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네팔의 서쪽 마을에서> oil on canvas 61×50cm 2013
네팔에 여행을 몇 번 간 적이 있습니다. 그것도 4번씩이나 다녀왔으니 나름 인연이 깊은 장소입니다. 덕분에 그 나라에 대한 여행기도 쓰고, 소설 속에도 몇 번이나 우려먹고, 그림 또한 각각의 주제로 다뤘으니 내게는 무궁무진한 예술적 자양분, 상상력의 보고라고 할 만합니다.
‘네팔’하면 무엇보다도 만년설로 뒤덮인 히말라야의 신비로운 풍광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산스크리트어로 ‘히마’는 ‘신’, ‘말라야’는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히말라야는 ‘신들의 거처’라는 의미입니다. 네팔의 지형은 길쭉하게 반죽해 놓은 에그 롤 같은 형상입니다. 여행객들이 주로 찾는 북쪽 산악지대는 구름 저편에 우뚝 솟은 설산들이 장관을 이룹니다. 밤이나 낮이나 하얀 야광 빛으로 반짝이는 설산 어딘가에 신화 속 인물인 설인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어디까지 믿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네팔인들 중에 실제로 목격한 사람도 있다는 소문입니다.
남쪽에는 코끼리나 라이코스가 사는 정글과 드넓은 초원, 끝도 없이 광활한 유채 밭이 있습니다. 네팔의 서쪽 끝에 있는 그 동네 이름은 이제 기억 속에 지워졌습니다. 다만 그곳에서 마을 주민들과 함께 했던 저녁 한때가 그리운 풍경처럼 떠오를 뿐입니다. 가난하지만 더없이 순박하고 행복해 보였던 그들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여행객들의 발길도 거의 닿지 않는 오지에서 저는 꽤나 환대를 받았습니다. 제 손을 흔들며 신기해하던 어린 꼬마들, 수줍은 미소 하나로 모든 대화를 대신하던 동네 아낙네들, 마을 어귀까지 오토바이를 태워준 젊은 목사님...가도 가도 끝이 없던 초원의 푸른 빛, 연녹색 물빛을 가로지르며 유영하듯 날아오르던 새 떼들...그런 아름답고도 소중한 추억들이 이 한 장의 그림에 담겨 있습니다.

그림<설악산 가는 길>oil on canvas 41×32cm 1997-2014
두 번째 그림 역시 오래전 추억 한 스푼을 담고 있습니다. 햇살 뜨거운 어느 날 차를 몰고 설악산으로 여행을 갔는데 그때 그렸던 스케치들 중 하나가 이 작품의 밑그림이 되었습니다. 비록 소품이지만 완성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그때 다녀온 여름 여행이 97년도의 일이니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옛 추억의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그림은 순식간에 끝나기도 하고 어떤 그림은 바위틈의 이끼처럼 오래오래 세월을 먹으면서 자라나기도 합니다. 그런 흔적들이 모여서 결국 인생이라는 도화지를 색칠해 가는 거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