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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예수 -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교수의 '도마복음'풀이
오강남 지음 / 예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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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해 전 종교학자이며 많은 책을 저술하신 최준식 교수님께 종교학을 비롯하여 인문학 전반에 대한 강의를 몇 년에 거쳐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 시기가 내 인생에서 또 한 번의 알을 깨던 시기였던 것 같다.

 

 새로운 세계에 접하며 무지의 자각과 더불어 많은 질문이 일어났었다. 그냥 받아들이지 못하고 질문을 하던 나를 향해 교수님은 도마 같다고 하셨다. (최 교수님은 기억 못 하시겠지만) 의심 많은 인물인(긍정적인 이미지는 아닌) 도마라고 칭해지던 나는, 교수님께 아마도 귀찮은 아줌마 학생이었으리라 생각하니 웃음이 슬며시 나온다.

 

도마복음이 있다는 것만 막연히 알고 있다가 우연하게 도마복음을 오강남 교수님이 풀이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도마라고 불러지던 것에 오히려 뿌듯함까지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영성이란 주제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고 정리할 수 있는 기회였다.

 

도마복음이 공관복음과 다른 가장 큰 특징은 공관복음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기적, 예언의 성취, 재림, 종말, 부활, 최후의 심판, 대속 등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고, 그 대신에 내 속에 빛으로 계시는 하느님을 아는 것, 이것을 깨닫는 깨달음을 통해 내가 새사람이 되고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계속 강조한다는 점입니다.(20)

 

 교회에서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하면,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이면 무조건 사실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근대에 와서야 이런 형태의 믿음이 믿음으로 강조되기 시작하다가 근래에는 급기야 믿음이라면 바로 이런 것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되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190)

 

 제49: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홀로이며 택함을 받은 이는 행복합니다. 나라를 찾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곳에서 와서 그곳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도마복음은 계속해서 홀로 됨을 강조한다. 사람들이 많은 교육을 받고 정보 사회가 된 현대에서는 종교가 무조건 믿어라가 아니라 스스로 깨달음을 강조하는 신비적 경향성을 띠지 않을 수 없다. 깨친 사람은 홀로서게 된다. 이제는 개인적 영성의 시대가 되고 홀로의 가치를 중시하는 경향은 더 커지고 있다.

 

도마복음의 예수님은 천지개벽같은 우주적 대사건의 종말이 아니라, 깨침을 경험함으로써 가능한 내적 변화 같은 것을 통해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부활하는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개벽을 강조한다. 이런 독특한 종말관 때문에 도마복음이 정경으로 채택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254)

 

 제113: 그의 제자들이 예수께 말했습니다. “그 나라가 언제 올 것입니까?” 그 나라는 기다린다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나라는 온 세상에 두루 퍼져 있어 사람들이 볼 수 없습니다.”

 

 나라는 미래 어느 시점에 도래하는 무엇이 아니라, 어제와 오늘과 내일에 관통하는 것, ‘영원한 현재에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 나라는 이미 여기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419)

 

 베드로가 여성이 절대 구원받을 수 없다고 한 데 반해, 예수님은 여자들도 구원받을 수 있음을 강조한다.(422) 또한 성별과 상관없이 새로운 변화를 받아 완전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는 바울의 표현을 빌리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를 옷으로 입은 사람들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남자와 여자가 없다는 것이다.(3:27-28) (424)

 

 공관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님의 기본 가르침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하여 도마복음에서는 회개하라눈을 떠라’, ‘정신 차려라등 의식 변혁을 촉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한다. 천국은 하느님의 주권, 임재 등을 뜻한다고 한다. 가까이의 의미도 시간의 개념보다는 공간의 개념으로 내 속에 있다는 뜻으로 이해 할 수 있다고 한다.

 

도마복음의 이런 해석이 공관복음과 상충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공관복음의 해석이 좀 더 깊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도마복음은 여타 신비주의 전통의 종교와 하나로 연결되고 있으며 결국 단어와 표현은 조금 다르지만 향하는 곳은 같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속에 있는 하느님, 나의 진정한 나는 바로 하느님이라는 엄청난 진리를 깨우치면 우리는 진정한 자유와 떳떳함과 늠름함을 누릴 수 있다. 나아가 우리 속에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 속에도 똑같이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될 때 자연히 다른 사람들과 동질성을 느끼고 그들을 사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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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진화 - 인류의 경이로운 미래상을 펼쳐 보여주는 신생물학의 거대담론
브루스 H. 립튼 & 스티브 베어맨 지음, 이균형 옮김 / 정신세계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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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지구의 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우리 자신 각자가 `인류`라는 초생명 공동체의 세포들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자발적 진화를 해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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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생명 공동체 - 우리 안의 상생본능이 펼쳐낼 인류의 놀라운 미래
린 맥타가트 지음, 황선효 옮김 / 정신세계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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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는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현 사회의 극복 방안으로 초생명체(그 자체로서 하나의 생명체의 자격을 갖춘 사회)적 공동체 건설을 주장 한다. 이 책은 그러한 생각의 확산을 위해 쓰인 실용서이며 지침서적 성격을 띠고 있다.

 

  초생명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당위를 주장하기 위해 특히 과학적 이론을 끌어들여 근거로 삼고 있다. 그런데 현대 과학(저자가 생각하는)을 한꺼번에 몰아 비판하는 한편, 자신의 주장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은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과학적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비과학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저자의 태도는 신뢰감을 떨어뜨린다.

 

  양자 물리학적 발견은 모든 개체들이 연결되어 있고 또한 주위의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냈고 이에 우리의 삶의 방식은 바꿔야 한다고 한다. 경쟁과 개인주의 또한 우리의 본성과 역행되며 존재의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고 한다.

 

  유전자가 아닌 환경적 영향력들이 우리 체내의 모든 유전자의 최종적 발현을 결정한다고 한다. 진화란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협동적인 과정이며 생명체와 환경 사이의 조화를 추구하는 정교한 조율된 끊임없는 노력이라고 한다.

 

  모든 생명체계에 생물학적 리듬을 일으키고 동조시켜 동시에 작동시키는 일종의 외부신호인 자이트게버(timekrrper)가 우주 공간에 존재하며 그 중심 스위치는 태양의 자기장이라고 한다.

 

  이러한 과학적 발견들은 우리가 범우주적 관계망 속에서 살고 있음을 인식해야 하고 우주를 통일된 전체 즉 서로 완벽하게 연결된 초생명체로 간주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공동체를 당연히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나는 저자가 인용한 과학적 발견들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이론들인지 잘 모른다. 어차피 과학은 끊임없이 부족한 부분과 잘못된 것을 수정해 나가는 속성을 지니고 있고, 이 책은 저자의 주장을 위해 끌어들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저자가 주장하는 개인주의를 극복하고 함께 하는 공동체 건설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에 공감하지만 저자가 자신의 주장의 근거로 삼는 과학적 이론과 지나친 비약은 우려스럽다.

 

  13고장 난 세상 고치기에는 대부분의 실용서에서 볼 수 있는 행동 지침들이 단계별로 있고 14공부 모임을 위한 지침에는 이 책을 이용하여 저자의 주장을 퍼뜨리고자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날짜별로 자세하게 나와 있다. 저자의 생각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생각을 확산시키기 위해 활용하기에는 유용할 것 같다. 그래서일까 마치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전하는 선교 책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을 극복하고자 한다면 초생명 공동체 건설의 당위성을 위한 과학적 접근에 있어 좀 더 과학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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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없지만 가야 할 길 - 최준식 교수, 구루이기를 거부한 유지 크리슈나무르티를 설하다
최준식 지음 / 하늬바람에영글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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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는 인도의 성자 유지 크리슈나무르티의 사상과 생애를 쓴 깨달음은 없다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 연구자들의 필터를 거친 연구서가 없는 안타까운 한국의 현실을 비판하며 직접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유지 (크리슈나무르티)에게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자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이므로 그의 사상과 더불어 유지에 대해 한국인의 정서에 맞게 소개한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 학자로서 필터를 거쳐 유지에 대해 소개하겠다는 의도와는 다르게 저자는 스스로의 한계에 갇혀 깨달음은 없다에 나오는 내용을 거의 인용하는 것에 그치며 그것조차 제대로 소화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저자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생각의 잣대와 틀에 갇혀 있다. 유지를 제대로 이해하기는 힘들다고 생각된다.

 

   “......이게 바로 유지가 말하는 자연 상태이다. 인도 전통에서는 이런 상태에 도달해야 인간의 진정한 능력 혹은 본능을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단계에 이르러야 인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능력을 구현하게 된다고 하니 우리의 현재 상태는 참담하게만 보인다......(199)

 

    드디어 저자의 생각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데 유지는 깨달음의 상태가 자연스러운 상태라고 했지만 그것이 인간의 능력을 구현한다든지 하는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깨달음의 상태는 진화의 끝이고, 그리고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유지를 소개한다고 하지만 유지에 대한 왜곡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이런 표현이 나온다.

“...... 유지는 계속해서 이 체험(깨달음)이 육적인 것이라고 하는데 쿤달리니 에너지가 어떻게 해서 육적인 것이냐는 것이다. 에너지는 물질이 아니니 육적인 것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유지처럼 자꾸 육적인 것이라고 강조할 필요가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물질적인 것이라면 그 내분비선 폭발 사건이 눈으로 보여야 한다. 피가 나든지 물이 나오던지......” (199-200)

  여기서 저자의 한계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더 이상 저자에게서 유지에 대한 이해를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유지의 체험을 보고 그동안 영적 스승이라 칭해졌던 사람들의 깨달음의 수준을 가늠할 기준이 마련되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선사들이 깨달음을 경험할 때 과연 그들도 차크라가 열리는 체험을 했는지 궁금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 선사들도 유지처럼 몸에 에너지가 결집되면서 피부에 주름같은 돌출부가 생겨나서 움직이고......”(204)

 

   참 어이없다. 어이없음은 계속 이어진다. 진정한 인간이 되려면 쿤달리니 에너지가 폭발해야 하고 차크라가 열려야 하는데 왜 다른 종교 전통에서는 이 힘에 대한 언급이 없는가? 정말 이 방법 밖에 없단 말인가? 등등의 의문을 제기하는데 저자는 왜 이 책을 쓴 것인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유지의 가르침은 초절정 수준에 있기 때문에 초보자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고 여러 차레 언급하는데 이는 실로 유지에 대한 왜곡의 절정이라 여겨진다. 유지가 그토록 힘주어 강조한 것이 생각과 지식에서 벗어나라는 것이었다. (통상적으로 영적 스승들이란 사람들이 말해온) 그런 깨달음이란 없다는 것이었다. 자연스러운 상태라고 칭하는 깨달음이란 어떤 노력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나 심지어 사기꾼에게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이 책은 유지 크리슈나무르티의 비판서도 아니고, 유지를 최고의 영적 스승이라 지칭하며 유지의 가르침을 왜곡시키고 있다. 저자는 왜 책을 썼을까? 저자의 좀 더 깊이 있고 철저한 연구와 책임있는 집필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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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은 없다
U.G. 크리슈나무르티 지음, 홍성규 옮김 / 마당기획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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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글을 사용 하는 데는 저작권이 필요 없다. 하고 싶은 대로 출판하고 유통시키고, 해석하고 오해하고 왜곡해도 좋다. 나의 동의나 누구의 허가도 받을 필요가 없다.”

 

  이 책을 다시 읽은 것은 최준식 교수의 길은 없지만 가야할 길이란 책을 접하고 나서다. 몇 년 전에 읽었을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유지 크리슈나무르티는 외할아버지가 신지학회의 영향력 있는 분이었고 그의 집에 거의 모든 영적 스승이라 칭해지는 사람이 드나드는 분위기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분위기는 존경받는 영적인 스승들의 인간적 한계와 이중성을 일찍부터 접하며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획득한 것 같다.

 

  수행을 통해서 아무것도 깨달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 유지 크리슈나무르티는 부인과 자식을 버리고 영국에서 부랑자 생활을 자처한다. 또한 세계적 스승인 라마나 마하리쉬와 지두 크리슈나무르티까지 비판하고 부정한다. 그러나 그는 어려운 막바지 상황에 처했을 때는 자신의 과거 스팩인 강연자로서의 경력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는 동안 그에게는 여러 가지 능력들이 나타나는데 그것에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은 평생 수행을 하며 추구하는 것이 그런 능력일 것이다.

 

  그러다 마흔 아홉 번째 생일날 육체가 변화되고 의식이 변화되는 최고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다. 맛보고 듣고 보고 하는 모든 감각은 연결을 잃었고 피부와 모습도 변하였고 생각 사이의 연계가 무너졌으며 질문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러나 유지 크리슈나무르티는 단호하게 말한다. 깨달음은 없다고. 그것뿐이라고. 그것은 자연스러운 상태이며 진화의 마지막 산물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노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언제든 누구에게나 사회적인 가치관과 상관없이 일어난다고 한다. 오히려 답을 찾아다닐수록 답에서 멀어진다고 한다.

 

  자아인식이나 자아발견 모두 무의미한 단어이며 감각을 통제하는 수련 같은 것도 모두 헛소리라고 한다. 사람은 이기적이며 이타주의란 근거가 없으며 진정한 스승만이 명상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일러준다고 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벗어버리면 삶의 의미가 깊어질 것이라고 한다.

 

  궁극적인 실체니 진리 혹은 신을 경험하려고 하는 것은 모두 헛수고라고 한다. 어떤 성자의 싸구려 모조품이 되고 싶어 하는 한 사람이 될 수 없다고 한다.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해도 자연스러운 상태를 얻을 수 없다고 한다.

 

   무엇인가를 성취하고 싶어하고 깨달은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한, 깨달은 사람이 될 수 없다. 깨달음이란 깨달은 사람이 되려고 벌이는 모든 일을 그만두는 것이다. 그것이  깨달음이다.

 

  책을 덮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자신은 가르칠 것도 없고 할 이야기도 없다고 하며 어떠한 조직도 만들지 않고 한 권의 책도 남기지 않은 유지 크리슈나무르티에게 끊임없이 사람들이 찾아갔던 까닭을 생각해 보았다.

 

  결국 깨달음이란 육체의 변화와 의식의 변화인 것이고 진화의 끝이다. 현실의 어머니는 그렇지 않지만 어머니라는 단어의 원형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눈앞에 그려진다. 여성도 남성도 아닌 중성의 모습으로, 혹독한 현실과 어려움 속에서도 원망이나 욕심을 부리지 않고 묵묵히 나아가며 자식을 키워놓은 모습. 그녀는 이미 신비한 능력의 소유자이며 그것이 깨달음의 경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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