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라일락> 유채, 1914, 마티스 (2012)


11월 13일 화요일.

어제는 너무 피곤해서 저녁도 못 먹고 그대로 쓰러져 잤는데, 오늘 아침에는 서울서 싸가지고 온 음식들도 진력이 나고 해서 미술관 가는 길에 42번가에서 내려 주위를 뺑뺑 돌며 아침 먹을 곳을 찾다가, '결국 여기밖에 없다는 결론이군.' 하며 맥도널드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행 중에는 맥도날드가 나에게 일종의 구세주 같은 장소다. 오죽했으면 로마에 갔을 때도 맥도널드를 중심으로 로마 지도를 다시 그려보았겠는가. 결코 맥도널드 광신자라는 소리는 아니다. 이런 발언, 정말 정말 한심하다 하실 분도 있겠지만 어느 면에서 음식이나 분위기에 대해 까다롭다 할 수 있는 내게 최선책은 아니라 해도 확실한 차선책은 될 수 있다는 거다.

 

맥도널드 메뉴판은 어느 나라를 가나 거의 비슷하지만 안에 든 내용물의 질적 차원까지 모두 흡사해 보이지는 않는다. 오늘만 해도 아침 메뉴 중 가장 푸짐한 빅 플레러를 시켰는데 3장씩이나 함께 나온 팬케이크 사이즈를 보고는 한국 맥도널드가 너무 야박했던 건 아닌가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커피도 모든 사이즈가 1달러라 해서 제일 큰 걸 시켜가지고 위층에 있는 테이블 있는 곳으로 올라가서 한참 먹다보니 나 혼자만 너무 많이 먹고 있는 건 아닌가 자책이 들 지경이었다.

 

주위 사람들이 음식에 대한 나의 탐욕스러운 태도를 훔쳐보며 이렇게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저렇게 많이 먹으면서 어쩌면 저토록 마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거지?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맙소사! 조만큼씩 밖에 안 먹으면서 어쩌면 저토록 살이 찔 수 있는 거지?'

 

기름으로 바싹 튀긴 포테이토 케익에 달걀 2개와 비프 페리가 들어간 고소한 머핀, 거기다 달달한 시럽까지 끼얹은 팬케이크를 단숨에 절반가량 먹어치웠다. 팬케이크를 반씩이나 남긴 건 남들 눈치도 약간 보였기 때문인데 솔직히 그 많은 걸 다 소화시킬 자신도 없었다. 사실 미술관에 한번 들어가면 언제 시간이 흘러가는지 몰라 끼니때를 놓치곤 한다. 산악인이 히말라야 같은 고봉에 도전할 때처럼 이번이 마지막 식사다 생각하며 가능한 잔뜩 먹어 두는 것이 상책이다. 다행히 내게는 1일 2식이 딱 적당하다. 몸 상태가 그러니 아침에 얼마큼 많이 먹든지 체중 변화에 상관이 없다. 아직껏 콜레스트롤 수치도 정상이고 다른 잔병도 없고...그렇지만 이제 뼈에 바람이 숭숭 들 나이가 되었다는 걸 감안해서 커피는 좀 줄여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요즘에는 가능한 블랙 커피는 사양하고 우유든 크림이든 잔뜩 들어 있는 커피만 마신다. 나이 든다는 것은 결국 이런 의미다. 음식을 먹을 때도 차츰 조심하게 되고, 매일 챙겨 먹어야 할 약들이 한 가지씩 늘어나는 것. 젊어서 여행을 다닐 때는 아무리 강행군을 해도 밤늦게까지 쌩쌩했는데 이제는 숙소에 겨우 기어들어 와 쫙 뻗어버리기 일쑤다. 여행도, 노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가능한 젊어서 맘껏 하는 게 최고인 것 같다. 

 

그렇다면 나이 들어서는 도대체 뭘 하면서 살라는 건가. 인생을 관조하며 느긋하게, 마냥 온실의 화초처럼 지내며 만보기나 차고 다니라는 건가. 아이고, 맙시사! 그런 성경 말씀 같은 소리는 사양하겠다. 현실의 이중성은 전혀 다른 설정과 적응 능력을 요구한다. 나이 들어 갱년기 오고 오춘기 증세 느껴지면 삶에 대한 중심축이 바뀐다. 그런데  가만히 앉아 지난 시절이나 반추하며 젊었을 때 나는 어쩌구저쩌구 그런 말이나 늘어놓으면서, 그 시절 훈장처럼 달고 다녔던 나의 오만을 또 다른 젊음의 오만 속에서 발견하고는 혼자 진저리나 쳐야한단 말인가. 아니지, 그럴수록 더 열심히 여행 다니고 꿈꾸고 공부하고 사랑하고, 온몸에 오만의 향기를 친친 감고 다니는 거야말로 가장 성스러운 생활 태도 아니겠는가.  자, 정신 건강을 위한 비타민 하나 꿀꺽 삼키고 다시 일어나 구겐하임으로 출발!

 

사진<구겐하임 미술관> (2012)

 

산에도 산 만을 위한 산이 있고, 미술관에도 미술관 만을 위한 미술관이 따로 있다. 일례로 제주도에 있는 한라산은 정말로 산 만을 위한 산이라 할 수 있는데, 정해진 시간까지 마지막 휴게소에 가야 정상 정복이 허용되고, 몇 시간 안으로  다시 밑으로 내려와 하산해야 한다는 식의 등산객 수칙 사항을 보고는 정말로 학을 뗀 적이 있다.

 

"히말라야도 몇 번씩 갔다 온 사람이 왜 이렇게 빌빌대는 거죠?"

 

함께 동행하던 사람에게 결국 한 소리 듣고는 나도 한 마디 덧붙였다. 

 

"히말라야는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도 되는 산이거든요. 거긴 가면서 음료수 파는 데도 있고 잠잘 곳도 있고 화장실도 있다고요!!"

 

사실 한라산은 히말라야를 하나로 압축해 놓은 듯한 그런 산이다. 정상 부근에 병풍처럼 둘러싼 절경은 여기가 정말로 한국인가 싶을 정로도 감탄을 자아낸다. 그 산 속에다 휴게소를 지었으면 좋겠다는 소리는 절대로 아니다. 그러나 나 같은 사람, 자연의 경관을 즐기고 관조하는 여유 따위, 부실한 신체 조건을 가진 사람에게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거다. 그래서 나는 죽을 때까지 다시는 백록담 꼭대가까지 못 올라갈 것만 같다. 그렇다면 미술관 만을 위한 미술관은 또 무슨 소리인가. 이런 말 함부로 했다가는 욕 들어 먹기 십상이지만... 사실 구겐하임은 내게 꽤나 불편했다. 그새 내가 너무 메트 미술관에 익숙해진 탓일까. 여기 와서 매일 같이 거기에 갔으니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마침 피카소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오로지 그들이 전시해 놓은 것 외에 구경할 만한 것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 우선 실망스러웠고, 편히 앉아 작품을 볼 수 있는 벤치조차 변변히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가 심혈을 기울여 설계한 나선형 구조의 미술관 건축물에 대해 사람들은 칭송을 아끼지 않지만 솔직히 그런 미술사나 건축학적 개론보다 내게는 그 경사로가 어지러울 뿐이었다. 겨우 어른 허리 보다 약간 높은 난간 밖으로 사람이라도 추락하면 어쩌나 싶어 내 마음이 다 조마조마 했다. 그걸 온종일 신경 바짝 세우고 지켜봐야 할 경비원들 신세도 참 딱하지 않은가.  

 

아쉽지만 사진 촬영도 일체 금물이었다. 관람객에게 허용된 범위는 일층에서 미술관 건물을 찍는 것 정도였다. 로비에 피카소 조각품이 딱 한 점 놓여 있었는데 언감생신 그 또한 카메라 렌즈에 담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이렇게 깍쟁이 같은 미술관이었다니! 서비스는 아주 야막하면서 챙길 건 다 챙기는 그런 식당 같은 미술관이라고나 할까.

 

전시 내용 중 피카소 작품 외에 선심 쓰듯 칸딘스키 작품이 3점 걸려 있었는데 그 옆으로 카페테리아가 바로 연결되어 있는 걸 보고는 또 한번 휴우,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화장실도 남녀공용 유니섹스라 하니 안에 들어가서도 어쩐지 불안하고. 피카소의 좋은 작품들을 많이 가져다 놓았느냐하면 그것도 약간 아리송하고....명품관에 들어가면 넓은 공간에 물건 몇 개만 전시되어 있는 그런 느낌이랄까. 왠지 위축되고 춥고 어지럽고 다리는 아프고...이렇게 먼 곳까지 와서 계속 불평불만만 늘어놓으면 누가 좋다 하겠는가. 사실 이번 전시가 내게는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나름대로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의외의 구석이 있었다. 그것만큼은 확실하다. 볼 게 별로 없으니 생각이라도 많이 해야 할터..

 

한번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잇따라 매듭이 풀리고 빗장이 벗겨지고 열쇠 구멍들이 돌아갔다. 그래, 바로 이거야 이거! 내가 이걸 찾아 여기까지 온 거야! 속으로 거듭 탄성을 지르며 손에 들고 있던 여행 노트에 스쳐가는 생각들이 달아날까 빠르게 메모를 했다. 물론 여기서는 다  밝힐 수 없는 내용들, 작업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과 아이디어 같은 것들이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별반 흥밋거리가 되지 않지만 본인에게만은 하늘이 열리는 듯한 그런 자각들. 내가 너무 부풀려서 표현을 했는지도 모른다. 글쓰기에 몰두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뻥쟁이가 될 때가 간혹 있으니까. 아무튼 어서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서 다시 작업실에 파묻히고픈 마음만이 간절했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 피카소는 나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다. 생각이 전혀 딴 데 가 있으니 피카소의 큐비즘이니 신고전주의 같은 게 눈에 들어올 턱이 있겠는가.

 

사진 <센트럴 파크89번가에서 바라본 맞은편 스카이라인> (2012)

 

사진 <센트럴 파크, 조깅하는 사람들> (2012)


뉴욕에는 사시사철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참 많다. 꽁꽁 얼어붙은 한겨울에도 짧은 소매와 반바지 차림으로 조깅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내 살갗이 다 덜덜 떨릴 지경이다. 실제로 12월 31일 자정이 되자마자 센트럴 파크에 모여 거의 다 벗은 차림으로 함께 조깅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목격한 적도 있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저러다 정말 쓰러지는 건 아닐까. 심장마비라도 오면 어쩌지. 그런 걱정이 들 만큼 나이 많은 노인이나 뚱뚱한 중년 부인들, 바싹 마른 아가씨들까지도 쉼 없이 달린다.

현대인이 집단적으로 앓고 있는 ‘건강 걱정 증후군’에 대해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는 도시가 바로 뉴욕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러너스 하이’라는 것이 과연 어떤 느낌인지, 조금은 궁금해지기도 한다.

헉, 헉, 헉….

 

구겐하임에서 나온 뒤 건너편에 있는 센트럴 파크로 들어가서 83번가까지 걷기 시작했다. 도착하자마자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거리에 다시금 투명한 햇살이 가득하다. 가을 단풍이 무르익은 센트럴 파크의 풍광은 뭐라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근사하다. 형형색색의 바스락거리는 낙엽들을 밟으며 천천히 걷다보니 한참 전에 개봉했던 리차드 기어와 위노아 라이더 주연의 '뉴욕의 가을' 영상 속으로 빨려든 듯 착각마저 들었다. 영화와 현실의 차이점에 관해서 애써 논할 필요는 없다. 그냥 이렇게 뉴욕 거리의 가을을 즐기기만 하면 될 뿐이니까.   


사진 <메트 미술관 이집트 관에서 바라본 센트럴 파크 가을 풍경> (2012)

 

구겐하임에서 메트까지는 고작 6블록 떨어져 있을 뿐이다. 미술관 앞 층계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해바리기를 하며 즐거운 오후 한때를 보내고 있고, 계단 바로 아래에서는 재즈 싱어들의 공연이 한창이다. 모두 나이 지긋한 흑인 남자들이었는데 주축 멤버로 보이는 할아버지뻘 되는 남자가 노래를 부리고 다른 사람들은 신나게 몸을 흔들며 화음을 넣고 있다. 더블베이스 반주가 깔린 비밥 스타일의 노래들은  아무 데에서나 쉽게 맛볼 수 없는 흥을 돋우며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불러일으킨다. 거리의 소음 조차 자연스레 배경 음악으로 녹아든다. 할 일도 없고, 갈 곳도 없고, 서둘러 끝마쳐야 할 숙제도 없는 한가로운 오후였다. 먼 이국에서 온 여행자는 가방을 내려놓고 층계 한쪽에 가만히 주저 앉았다. 살갗을 간질이는 가을 햇살을 만끽하며 음악에 취해 한동안 움직일 줄을 몰랐다.

 

사진 <메트 앞에서 공연하는 재즈 가수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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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랄라 2012-11-15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재미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사진 <뉴욕의 명물, 플랫 아이언 빌딩>

 

오늘도 자다가 일찍 깼습니다. 시차 적응을 못해서라거나 환경이 바꿔 신경이 예민해졌다거나 그런 건 전혀 아닙니다. 다만 어제 파김치가 되어 돌아와서는 그대로 쓰러져 잤기 때문에 이렇게 이른 새벽에 깬 것입니다. 커피 한 잔을 만들어 마시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어제는 찍어온 사진이 별로 없습니다. 미술관에 가는 대신 거리를 돌아다니다 책방에 갔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보여드릴 사진은 잔뜩 있습니다. 미술관에서 그림 사진만 찍다가 카메라 렌즈로 거리 풍경을 스케치 하니 이야기보따리가 하나 가득입니다.

 

우선 뉴욕 날씨가 정상 수준을 회복했다는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얇은 외투 하나면 충분할 정도입니다. 롱부츠를 입은 신은 여자들 두꺼운 노스페이스를 입고 나온 남자들이 꽤나 고생한 하루였습니다. 주말에는 미술관이 많이 붐빌 테니 오늘은 그냥 젖히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살던 23번가로 지하철을 타고 갔지요.

 

뉴욕 지하철은 아주 간단합니다. 위로 올라가거나 아래로 내려가는 것. 좌우로 가고 싶을 때는 버스를 타면 됩니다. 한 번만 지하철을 타보면 누구나 쉽게 적응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뉴욕입니다. 이제와 고백하지만 사실 저는 심한 길치입니다. 언젠가 파주 출판 단지에 간다고 차를 몰고 나갔다가 저 위에 국방 한계선(?), 헌병들이 지키고 있는 곳인데 정확한 명칭은 모르겠고, 아무튼 철책으로 길을 막아 놓았더군요. '돌아가시오’ 하는 사인만 보이고. 그래서 다시 차를 돌려 그냥 집으로 와버린 적이 있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길치도 뉴욕에서는 헤맬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동쪽 서쪽, 업 타운 다운 타운, 항상 이것만 기억하고 있으면 되니까요.

 

23번가와 브로드웨이가 교차하는 지하철 역 밖으로 나오니 푸른 하늘 아래 우뚝 솟은 플랫 아이언 빌딩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뉴욕의 마천루 역사에 있어 초기 작품이라 하는데 얼핏 다리미처럼 생긴 모습이 언제 봐도 신기합니다. 옛날 자기가 살던 동네를 다시 찾아간 기분은 참 묘합니다. 사람과 공간에 대한 기억들이 구석구석 담겨 있고, 예전의 내 모습 또한 저기 어딘가 길모퉁이를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때 만났던 사람들,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들, 그런 사연과 장면들이 아직껏 이곳 어딘가를 배회하고 있는 듯합니다.

 

예전에 살던 동네에 오면 내가 주로 머물던 장소를 한번쯤 다시 기웃거리게 됩니다. 어떻게 변했는지, 얼마나 많이 내 모습을 지워버렸는지, 그로인해 내가 그 시간으로부터 얼마큼 떠나왔는지 확인하고픈 마음이 절로 드는 것입니다. 23번가 거리 모습은 거의 그대로였습니다. 새로 개축한 빌딩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지만 이 거리에 흐르는 냄새, 공기와 사람과 소리의 흐름은 7년 전 그때와 전혀 다를 바 없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우리가 가끔씩 아침마다 가던 베이글 코너 가게가 새롭게 단장한 현대식 카페로 탈바꿈 했다는 사실입니다. 뉴욕에 마지막으로 하나 남아 있을 것 같은 아주 오래되고 낡은, 그러면서도 인간적인 냄새가 나는 그런 식당이었거든요. 가게 안에서 베이글도 직접 굽고, 나이든 아저씨 서너 명이 투박한 언어로 장사를 하던 베이커리 숍이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진 <23번가, 옛집 아파트 입구에서> 2012

 

사보이 호텔 바로 옆에 있는 예전에 우리가 살던 빌딩을 바라보는 심정은 남달랐습니다. 건물 앞에서 시간이 딱 멈춰버린 듯 더 낡고 초라해진 느낌, 폐허 속 쇠락한 건물 기둥을 바라보는 것 같은 그런 기분,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때도 저런 모습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주위가 그만큼 산뜻하게 정비된 탓도 있을 겁니다. 근처에 새로 생긴 콘도미니엄과 비주얼 스쿨 간판이 보이고, 길 건너에는 던킨 도넛 가게와 타이 식당 편의점 같은 것들이 새로 오픈한 듯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던 그 빌딩만이 세월의 잔재에 파묻힌 듯 더 어둡고 그늘지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옛날에 살던 집은 사람 마음을 애잔하게 만듭니다. 옛집은 옛날 내 모습이며 내 기억입니다. 옛집의 기억이 나를 이곳으로 데려왔지만 사실은 나로부터 분리된 그 시절의 내가 아직도 이곳 언저리를 맴돌며 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진 <하이 라인, 첼시> 2012

 

첼시 화랑 가 쪽으로 걸어가다 보니 육교처럼 생긴 이상한 구조물이 나타났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의 설명에 의하면 공원이라고 하더군요. 공중에 떠 있는 공원이라니! 터키인가 스페인에서 공중 정원을 본적이 있는데 이것도 그런 콘셉트로 지은 것인가 싶어 철제 계단을 밟고 천천히 위로 올라갔습니다. 사람들은 이곳을 '하이 라인이라고 부릅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제 정보가 정확한 건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하이 라인은 11번가와 12번가 사이에 위치하고 12번 스트리트에서 34번 스트리트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국식으로 쉽게 설명하자면 건물들 위를 가로지른 거대한 육교라 할 만 합니다.

 

사실 뉴요커들은 육교를 본적이 거의 없을 겁니다. 이곳이 새로운 명소인지 카메라를 매고 가족들 연인들과 함께 나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도시의 지붕을 가로지르는 구조물이나 중간 중간 설치된 미술조각 설치물들 모두 새로 꾸미거나 만들어 놓은 기색이 역력했고 곳곳에 심어 놓은 나무와 잔디밭 풍경도 아직까지는 어딘가 인위적인 냄새를 풍겼습니다.

 

그래도 허공에 떠 있는 이 산책로에는 센트럴 파크와는 또 다른 운치가 감돕니다. 무엇보다도 이 도시의 다른 얼굴, 지붕 위나 건물 틈새들, 오랜 세월 그 안에서 웅크리고 있던 시간의 그림자들을 새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깨끗하게 잘 정비된 도시라 해도 이면에는 우리가 모르는 낯선 정체들이 존재합니다. 그 뒷모습의 표정과 흔적들을 감지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차원의 각도와 높이와 깊이가 필요합니다. 하이 라인은 그런 곳입니다. 사람들에게 도시 지붕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일깨우고 사람들은 하이라인에 생명력을 불어 넣습니다.

 

사진 <뉴욕 ,하이 라인 내 산책로 풍경> 2012

 

사진<하이 라인에서 내려다 본 23번가 도로 모습> 2012


사진 <하이 라인에서 바라본 건물과 건물들 사이의 모습>

  

오후에는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바꿔 탄 뒤 유니언 광장으로 향했습니다. 토요일마다 프리마켓이 열리던 광장은 마침 공사 중이라 사방이 막혀 있었지만 공원 안은 한가하게 산책 나온 사람들이 벤치마다 가득 했습니다. 어딜 가나 자신에 대한 얘기를 떠벌리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옆에 앉아 있는 백인 아줌마에게 말을 건넸다가 무시를 당했는지 그 나이든 백인 남자는 자신의 과거사에 관해서 그리고 그 백인 아줌마의 야박함에 관해서 한참이나 큰 소리로 떠들어댔습니다. 그러나 백인 남자가 쏟아내는 무수히 많은 말들은 그 어떤 침묵의 벽도 뚫고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외면했고 민망해 했으며 심지어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곳으로 가버렸습니다. 백인 아줌마도 손에 들고 있는 아이팟에 시선을 고정한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백인 남자의 목소리만이 울릴 뿐입니다. 계속 떠벌여 대는 그의 말들이 허공의 벽에 부딪혀 고스란히 그 자리로, 자신의 침묵 속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진 <유니언 광장의 어린 화가들> 2012

 

공원 한쪽에서 길거리 화가들을 보았습니다. 어린 소녀들입니다. 붓을 들고 쓱쓱 아주 재미 있게 그어 대고 있습니다. 주위를 지나던 나이 든 백인 여자도 붓을 한 자루 달라고 하더니 꽃이 핀 풀잎을 그려 넣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에 몰두한 사람들, 그것을 구경하느라 발길을 멈춘 사람들.. 11월의 맑은 햇살이 부서지는 한쪽에서 한참이나 우두커니 바라보다 문득 궁금했습니다. 사람들은 왜 그림을 그리는 걸까. 왜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걸까. 색채의 아름다움 때문에, 도구에 대한 애착과 흥미 때문에, 예술에 대한 호기심, 어쩔 수 없는 끌림 때문에...아니, 그 또한 뭔가 말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 스스로의 벽에 갇혀 맴돌고 있는 언어들, 생각과 소통이 필요한 사연들을 토해내기 위해서 붓을 들고 물감을 섞고 그리고 어딘가에 화폭을 펼치고는, 그리고 또 그리고, 그러는 것이 아닐까요.


사진<유니언 광장의 반스 엔드 노블 서점> 2012

  

유니언 광장 근처에 있는 푸드 마켓에 들어가 뜨거운 클램 차우더 수프와 샐러드로 늦은 점심을 먹고는 근처에 있는 반스 엔드 노블 책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마도 뉴욕에서 제일 큰 책방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1층에서부터 4층까지 수많은 책들로 빼곡한 곳입니다. 예전에는 소설 섹션이 2층인가 3층에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4층으로 옮겨져 있더군요. 그리고 4층에 있던 어린이북 섹션이 소설이 꽂혀 있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소설에 대한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증거가 바로 이런 것인가 싶기도 하고 어쩐지 씁쓸한 느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합니다. 소설은 죽었다... 그림은 죽었다...저 같은 사람에게는 결코 반갑지 않은 소리입니다. 그래도 한 겨울 히말라야 꼭대기에 있는 로지에서 난롯가에 모여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을 보며 책의 소명이 아직 다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7년 전 뉴욕 거리에서도 여기 저기 앉아 독서를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고 내심 기뻤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 도시 어딜 가나 직사각형의 조그만 액정 화면만이 사람들의 시선을 꼭 붙잡고 있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도 하다못해 무가지 신문을 읽는 사람도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 코딱지 만한 화면이 사람들의 시간은 물론이요 영혼마저 몽땅 삼켜버릴 기세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길을 가다 혼자 웃고 떠드는 사람을 보면 실성했다고 손가락질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기계에 대고 혼자 말하고 웃고, 슬퍼하고 분노합니다. 덕분에 소설책 같은 건 대형서점 이층에서 삼층으로, 삼층에서 사층으로, 사층에서 다락방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소설이 고귀한 것은 이제 더 이상 아무도 읽지 않기 때문입니다. 멀리 있는 손에 닿을 수 없는 것들이 더 신비해 보이는 법이니까요.

 

이러다 '죽은 자들의 도시'에 그 액정 화면만이 덩그마니 남아 동동 떠다니는 건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마저 듭니다. 이브 탕기의 초현실주의 그림에서처럼 모두가 사라진 회색 공간에 액정 화면들만이 살아있는 미생물처럼 증식해 가는 불길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상황을 너무 과장할 필요는 없지만, 제 표현이 조금 과하다는 건 알지만, 반스 엔드 노블에서 4층으로 쫓겨 간 소설 섹션의 실상을 보자 어쩐지 우울했습니다. 한국이라고 다른 실상이겠습니까. 돌이켜보니 교보문고에서도 참고서들이 예전에 있던 소설 자리를 빼앗았던 것 같던데...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소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듯합니다.


사진 <이브 탕기의 작품> 

*그다지 본문에 부합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아쉬운 대로 메트에서 찍은 사진을 대신 사용함.


밤이 되어 밖으로 나오니 유니언 광장 중간에 높이 서 있던 동상이 말을 하고 있더군요. 누군가 그 위에 이미지를 비추고 연설 내용을 크게 틀어놓은 듯합니다. 어둠 속에서 펼쳐진 일루션 효과로 인해 정말로 동상이 손을 움직이고 표정을 짓고 연설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고대의 음류 시인이 다시 환생한 듯 사람들을 발길을 멈춘 채 한동안 움직일 줄 몰랐습니다. 어쩌면 반스 엔 노블 4층으로 쫓겨 간 책들이 이런 방식으로나마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책의 또 다른 변신이라고나 할까요. 정말로 종이 문명이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방식의 메스미디어 세상이 우리 앞에 당도한 듯도 합니다.


사진 <유니언 광장의 동상1, 한낮의 모습>

 

사진 <유니언 광장의 말하는 동상2, 밤에 촬영한 모습>

 

돌아오는 지하철 역사 안에서 길거리 가수와 악사들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도나 서머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제목은 모르겠고 도나 서머의 노래 중에서 빠른 템포로 아직도 대중의 사람을 많이 받는 바로 그 곡입니다. 여가수는 아주 피곤해 보였고 남루했으며 목청에도 이미 무리가 많이 간 상태였지만 한편으로는 만족한 표정이었습니다. 누군가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적어도 그녀는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노래를 부를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매 순간 행복한 일을 하면서 살 수는 없지만, 그것이 우리 인생이지만, 그래도 하루에 한 가지쯤 자신에게 행복한 일을 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오늘도 행복하시기를..


사진 <33번가 헤럴드 광장 지하철역 구내에서 공연 중인 흑인 여가수와 악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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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미 2012-11-16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She works hard for the money or Hot stuff?
 

사진 <모마 미술관의 어느 대머리 아저씨> 2012

 

새벽에 문득 깨어 컴퓨터 앞으로 다가앉았습니다. 저는 지금 맨해튼 안에 머물고 있습니다. 메이시 백화점 바로 앞 럭셔리 렌탈 빌딩 안에 위치한 한국인 숙소인데 겉만 번드르했지 말처럼 그렇게 럭셔리하지는 않은 곳입니다. 그래도 함께 지내고 있던 다른 게스트들이 다 나가고 난 뒤라 거의 혼자서 내 집처럼 지내는 중입니다. 여자 관리인이 함께 있거든요. 한국에서 온 유학생인테 학교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날씨 때문에 여행객이 뜸한 모양인데 하루에 45달러만 지불하면 되니 그리 나쁜 조건은 아닙니다. 아니, 환타스틱합니다. 

 

뉴욕에 온 후로 매일같이 미술관에 가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진도 찍고(요즘에는 다들 디카와 휴대폰을 사용해서인지 사진 촬영이 허용된 상태입니다.) 무작정 작품을 들여다 보기도 하고, 그 앞에 앉아 연필이나 펜으로 작품을 모사해 보기도 합니다. 확실히 손으로 직접 따라 그리다 보면 훨씬 많은 정보를 축적할 수 있습니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차원의 깨달음과 의문들이 잇따라 머리에 떠오릅니다.

 

금요일 오후에는 4시부터 모마에 무료 입장이 가능합니다. 아침 내내 메트에 가서 시간을 보내다 점심을 먹고는 모마로 직행했습니다. 관람객들의 줄이 어찌나 길던지 예전에 고등학교 시절 대한극장 앞에서 벤허를 보기 위해 끝도 없던 사람들 꽁무니에 매달렸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습니다. 금요일 밤 행사에는 이들 나름의 요령을 터득한 듯 관람객들은 금방 티켓을 받아들고 안으로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미술관은 확실히 시내에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뉴욕 사람들이 다 모인 것처럼 북새통을 이루더군요.

 

미국은 오랫동안 세계 미술계의 변방 노릇을 해왔습니다. 돈만으로는 해결 안 되는 그런 것 들이 있는 거지요. 문화는 저변에서부터 쌓이고 숙성되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건물만 지어가지고는 해결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미국이 조직적으로 미술계에 투자 하고 활성화에 앞장 선 것은 1930년대부터의 일입니다. 당시 유럽은 전쟁 중이라 그런 일이 가능했던 거지요. 덕분에 유럽에 있는 많은 훌륭한 문화 인재들을 영입할 수 있었는데, 미국이 20세기 중반 추상표현주나 팝 아트 같은 것을 꽃피울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런 정부 차원의 지원과 비술 비평가들의 활발한 활동, 그리고 미술관들의 영악하다 할 만한 전술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런 힘들이 모이고 모여 뉴욕을 현대미술의 메카로 만들었다 할 수 있지요.

 

현대 미술이 주축이 된 모마의 소장품 목록은 아주 화려합니다. 얼마전 제가 '죽음을 관통하는 응시'에서 소개한  뭉크의 작품도 그 중 하나 입니다. 현재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라 할 수 있는 '절규' 앞에 사람들이 빼곡합니다.

 

맨 위에  올려 놓은 사진은 사람들의 장벽을 뚥고 들어가 겨우 촬영한 것입니다. 오일도 아닌 파스텔로 그린 그림이라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랐습니다. 그런데 위에서 그림을 막고 서 있던 대머리 아저씨의 모습이 어쩐지 익숙하지 않습니까. 언젠가 어디선가 한번은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억이 안 난다고요? 그럼 다음 사진을 봐 주세요.

 

사진 <뭉크의 절규> 모마 미술관에서, 2012

 

그림 속에서 대머리 아저씨가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우연치고는 묘한 우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저는 대머리에 대한 반감이 전혀 없는 사람임을 확실히 밝혀둡니다. 예술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에서도 이런 우연성의 묘미를 빠트릴 수 없습니다. 뒤에 서 있던 누군가 제 사진기 액정 화면에 비친 바로 이 장면을 보고는 그러더군요. 자기도 한 장 가지고 싶다고...나름 소장 가치를 느끼게 하는 사진입니다.

 

위의 장면은 대머리 아저씨가 비켜선 바로 그 직후, 0.2,3초 사이에 찍은 것 입니다. 사람들이 이 처럼 빼곡하게 둘러 서 있을 때는 셔터를 누를 수 있는 순간이 제한적입니다. 그때를 노치면 영영 찍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디카니까 바로 확인이 가능하니 이 얼마나 좋습니까. 디카는 화가들에게 신의 선물과도 같습니다. 작품 사진도 바로 찍을 수 있고, 인상적인 장면이나 풍경 또한 순간적으로 기록해 놓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모마의 작품 '절규'는 두꺼운 플라스틱 액자로 보호되어 있습니다. 흑인 여자 경비원이 옆에 버티고 서서 조금이라도 그림의 최후 방어선 앞에 근접하거나 카메라 플라시를 터트리면 큰 소리로 주의를 줍니다. '절규'를 보면서 파리 르브루에 있는 모나리자 방을 떠올렸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그 작품 하나 보려고 몰려든 사람들의 장벽 말입니다. 모마가 그토록 많은 돈을 투자하여 뭉크의 파스텔화를 구매한 이유를 조금은 알 듯도 합니다.(명품 좋아한다고 여자들 욕하지 마시길! 따지고보면 모마가 '절규'를 구매한 것과 여자들이 루뭐뭐 프뭐뭐에 열광하는 이유 또한 거기서 거기란 생각이 문득 듭니다..) 미국은 늘 유럽에 대해 문화적인 열등감에 시달려왔습니다. 불어를 사용하는 프랑스 아가씨나 영국식 엑센트가 들어간 영어에 열광하는 이유가 다 뭐겠습니까. 모마에도 이제 '모나리자' 급 작품이 등장한 셈이니 어느 정도 자존심을 살릴 수 있다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자세히 그림을 다시 살펴보기 바랍니다. 그림 테두리가 약간 특이하지 않나요? 나무 프레임을 만들어서 두른 것 같은데 실제로는 청동으로 주물을 떠서 제작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소장자들의 센스있는 안목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파스텔로 그린 작품을 다른 드로잉이나 수채화 작품 처럼 옆에 종이 테를 두른 다음 유리 액자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유화처럼 정식 왁구를 짜서 꾸밀 수도 없었을 테니 말입니다. 뭉크 그림들 설명은 '죽음을 관통하는 응시'에 얼마간 적어 놓았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눈이 와요! 눈입니다!

 

사진 <11월에 첫눈 내리는 뉴욕의 브로드웨이-1> 2012


뉴욕이 미친 것 같습니다. 이 도시에 도착한 바로 다음날, 메트 폐장 시간에 맞춰 밖에 나오니 눈보라가 휘몰아칩니다. 허리케인 센디가 지나가자 마자 폭설이라니! 정말 대단한지 않습니까? 911테러 이후 뉴요커들은 아예 인생에 달관한 사람들 같습니다. 비행기 공격도 받았는데 이까짓 눈보라 쯤이야!' 거리에는 아무런 동요도 없습니다. 덕분에 지하철 안은 푸시맨이 필요할 정도로 꽉 찼지만...


사진 <11월에 첫눈 내리는 뉴욕의 브로드웨이-2> 2012


바로 하루전에는 대선 투표 결과를 관전하기 위해서 타임스퀘어 광장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들었습니다.


사진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에 마련된 대선 관중석> 2012

 

어떤 사람은 뉴 이얼스 이브 이후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라 하더군요. 그런데 바로 다음 날에는 거리에 온통 눈발이 몰아치며 크리스마스 이브 같은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전날 찍은 타임스퀘어 광장 사진도 올립니다.


사진 <타임스퀘어 광장의 전광판-1> 2012

 

사진 <타임스퀘어 광장의 전광판-2> 2012

 

대선 당일 밤9시30분경에 찍은 사진입니다. 전광판만 보고는 론니가 이기는가보다 했는데 얼마후 오바마가 승리했다는 소식을 듣고 조금 의아했습니다. 전광판에는 분명히 빨간색이 많았거든요.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정말...한국도 곧 대통령을 뽑겠군요. 저는 정치에 관해서는 문외한입니다. 그렇지만 한 나라의 문화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힘 있는 정부가 앞장 서서 견인차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정치는 문화를 키우고 문화는 그 시대를 포장해서 후세에 남깁니다. 이제까지 인류사가 늘 그렇게 작동해 왔거든요. 오래전 100년 동안이나 지중해와 에게해를 장악했던 스파르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아테네를 비롯한 헬레니즘 문명이 아직까지도 확실한 존재감을 들어내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증거 입니다.   


마지막으로 어제 오후 모마 미술관에서 운좋게 제가 직접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 <연인, 모마의 계단에서> 2012


그 유명한 '모마의 계단'에서 한 여자가 올라가고 있고(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여자'가 생각납니다. 이 여자 분이 계속 오르락내리락 했거든요. 아마 이쪽을 신경 쓴 듯), 여기에 뒷모습 만큼은 어쩐지 리키 미틴을 연상시키는 남자가 저편에 여자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수 십번 셔터를 누른 끝에 겨우 한 장 건진 이 사진에 저는 '연인'이란 타이틀을 붙였습니다. 연인이란 항상 서로를 바라보는 존재니까요. 그렇게 바로 보는 관계가 끝났을 때 그들은 헤어지거나 아니면 아예 결혼을 해버리겠죠. 부부란 나란히 한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라고 흔히들 말하죠. 그래야 한다고. 그렇지만 서로를 마주 볼 때 더 생의 스파크 같은 게 튀는 것 아닐까요. 앞을 바라본다는 건 미래를 바라보는 거고, 그 미래를 위해서 모든 걸 준비하고 희생하기에는 이 삶이 너무 짧고 아깝습니다. 

 

뉴욕은 젊음의 도시이고 연인들의 도시입니다. 또한 한국인의 도시라는 말을 하나 더 첨가하고 싶습니다. 적어도 맨해튼 안에서는 어딜가나 한국인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오래전에 계속 미국 동부에서만 살다가 LA에 가서 수많은 한국 사람들을 보고는 깜짝 놀란 적이 있었는데 지금 뉴욕이 딱 그런 상황입니다.

 

32번가에 있는 한인타운도 계속 팽창 중입니다. 사방에 드릴 소리가 요란합니다. 조금 있으면 한국식 바베큐 와인 바가 새로 개장할 모양입니다. 사우나도 있는데 때를 밀어준다고 하네요. 책방도 있고 한식만 파는 푸드코트도 있고, 뭐 하나 아쉬울 것 없는 뉴욕입니다. 손님도 거의 절반이 미국인들입니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인구 구성원의 변화 때문에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했다는 했다는 쇠리를 하던데 뉴욕에 있으니 그 말로 절로 실감납니다. 지하철을 타면 양쪽에서 각국 언어가 들려옵니다. 여기서는 백인이 정말로 소수 민족 같이 느껴집니다. 오래전 막강한 군대를 앞세워 지구상 최초의 세계화를 이룬 적이 있었던 고대 로마가 지금 이런 모습으로 다시 환생한 것은 아닌가, 너무 뻔한 말이지만... 그런 생각도 절로 떠오릅니다. 


이 글을 알라딘에 모두 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숙소에 있는 컴퓨터가 익숙지 않아 불안합니다. 마우스도 없고 한글 파일도 깔려 있지 않고 가끔씩 확확 화면이 바뀌기도 하고..현재까지는 그럭저럭 버텨왔지만...맞춤법까지 모두 확인하지 못한 점 양해하시기를...여기 도착한 다음날 한번 시도 했다가 써 놓은 글을 다 날리는 바람에 포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사라진 글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요. (오늘도 중간에 한번 날리고 다시 작업해서 올리는 중임.) 그래서 여행 떠나기 전에 계획했던대로 서울 일은 다 잊고 여기 일에만 집중하자 했는데(제 컴퓨터를 그냥 두고 온 이유입니다. )... 오늘 아침에는 이렇게 또 욕심을 부리며 컴퓨터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여행 노트에 먼저 적은 다음 워드 패드로 옮기고, 그걸 다시 블로그로 재빨리 옮길 생각입니다. 사진도 올려야 할 텐데...중간에 날아가지 않기만을 빕니다.

 

저는 도착 직후부터 코감기에 걸려 코끝이 헐 지경입니다. 이런 걸 러니 노우즈 runny nose 라고 하지요. 계속해서 콧물이 시냇물처럼 줄줄줄... 모두 감기 조심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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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2012-11-16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마바가 머리 쥐어짜면 뭉크 그림 속 인물처럼 보일텐데...

김미진 2012-11-16 10:02   좋아요 0 | URL
앗, 댓글이 올라왔네요. 모두 감사합니다.
 

작가 사진 <야외스케치, 의정부 장암동에서> 2012

 

*여행을 떠나기 전에 예약으로 걸어 둔 필자의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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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미술관에서> oil on canvas, 25F,1999

 

*여행을 떠나기 전에 예약으로 걸어 놓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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