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오후 3시에 맥주 한 잔> 

oil on canvas, 31.5×40.5cm, 2019


나른한 오후 세 시, 차가운 맥주 한 잔을 마신다.

하늘 끝 흐린 허공에 걸린 낮달은 고요히 한숨을 내쉬고,

기다림에 지친 그대는 책을 옆구리에 낀 채 골목길을 서성인다.

아직은 그때가 아니라고 속엣말처럼 혼자 웅얼거리며

시계 바늘만 제자리에 멈춘 채 고개를 까닥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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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꼬마 아가씨>

 Oil on canvas, 45.5×38.0cm, 2015


내 가슴 속에는 수줍은 꼬마 아가씨 한 명이 살고 있다.
볼은 통통하고, 살갗은 연한 핑크빛이다.
시선을 약간 아래로 깔고 있는 표정에는 호기심이 가득하다.
어떤 것에도 오염되지 않은 눈빛이 초롱초롱 반짝인다.
살짝 벌어진 입술은 오물오물 무엇인가를 갈망한다.


부드럽고도 당당한 몸매,
언젠가 어디선가 다가올 미래를 응시하며

마음속에 꼭 움켜쥐고 있는

어떤 존재에 대한 작은 물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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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버지 꽃>

Oil on canvas, 91.0×72.7cm 2014-2021


공원묘지의 비석들은 형형색색의 조화로 장식되어 있다. 생화를 갖다 놓고 싶어도 금세 시들어 버리니 공장에서 만든 플라스틱 꽃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돌아가신 분이 생화와 조화를 어찌 구별하실까 싶으면서도, 화공약품 냄새 풀풀 나는 플라스틱 꽃을 꽂을 때마다 어쩐지 죄송한 마음이 든다.


이 그림은 재작년에 아버지 산소에서 가져온 헌 꽃을 화폭에 담은 것이다. 새 꽃과 교체되자마자 쓰레기통으로 갈 뻔한 그 꽃을 슬그머니 가져왔다. 가족들 얼굴에 스쳐가던 껄끄럽고 어색한 표정들이 부담스러웠지만, 가끔은 모른 척 그 선을 살짝 넘어 보기도 한다.


한동안 작업실 한쪽을 장식하고 있던 꽃을 이제야 완성했다. <아버지 꽃>에는 대량 생산품처럼 소모되는 사물들을 다시 바라본다는 의미도 담겨 있고, 돌아가신 분을 기리고자 하는 딸내미의 애틋한 마음도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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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중국 아가씨들> 

Oil on canvas, 45.5×38.0cm, 20142015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행복한 순간을 의미한다.

이사 온 첫날, 서로에게서 묘한 감정을 느낀다. 마치 뒤바뀐 물건들처럼.

저녁마다, 달랑거리는 그릇 하나를 손에 들고 국수를 사러 나서는 리첸 장만옥.

그녀의 곱고 아리따운 자태를 감싸는, 각양각색의 중국풍 예스러운 복식들.

혼자 국수를 먹고 나온 차우 양조위는 홀린 듯 그녀의 섬세한 실루엣을 뒤쫓는다.

 

골목길 층계를 따라 봄바람이 일렁인다.

살랑살랑 그녀의 옷자락이 나부낀다.

수줍게 비껴가는 그 시절의 달뜬 꿈 하나

애잔한 풍경처럼 먼지 낀 창틀 너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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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덕포리, 여름 들녘에서>

Oil on canvas, 65.2×53.0cm, 2015

 

나는 수풀 우거진 강가로 간다

마른 장작불처럼 타오르는 태양을 향해

아무도 오지 않는 오후, 텅 빈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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