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은 없다
U.G. 크리슈나무르티 지음, 홍성규 옮김 / 마당기획 / 1999년 12월
평점 :
절판


 

 나의 글을 사용 하는 데는 저작권이 필요 없다. 하고 싶은 대로 출판하고 유통시키고, 해석하고 오해하고 왜곡해도 좋다. 나의 동의나 누구의 허가도 받을 필요가 없다.”

 

  이 책을 다시 읽은 것은 최준식 교수의 길은 없지만 가야할 길이란 책을 접하고 나서다. 몇 년 전에 읽었을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유지 크리슈나무르티는 외할아버지가 신지학회의 영향력 있는 분이었고 그의 집에 거의 모든 영적 스승이라 칭해지는 사람이 드나드는 분위기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분위기는 존경받는 영적인 스승들의 인간적 한계와 이중성을 일찍부터 접하며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획득한 것 같다.

 

  수행을 통해서 아무것도 깨달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 유지 크리슈나무르티는 부인과 자식을 버리고 영국에서 부랑자 생활을 자처한다. 또한 세계적 스승인 라마나 마하리쉬와 지두 크리슈나무르티까지 비판하고 부정한다. 그러나 그는 어려운 막바지 상황에 처했을 때는 자신의 과거 스팩인 강연자로서의 경력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는 동안 그에게는 여러 가지 능력들이 나타나는데 그것에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은 평생 수행을 하며 추구하는 것이 그런 능력일 것이다.

 

  그러다 마흔 아홉 번째 생일날 육체가 변화되고 의식이 변화되는 최고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다. 맛보고 듣고 보고 하는 모든 감각은 연결을 잃었고 피부와 모습도 변하였고 생각 사이의 연계가 무너졌으며 질문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러나 유지 크리슈나무르티는 단호하게 말한다. 깨달음은 없다고. 그것뿐이라고. 그것은 자연스러운 상태이며 진화의 마지막 산물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노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언제든 누구에게나 사회적인 가치관과 상관없이 일어난다고 한다. 오히려 답을 찾아다닐수록 답에서 멀어진다고 한다.

 

  자아인식이나 자아발견 모두 무의미한 단어이며 감각을 통제하는 수련 같은 것도 모두 헛소리라고 한다. 사람은 이기적이며 이타주의란 근거가 없으며 진정한 스승만이 명상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일러준다고 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벗어버리면 삶의 의미가 깊어질 것이라고 한다.

 

  궁극적인 실체니 진리 혹은 신을 경험하려고 하는 것은 모두 헛수고라고 한다. 어떤 성자의 싸구려 모조품이 되고 싶어 하는 한 사람이 될 수 없다고 한다.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해도 자연스러운 상태를 얻을 수 없다고 한다.

 

   무엇인가를 성취하고 싶어하고 깨달은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한, 깨달은 사람이 될 수 없다. 깨달음이란 깨달은 사람이 되려고 벌이는 모든 일을 그만두는 것이다. 그것이  깨달음이다.

 

  책을 덮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자신은 가르칠 것도 없고 할 이야기도 없다고 하며 어떠한 조직도 만들지 않고 한 권의 책도 남기지 않은 유지 크리슈나무르티에게 끊임없이 사람들이 찾아갔던 까닭을 생각해 보았다.

 

  결국 깨달음이란 육체의 변화와 의식의 변화인 것이고 진화의 끝이다. 현실의 어머니는 그렇지 않지만 어머니라는 단어의 원형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눈앞에 그려진다. 여성도 남성도 아닌 중성의 모습으로, 혹독한 현실과 어려움 속에서도 원망이나 욕심을 부리지 않고 묵묵히 나아가며 자식을 키워놓은 모습. 그녀는 이미 신비한 능력의 소유자이며 그것이 깨달음의 경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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