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마 미술관의 어느 대머리 아저씨]

 

 

새벽에 문득 깨어 컴퓨터 앞으로 다가앉았습니다. 저는 지금 맨해튼 안에 머물고 있습니다. 메이시 백화점 바로 앞 럭셔리 렌탈 빌딩 안에 위치한 한국인 숙소인데 겉만 번드르했지 말처럼 그렇게 럭셔리하지는 않은 곳입니다. 그래도 함께 지내고 있던 다른 게스트들이 다 나가고 난 뒤라 거의 혼자서 내 집처럼 지내는 중입니다. 여자 관리인이 함께 있거든요. 한국에서 온 유학생인테 학교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날씨 때문에 여행객이 뜸한 모양인데 하루에 45달러만 지불하면 되니 그리 나쁜 조건은 아닙니다. 아니, 환타스틱합니다. 

 

뉴욕에 온 후로 매일같이 미술관에 가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진도 찍고(요즘에는 다들 디카와 휴대폰을 사용해서인지 사진 촬영이 허용된 상태입니다.) 무작정 작품을 들여다 보기도 하고, 그 앞에 앉아 연필이나 펜으로 작품을 모사해 보기도 합니다. 확실히 손으로 직접 따라 그리다 보면 훨씬 많은 정보를 축적할 수 있습니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차원의 깨달음과 의문들이 잇따라 머리에 떠오릅니다.

 

금요일 오후에는 4시부터 모마에 무료 입장이 가능합니다. 아침 내내 메트에 가서 시간을 보내다 점심을 먹고는 모마로 직행했습니다. 관람객들의 줄이 어찌나 길던지 예전에 고등학교 시절 대한극장 앞에서 벤허를 보기 위해 끝도 없던 사람들 꽁무니에 매달렸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습니다. 금요일 밤 행사에는 이들 나름의 요령을 터득한 듯 관람객들은 금방 티켓을 받아들고 안으로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미술관은 확실히 시내에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뉴욕 사람들이 다 모인 것처럼 북새통을 이루더군요.

 

미국은 오랫동안 세계 미술계의 변방 노릇을 해왔습니다. 돈만으로는 해결 안 되는 그런 것 들이 있는 거지요. 문화는 저변에서부터 쌓이고 숙성되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건물만 지어가지고는 해결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미국이 조직적으로 미술계에 투자 하고 활성화에 앞장 선 것은 1930년대부터의 일입니다. 당시 유럽은 전쟁 중이라 그런 일이 가능했던 거지요. 덕분에 유럽에 있는 많은 훌륭한 문화 인재들을 영입할 수 있었는데, 미국이 20세기 중반 추상표현주나 팝 아트 같은 것을 꽃피울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런 정부 차원의 지원과 비술 비평가들의 활발한 활동, 그리고 미술관들의 영악하다 할 만한 전술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런 힘들이 모이고 모여 뉴욕을 현대미술의 메카로 만들었다 할 수 있지요.

 

현대 미술이 주축이 된 모마의 소장품 목록은 아주 화려합니다. 얼마전 제가 '죽음을 관통하는 응시'에서 소개한  뭉크의 작품도 그 중 하나 입니다. 현재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라 할 수 있는 '절규' 앞에 사람들이 빼곡합니다.

 

 

맨 위에  올려 놓은 사진은 사람들의 장벽을 뚥고 들어가 겨우 촬영한 것입니다. 오일도 아닌 파스텔로 그린 그림이라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랐습니다. 그런데 위에서 그림을 막고 서 있던 대머리 아저씨의 모습이 어쩐지 익숙하지 않습니까. 언젠가 어디선가 한번은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억이 안 난다고요? 그럼 다음 사진을 봐 주세요.

 

[뭉크의 절규]

 

그림 속에서 대머리 아저씨가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우연치고는 묘한 우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저는 대머리에 대한 반감이 전혀 없는 사람임을 확실히 밝혀둡니다. 예술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에서도 이런 우연성의 묘미를 빠트릴 수 없습니다. 뒤에 서 있던 누군가 제 사진기 액정 화면에 비친 바로 이 장면을 보고는 그러더군요. 자기도 한 장 가지고 싶다고...나름 소장 가치를 느끼게 하는 사진입니다.

 

위의 장면은 대머리 아저씨가 비켜선 바로 그 직후, 0.2,3초 사이에 찍은 것 입니다. 사람들이 이 처럼 빼곡하게 둘러 서 있을 때는 셔터를 누를 수 있는 순간이 제한적입니다. 그때를 노치면 영영 찍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디카니까 바로 확인이 가능하니 이 얼마나 좋습니까. 디카는 화가들에게 신의 선물과도 같습니다. 작품 사진도 바로 찍을 수 있고, 인상적인 장면이나 풍경 또한 순간적으로 기록해 놓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모마의 작품 '절규'는 두꺼운 플라스틱 액자로 보호되어 있습니다. 흑인 여자 경비원이 옆에 버티고 서서 조금이라도 그림의 최후 방어선 앞에 근접하거나 카메라 플라시를 터트리면 큰 소리로 주의를 줍니다. '절규'를 보면서 파리 르브루에 있는 모나리자 방을 떠올렸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그 작품 하나 보려고 몰려든 사람들의 장벽 말입니다. 모마가 그토록 많은 돈을 투자하여 뭉크의 파스텔화를 구매한 이유를 조금은 알 듯도 합니다.(명품 좋아한다고 여자들 욕하지 마시길! 따지고보면 모마가 '절규'를 구매한 것과 여자들이 루뭐뭐 프뭐뭐에 열광하는 이유 또한 거기서 거기란 생각이 문득 듭니다..) 미국은 늘 유럽에 대해 문화적인 열등감에 시달려왔습니다. 불어를 사용하는 프랑스 아가씨나 영국식 엑센트가 들어간 영어에 열광하는 이유가 다 뭐겠습니까. 모마에도 이제 '모나리자' 급 작품이 등장한 셈이니 어느 정도 자존심을 살릴 수 있다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자세히 그림을 다시 살펴보기 바랍니다. 그림 테두리가 약간 특이하지 않나요? 나무 프레임을 만들어서 두른 것 같은데 실제로는 청동으로 주물을 떠서 제작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소장자들의 센스있는 안목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파스텔로 그린 작품을 다른 드로잉이나 수채화 작품 처럼 옆에 종이 테를 두른 다음 유리 액자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유화처럼 정식 왁구를 짜서 꾸밀 수도 없었을 테니 말입니다. 뭉크 그림들 설명은 '죽음을 관통하는 응시'에 얼마간 적어 놓았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눈이 와요! 눈입니다!

 

 

[11월에 첫눈 내리는 뉴욕의 브로드웨이-1]

 

뉴욕이 미친 것 같습니다. 이 도시에 도착한 바로 다음날, 메트 폐장 시간에 맞춰 밖에 나오니 눈보라가 휘몰아칩니다. 허리케인 센디가 지나가자 마자 폭설이라니! 정말 대단한지 않습니까? 911테러 이후 뉴요커들은 아예 인생에 달관한 사람들 같습니다. 비행기 공격도 받았는데 이까짓 눈보라 쯤이야!' 거리에는 아무런 동요도 없습니다. 덕분에 지하철 안은 푸시맨이 필요할 정도로 꽉 찼지만...

 

[11월에 첫눈 내리는 뉴욕의 브로드웨이-2]

 

바로 하루전에는 대선 투표 결과를 관전하기 위해서 타임스퀘어 광장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들었습니다.

 

[타임스퀘어 광장에 마련된 대선 관중석]

 

어떤 사람은 뉴 이얼스 이브 이후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라 하더군요. 그런데 바로 다음 날에는 거리에 온통 눈발이 몰아치며 크리스마스 이브 같은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전날 찍은 타임스퀘어 광장 사진도 올립니다.


[타임스퀘어 광장의 전광판-1]

 

 

[타임스퀘어 광장의 전광판-2]

 

 대선 당일 밤9시30분경에 찍은 사진입니다. 전광판만 보고는 론니가 이기는가보다 했는데 얼마후 오바마가 승리했다는 소식을 듣고 조금 의아했습니다. 전광판에는 분명히 빨간색이 많았거든요.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정말...한국도 곧 대통령을 뽑겠군요. 저는 정치에 관해서는 문외한입니다. 그렇지만 한 나라의 문화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힘 있는 정부가 앞장 서서 견인차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정치는 문화를 키우고 문화는 그 시대를 포장해서 후세에 남깁니다. 이제까지 인류사가 늘 그렇게 작동해 왔거든요. 오래전 100년 동안이나 지중해와 에게해를 장악했던 스파르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아테네를 비롯한 헬레니즘 문명이 아직까지도 확실한 존재감을 들어내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증거 입니다.   


마지막으로 어제 오후 모마 미술관에서 찍은 사진을 선보입니다.

 

 

[모마의 계단 '연인']


그 유명한 '모마의 계단'에서 한 여자가 올라가고 있고(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여자'가 생각납니다. 이 여자 분이 계속 오르락내리락 했거든요. 아마 이쪽을 신경 쓴 듯), 여기에 뒷모습 만큼은 어쩐지 리키 미틴을 연상시키는 남자가 저편에 여자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수 십번 셔터를 누른 끝에 겨우 한 장 건진 이 사진에 저는 '연인'이란 타이틀을 붙였습니다. 연인이란 항상 서로를 바라보는 존재니까요. 그렇게 바로 보는 관계가 끝났을 때 그들은 헤어지거나 아니면 아예 결혼을 해버리겠죠. 부부란 나란히 한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라고 흔히들 말하죠. 그래야 한다고. 그렇지만 서로를 마주 볼 때 더 생의 스파크 같은 게 튀는 것 아닐까요. 앞을 바라본다는 건 미래를 바라보는 거고, 그 미래를 위해서 모든 걸 준비하고 희생하기에는 이 삶이 너무 짧고 아깝습니다. 

 

뉴욕은 젊음의 도시이고 연인들의 도시입니다. 또한 한국인의 도시라는 말을 하나 더 첨가하고 싶습니다. 적어도 맨해튼 안에서는 어딜가나 한국인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오래전에 계속 미국 동부에서만 살다가 LA에 가서 수많은 한국 사람들을 보고는 깜짝 놀란 적이 있었는데 지금 뉴욕이 딱 그런 상황입니다.

 

32번가에 있는 한인타운도 계속 팽창 중입니다. 사방에 드릴 소리가 요란합니다. 조금 있으면 한국식 바베큐 와인 바가 새로 개장할 모양입니다. 사우나도 있는데 때를 밀어준다고 하네요. 책방도 있고 한식만 파는 푸드코트도 있고, 뭐 하나 아쉬울 것 없는 뉴욕입니다. 손님도 거의 절반이 미국인들입니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인구 구성원의 변화 때문에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했다는 했다는 쇠리를 하던데 뉴욕에 있으니 그 말로 절로 실감납니다. 지하철을 타면 양쪽에서 각국 언어가 들려옵니다. 여기서는 백인이 정말로 소수 민족 같이 느껴집니다. 오래전 막강한 군대를 앞세워 지구상 최초의 세계화를 이룬 적이 있었던 고대 로마가 지금 이런 모습으로 다시 환생한 것은 아닌가, 너무 뻔한 말이지만... 그런 생각도 절로 떠오릅니다. 


이 글을 알라딘에 모두 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숙소에 있는 컴퓨터가 익숙지 않아 불안합니다. 마우스도 없고 한글 파일도 깔려 있지 않고 가끔씩 확확 화면이 바뀌기도 하고..현재까지는 그럭저럭 버텨왔지만...맞춤법까지 모두 확인하지 못한 점 양해하시기를...여기 도착한 다음날 한번 시도 했다가 써 놓은 글을 다 날리는 바람에 포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사라진 글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요. (오늘도 중간에 한번 날리고 다시 작업해서 올리는 중임.) 그래서 여행 떠나기 전에 계획했던대로 서울 일은 다 잊고 여기 일에만 집중하자 했는데(제 컴퓨터를 그냥 두고 온 이유입니다. )... 오늘 아침에는 이렇게 또 욕심을 부리며 컴퓨터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여행 노트에 먼저 적은 다음 워드 패드로 옮기고, 그걸 다시 블로그로 재빨리 옮길 생각입니다. 사진도 올려야 할 텐데...중간에 날아가지 않기만을 빕니다.

 

저는 도착 직후부터 코감기에 걸려 코끝이 헐 지경입니다. 이런 걸 러니 노우즈 runny nose 라고 하지요. 계속해서 콧물이 시냇물처럼 줄줄줄... 모두 감기 조심하시기를...그럼,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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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2012-11-16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마바가 머리 쥐어짜면 뭉크 그림 속 인물처럼 보일텐데...

김미진 2012-11-16 10:02   좋아요 0 | URL
앗, 댓글이 올라왔네요. 모두 감사합니다.
 

<의정부 장암동에서>

 

*여행을 떠나기 전에 예약으로 걸어 둔 필자의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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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객>

 

*여행을 떠나기 전에 예약으로 걸어 놓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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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을 건너는 조각배, 양평> 65×50cm 캔버스에 유채 2012-14

 

올해도 막바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어느새 11월이라니! 지난 2년간 소설 연재 하나 끝내고 새롭게 재가동한 그림 작업까지, 나름대로 생산적인 시간을 보낸 듯합니다. 얼마만큼의 성과를 얻었느냐, 이런 질문은 일단 접어두기로 했습니다. 항상 부족하고 아쉽고... 죽을 때까지 짊어지고 가야 할 인생의 숙제 같습니다. 

 

더 추워지기 전에 잠시 여행을 다녀올 생각입니다. 머리도 식힐 겸 나 자신에게 일종의 선물을 주는 셈입니다. 떠날 날짜는 하루하루 다가오는데 하필이면 목적지인 뉴욕이 허리케인 ‘샌디’로 어수선하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두 달 전부터 비행기 티켓 끊고 숙소 예약한 터라 마음이 싱숭생숭합니다.

 

아무튼 떠나기로 맘먹었습니다. 태풍이 또 불어오지야 않겠지요. 미국 대선이 코앞이니 맨해튼 거리에서 좀 색다른 구경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2005년에 뉴욕에서 6개월간 거주한 적이 있는데 서울보다 약간 쌀쌀했던 기억이 납니다. 여행 가방을 꾸리면서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들과 함께 두꺼운 스웨터랑 모자 장갑도 차곡차곡 챙겨 넣었습니다.

 

뉴욕에 가면 다른 작가들 작품이나 실컷 구경할 생각입니다. 15박 17일 동안 오가는 시간 빼고 마냥 미술관에서 진을 칠지도 모릅니다. 내가 살던 공간에서의 일탈, 그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의 의미는 충분합니다.  

 

여행은 사람 마음을 설레게도 하고 초조하게도 만듭니다. 모처럼 말끔하게 정돈된 화실 모습이 낯설게 다가옵니다. 어디든 멀리 떠날 때는 되도록 이것저것 치우고 정돈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누군가 떠나버린 자리에 여운처럼 감도는 정적을 남겨두기 위해서입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다시 문을 열고 들어와 내 눈에 비친 빈 공간의 쓸쓸함을 확인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비 그친 오후, 덕포진> 65×54cm 캔버스에 유채 2012-14

 

오늘은 그동안 준비한 야외스케치 동호회 2012년 전시작품 두 점을 올립니다. 끝까지 제 마음을 찜찜하게 만든 작품들이지만 이것도 역시 통과의례라 생각하고 담담히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11월 말에 김포 시민회관에서 있을 전시회 오프닝이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이 비 그치면 더욱 추워질 거라 하니.. 감기 조심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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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그리고 풍경, 석탄리> Watercolor on paper 36×23.5cm 2012

 

가을 풍경을 난생 처음 그려 봤습니다. 요즘에는 정말이지 난생 처음 해보는 게 참 많습니다. ‘난생 처음’이라는 말, 생각해 보니 참 우습기도 합니다. 죽을 때까지 항상 ‘난생 처음’인 하루를 살아가는 것 아닐까요. 그림을 그리는 한 아마도 저는 매일 그럴 것 같습니다.

 

전시회 참여 작품을 마무리 하고(부족한 게 너무 많아 처음부터 다시 그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이래서 쌍둥이 그림들이 자꾸만 태어나는 가 봅니다.)... 모처럼 밖에 나가 가을을 맘껏 호흡했습니다. 이렇게 가을이 지나가다니.. 모든 가을은 자기 인생의 마지막 가을과 같은 의미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가을 풍경을 그리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불가능하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튼 눈에 비치는 풍경과 그림으로 담아내는 풍경 사이에는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건 아마도 지구와 목성만큼의 거리 차일 겁니다. 아니면 지옥과 천당 사이? 사람들은 가을의 아름다움에 관해 칭송을 아끼지 않지만 햇살에 비친 은행잎과 단풍의 색채를 하나의 화폭에 담아내기 위해서는 대단한 용기와 기술, 실력, 재능, 아마도 그런 것들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살짝 엇나갔다가는 거의 이발소 그림이 되기 십상이다, 뭐 그런 얘기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꼭 정말로 근사한 가을 풍경을 그리고야 말겠다. 그런 결심만 가슴 깊이 새겨 넣을 따름입니다. 

 

아, 최근에 또 한 가지 중요한 일을 처리했습니다. 제가 사용하는 휴대폰은 아직까지 2G, 011번호입니다. 저한테 사진 파일 같은 것을 가끔씩 전송해 주는 언니와 동생들은 제발 좀 스마트폰으로 바꾸라고 투덜거리긴 하지만...

 

“문자 보낼 때 언니한테만 따로 보내야 한단 말이야!!!”

 

아이쿠, 미안! 그렇지만 나는 별로 소용이 없거든. 그런데 이 휴대폰에 갑자기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예 파워가 꺼져버린 겁니다. 한 3일쯤 그대로 두고 보았지요. 그러다가 결국 동네에 있는 대리점에 갔는데 점원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배터리가 부풀어 올랐군요. 이참에 스마트 폰으로 바꾸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011 번호와 중간 번호가 바뀌긴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1년 동안 전화번호가 바뀌었다는 메시지를 공짜로 해드리거든요.”

 

‘공짜’...라는 단어가 때론 매력적으로 들릴 때도 있지만 그때는 아니었습니다. ‘아냐, 난 끝까지 고수할 거야!’ 이상한 반발심, 오기 같은 것... 도대체 누구 맘대로 011을 지워버리기로 한 거야!!!!

 

결국 더 큰 대리점에 가서 단말기만 바꿔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요즘에는 011을 사용할 수 있는 휴대폰도 구하기가 참 어렵다고 합니다. 덕분에 스마트폰보다 비싼 값을 지불했는데, 2018년에는 아예 011번호가 사라진다고 하니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단말기 또한 올해 말부터는 거의 생산이 중단될 것 같다는 불길한 소식입니다. 다시 대리점에 가서 배터리만이라도 더 사와야 하는 건지...도와 줘, 수호천사!

011, 물어, 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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