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석촌리 들판> oil on canvas, 2013

 

아침저녁으로 싸늘한 한기가 화실 안을 감돈다. 아직 외출할 때마다 꽁꽁 싸매야 할 만큼 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지만, 어딘가 부드럽고 순한 기운이 느껴지는 하루였다. 오늘은 새로 배달된 냉장고 때문에 괜히 마음이 어수선했다.


그동안 10년 넘게 사용해 온 냉장고는 모터가 완전히 고장 나 폐기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냉장고처럼 커다란 가전제품은 단순한 사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냉장고가 돌아갈 때마다 숨을 고르는 듯한 소리를 냈고, 늘 곁에서 내 일상을 묵묵히 지켜보며 함께 지내 온 존재였기 때문이다.


냉장고야 잘 가렴. 그동안 수고 많이 했어.


새로 배달된 냉장고는 헌 냉장고보다 훨씬 큰 사이즈였다. 특별히 대용량을 주문한 것도 아닌데 요즘 가정용 냉장고의 크기가 그만큼 커진 모양이다.

텅 빈 냉장고는 하얀 동굴 같다. 환한 광채에 둘러싸인 고래의 뱃속 같은 공간이다. 새 냉장고가 이제 내 허기진 위장과 인사를 나눌 차례이다.


앞으로 잘해 보자. 뭐든 열심히 먹어 두는 게 좋아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그날그날 먹을거리를 준비했다. 그만큼 시장에는 더 자주 가야 했겠지만 먹고 남아 버릴 것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냉장고의 크기가 점점 커지면서 쓸데없이 이것저것 사다 쟁여 두는 일이 많아졌다.


아직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빈 냉장고를 들여다보며 잠시 반성했다.


제발 이상한 소스 같은 것은 사 오지 말자. 대형 마트보다 동네 슈퍼를 더 자주 이용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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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지난 여름-양평의 들판> oil on canvas, 65.2X50.0cm,2013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볼 때마다 빈센트 반 고흐가 떠오른다. 그는 생의 절망 속에서 밤하늘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떤 꿈을 꾸었을까. 그것은 우주 과학자들이 허블 망원경을 들여다보며 학술적으로 고찰해 낸 행성이나 항성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그 별빛은 한 화가의 그림 속에서 삶의 구원이자 희망이었으며, 작은 위로와도 같은 속삭임이었다.

 

반 고흐가 생애 마지막 영감을 불태웠던 오베르를 찾은 건 벌써 오래 전의 일이다. 그때 그 시골 읍네 같은 인상의 작고 소박한 마을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 영상처럼 떠오른다. 휴가철이라 그런지 거리는 한적하고 아예 문을 닫은 가게들도 많았다. 파리에서부터 줄곧 기차를 함께 타고 온 탁은 영국에서 일어를 가르치는 일본인이다. 텅 빈 객차 안에서 어색하게 말문을 튼 낯선 여행자들은 고흐의 발자취를 찾아왔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금세 친구가 되었다.

 

오베르 기차역은 어느 시골의 작은 간이역 같았다. 그 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이라 할 수 있는 박물관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을 먹은 우리는 어쩐지 모두가 떠나버리고 듯 느껴지는 고즈넉한 마을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고흐가 그림으로 남겼던 장소들을 차례로 순례하기 시작했다.

 

평생 가난과 고독 속에서 고통 받았고, 단 한 점의 그림밖에는 팔지 못했던 불운의 화가 반 고흐. 그는 생애 마지막 기간이란 할 수 있는 10주 동안 오베르의 허름한 여인숙에 체류하면서 수많은 작품들을 제작했다. 70여점의 유화와 드로잉과 판화 수십 점. 이 정도라면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미친 듯이 작업에만 몰두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는 파리에 가서 동생 테오를 만나고 돌아온 직후, 그림을 그리러 나간 들판에서 자신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이틀 후, 사랑하는 테오의 가슴에 안겨 “슬픔은 끝이 없는 거란다”라는 말을 유언처럼 남기고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반 고흐가 마지막 숨을 거둔 라부 여인숙 3층의 작고 초라한 방에는 이제 덩그마니 의자 하나만 놓여 있다. 천장은 비스듬히 기우러져 있고, 햇볕도 잘 들지 않은 이 방. 어깨를 오그라들게 만드는 냉기만이 시린 외로움처럼 떠도는 방안을 둘러보다 왠지 먹먹해진 가슴에 두 눈만 끔뻑이고 서 있는 나. 한 예술가의 상처받은 영혼과 그 불꽃같은 흔적들. 이제 그 쓰라린 고통조차 최고의 상품으로 둔갑해서 소더비즈 경매시장을 뜨겁게 달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 한편의 개그 프로그램을 닮은 거대한 농담처럼 느껴진다. 어느 학자는 고흐에 대한 열광 속에는 현대인의 집단적인 죄의식이 깔려있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집단적인 죄의식! 위대한 예술가의 비극적인 운명에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을 전율케 하는 묘한 카타르시스가 있다. 그래서 ‘반 고흐 증후군’은 중독성이 강하다.

 

마을 공동묘지에는 ‘빈센트 반 고흐’라고 새겨진 사각형의 길쭉한 묘석이 누워 있다. 그 위를 수북이 덮고 있는 담쟁이덩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열광을 불러 모으고, 죽어서도 영원한 존재로 살아 있는 한 예술가의 무덤치고 이건 너무 소박하고 왜소하지 않은가. 그러나 한편으론 이렇게 수수하고 꾸밈없는 모습이야말로 가장 고흐답다는 생각도 든다. 평생 가난을 업보처럼 걸머져야 했던 고흐가 아닌가. 살아생전 거의 한 작품도 팔지 못했고, 대중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던 그의 무덤을 사후의 명성을 빌미로 새롭게 단장하고 위풍당당하고 꾸며 놓았다면 이 또한 황당한 일이 아니겠는가. 비록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남루한 차림의 빨간 머리 미치광이였으나, 붓과 색채와 활활 타오르는 예술혼으로 그 누구보다도 강렬하게 빛을 발하는 존재, 화려하게 포장하지 않아도 스스로 빛을 토해내는 인물...... 밤하늘을 바라보며 그가 꿈꾸었던 그 별과도 같은 존재가 바로 반 고흐라는 것을 어찌 부정하겠는가.

 

나의 기억은 다시 오베르 마을 쪽을 향해 걸어가다 돌로 만든 몽당연필처럼 생긴 작고 다부진 인상의 교회 앞에 다다른다. 반 고흐가 꿈틀거리는 윤곽선을 강조해서 그린 그림 속의 교회보다 훨씬 단단하고 오래된 모습이다. 교회 앞 안내판에는 반 고흐의 그림 ‘오베르의 교회’가 새겨져 있다. 한때 목사가 되기를 그토록 열망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아버지가 죽은 후 고흐는 거의 교회를 주제로 하는 그림을 그린 적이 없다. 그러나 이 순간 깨닫는다. 그가 오베르의 이 자그마한 성당을 그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생의 마지막 순간에 기적처럼 다시금 신의 존재가 떠오른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가 죽음을 생각하기 전에 죽음이 앞서 다가왔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 다시 마음이 아파진다. 오베르의 교회는 그 투박하고도 순정한 모습이 어딘가 고흐의 마음 빛깔을 담고 있다. 그것은 신의 집이면서 또한 그의 마음이다. 약간 납작 찌그러진 듯한 순결한 그 모습! 한 동네 아낙이 서둘러 교회 앞마당을 지나가고 있다.

 

고흐의 그림들은 출렁이는 물감의 파도와 사선으로 질주하는 구도와 짙푸른 하늘과 형형색색의 색 점들로 어지러울 지경이다. 사람들은 그의 그림 속에서 정신분열증 증세에 시달리는 한 인간의 몸부림을 찾고자 한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스스로 귀를 자르고, 들판에 나가서 그림을 그리다 말고 자신의 옆구리에 대고 총알을 발사한 반 고흐. 사람들은 안타까워하면서도 호기심에 귀를 쫑긋거린다.

 

그는 정말 미친 사람이었던 거야?”


왜 천재는 늘 어딘가 이상하고, 미친 것처럼 보여야 하는 것일까. 그들은 정말 정상인이 아니었던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 허구의 형상이 아닐까. 천재라는 존재. 그래서 그 머릿속이 궁금하고, 어딘가 나와는 달라야 할 것 같은 막연한 강박. 그런 상상 속에서 반 고흐라는 인물은 점점 더 미친 사람처럼,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사람처럼 인식되어 온 것은 아닐까.


감히 단언하건대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미친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놀랄 만큼 또렷한 의식과 집중력이 느껴진다그는 캔버스 앞에서만큼은 완전히 깨어 있었을 것이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순간, 어떤 생명의 신비가, 창조의 충동으로 가득 찬 자유로운 몰입이 그와 그의 그림 사이를 관통하고 있었다.


이제 그토록 맹목적으로 한 가지 일에만 매달리다, 그로 인해 파멸되는 인간은 이 지구상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존재를 더 오래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텅 빈 고독처럼 쓸쓸한 오베르의 교회당. 비둘기 대여섯 마리가 하늘에서 날아 온 성령처럼 날개를 저으며 부유하고 있다.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는 회랑의 맨 앞에는 성가대원들을 위한 나무 의자들이 정다운 친구들처럼 쪼르르 놓여 있다. 내내 여행길을 동행한 탁과 나는 거기에 나란히 앉아 천장의 둥근 지붕 안에서 푸드득거리는 새들을 바라본다.

 

“그쪽 친구 중에 고흐같이 예민하고 과격하고 고집 센 사람이 있다면 어떨 것 같아요?”

 

내가 탁에게 묻는다.

 

“몰라요. 당신은요?”

 

“나도 모르겠어요.”

 

잠시 침묵이 흐른다. 새가 날아오른다. 이번엔 탁이 먼저 질문을 던진다.

 

“종교 있어요?”

 

내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아뇨, 그쪽은요?”

 

탁도 고개를 흔든다. 우리 둘 다에게 신이 없다는 것, 신앙심이 없다는 것. 이런 것도 서로의 공통점이 될 수 있을까.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순결무구한 천상의 빛살에 스며든다. 그로인해 순해지고 맑게 정화된 느낌 속에서 우리는 입을 다문 채 오래오래 앉아 있다. 반 고흐는 이 교회에서 단 한번이라도 예배를 드린 적이 있을까. 여기 이 자리에 앉아 저기 교회당 출입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늦은 오후의 햇살을 바라본 적이 있었을까. 아득한 신화의 뒤안길에서 환영의 그림처럼 새들이 날아오른다. 8월이었다. 오베르 성당문 밖에는 한 여름 태양이 뜨겁게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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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js8049 2013-02-19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흐는 일상의 모든 것을 기록했던 아주 성실한 삶을 살았던 화가이다.
누가 그를 미쳤다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을 깨야 할 것이다.
왜냐면 후대들의 그려러니 짐작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 오산이기 때문에..
매 순간 치열했고, 다가오지 않은 모두한 것에 열정을 품었던 그 시대나 현재나
보이지 않는 곳의 고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고흐의 기록을 따라 갈 자 누구이던가!
바쁜 와중에도 좋은 그림, 좋은 글로 인도 해 준 작가님,화가님
그녀를 우연히 알게 되어서 너무 행복해요.
축복의 삶이 예술과 함께 곷 피고, 스며드는 나날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김미진 2013-02-20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시기를..
 

그림 <봄의 전령1-1> oil on canvas, 25F, 2013

 

휴일이다.

우리는 찜질방에 갔다.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그 사우나는 쾌적한 환경에 피트니스 룸까지 있어 우리 부부가 휴일마다 즐겨 찾는 곳이다. 찌뿌듯한 겨울 날씨는 사람들을 찜질방으로 불러들인다. 지하 주차장은 이미 만원이었다. 사이드 주차를 하려다가 운 좋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는 곧장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30분 후에 홀에서아니, 피트니스 룸에서 만나자.”

카운터 앞에서 표를 끊은 뒤 남편이 말했다. 번번이 늦게 나타나는 나를 기다리느니 먼저 가서 운동을 시작하겠다는 뜻이었다.

이번에는 안 늦을 테니 걱정 마. 조금 있다 봐.”

나는 남편에게서 가방을 받아 들고 손까지 흔들었다. 남자들은 사우나에 갈 때 거의 빈손이다. 내 남편도 마찬가지다. 참고로 말하면 그가 들고 온 커다란 가방 안에는 오로지 나를 위한 것들만 들어 있다. 샴푸, 때 타월, 트리트먼트, 목욕 소금, 화장품, 그리고 이런저런 잡동사니들.

목욕탕 안에는 시간을 잡아먹는 하마가 한 마리 살고 있다. 그 하마에게 꼬리를 밟히지 않으려면 시간 분배가 중요하다. 먼저 실내복과 수건을 챙긴다. 옷장으로 가서 재빨리 옷을 벗어 구겨지지 않게 접어 넣고, 앞으로 사용할 순서대로 물건을 정리한다. 체중계에 올라 몸무게를 재고, 간단히 샤워를 한 뒤 허브 탕에 몸을 담근다. 머리를 감고, 때비누로 몸을 문지르고, 다시 헹군다. 수건으로 몸을 닦고, 문 앞에서 발을 한 번 더 씻는다. 탈의실로 나와 실내복을 입고 머리를 한 번 더 털어 말린 뒤 얼굴에 로션을 바른다.

이 모든 과정을 나름의 초스피드로 해치웠지만, 그 사이 시간은 이미 30분을 넘기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찜질복을 입고 피트니스 룸으로 향했다. 남편은 벌써 러닝머신 위에서 땀을 빼고 있었다. 당연하다. 물속에서 대충 첨벙거리다만 나왔을 테니까.

왔어? 내가 매점에서 식혜 사왔지.”

남편이 거울 속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창턱 위에 식혜 한 통이 놓여 있었다. 동그란 플라스틱 통을 집어든 내 표정이 단박에 흐려졌다.

뭐야? 얼음이 별로 없잖아. 주는 대로 그냥 받아왔지?”

아냐. 얼음 좀 많이 달라고 했어.”

이건 냉장고에 있던 거잖아. 통에서 떠달라고 하지.”

부탁했지. 그런데 똑같다면서 그냥 주잖아.”

그래도 그냥 받아오면 어떡해? 나 식혜 얼음 좋아하는 거 알잖아.”

남편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나는 단 음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찜질방에서 먹는 식혜만큼은 양보하기 어렵다. 덥고 갈증 날 때 살짝 언 식혜를 조금씩 떠서 아삭아삭 씹어 먹는 그 맛. 나에게 얼음이 다 녹아버린 식혜는 그저 밍밍한 설탕물에 지나지 않는다. 찜질방 식혜에 대해 내가 까다롭게 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매점에서 일하는 아줌마다. 그녀는 늘 자기 방식대로 식혜를 한꺼번에 퍼서 냉장고에 보관해 두었다가 손님이 주문하면 차례로 꺼내 준다. 그리고 늘 같은 말을 한다.

똑같은 거예요. 통에서 막 푼 거나 냉장고에 있던 거나.”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식혜 통에서 막 퍼준 것은 국물 전체가 슬러시처럼 살짝 언 상태라 한참을 떠먹어도 그 느낌이 유지된다. 반면 냉장고에 있던 식혜는 윗부분에만 얼음이 떠 있을 뿐 금세 녹아버린다.

손님이 주문한 대로 주면 어디 덧나나. 잠깐 기다려봐. 내가 가서 더 받아 올게.”

나는 식혜 통을 들고 매점으로 갔다. 남편이 두어 모금 마신 뒤였지만 아직까지 소비자 권익을 주장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 생각하면서.

 

그림 <봄의 전령1-2>oil on canvas 73×60cm 2019

 

남녀 공용 홀과 피트니스 룸 사이에 있는 매점에는 두 명의 여자가 일하고 있다. 한쪽은 매점의 터줏대감 같은 나이 든 여자, 다른 한쪽은 주말에만 가끔 나오는 젊은 아가씨다. 마침 손님도 없이 한가했다.

문제의 인물은 당연히 나이 든 점원이다. 괜히 맞붙어 좋을 일이 없다고 생각한 나는 아가씨 점원 쪽으로 다가갔다.

미안하지만 식혜 얼음 좀 더 주실 수 있나요?”

나는 미소까지 띠며 공손하게 말했다.

리필은 안 되는데요.”

리필이 아니라식혜 얼음이 벌써 다 녹았잖아요. 통에서 조금만 더 떠 주세요.”

그건 안 되는데

아가씨 점원이 스낵 진열대 앞에서 물건을 정리하던 외통수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이건 냉장고에 있던 거잖아요.”

그래도 더 드릴 수가 없어요.”

내 말을 들은 외통수가 이쪽을 힐끔 돌아보았다. 귀신처럼 눈치가 빠른 여자다.

왜 그러세요? 뭐가 필요해요?”

그녀가 다가오며 물었다. 표정에는 어딘가 초등학교 교감선생 같은 분위기가 있다. 깔끔한 화장에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짐이 없다. 그에 비해 나는 후줄근한 실내복 차림에 욕탕에서 벌겋게 익어버린 얼굴이다. 괜히 기가 죽는다.

아니그게 아니라 식혜 얼음 좀냉장고에 있던 걸 주셨잖아요. 통에서 떠 주시면

말이 어쩐지 매끄럽게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뜻은 통했다.

똑같은 거예요. 주말에는 손님들이 밀려서 미리 떠 놓는 거예요.”

카운터 앞에 서 있는 손님은 나 하나뿐이었다. 냉장고 안에는 식혜 통이 스무 개쯤 들어 있었다.

주문할 때 손님이 통에서 떠 달라고 하면, 그렇게 해서 주면 안 되나요? 저는 얼음 많은 걸 좋아해서요.”

글쎄, 새로 푸는 거나 냉장고에 있는 거나 똑같다니까요.”

외통수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늘 듣던 대답이다. 맥이 빠진다.

벌써 다 녹았거든요. 저는 얼음 때문에 식혜를 먹는 건데요.”

내 목소리가 점점 더 궁색하게 들린다.

그럼 그냥 얼음만 좀 드려요?”

외통수가 얼음 나오는 기계를 가리키며 빈정대듯 물었다.

제가 말하는 얼음은 그게 아니잖아요.”

리필은 안 돼요. 다시 시키세요.”

다시 시키라고요?”

, 다시 시키세요.”

머릿속에서 뭔가가 달그락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어느새 가상의 스팀 분사기를 손에 들고 있었다. 지금 내가 생떼를 쓰는 걸까. 무식한 여편네처럼 어거지를 부리는 걸까. 생각해 보면 이것은 겨우 식혜 한 통을 둘러싼 쪼잔한 아줌마의 사소한 분노 심리학 같은 것이었다.

겨우 식혜 한 통 아닌가. 이런 일에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는 없다. 나는 그냥 돌아서려고 했다. 앞으로 살아가며 겪게 될 일들에 비하면 식혜 한 통쯤 포기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다른 손님들이 내 뒤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순간 외통수의 표정이 바뀌었다.

아이 참, 알았어요. 진작 말씀하시지. 다 똑같은 건데그럼 식혜 얼음만 조금 더 드리면 되는 거죠?”

초등학생을 달래는 듯한 말투였다. , 나는 사는 게 가끔 너무 힘들다!

다시 피트니스 룸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여전히 러닝머신 위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얼음 더 줬어?”

여기.”

나는 식혜 통을 창턱에 툭 내려놓았다. 남편은 아무 잘못도 없다. 그저 나를 위해 식혜를 사왔을 뿐이다. 그래도 괜히 못마땅한 눈초리로 그의 뒤통수를 흘겨보게 된다.

남편이 거울 속에서 슬쩍 내 눈치를 살폈다.

러닝머신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았다. 스팀 분사기의 방아쇠를 당기는 대신 찜질방 주인을 불러 항의를 해야 하나. 그렇다면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하는 거지. 머릿속에서 웅웅거리는 뜻 모를 소음들에 둘러싸인 채 나는 러닝머신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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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잠자리 소녀>
oil on canvas, 53.0×45.53.0cm, 2013

 

온종일 작업을 하다 보면 하루는 금세 저문다.
<잠자리 소녀>에 등장하는 잠자리는 오래전 설악산에서 그려 두었던 드로잉의 일부다. 파일 한쪽에 끼어 있던 것이 거의 20년 만에 유화 작품 속으로 다시 스며들었다. 시간은 그렇게, 잊힌 것들을 엉뚱한 자리에서 불러낸다.

제목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붙여볼까 한참을 망설였다. 그러나 문장은 끝내 풀리지 않았다. 어떤 그림은 말보다 먼저 와 있고, 말은 그 뒤를 따라오지 못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야기를 덜어낸 채, 그림만 남겨두기로 했다.

 

그림 <스카치 한 잔>

보드 종이 위에 유채, 2013

 

낮에 잠시 우체국에 다녀오는 길, 구름 낀 하늘이 낮게 내려앉아 있었다. 공기가 축축하게 가라앉아 마음까지 무겁게 눌러앉는 느낌이었다.

<스카치 한 잔>은 하드보드지에 유화로 그린 작은 소품이다. 유화는 수채화에 비해 물성이 무겁고, 오일을 동반하기 때문에 종이에 그냥 올리기에는 다소 까다로운 매체다. 젯소를 입혀 바탕을 만들 수도 있지만, 그 또한 세심한 조율이 필요하다. 그에 비해 문방구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하드보드지는 같은 종이 계열이면서도 비교적 안정적인 지지체가 되어준다.

컵 받침 위에 놓인 작은 유리잔 하나. 단순한 구성이지만, 그 안에는 생각의 층위가 켜켜이 쌓여 있다. 그림은 반복할수록 수월해지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난해함 속으로 들어가는 일에 가깝다.

   

그림 <지난여름, 덕포리에서>

oil on canvas, 65.2×53.0cm, 2013

 

작년에 다녀온 덕포리의 풍경이다. 한 차례 수채화로 옮겼던 장면을, 다시 유화로 불러냈다. 붓의 움직임을 최대한 남기고 싶었다. 마무리 단계에서 화면 어딘가 비어 있는 듯한 감각이 남아, 노란 물감을 짜 손가락으로 문지르듯 꽃 한 송이를 더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한 송이의 꽃을 품고 살아간다. 그것의 색이나 크기가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것이 놓인 자리, 그 자리에 얼마나 어울리는가의 문제일 뿐이다.

어느새 1월의 끝자락이다.
하루가 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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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진 <거울의 저편-2>

oil on canvas 53×46cm 2013

 

요즘은 셀카로 자신의 얼굴을 찍는 일이 하나의 유행이다. 팔을 뻗은 거리 안에서 사진이 잘 나오는 각도를 신경 쓰는 것은 물론, 자연스러운 포즈와 표정을 위해 자신만의 노하우를 만들기도 한다. 한 번은 인터넷에서 명화 속 자화상과 흡사한 모습으로 자신의 얼굴을 찍어 올린 사진을 본 적이 있다. 화가가 손으로 직접 그린 원화와는 또 다른 위트와 참신성이 느껴지는 아이디어였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비밀과 미스터리가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궁금한 것은 결국 ''일 것이다. 나라는 존재에 대한 신비, 그 비밀스러움, 알 것 같으면서도 도무지 알 수 없는 그 낯선 감각. 그래서 사람들은 수시로 어떤 매개를 통해 거기에 비친 자기 모습을 확인한다. 화장실 거울일 수도 있고, 식탁 위에서 밥을 먹기 위해 집어든 숟가락의 뒷면일 수도 있고,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 안의 반짝거리는 벽면일 수도 있다


때론 타인의 동공에 비친 내 모습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저 사람의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일까. 무엇 때문에 내 얼굴을 그토록 유심히 바라보는 걸까. 어딘가에 반사된 자기 모습을 은근히 훔쳐보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일 것이다.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 어쨌든 매일 보는 얼굴이다. 눈 코 입은 제대로 붙어 있는지 매번 확인할 필요는 없다. 화장은 들뜨지는 않았는지, 머리카락을 흐트러지지 않았는지, 그런 것도 궁금하겠지만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진실, 본질과 뿌리 같은 것이 더 궁금할 때도 있다.


냇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 매혹되어 그 자리에서 끝내 수선화가 된 사람이 있다. 바로 나르키소스다. 자기 모습에 매혹되어 결국 자신에게 갇혀버린 남자화가들 가운데에도 자기 얼굴에 집착했던 이들이 있었는데, 렘브란트와 빈센트 반 고흐가 대표적인 경우다.

 

<렘브란트 자화상> 1640년 작품

 

바로크 시대의 빛의 화가였던 렘브란트는 인간의 내면과 정서를 포착하는 데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비슷한 계열의 영화 중에도 유난히 진한 감수성을 전해오는 작품이 있다. 그것은 그 감독이나 배우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고유한 결이 살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렘브란트의 그림이 그러했다. 같은 얼굴을 그려도 그의 작품은 어딘가 달랐다.


그는 수시로 자신의 얼굴을 화폭에 담았다. 오랜 생애 동안 제작한 60여점의 자화상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화가로서 성숙해 가는 모든 내적 과정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그가 남긴 자화상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실험적인 단계’ ‘극적으로 분장한 단계그리고 솔직하고 자기 분석적인 단계.


위의 그림은 두 번째 단계, 화가로서 한창 성공의 가도를 달리던 시기에 그린 작품이다. 두둑하게 살이 오른 얼굴과 자만심이 어린 표정이 묘하게 매력적이다. 부드러운 벨벳 옷에는 족제비 털 장식이 달려 있고, 모자 역시 값비싼 털로 장식되어 세련되면서도 품위를 드러낸다. 매일 같이 작업에 몰두하는 화가라기 보다는 명망있는 귀족이나 성공한 상인처럼 자신을 치장한 모습이다.

 

<렘브란트 자화상>1661년 작품

 

그로부터 21년 후의 자화상은 전혀 다른 인상을 준다. 마음씨 좋은 노인, 혹은 소박한 성자를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화려한 모자 대신 흰 천을 두른 머리, 손에는 낡은 책이 들려 있다. 젊은 시절 사치스러운 삶을 살았던 그는 노년에 재정적 곤궁에 시달리게 되는데, 그런 환경 때문인지 그림 속 인물은 한층 순수하고 겸허해 보인다.


수수한 옷차림과 정면을 응시하는 눈빛에서는 인생을 어느 정도 통과해낸 사람의 평온함마저 느껴진다. 당시 네덜란드에 설탕이 처음 유입되었다고 하는데, 단 것을 지나치게 즐긴 탓에 치아 상태가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부실한 치아 상태를 가리기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두 작품 모두 입을 굳게 다문 채 그려졌다는 점도 흥미롭다.


<고흐의 자화상> 1886년 작품

 

얼굴은 다양한 회화 기법을 실험하기에 더없이 좋은 대상이다. 빈센트 반 고흐 역시 거울을 들여다보며 끊임없이 자신의 얼굴을 그렸다. 열악한 경제적 여건으로 모델을 구하기 어려웠던 이유도 있었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그의 자화상을 통해 화풍이 어떻게 변해갔는지, 어떤 전환을 거치며 점차 무르익어 갔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1886년 파리에 도착한 그는 4년 동안 40점에 가까운 자화상을 남겼다. 초기 작품은 네덜란드 거장들의 방식과 당시의 관습을 따르고 있다. 모자를 쓴 인물은 사색에 잠긴 듯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고, 어둠 속에서 떠오르는 얼굴은 렘브란트의 화풍을 연상시킨다. 다만 색채와 붓질은 훨씬 더 표현적이다.

 

<고흐의 자화상> 1886년 작품

 

같은 해에 그린 또 다른 자화상에는 이미 인상파 화가들의 영향이 드러난다. 짧은 붓질과 순수 색채에 대한 열정, 빛에 대한 민감한 감각이 엿보인다. 밀레를 좋아했던 소박한 화가였던 그가, 초기의 신고전주의 화풍과 인상파를 넘어 어느새 자신만의 표현주의 세계로 성큼 들어선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9세의 빈센트 반 고흐> 사진

 

모순된 감정과 불안 속에 잠겨 있던 10대 시절의 그는 다소 거칠고 무뚝뚝한 인상이지만, 동시에 제법 살이 오른 얼굴에 건강한 생기를 지니고 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고흐는 한동안 탄광촌에서 전도사로 지내다가, 마침내 자신이 바라던 그림의 길로 들어선다. 그러나 그가 선택한 화가의 삶은 그의 육체뿐 아니라 영혼까지 갉아먹는다.

 

1889년 아를의 겨울은 차고 매서웠다. 한기만이 감도는 1월 어느 날, 노란집으로 돌아온 고흐는 이젤 앞에 앉아 상처받은 자신의 영혼을 응시한다. 거울 속 세계는 현실을 닮아 있으면서도 또 다른 차원의 리얼리티로 구성되어 있다얇은 판유리 안의 또 다른 세계, 그 안에 있는 한 남자가 고흐를 바라본다. 그 시선 속에서 꿈과 희망, 갈망과 절망이 교차한다.

 


그림 <강가에서, 양평>

oil on canvas 61×50cm 2013

 

화가의 자화상은 자아 탐구에 대한 절대적인 욕구, 이 우주에 단 하나뿐인 내면의 거울이라 할 수 있다. 호수나 강가에 비친 수면 또한 이 세계를 비추는 또 다른 거울이다. 가끔은 그 위에 떠오른 존재의 떨림을 향해 묻게 된다. 잘 지내고 있는 거야? 그럭저럭 괜찮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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