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산에서
히말라야를 다녀왔다는 한 사내가
껌을 밟고 섰듯 우렁차게 먼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 낮은 산이 더 오래된 산이다
조용한 산이 높은 산이다
눈보라에 이것저것 다 내주고
작은 구릉으로 어깨를 굽히고 앉았으나
부러울 것도 없네 손자 손녀도 우습게 매달리고
때론 사이클 탄 이가 우주로 떠오를 듯 달려나가기도
하니
언덕에 섰는 갈참나무나 자귀나무도 마음이 연해
별다른 벌레들 기어들지 않고
청설모며 족제비가 종갓집을 이루는 터
내가 오늘 먹을 걱정에 터벅거리며 산을 내려오자
산은 슬며시 나의 옷깃을 잡으며
곧 볍씨 뿌리는 들판이 될 거라고 귀뜸을 한다
따뜻한 바람을 모아 군불 지피는
끝내 고향이 되어버린 아우 같은 산
머리 긁적이며 돌아보니 오솔길은 발장난을 치고
묵은 꽃향기 수북이 손등처럼 쌓여 있다 (P.10 )
버리긴 아깝고
일면식이 없는
한 유명 평론가에게 시집을 보내려고
서명을 한 뒤 잠시 바라보다
이렇게까지 글을 쓸 필요는 없다 싶어
면지를 북 찢어낸 시집
가끔 들르는 식당 여주인에게
여차여차하여 버리긴 아깝고 해서
주는 책이니 읽어나 보라고
며칠 뒤 비 오는 날 전화가 왔다
아귀찜을 했는데 양이 많아
버리긴 아깝고
둘은 이상한 눈빛을 주고 받으며
뭔가 맛있는 것을
품에 안은
그런 눈빛을 주고 받으며 (P.12 )
-박철 詩集, <작은 산>-에서
![](http://image.aladin.co.kr/product/2622/33/cover150/8939222091_1.jpg)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로 처음 만났던,
박철 시인의 <작은 산>의 '개화산에서'를 읽다 문득
부모야말로, '작은 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보라에 이것저것 다 내주고/ 작은 구릉으로 어깨를 굽히고
앉았으나/ ... 머리 긁적이며 돌아보니 오솔길은 발장난을 치고/
묵은 꽃향기 수북이 손등처럼 쌓여있/는...' 그런 작은 산.
오늘은 어버이날이라고 세상이 정한 날.
늘 철없는 자식, 철없는 부모의 위치에서 언제나 미안하고
고맙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맘껏 사랑과 진상을 떨고 살았지만,
오늘은 편하게 누는 똥,처럼 그런 자식이 되고 싶구나.
아해들아, 너희도 그래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