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자들 - 허용오차 제로를 향한 집요하고 위대한 도전
사이먼 윈체스터 지음, 공경희 옮김 / 북라이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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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완벽주의자들'이라는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내 안에서는 미묘한 진동이 일었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정밀함'을 추구하지는 않았겠지만 어릴 적 내가 빡빡한 성격이었는지 완벽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곤 했었다.


  그래서 완벽주의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느껴졌고 나는 매사 완벽하지 않기 위해, 그냥 대충대충 넘어가기 위해 애를 써왔다. 적어도 내 주위에서 느낄 수 있는 우리 문화와 정서에서는 완벽함은 미덕이 아니었다.


  감성적 성향이 풍부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이 책에 매력을 느낄지는 모르겠지만, 인류 최초의 정밀한 기계라고 할 수 있는 안티키메라, 시계, 부품화된 총의 주조, 엔진과 제트 엔진, 계측을 위한 기구들, 자동차와 비행기, 우주 망원경, 중력파 관측소 라이고 등, 허용오차 "0"을 향해 도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와있다.


  과학이나 공학적 지식이 있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겠지만 '정밀성'이라는 큰 흐름을 따라가며 읽으면 누구라도 충분히 책을 즐길 수 있다. 특히 기계류에 관심이 있다면 흥미 있게 읽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된다.


  '정밀성'이 제일 먼저 추구되었던 분야는 시계였다. 정밀한 시계를 먼저 만들었던 영국은 한 세기 이상 바다의 통치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당시의 '정밀성'은 장인의 기술과 인내심에 의존한 손끝 감각에서 나왔다.


  '정밀성'이 다수를 위한 물건을 만드는데 이용되기 시작하면서 영향력은 커지기 시작했고, 필요성은 '정밀성'을 이끌었고 편리성과 이익은 '정밀성'을 더 고도화시켰다.


  산업 혁명을 이끌었던 와트의 증기기관도 총기나 대포를 만들었던 윌킨슨의 정밀한 신기술을 바탕으로 가능했다.


  정밀한 기계가 생산될수록 허용 오차는 점점 줄어들었고 노동자와 기술자들의 가치는 하락하기 시작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기계의 정밀성은 인간의 손끝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정밀함의 한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1800년대 전장에서 이용되었던 총은 기술자들의 손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총이 망가지면 수리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부품들을 동일하게 제작할 수 있다면 총이 고장 나도 쉽게 수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됨에 따라 정밀하고 똑같은 부품을 제작하여 총을 조립하게 되었다. 덕분에 군인들은 부품을 갈아끼우기만 하면 고장 났던 총도 쉽게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서로 똑같이 고도의 완벽한 '정밀성'을 추구했지만 정반대의 방법을 구사했던 헨리 로이스와 헨리 포드의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름도 똑같이 헨리이다.


  헨리 로이스는 만들기 어렵고 비싸더라도, 훌륭한 자동차의 가치를 알아보는 극소수의 사람들을 위한 최고급 자동차를 만들려고 했고, 반면 헨리 포드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최소의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들고자 했다.


  헨리 로이스는 최고의 기술자를 모았고 정성을 들여 수작업으로 하나하나 자동차를 만들었다. 오랜 시간을 들여 장인의 손에서 정밀성으로 완성된 자동차는 완벽했고 돈이 많은 귀족들은 자동차에 열광했다.


  헨리 포드는 동네 도축장에서 도축된 돼지가 말끔히 해체되는 과정에서 영감을 얻은 일명 '생산 라인'에서 정밀하게 제작된 부품을 단계별로 조립하며 대량으로 자동차를 생산했다.


  마케팅의 천재 롤스와 손잡은 로이스의 자동차는 롤스로이스라는 이름으로 성공했고 자동차의 절정, 최고 자리를 잡으며 자동차계의 신화가 되었다.


  포드는 자동차를 생산하는데 많은 기술자나 장인이 필요하지 않았다. 조립라인에서 단순히 부품을 끼울 노동자들만 있으면 생산이 가능했고 자동차의 가격은 획기적으로 낮아졌다. 자동차는 중산층에 날개 돋친 듯이 팔렸다.


  로이스는 부자가 되었지만 포드는 갑부가 되었다. 이제 조립 라인이라는 방식은 자동차뿐만 아니라 여러 산업계로 영향을 미치며 대량 생산 시스템으로 정착되고 확장되었다.


  제트 엔진까지 발명하게 된 인류는 하늘을 날고 우주로 향하기 시작했다. 허용오차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점점 더 줄어들고 기계화와 자동화는 시대의 흐름이 되었다.


  정밀한 기계의 도입은 산업 현장에서 불필요한 인력의 해고로 이어졌고, 오늘날 현대 기술의 분야에서 노동자들이 할 일은 상대적으로 더 줄어들고 있다.


  현대의 정밀한 기기들이 요구하는 허용 오차는 기본적으로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실수는 허블 우주 망원경 제작에서 일어났다.


  허블 우주 망원경을 만드는 과정에서 계측 막대의 작은 오류가 있었다. 미미한 실수였지만 1990년 우주에서 보내온 이미지들은 쓸모가 없었고 천문학적 예산이 들어간 허블 우주 망원경은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 후 우주로 직접 가서 허블 우주망원경을 수리했고 사용 연한을 넘긴 오늘날까지도 허블 우주 망원경은 역할을 잘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에게 편리함을 주는 GPS, 손에 들고 다니는 휴대폰도 고도 의 '정밀성'을 추구한 결과물이다.


  현재의 기술은 아인슈타인의 중력장의 증거가 되는 중력파를 발견할 정도의 정밀성에 이르렀다. 1991년 중력파 관측소, 즉 라이고가 탄생했고 2016년 역사상 가장 정밀한 계측 장비를 이용하여 중력파를 발견했다.


  또한 광자의 직경의 1만 분의 1까지 측량할 수 있으며 지구에서 4.3광년 떨어져 있는 켄타우루스자리의 알파성 사이의 거리를 사람 머리카락 두께 이하의 오차로 측정할 수 있다. 이것이 정밀성이다.


  인류는 '정밀성'의 극한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든다. 양자의 단계를 넘어서는 '정밀성'은 양자적 특징으로 인하여 오히려 '모호성'이 된다고 한다.


  저자의 아내가 일본인이라 그런지 일본 이야기가 나오는데, 쓰나미가 덮쳐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은 무너지고 녹이 슨 채로 남겨졌을 때 대나무밭은 멀쩡했다고 한다. 정밀성은 영원하지 않지만 정밀하지 않고 불완전한 대나무는 살아남았다.


  오늘날 인류는 고도의 정밀성에 집착하고 있지만 자연의 질서 역시 똑같이 중시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무리 인류가 고도의 정밀한 문명을 이루었어도 자연과 균형을 이루지 않는다면 자연이 세상을 장악해서 인간이 만든 모든 '정밀성'의 발명품을 휘감아 버릴 날이 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현재 세계는 코로나19로 사상 초유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에 의해 전 세계는 무너졌고 소위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던 나라들도 예외는 아니다. 다행히 우리나라의 방역은 현재까지 세계의 모범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이 추구했던 정밀성은 무의미해 보이기도 하지만,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인류는 다시 한번 완벽한 '정밀성'에 도전해야 한다.


  코로나19가 진정되고 난 후, 지구상의 우리는 인간의 '정밀성' 추구와 자연을 어떻게 조화시키며 살아나가야 할지, 삶의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공계로 진로를 정한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정밀하지 않은 자연 앞에서는 모든 것이 비틀대고 아무것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정밀하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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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 카를로 로벨리의 존재론적 물리학 여행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이중원 감수 / 쌤앤파커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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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그러면 실재는 무엇일까?

저자 카를로 로벨리는 이 실재를 찾아, 그리스의 밀레토스 학파에서 이어온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으로부터 출발한다.

 

 

 '세계를 이루는 무한히 많은 물질들도 오로지 원자의 조합에서 파생된 것이다. 원자들이 응집할 때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원자의 모양과 배열 그리고 그것들이 조합되는 순서입니다.'

 

 '원자들의 끝없는 춤에는 완결도 목적도 없습니다. 자연계의 다른 모든 것들처럼 우리도 이 무한한 춤의 수많은 산물 중 하나입니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기하학, 프톨레마이오스,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오, 뉴턴, 페러데이와 맥스웰을 거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을 연구한 과학자들의 노력과 발자취는 이 세상의 실재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사건의 과거와 미래 사이에는 어떤 중간 지대’, 어떤 연장된 현재가 존재합니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대죠. 이것이 특수 상대성이론이 발견한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절대적 동시성이 존재하지 않음을 이해했던 것입니다. 우주에는 지금존재하는 사건들의 집합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이죠. 우주의 모든 사건들의 집합은 하나의 현재가 다른 현재를 뒤따르는 지금들의 연속으로 기술될 수 없습니다.'

 

 

 사실 고등학교 물리 시간에 배운 뉴턴 물리학도 따라 가기 벅찼던 나를 비롯한 일반 사람들은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 이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저자 카를로 로벨리는 그것을 뛰어넘는 이론을 제시하며 새롭게 세계를 바라봐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세계는 장과 입자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단일한 유형의 대상으로 이루어 져 있다. 바로 양자장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공간 속을 움직이는 입자는 더 이상 없습니다. 시공 속에서 기본 사건들이 일어나는 양자장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이 세계는 이상하지만 단순합니다.'

 

 

 '양자 역학은 세계를 이런저런 상태를 가지는 사물로 생각하지 말고 과정으로 생각하라고 가르칩니다. 과정은 하나의 상호작용에서 또 다른 상호작용으로 이어지는 경과입니다. ‘사물의 속성은 오직 상호작용의 순간에만, 죽 과정의 가장자리에서만 입자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그것도 오직 다른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그러합니다. 그리고 그 속성들은 단 하나로 예측할 수 없으며, 오직 확률적으로만 예측할 수 있습니다.'

 

 

 미시 세계는 양자 역학으로 설명할 수 있고 거시 세계는 상대성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그 둘을 아울러 설명할 수 있는 이론에 대해 지금까지 과학자들 사이에 합의 된 무엇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저자는 그 둘을 포괄 할 수 있는 이론으로 양자 중력을 제안한다.

 

 

 '우리는 일반상대성 이론 덕분에 공간이 단단하고 고정된 상자 같은 것이 아니라 전자기장처럼 역동적인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들어 있는 우주는 움직이는 거대한 연체동물과도 같아서 눌려지고 비틀리고 합니다. 양자역학은 그러한 모든 장이 양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즉 섬세한 입자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공간은 중력장이므로 중력장의 양자가 공간의 양자’, 즉 공간의 입자적 구성 성분인 것입니다. 따라서 루프이론의 핵심 예측은 공간이 연속적이지 않다는 것, 무한히 나눌 수 없다는 것, ‘공간의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제논의 역설, 거북이와 아킬레우스와 경주를 한다. 거북이가 10미터 앞에서 출발한다면 논리적으로 아킬레스가 절대 거북이를 따라잡지 못한다. 아킬레스가 10미터를 따라가는 시간 동안 거북이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이 과정이 무한히 반복되기 때문에 결코 아킬레우스는 거북이를 따라잡지 못 한다. 그러나 이 논리는 틀렸다고 저자는 이야기 하고 있다. 어떤 것을 무한한 수로 모으면 무한이 된다는 생각이 참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공간이 유한한 크기의 알갱이로 이루어져 있기에 무한히 작은 걸음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킬레우스는 거북이에게 점점 다가가서 마지막으로 단 한 번의 양자도약만 하면 거북이를 따라잡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측하는 바로는 떨어지는 물질이 중심에 접근해가면서 이 반발력에 의해 점점 느려져, 아직 높은 밀도이기는 해도 무한한 밀도에 다다르지는 않게 됩니다. 응축되기는 하지만 무한히 작은 점으로 붕괴되지는 않는 것이죠.'



 '공간을 불변하는 용기로 생각하는 것을 버린다면, 시간을 실재가 펼쳐지는 불변하는 흐름으로 생각하는 것도 버려야 합니다. 현상들이 발생하는 흐르고 있는 연속적인 시간이라는 생각도 사라지는 것이죠.'

 

 

 과거에 과학책은 과학적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지식 책이라 분류되었다면 요즘은 그 패턴이 변해가고 있는 것 같다. 과학적 이론의 의미를 찾고 상호 연결성, 관계성을 이야기 하는 책이 많이 나오는 것 같고 이 책도 그런 흐름의 책이라고 보인다. 지식이 따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과의 연결성, 지식끼리의 통합이 이 시대 과학의 나아갈 방향이고 그것이 이 세상의 실재를 제대로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인간의 본질은 신체의 물리적 구조가 아니라 그가 속한 개인적, 가족적, 사회적 상호작용의 연결망에 의해서 주어집니다. 우리는 상호적 정보의 풍부한 연결망 속의 복잡한 매듭입니다.'

 

 

 '양자중력이 드러내 보여주는 세계는 새롭게 기묘하고 신비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단순하고 투명한 아름다움을 지닌 정합적인 세계입니다. 그것은 공간 속에 존재하지 않으며 시간 속에서 펼쳐지지 않는 세계입니다. 상호작용하는 양자장들로만 이루어진 세계, 그 장들이 무리를 지어 상호작용하는 조밀한 연결망을 통해 공간, 시간, 입자, 파동, 빛을 만들어내는 그런 세계입니다.'

 

 '무한이 없는 세계, 최소 크기가 존재해서 그 이하로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무한하게 작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 공간의 양자가 시공 거품과 섞이고, 세계의 영역들 사이의 상관관계를 엮어내는 상호적인 정보로부터 사물의 구조가 태어납니다.'

 

 카를로 로벨리는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저자의 양자중력에 관한 이론들이 모든 물리학자들이 동의하는 내용은 아니라고 했다, 또한 확실한 사실들에 관한 책도 아니며 미지를 향해 나아가는 모험에 관한 책이라고 했다.

 

 중력은 장이고 빛을 휘게 만든다는 사실을 이해하려 애쓰고, 시공간의 사라짐의 의미를 이해하려 애쓰고 있는 나의 모습에서, 매일 떠오르는 해를 보며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애썼을 과거의 사람들을 본다.

 

 사실, 책을 덮고 나서도 근본적인 나의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세상의 존재 의미, 우리가 사는 지구의 존재 의미, 그리고 많은 생명체와 인간의 존재의 의미는 무엇일까? 양자중력까지 이해한다면 답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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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찾아서 - 뇌과학의 살아있는 역사 에릭 캔델 자서전
에릭 R. 캔델 지음, 전대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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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에릭 캔델은 유대인으로 빈에서 태어났으나 나치가 빈을 점령한 이후 홀로코스트를 피해 부모님과 미국으로 망명하여 어린 시절을 거쳐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를 했다그러나 빈에서의 기억이 평생 삶의 기본 바탕이 됨을 스스로 느끼며 인간 정신의 근원을 파헤치고자 정신분석을 공부하고 의사가 되려했었고다시 세포부터 연구하고 실험하며 기억을 근원을 밝혀가는 과학자가 되었다시대의 학문적 흐름을 따라가며 뇌와 기억에 대해 연구하여 기억이 저장되는 신경학적 메커니즘을 밝혀내며 2000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나는 역사가가 되려고 하버드 대학에 입학했고 정신분석가가 되려고 그곳을 떠났으나결국 역사학과 정신분석학을 다 버리고서정신에 대한 참된 이해에 이르는 길은 뇌의 세포적 경로들을 거쳐야 한다는 나의 직관을 쫒았다나의 직감나의 무의식적 사고 과정그리고 당시에는 까마득히 멀게 들렸던 주위의 경고가 나를 이 삶으로 이끌었고나는 이 삶을 한없이 만끽했다.’(473
  
 
  이 책은 노벨상 수상 기념으로 쓴 자서전인데 세 가지 측면으로 바라보며 읽을 수 있다먼저에릭 캔텔의 연구과정에 대해그리고 수 십 년간 뇌와 기억 그리고 정신의학에 관한 학자들의 연구에 대한 정리마지막으로 에릭 캔델 개인의 가족사와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해 가는 과정이다그래서 에릭 캔델의 개인적 이야기뿐만 아니라 생물학과 정신의학이 서로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기까지의 여러 학자들의 주장과 현대 정신의학에 이르기까지의 바탕이 되었던 연구과정들을 살펴볼 수 있다.
  

  
유기체의 환경과 학습은 기존 경로들의 효율성을 변화시키고 따라서 새로운 행동 패턴을 표출시킨다우리들이 군소에서 발견한 것들이 이 견해를 뒷받침했다가장 단순한 형태의 학습에서학습은 미리 준비된 풍부한 연결들 중에서 몇몇을 선택적으로 강화한다.’ (229)
  
우리는 뇌 속 시냅스의 개수가 고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최초로 확인할 수 있었다그 개수는 학습에 의해 바뀐다더 나아가 장기기억은 해부학적 변화가 유지되는 만큼 지속된다. (중략단기기억 변화와 장기기억 변화의 메커니즘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단기기억은 시냅스 기능의 변화를 일으켜 기존 연결들을 강화하거나 약화한다반면에 장기기억은 해부학적 변화를 필요로 한다.‘ (243)
  
인간의 뇌에만 고유하게 존재하는 단백질은 놀라울 정도로 극소수이고인간의 뇌에만 고유한 신호 전달 시스템은 전혀 없다생각과 기억의 기반을 이루는 생명까지 포함해서 모든 생명은 똑같은 구성 요소로 되어있다.’ (266)
  
장기기억 형성을 위해 유전자가 켜져야 한다는 사실은 유전자가 단순히 행동의 결정자인 것이 아니라 학습과 같은 환경적 자극에 반응하기도 한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준다.
새 시냅스 말단들의 성장과 유지는 기억이 영속하게 한다그러니까 당신이 이 책을 읽고 나서 그 내용을 조금이라도 기억한다면그것은 당신의 뇌가 약간 달라졌기 때문이다새 시냅스 연결들을 성장시키는 능력은 진화 과정 내내 보존된 것으로 보인다예컨대 더 단순한 동물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인간에서 신체 표면 감각의 피질 지도는 감각 경로들에서 온 입력의 변화에 반응하여 끊임없이 교정된다.‘ (308)
  
생명공학 회사들의 등장은 기억상실의 고통이 경감되리라는 희망을 품게 했고 뇌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 새로운 직업이라는 진로를 열어주었지만다른 한편으로 인지 향상과 관련된 윤리적 문제들을 야기했다정상적인 사람의 기억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바람직한가?’ (368)
  
학습된 공포와 선천적 공포가 근본적으로 구별된다세포학과 유전학을 결합한 접근법으로 우리는 학습된 공포를 제어하는 중요한 신경 회로를 찾아낼 수 있었다이 발견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공포증 등에 수반된 학습된 공포를 억제하는 약물의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 (384)

어떻게 특정 뉴런들의 점화가 의식적 지각의 주관적 요소로 이어지는 지에 대하여 우리는 가장 단순한 사례에 대해서조차 아직 아는 바가 없다심지어 어떻게 뇌 속 전기신호와 같은 객관적 현상이 고통과 같은 주관적 경험을 일으키는지에 대한 적절한 이론을 가지고 있지 않다
네이글에 따르면 과학은 방법론을 크게 바꾸지 않는 한주관적 경험의 원리들을 확인하고 분석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방법론적 변화가 없는 한 의식을 감당할 수 없다.’ (417)
  

‘1980년대 이후 정신과 뇌를 결합하는 방식은 점점 더 명확해졌다그 결과 장신의학은 새 역할을 받아들였다정신의학은 현대 생물학 사상의 자극제인 동시에 수혜자가 되었다현재 우리는 각각의 모든 정신 상태는 뇌 상태이며각각의 모든 정신장애는 뇌 기능 장애라고 이해한다.’ (464)
  
우리가 지금 있는 곳에서 우리가 있고자 하는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 문턱을 넘으려면 뇌를 연구하는 방식과 관련한 커다란 개념적 전환들이 일어나야 한다.’ (466)
   
  복잡한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정신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효율적으로 학습하는 것에서부터 정신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들은 일반 사람들도 뇌 과학과 정신의학에 관심을 갖도록 하고 있다
  
  주변에는 집중력항우울증항공항장애 등 정신관련 약을 복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정신적 과정은 생물학적인 문제인 동시에 화학적 문제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생명공학 관련 기업들이 탄생하였고 새로운 약들이 개발되면서 정신관련 치료제의 사용이 증가하게 된 것 같다
  
  그러나 저자도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아직까지 인간의 의식과 기억을 비롯하여 정신 과정이 정확히 밝혀지지 못한 상태다그리고 현재까지의 방법과는 다른 획기적이고 새로운 연구 방법을 개발해야만 한 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는 말에 공감한다.
  
  또한 뿌리와 정체성을 유지해가기 위해 노력하는 유대인들의 모습과 과학자인 에릭 캔델도 자신이 타고난 핏줄과 역사에 대해 함께 하며 고민하고 유대인을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것을 보며 우리 민족과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우리의 정치사회철학문화와 학문의 깊이가 깊어지고그것을 후손들에게 면면히 전달할 수 있게 되는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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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마이클 셔머 지음, 류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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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생각의 지평을 넓혀준다. 그동안 회의주의자라는 단어에 조금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어떤 상황에 접할 때 다른 사람들처럼 그냥 받아들이지 못하고 질문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회의한다는 것은 이성이 살아있다는 의미이며 과학의 중요한 부분이며 어떤 현상을 바라 볼 때 판단의 핵심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여러 사회 현상들과 역사적 사건이라 할 만한 몇 가지 예를 깊이 있게 파고들며 사람들이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과정을 살피고 있다. 그리고 첨단 과학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를 파헤쳐간다. 저자가 제기하는 물음에 정답은 없겠지만 풍부한 내용을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짐과 동시에 저자의 회의주의적 관점에 많은 공감이 간다.

 

 

과학과 사이비 과학의 차이는 무엇인가?

 

  자연을 기술하는 과학은 시험을 통해 그 작용이 법칙으로 확증되거나 반박된다. 뉴턴 이전에는 중력법칙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중력은 존재했다. 유령은 유령을 믿는 자들이 기술한 것을 벗어나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이비 과학은 뒷받침하는 증거나 개연성이 없으면서도 과학인양 제시되는 주장을 일컫는다고 한다.

 

  또한 과학이 진보적인 까닭은 과학적 패러다임이 실험, 확증, 반증을 통한 지식의 누적에 의존하기 때문인 반면 사이비 과학, 비과학, 미신, 신화, 종교, 예술이 진보적이지 않은 까닭은 과거를 토대로 지식의 축적을 허용하는 목표나 메카니즘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90)

 

변성된 의식상태란 무엇인가?

 

  신비적인 경험이나 영성 경험은 환상과 암시의 산물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변성된 의식 상태는 우리 자신과 세계에 대한 지각이 심대하게 변성된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는데 초월상태라고도 부른다. 임사체험이나 유체이탈의 경험이 아무리 극적이라고 해도 정상적인 의식 상태일 때와 뇌파 기록이 오직 양적으로만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한다.

 

  종교, 신비주의, 영성주의, 뉴에이지 운동, ESP와 심령의 힘에 대한 믿음의 배후에서 작용하는 원동력 중에는 세계를 초월하고자 하는 욕망, 지금 여기를 뛰어넘어 보이지 않는 것을 관통해 감각 너머의 다른 세계로 들어가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151)

 

외계인에게 납치된 사람들

 

  그들은 전혀 미친 사람도, 무지한 사람도 아니다. 분별 있고, 이성적이고, 지적인 사람들이었다. 단지 비합리적인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데 그들은 그 경험을 진짜로 겪었다고 확신했다고 한다.

 

  납치 현상은 특이하게 변성된 의식상태의 산물이며 외계인과 UFO를 다룬 영화, 텔레비전 프로그램, 공상과학 소설로 넘쳐나는 문화적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곧 그것은 플러스 되먹임 고리로 들어가 완벽한 외계인 납치 이야기로 전환하게 된다고 한다.

 

  이런 납치 기억을 떠올린 사람들은 경험한 직후가 아니라 여러 해가 지난 후 최면 상태에서 기억해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기억은 항상 왜곡, 삭제, 첨가, 어떤 때는 완전한 허위를 수반하는 작화 현상을 일으킨다고 한다. 또한 최면을 걸어 변성 상태에 이르게 한 뒤, 거짓 기억을 심는 일은 무척 쉽다고 한다.

 

마녀 광풍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까닭은?

 

  과학이 미신을 몰아낸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초상적인 것이나 기타 사이비 과학적인 현상을 믿는 사람들은 제 겉모습을 과학적인 것처럼 꾸미려고 애쓴다. 왜냐하면 과학이 바로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꾸민다고 해도 그들은 여전히 자기네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199)

 

아틀라스의 저자 아인랜드와 개인숭배

 

  진리의 추구보다 진리를 더 중요하게 여길 경우, 탐구의 과정보다 탐구가 내놓은 최종 결과들을 더 중요하게 여길 경우, 지성적 탐구가 개인 숭배의 기초가 되어 버릴 경우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교훈을 던지는 사례였다.(216)

 

  랜드의 객관주의 철학에 나타난 컬트적인 흠은 이성의 사용, 개인성의 강조, 사람은 마땅히 합리적 자기 이익을 동기로 해야 한다는 점, 자본주의가 이상적인 체계라는 확신에 있는 것이 아니다. 객관주의의 오류는 바로 이성을 통해 절대적인 지식과 궁극의 진리에 이를 수 있으며, 따라서 절대적으로 옳고 그른 지식이 있고, 절대적으로 도덕적이고 비도덕적인 생각과 행동이 있다고 믿는 데에 있다. 만일 당신이 그 원리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당신 추론에 결함이 있는 것이다. 당신의 추론을 수정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집단의 일원이 되지 못한다. 개혁되지 않는 이단자들을 해결할 최후의 방법은 파문이다.(222)

 

  인간의 행동에도 절대적으로 옳은 행동은 없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소유는 한때 도덕적이라고 생각되었지만, 지금은 비도덕적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런 변화가 일어난 까닭은 여성에 대한 소유 의식이 비도덕적임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니라, 여성이 남성에게 속박될 때 여성에게 그것을 거부할 권리와 기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사회가 깨달았기 때문이다.(233)

 

  다른 모든 인간의 활동으로부터 과학을 구분하는 것은 과학이 내린 모든 결론이 본질적으로 시험적이라는 것이다. 과학에서는 최종적인 정답이란 없다. 과학은 일련의 믿음들에 대한 긍정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박과 확증에 열려 있는 시험 가능한 지식 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탐구 과정이다. 과학에서 지식은 유동적이고, 확실성은 잡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결정적으로 과학을 제약하는 것이며, 또한 과학이 가진 가장 큰 힘이기도 하다.(234)

 

진화론과 창조론

 

  기독교는 창조과학을 내세워 미국 학교에서 진화론 대신 창조론을 가르치도록 하려는 시도를 했다. 과학 공동체는 과학의 정의를 정립하며 창조과학이 과학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함을 들어 재판에서 이겨 학교에서 과학으로서 진화론을 계속 가르칠 수 있게 하였다.

 

  신화는 과학과는 전연 무관한 인간의 심리적이거나 영적인 본성의 필요를 충족시킨다. 신화를 과학으로 바꾸거나, 과학을 신화로 바꾸는 것은 신화에 대한 모욕이며 과학에 대한 모욕이다.(243)

 

  창조과학을 과학으로 가르치게 되면 심각한 피해가 생긴다. 종교와 과학의 경계가 모호해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과학적 패러다임이 무엇이며 어떻게 적절하게 적용될 것인지 학생들이 이해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창조론의 바탕에 깔린 가정들은 진화생물학뿐만 아니라 모든 과학에 대해 양면 공격을 가하고 있다.(265)

 

모든 가능한 세계 중에서 최선의 세계를 과학이 찾아낼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일 이 세계가 가능한 모든 세계 중에서 최선의 세계가 아니라 할지라도 조만간 그렇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언제까지 버리지 않는다. 그런 희망이 종교, 신화, 미신, 뉴에이지의 믿음이다. 우리는 과학만큼은 그런 소원 성취식 희망을 넘어서있을 거라고 기대한다.(470)

 

  그러나 과학자들 또한 그런 희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의 프리초프 카프라, 어느 물리학자의 신앙의 존 폴킹혼, 영생의 물리학 : 현대 우주론, , 그리고 죽은 자의 부활의 프랭크 티플러 등이 그것을 증명한다고 한다.

 

 

왜 이상한 것을 믿을까?

 

  사회 문화적으로 여러 가지 이유를 찾아볼 수 있지만 저자는 그보다 더 깊이 들어가 개개인의 마음과 가슴 속으로 들어가 보아야 한다고 한다. 몇 가지 동기들이 있을 것이고 이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고 한다.

 

크레도 콘솔란스(내 마음을 달래주기 때문에 믿는다) - 믿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느낌이 좋다, 편안하다,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504)

 

즉석 만족 이상한 것들 중에는 즉석 만족을 주는 것이 많다. 심령술사 전화 상담 서비스가 그 예다. 기존의 심리 치료는 격식을 따지고, 비싸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506)

 

단순성 과학적 설명은 십중팔구 복잡하고, 알아들으려면 훈련과 노력이 필요하다. 반면 운명과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미신과 믿음은 삶의 복잡한 미로를 시원하게 관통하는 단순한 길을 제공한다.(508)

 

도덕과 의미 대부분 사람들은 과학이 무한하고, 보살핌이 없고, 무목적적인 우주를 제시하면서 오직 차갑고 잔인한 논리만 내놓는다고 생각한다. 반면 사이비 과학, 미신, 신화, 마술, 종교는 도덕적 의미에 대해 단순하고 즉각적이고 위안이 되는 규범을 제공한다고 느낀다.(509)

 

영원히 마르지 않는 희망 -

  저자는 앞의 몇 가지 이유를 한데 묶어 인간은 희망을 갖는 종이기 때문에 이상한 것을 믿는다고 결론 내린다. 그래서 때로는 비현실적인 약속을 붙들려 하거나, 무지를 고집하거나 타인의 삶을 가벼이 생각하거나 미래의 삶에 집착하며 현재의 삶을 놓쳐버리기도 한다고 한다.

 

  한편 저자는 또 다른 희망을 이야기한다.

  인간의 지적인 능력이 측은지심과 더불어 무수히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각자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으리라는 희망, 역사의 진보가 계속 이어져 보다 큰 자유를 향해 나아갈 것이며, 모든 사람들을 보듬어 갈 것이라는 희망, 사랑과 공감과 아울러 이설과 과학도 우리가 우주를 이해하고, 세계를 이해하고,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바로 그것이다.(511)

 

  상상을 초월하는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비리에 국민은 분노하지만 그런 비리와 잘못을 저지르고도 반성은커녕 잘못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뻔뻔함에 더 분노가 일어나다. 또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겠다고 태극기 집회를 이용하는 사람들이나 하루 일당이 절실해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과 믿는 바에 따라 태극기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이상한 것을 믿는 사람들일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정리 하던 도중인 310일 탄핵이 만장일치로 가결되었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우리 국민이 인간에게 주어진 특권인 이성을 가지고 회의주의자로 거듭나고 모두가 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가기를 바란다. 우리에겐 영원히 마르지 않는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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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안의 신 - 진화론 시대의 종교에 대하여
존 호트 지음, 김윤성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과학과 종교의 화해 가능성에 관심이 있던 차에 이 책을 읽고 그동안 막연하게 했던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이 책의 결말이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라 위안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이 번역되어 나온 것도 10년이 넘었다. 최근에 전개되는 과학과 종교의 양립 가능성에 대한 논의들이 궁금하다.

 

  현대 과학은 종교를 불필요한 존재 아니 오히려 사회의 악으로 보는 경향이 있고, 기독교 근본주의는 창조과학 또는 지적설계론을 내세워 과학적 발견을 인정하지 않고 공격하며 고립된 종교를 형성하고 있다.

 

  저자 존 호트는 진화론에 집중하며 과학과 종교가 함께 공존할 때 생명 현상에 대해 더 잘 이해 할 수 있고 우리가 존재하는 이 우주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풍요롭게 창조해나갈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진화론적 유신론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내 관심에 따라, 창조과학이나 지적설계론의 주장에 대한 저자의 비판보다는 진화론적 유물론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는가에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

 

  과학과 종교의 공존을 위해서는, 과학과 종교에 각각 적합한 독법이 있으며 자연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 차원에서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연을 읽는 독법과 종교에 접근하는 독법을 식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과학과 종교적 신념 사이에 내재한 듯이 보이는 대부분의 갈등이 바로 문자주의로 기울기 쉬운 인간들의 성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훈련받은 오직 한 가지 차원에서만 읽으려는 고집을 부리기 때문이다.’ (58)

 

  각각의 독법을 익히고 자연적 사실과 종교적 차원의 차이를 이해한다면 과학과 종교는 서로 반목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과학을 모르던 시대부터 존재했던 종교는 주로 인간 역사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우주, 진화, 등의 과학의 발견은 오히려 종교의 폭과 의미를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점점 확대되었다고 현대 과학적 인식에서 종교적 의미를 끌어내리려 한다면 영적으로 공허하고 도덕적으로 무능하며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게 될 것이라고 한다.

 

  ‘과학이 존재하는 것의 모든 범위를 망라할 수 있다는 신념 자체는 비과학적인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 과학주의는 과학탐구의 논리적 결과가 아니라, 과학 안에서 아무런 근거도 갖지 못하는 가정일 뿐이다. (115)

 

  과학이 아무리 빨리 발전하고 이 세상에 대해 설명을 한다고 해도 인간의 삶은 과학과 비례해 더 깊어지지도 넓어지지도 또 행복해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종교는 아무리 과학적 발견이 크게 이루어진다 해도 필요하다.

 

  유물론에 입각한 다윈주의자들은 진화론적 설명으로부터 형이상학적 교의로 은근슬쩍 넘어가는 혼성적 독법을 구사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오늘날 헛된 궁극이론의 꿈은 다윈주의 주창자들뿐만 아니라 물리철학자들에게도 두드러진다. 다른 모든 범주를 막아버리려는 이런 망상은 창조과학자들의 창작물과 마찬가지로 진부한 독선으로 변질되기 마련이다.’(190)

 

  ‘과학적 탐구에서 신학적 형이상학을 성급하게 끌어들이는 것은 아직 남아있는 발견의 여지를 흐려 놓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명의 조직화된 복잡성에 내재한 형이상학적 뿌리로 더 깊이 파고들지 못하는 현대 진화론적 유물론의 무능함은 진정한 궁극의 설명을 추구하는 인간 정신의 욕구에 대한 모욕이다.’ (190)

  다윈 전쟁은 과학과 종교 간의 충돌이 아니라 서로 다른 형이상학의 충돌이라고 한다.

 

  ‘과학적 자연화의 방법이 근본적이고 궁극적이며 적합한 방식으로 모든 것을 남김없이 설명하리라는 생각 자체는 과학이 아니라 단지 신념일 뿐이다.’(240)

 

  과연 과학적 발견들이 우주의 지향점을 제시할 수 있는가? 과연 과학이 진리에 이르는 유일한 길인가? 과연 과학적 사실들이 진정한 실재를 향해 충분히 깊이 데려다 줄 수 있는가?이 질문에 대해 어느 누구도 확신에 차서 대답할 수는 없다.

 

  자연의 이해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이 과학의 역할이라면 이해 가능성에 내재한 무한한 깊이에 대한 감각을 지켜주는 것은 종교의 핵심 기능이다. 저자는 현재 존재하는 종교의 한계를 인정하고 신학은 과학적 발견 내용을 받아들여 종교가 다루는 내용을 확대해야 한다는 진화론적 유신론의 내용을 이야기 한다.

 

  ‘종교적 희망은 과학과 전혀 다르지만, 인간이 여전히 생성중인 거대한 우주의 일부라는 새로운 과학적 인식과 잘 들어맞는다.’(329)

 

  ‘신학은 이제야 신에 대한 생각을 진화의 커다란 규모에 맞추어 다시 되짚어 보기 시작하고 있다.’(332)

 

  ‘넓은 의미에서 보면 원죄는 지구에만 국한되는 병도 아니고 인간 세대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원죄란 단지 관련된 모든 존재의 실존에 수반되는 악의 불가피한 가능성을 상징한다. 원죄는 유한한 것들이 창조행위에 대해 보이는 필연적 반응이다.’ - 피에르 테이아르 드 샤르댕 (342)

 

  과학적 사실, 다윈의 진화론에 입각해 현재의 문제점이 많은 종교를 불필요한 것으로 파악하며 혼성적 독법의 실수를 범한 진화론적 유물론에 비해, 현재의 한계를 가진 종교가 과학적 사실을 받아들여 영역을 넓히고, 과학이 미쳐 못 건드리는 존재의 깊은 차원으로의 인도를 책임져야 한다는 진화론적 유신론이 훨씬 따뜻하고 희망적으로 다가온다.

 

  저자가 서양 사람이라 종교를 그리스도교라는 틀로 설명하는 한계는 있지만 진화론적 우주론에서 말하는 우주에는, 무질서와 고통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수렴되는 궁극적 목적이자 약속인 장대하고 아스라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말이 인상 깊게 다가온다. (아마도 진화론적 유물론자들은 인정할 수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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