를 뽑고 무를 뽑을 때, 뿌리만 뽑을 수 있나요? 采葑采菲, 無以下體?〉 ‘葑’(봉)은 순무, ‘菲’(비)는 무입니다. 모두 뿌리식물로 수확할 때는 반드시 땅 위의 잎을 당겨야 뽑을 수 있습니다. 이 시구의 표면적 의미는 순무와 무를 뽑을 때 잎과 뿌리를 같이 뽑지 않을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부부는 일심동체라 가를 수 없는데, 왜 마음을 함께하지 않고 늘 화를 내느냐는 것이지요. 이 구절의 마지막 부분은 이렇습니다. 〈약속을 어기면 안 돼요, 죽을 때까지 함께하자 했잖아요. 德音莫違, 及爾同死.〉 ‘德音’(덕음)은 다른 사람의 말에 대한 존칭입니다. 죽을 때까지 함께 살자고 해 놓고서 이제 마음이 변해 그 말을 어겨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50-1)


〈느릿느릿 길을 걷는 것은 가고 싶지 않아서이지요. 行道遲遲, 中心有違.〉 이 부분은 첫 번째 구절의 첫 시구와 호응합니다. 그녀는 길을 가다 바람과 비를 만난 겁니다. ‘違’(위)는 부수가 ‘쉬엄쉬엄 갈 착’辵으로, 본래는 길을 벗어나는 것을 뜻합니다. ‘背’는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서 가는 것이고, ‘違’는 정해진 길을 벗어나 가는 겁니다. 그녀가 천천히 걷는 것은 그 길을 가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길로 다른 곳에 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지요. 〈멀리는 고사하고 가까이라도, 문밖까지라도 나를 바래다주지. 不遠伊邇, 薄送我畿.〉 ‘伊’(이)와 ‘薄’(박)은 모두 뜻이 없는 어사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원치 않는 길을 떠나기 직전의 상황을 원망하는 어조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떠나는 자신을 멀리까지 바래다주는 것은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문밖까지는 배웅해 줬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이지요. 다시 말해 그녀가 집을 떠날 때 그녀의 남편은 문밖까지도 나와 보지 않을 만큼 무정했던 겁니다. 51)


〈누가 씀바귀를 쓰다 하나요, 달기가 냉이 같은데. 즐거운 당신들의 신혼은 형제와도 같겠지요. 誰謂荼苦, 其甘如薺. 宴爾新昏, 如兄如弟.〉 누가 씀바귀를 쓰다고 하던가요? 지금 내 심정과 비교하면 차라리 냉이처럼 달콤한데 말입니다. 앞의 두 구는 이렇게 그녀의 쓰라린 마음을 표현합니다. 하지만 뒤의 두 구는 형제가 같이 지내듯 자연스럽고 친밀한 신혼의 기쁨을 거론합니다. 그녀는 눈앞에서 다른 사람들의 즐거운 신혼을 보았고, 그래서 못 견디게 마음이 괴로워진 겁니다. 〈경수가 위수 때문에 흐려 보여도 맑은 물가가 없지 않은데 신혼의 기쁨을 누리면서 나는 아껴 주지 않네. 涇以渭濁, 湜湜其沚. 宴以新昏, 不我屑以.〉 ‘경위분명’涇渭分明은 경수와 위수라는 두 강이 합쳐질 때 경수는 탁하고 위수는 맑아 기이한 경관이 연출되는 것을 말합니다. 맑은 위수와 비교해 경수가 탁해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 경수에도 맑은 물가가 있는데, 신혼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은 그녀를 눈엣가시로만 보고 내쫓았다고 말합니다. 52)


이제 우리는 신혼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이 바로 그녀의 남편임을 깨닫습니다. 남편이 새 아내를 얻어 그녀를 집에서 쫓아낸 것이지요. 쫓겨난 그녀는 머뭇머뭇 길을 나섰는데, 남편은 심지어 문밖까지도 배웅해 주지 않았습니다.경수와 위수의 두 구로 인해 비유적 의미가 더해졌습니다. 남편의 새 여자와 비교하면 그녀는 몹시 늙고 추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젊고 예쁜 시절이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시의 정서는 줄곧 애처로웠지만 갑자기 다르게 바뀝니다. 〈내 어살에 가지 말고, 내 통발을 열지 마오. 毋逝我梁, 毋發我笱.〉 이것은 명령투입니다. 고기를 잡으려고 그녀가 만들어 놓은 어살에 가지 말고 또 그녀가 놓은 통발도 열지 말라는군요. 괘씸한 남편의 새 여자를 향해 자기 물건과 물고기에는 손도 대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하지만 이런 분노는 금세 사라지고 슬픔과 괴로움이라는 무기력한 감정이 되돌아옵니다. 〈자신도 못 돌보면서, 떠난 뒤의 일은 뭐 하러 걱정하는지. 我躬不閱, 遑恤我後.〉 52-3)


이어서 새로운 화제가 등장합니다. 〈깊은 물 건널 때는 뗏목이나 배를 타고 얕은 물 건널 때는 자맥질하고 헤엄쳤지요. 就其深矣, 方之舟之. 就其淺矣, 泳之游之.〉 이 네 구는 사실의 기록일 수도 있고 비유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사실의 기록이라면 그녀가 강변에 살던 시절의 회고에 해당합니다. 강을 건널 때, 물이 깊은 곳에서는 뗏목이나 조각배를 타고 얕은 곳에서는 헤엄을 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비유로 읽으면 어떤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임기응변으로 방법을 생각해 냈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그것은 그녀가 그동안 집안일을 돌볼 때 발휘했던 솜씨입니다. 그래서 이런 내용이 이어집니다. 〈집에 무엇이 있고 없는지 살펴 애써 갖추려 했고 이웃이 상을 당하면 있는 힘껏 도왔어요. 何有何亡, 黽勉求之. 凡民有喪, 匍匐救之.〉 그녀는 집안일을 살뜰히 보살폈을 뿐만 아니라, 이웃이 상을 당했을 때도 서둘러 달려가 힘을 보태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53)


〈당신은 내게 감사하기는커녕 거꾸로 원수로 여기고 내 미덕을 무시하고 안 팔리는 물건 취급을 했지요. 不我能慉, 反以我爲讎. 旣阻我德, 賈用不售.〉 ‘慉’(휵)은 ‘마음 심’心에 ‘축’畜 자를 덧붙인 글자로 감사를 마음에 새긴다는 뜻입니다. 화자는 남편이 자신의 좋은 점에 감사하는 대신, 오히려 자기를 원수로 보고 마치 장사꾼인 양 팔지 못할 물건 취급을 했다고 말합니다. 〈옛날에는 두렵고 가난하여 당신과 어려움을 함께했는데 사정이 좋아지니 나를 독약처럼 대했지요. 昔育恐育鞫, 及爾顚覆. 旣生旣育, 比予于毒.〉 첫 구의 ‘育’(육)은 어사입니다. 옛날에 그녀는 남편과 함께 두렵고 가난한 세월을 보내며 온갖 고생을 겪었습니다. 세 번째 구의 ‘生’(생)과 ‘育’은 아이를 낳고 기른 것일 수도 있지만, 앞뒤에 아이에 대한 언급이 없고 떠나는 그녀의 심정에도 아이에 대한 걱정과 아쉬움이 없는 것으로 봐서 단지 가세가 점차 좋아진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그러자 남편은 그녀를 독약처럼 적대시했습니다. 53-4)


〈내가 맛있는 채소를 저장한 것은 겨울을 나기 위해서였지요. 我有旨蓄, 亦以御冬.〉 생각할수록 화가 나는 것은, 그녀가 남편이 겨울을 잘 나도록 채소까지 말려 잘 저장해 두었다는 겁니다. 〈즐거운 당신들의 신혼을 누리려 나를 이용해 가난을 면했군요. 宴爾新昏, 以我御窮.〉 그녀는 그토록 노력해 가세를 호전시켰지만, 남편은 그것을 이용해 새 여자를 들여 자기 욕심만 채웠습니다. 볼수록 점입가경이로군요. 〈매섭게 화를 내며 내게 힘든 일만 시켰는데 옛날을 잊었나요, 내가 처음 시집왔던 때를. 有洸有潰, 旣詒我肆. 不念昔者, 伊予來墍.〉 남편은 걸핏하면 그녀에게 화를 내고 일부러 힘든 일만 하게 했습니다. 마지막에 그녀는 자기가 시집오자마자 치렀던 ‘기’墍라는 풍속을 떠올립니다. 그것은 아직 시집의 모든 것이 낯선 신부를 3일 혹은 30일간 집안일에서 빼 주고 적응기를 갖게 하는 풍속입니다. 그녀는 슬픔이 사무쳐 말하지요. “당신은 내가 처음 시집와서 ‘기’를 치르던 나날을 잊었나요?”라고 말입니다. 54-5)


이 작품은 이혼에 관한 이야기시로, 막 집을 떠나온 이혼녀의 처지와 심정을 묘사했습니다. 이런 제재는 어김없이 우리에게 동한東漢 시대의 장편 악부시 「공작동남비」孔雀東南飛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 시 역시 이혼한 부인의 이야기를 다루었지요. 그런데 「곡풍」의 이야기는 「공작동남비」에 비해 간략하기는 하지만 더 극적인 전환을 담고 있습니다. 이 시를 읽는 사람은 모두 틀림없이 “내 어살에 가지 말고, 내 통발을 열지 마오. 자신도 못 돌보면서, 떠난 뒤의 일은 뭐 하러 걱정하는지”에서 깊은 인상을 받을 겁니다. 갑자기 매서운 분노의 말투로 남편을 빼앗아 간 여자를 상상 속에서 꾸짖습니다. 하지만 말을 마치자마자 자기 말이 얼마나 황당하고 무력한지 깨닫고 현실로 돌아와 “나는 집에서 쫓겨난 신세인데 어살은 뭐고 통발은 또 뭐람?”이라고 울적하게 혼잣말을 하지요. 이런 감정의 전환은 변심한 남자를 탓하는 다른 말보다 훨씬 더 그녀의 슬픔에 공감하게 만듭니다. 대단히 섬세한 문학적 수법입니다. 55)


▷ 「정녀」靜女


「곡풍」이 결혼의 파경을 노래했다면 「정녀」는 사랑의 시작을 노래했습니다. 역시 남녀 관계를 그린 작품입니다.〈예쁜 아가씨 아름다워라, 성 모퉁이에서 나를 기다리네. 靜女其姝, 俟我於城隅.〉 ‘靜女’(정녀)의 ‘靜’은 여기에서는 조용하다는 뜻이 아니라 예쁘다는 뜻입니다. ‘姝’(주)도 아름다움을 형용하는 글자입니다. 이 두 글자가 교차하면서 아가씨의 빼어난 미모를 강조하고 있지요. 예쁜 아가씨가 ‘나’와 만나기로 약속하고 성 모퉁이에서 은밀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서두는 흥분되어 가슴 뛰는 젊은 남자의 심정을 드러냅니다. 그는 서둘러 달려갑니다. 〈어두워 보이지 않아, 머리 긁적이며 배회했네. 愛而不見, 搔首踟躕.〉 여기에서 ‘愛’(애)는 어둡고 흐릿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뜻의 ‘曖’(애)와 통합니다. 남자는 벅찬 기대를 품고 성벽 가장자리의 은밀한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어둑어둑한 그곳을 아무리 찾아봐도 아가씨는 보이지 않았지요. 남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어떻게 해야 할지 갈팡질팡합니다. 61)


〈예쁜 아가씨 아름다워라, 내게 붉은 대통을 선물해 주었네. 붉은 대통 근사하기도 해라, 네가 아름다워 기쁘구나. 靜女其孌, 貽我彤管. 彤管有煒, 說懌女美.〉 ‘孌’(연)은 ‘姝’처럼 아름다움을 형용하는 글자입니다. 남자가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아가씨가 나타나는데, 그 모습이 더욱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녀는 남자에게 붉은 대통을 선물로 주었지요. 그 선물을 받고 남자가 칭찬하길, “붉은 대통이 너무 아름답네. 네 아름다움이 정말 마음에 드는구나!”라고 합니다. 표면적으로는 붉은 대통에 관해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당연히 아가씨를 찬미하는 겁니다. 〈들판에서 삘기를 가져다주었는데, 정말 예쁘고 특이하네. 네가 예뻐서가 아니라 아름다운 이가 선물해 줘서 그렇다네. 自牧歸荑, 洵美且異. 匪女之為美, 美人之貽.〉‘歸’(귀)는 가져왔다는 뜻입니다. 이 아가씨는 아마도 성을 나와 산보를 하는 틈을 타 몰래 연인을 만나 붉은 대통을 선물하고, 그러는 김에 막 딴 삘기도 가져다준 것 같습니다. 61-2)


# 삘기 : 띠의 어린 꽃이삭.


이것은 감정이 이입된 결과입니다. 그 아가씨를 본래 좋아하는 데다, 방금 전 그녀를 못 찾아 당황하다 갑자기 그녀가 나타나자 뛸 듯이 기쁜 감정이 사물에 투사된 것이지요. 아무리 평범하고 단순한 물건이라도 이때 그에게는 특별한 광채를 띤 것처럼 보였을 겁니다. 그것은 사랑과 행복의 광채였겠지요. 이 시는 세밀한 인과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만약 아가씨가 기다리는 줄 몰랐다면 남자는 그렇게 서둘러 달려가 그녀를 찾아 헤매지는 않았을 겁니다. 또 잠시 그녀를 찾아 헤매지 않았다면 그녀가 나타났을 때 그렇게 뛸 듯이 기쁘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어서 그렇게 기쁘지 않았다면 그렇게 과장해서 그녀의 선물을 칭찬하지도 않았겠지요. 먼저 그녀가 특별히 준비해 온 선물을 칭찬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그녀가 오다가 딴, 별로 귀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삘기도 칭찬합니다. 중요한 것은 삘기가 아니라 아름다운 아가씨의 마음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짧지만 교묘한, 훌륭한 시입니다.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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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묵자를 읽다 - 생활 밀착형 서민 철학자를 이해하는 법 유유 동양고전강의 7
양자오 지음, 류방승 옮김 / 유유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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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류에 휩쓸리지 않은 독창적인 사상가


『사기』에서 “묵적墨翟은 송宋의 대부大夫”라고 말했지만 동주 시기의 문헌 어디에서도 묵적이 귀족 신분의 대부라는 증거를 찾을 수 없고, 송나라 사람인지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춘추 시대에 이미 국적과 신분이 계속 바뀌는 평민이 등장했습니다. 경대부는 봉지封地와 관직이 있어 국적이 명확했습니다. 그러나 공자와 그의 제자들만 봐도 이 나라의 출신이면서 저 나라에서 관직을 지낸 예가 있지요. 귀족 신분이 아닌 평민은 세상이 어지러운 시기에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자유롭게 옮겨 다녔습니다. 그들에게는 신분의 제약이 크지 않았고 원래의 국적을 유지하거나 고집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사료에서 묵자의 출신을 확인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가 귀족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귀족 신분 없이 난리 속에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 이를 통해 위로 올라가 각국의 통치 계급을 찾아갑니다. 그는 노, 송, 제, 초, 위衛 등 여러 나라를 갔지만 어떤 나라가 그의 고국이라고 증명할 길은 없습니다. 16)


서주西周가 흥성했던 시기를 숭상한 공자는 주나라 문화에 함축된 정신을 발굴하는 데 힘썼고, 그러한 인문 가치를 회복해 난세를 구하고 싶어 했습니다. 반면 봉건 귀족 계급에 단 한 번도 속해 본 적이 없었던 묵자는 봉건 질서 바깥의 시선으로 봉건 질서에 내재한 결점이 바로 난리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봉건 질서는 혈연관계의 멀고 가까움에 따라 사람 사이의 관계가 결정되는 ‘친친’親親이라는 기초 위에 세워집니다. 묵자는 이 점을 겨냥해 그와 철저하게 반대되는 ‘겸애’를 들고 나왔습니다. 묵자의 겸애는 모든 사람이 남을 자신처럼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가족처럼 사랑하라는 것이죠. 또 봉건 질서는 상례喪禮와 장례葬禮를 통해 대를 잇는 계승 관계를 강화했는데, 묵자는 ‘절장’節葬을 주장하여 상례와 장례에 대한 중시를 부수고자 했습니다. 봉건 질서는 음악과 주연酒宴으로 상호 간의 관계를 강화했는데, 이에 묵자는 음악이 사치이자 낭비라는 관점의 ‘비악’非樂을 주장했습니다. 17)


『묵자』의 「경 상」經上, 「경 하」經下, 「경설 상」經說上, 「경설 하」經說下, 「대취」大取, 「소취」小取 여섯 편을 통상 ‘묵변’墨辯이라고 부릅니다. 시간대로 보면, ‘묵변’이 만들어진 시기는 비교적 늦어 묵자의 시대보다 뒤였으리라 짐작합니다. 내용으로 보면, ‘묵변’은 논리학과 윤리학을 다룬 편들로, 어떻게 추리하고 논변해야 가장 효과가 있을지 탐색하고 논합니다. 따라서 ‘묵변’을 보면, 묵자 자신이 의식적으로 논변에 흥미를 가졌기에 후대의 묵가에서 이렇게 주장을 담아 엮어 냈다고 믿을 이유가 됩니다. 묵자와 묵가는 처음으로 ‘변’을 연구해, ‘변’의 논리와 원칙을 귀납하고 정리하고자 했고, 그 방법론은 훗날 독립해 나와 ‘명가’를 이루었습니다. 더 시간이 지나 ‘같음과 다름을 밝히고, 이름과 실제를 살피는’ 방법은 다시 법가法家에서 그대로 가져다 ‘법’의 규범을 정리하는 데에 이용했습니다. 이는 복잡하고 다채로운 중국 고대사상사에서 중요한 흐름 중 하나입니다. 25-6)


『논어』에서 공자는 각종 사건과 문제에 대해 옳고 그름, 선과 악, 좋고 나쁨 같은 도덕적 판단을 직접 드러냅니다. 이것이 ‘논’論입니다. ‘논’의 핵심은 평가와 판단으로, 공자는 자신의 평가와 판단으로 결론을 냅니다. 하지만 추론 과정이나 배경을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논어』를 읽을 때 최대한 추론 과정과 배경을 새롭게 구성해 봅니다. ‘논’의 단점은 결론이 유용되기 쉽다는 것, 즉 원래의 추론 과정 및 배경과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원래 의도를 바꾸거나 심지어 왜곡하기가 몹시 쉽다는 것입니다. 전국 시대의 큰 특징 중 하나는 말과 표현 방식의 주류가 ‘논’에서 ‘변’辯으로 대체되었다는 점입니다. ‘변’은 다원화 및 상호 간에 충돌하는 의견과 입장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사람들이 대화할 때의 공통 인식이 점점 얄팍해진 데서 비롯됩니다. 전에는 서로 어떤 일과 가치관에 대해 필연적이고 공통된 관점이 있었기에 그 부분의 설명을 생략하고 자신이 얻은 지혜와 결론만 내놓으면 됐지만 이제는 불가능해진 겁니다. 26)


2 진실로 실천하기 쉬운 겸애


난세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던 시대에 사람의 상상력은 무한히 확대되고, 수많은 사람이 각기 다른 답안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현실을 바로잡고 미래를 계획하려는 이런 시도는 공통된 질문과 도전에 부딪힙니다. ‘일리 있는 말이긴 한데, 그게 가능할까? 실현할 방법이 있어?’ 현실에 초점을 맞춰 나온 질문이기 때문에 추상적인 이치로는 대답할 수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자연스럽고 유력한 답을 여기서 묵자가 제시합니다. ‘가능해. 역사에 구체적인 사례가 있으니 부정할 수 없지.’ 이런 영향을 받는 사람은 대체로 새로운 주장을 제기하려는 사람이었고, 그들은 모두 기이한 압박을 느껴 한사코 역사 속에서 사례를 찾아 자신의 주장이 실행 가능하다는 근거로 삼고자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역사 토론이 당연히 활발해졌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모든 주장에 다 역사의 실례가 있을까요? 개혁 추구의 이상을 가진 사람들은 수백 년 역사 속에서 어떻게 사례를 찾았을까요? 34-5)


한 가지 방법은 아주 먼 옛날의 역사에서 찾는 것이고, 또 다른 방법은 역사 사례를 지어내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방법은 쉽게 하나로 융화되었습니다. 주나라 이전의 고대 역사는 본래 진위 여부를 가리기 어렵기에, 지어낸 얘기를 역사 속에 끼워 넣는다고 한다면 보통 오래된 이야기일수록 안도감과 신뢰감을 얻기 마련이지요. 그래서 중국 역사는 전국 시대에 전에 없이 팽창했고, 고대사는 훨씬 오래된 시대로 확장됐습니다. 후대의 엄격한 금석학金石學이나 고증학考證學, 나아가 현대의 고고학이 발달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오직 전국 시대에 전해진 자료에 근거해 고대사를 기록하고 이해했습니다. 이에 따라 중국 고대사는 당연하게도 과장된 색채가 강해졌죠. 묵자가 두루 서로 사랑하고 모두 서로 이롭게 하는 것이 실천 가능함을 증명하기 위해 든 첫 번째 사례는 하나라 우임금입니다. 우임금이 고생을 자처한 이유는 이기심이 아니라 백성을 행복하게 해 주고 남을 자신처럼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35-6)


〈노인이 편안하게 생을 마치고, 장성한 사람은 쓰일 곳이 있으며, 아이는 자랄 곳이 있고, 홀아비와 과부, 고아, 자식 없는 노인, 불구자는 모두 보살펴 주는 곳이 있다. 使老有所終, 壯有所用, 幼有所長, 鰥寡孤獨廢疾者, 皆有所養.〉 『예기』禮記 「예운」禮運에 있는 이 단락은 후에 ‘대동’大同으로 불립니다. ‘대동’의 핵심은 친족의 경계를 허물어 친족이 없거나 친족을 잃은 사람도 사회에서 편안하게 보살핌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는 봉건 질서의 주요 내용을 확장하고 수정한 것으로, 묵가의 ‘겸애’에서 큰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겸애 중」 전편을 관통하는 핵심 논리는 ‘윗사람이 모범을 보이면 아랫사람이 본을 받는다’는 ‘상행하효’上行下效로, 묵자는 영향을 미칠 수 없다거나 할 수 없다는 한계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군주가 선호하고 앞장서서 제창하면 나머지 사람은 자연스럽게 이를 따라오게 돼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상대적으로 소박하고 단순하면서도 전파력이 강한 신념입니다. 36-8)


3 주나라 문화에 도전하다


묵자의 핵심 사상으로 ‘겸애’와 함께 ‘비공’非攻을 꼽을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을 죽이면 불의라 이르고 반드시 한 사람 죽인 죄를 묻는다. 만일 이렇게 말해 나간다면, 열 사람을 죽일 경우 불의가 열 배가 돼 반드시 열 사람 죽인 죄를 받아야 하고, 백 사람을 죽일 경우 불의가 백 배가 돼 반드시 백 사람 죽인 죄를 받아야 한다. 이에 대해 천하의 군자가 모두 알고서 비난하며 ‘불의’라고 말한다. 지금 크게 남의 나라를 공격하는 불의에 이르러서는 비난할 줄 모르고 오히려 칭송하며 ‘의’라고 말한다. 실로 그 불의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말을 적어서 후세에 남긴 것이다. 만약 그 불의를 알았다면 어찌 불의를 적어서 후세에 남겼겠는가? 殺一人, 謂之不義, 必有一死罪矣. 若以此說往, 殺十人十重不義, 必有十死罪矣. 殺百人百重不義, 必有百死罪矣. 當此, 天下之君子皆知而非之, 謂之不義. 今至大爲不義攻國, 則弗知非, 從而譽之, 謂之義. 情不知其不義也, 故書其言以遺後世. 若知其不義也, 夫奚說書其不義以遺後世哉?〉 49)


「비악」과 「절용」에서 묵자는 예악을, 특히 음악을 불필요한 낭비라고 여겼습니다. 의복의 기능은 겨울에 추위를 막고 여름에 더위를 막는 것입니다. 주거의 기능은 겨울에 찬바람과 추위를 피하고 여름에 더위와 비를 피하며 도둑을 방지하는 것입니다. 무기의 기능은 외적과 도적을 저지하고 물리치는 것이며, 교통수단의 기능은 각기 다른 지형에서 사람과 화물을 실어 나르는 것입니다. 이런 기본 기능으로 보자면 이것들을 어떻게 제작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판단이 섭니다. 「절용 상」에는 “加輕以利”(가경이리)가 두 번 나옵니다. ‘加輕’(가경)은 사실 덜라는 뜻입니다. 묵자는 기능과 무관한 장식을 제거하고 모든 것을 기능, 즉 ‘쓸모’用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따라서 ‘절용’節用을 ‘재물을 절약하라’는 뜻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묵자의 진의는 ‘용’用에 드러나 있고 모든 것은 ‘용’으로 귀결되기에, ‘쓸모없는 것’無用을 덜어서 ‘쓸모 있는 것’用을 배로 늘린다는 뜻으로 ‘절약하다’節가 되는 것입니다. 52-3)


묵자의 또 다른 핵심 사상으로 ‘명귀’와 ‘천지’가 있습니다. ‘명귀’는 귀신이 존재한다는 주장이고, ‘천지’는 의지를 가진 인격천人格天이 존재한다는 주장입니다. 이 논지는 인본을 중시하는 주나라 문화와 완전히 상반됩니다. 하지만 이 주장들은 춘추 시대와 전국 시대가 교차하는 시기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묵자의 개인 색채가 강한 ‘명귀’와 ‘천지’, 운명론을 부정하는 ‘비명’은 후대 묵가조차 외면해 버렸으니까요. 이 밖에 묵자는 ‘상현’을 주장했습니다. 친족을 주로 등용하는 당시 봉건 관습에 반기를 들었던 것이죠. 하지만 이는 묵자만의 주장이 아니라 당시 빠르게 형성된 공통된 인식이었습니다. 봉건 질서를 보존하고 주나라 초기의 이상적인 사회로 돌아가자고 주장했던 공자도 일단의 능력 있는 제자를 양성해 친족 관계가 아닌 제후나 대부에게 임용하도록 추천했습니다. 이런 시대 변화와 치열하고 잔혹한 경쟁 앞에서 누구나 인재의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에 ‘상현’에는 반대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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