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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여행 - 놀멍 쉬멍 걸으멍
서명숙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슬슬 나이가 들어가서 그런지 코미디나 버라이어티 보다는 다큐멘터리가 좋아지고 있습니다. 당연히 먹고사는 문제와 자식걱정에 눌려 살고 있고요. 그러다 보니 내 대신 남들이 세계 곳곳을 누비는 다큐 프로를 좋아하게 되었는데요, 그런걸 보면서 어쩌면 내가 직접 혼자 가서는 저렇게 멋진 광경을 다 볼 수도 없고, 저런 경험을 모두 해 볼 수 도 없다고 자위하기도 합니다. 왜 그런거 있잖아요. 방송국 촬영팀이니까 저런 장면이 나올때 까지 기다릴 수도 있고 특별한 곳에 입장도 되고... 요즘은 우리나라 방송사들의 다큐 제작능력도 아주 수준급이더라고요. (심지어) EBS에서도 세계 각지를 여행하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걸 보면. 얼마전 EBS에서 방영된 건데, 어느 여류작가가 그루지아를 여행하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그걸 보면서 내가 그쪽 동네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 알았습니다. 그리고... 프로그램 말미에 직접 여행에 나설 지원자를 모집하더군요. 가능한 외국어, 여행 목적 등을 적어 지원하라는 건데, 그걸 보면서 외국어도 그렇고, 시간도 그렇고(돈이야 뭐 방송국에서 해결해 주겠지만), 여러가지로 착찹했습니다.
얘기가 이상한데로 너무 많이 갔는데요,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게 바로 게으르게(간세다리로) 가능한 한 천천히 걸을 것을 권하는 군요. 사실 지금 제 아내와 어디를 함께 가면 불과 열걸음만 걸어도 차이가 나서 기다리는 정도이다 보니 저같은 사람에게 딱 맞는 말 같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제주올레를 만들어 가는 과정과 만들 것을 결심하게 된 산티아고 걷기, 그리고 제주올레 만들기에 동참한 사람들과 그 길을 걸어간 사람들에 대한 담담한 이야기로 엮여 있습니다. 원래는 집사람이 얼마전 부터 제주올레 얘기를 몇차례 했었고 저도 이러저러한 경로를 통해 좋다는 얘기를 듣고 있던 중이었는데, 아들녀석 책을 사 주다가 아내를 위한 책도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이 책을 선택 했죠. 책이 도착하고 나서 내용이 어떤가 하고 들여다 보다가 제가 먼저 읽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책과 상관 없이 가을 쯤에 한번 걸어볼까 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그게 만만치 않더군요. 저도 저지만 제 아내도 평일에슨 시간을 낼 수가 없거든요.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 나니까 아내가 이 책을 좀 나중에 읽었으면 싶습니다. 제 아내가 이 책의 저자처럼 모든 걸 접고 훌쩍 제주나 산티아고로 가 버리거나 최소한 그러지 못해 현재의 생활에 대한 불만이 더 커질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제가 바로 그런걸 느꼈으니까요. 강하게...
이 책에는 우리가 매스미디어 에서 접했던 유명인사들이 꽤 많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전혀 다른 모습인거죠. 대중과는 거리가 먼 스타라거나 여성의 권익을 대변하기 위해 팽팽하게 날 선 운동가와 같은 그런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같이 마주치고 인사하는 옆집 누님, 아줌마 그런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정겹고 친근합니다. 마치 가수 양희은씨나 오한숙희 교수(지금도 교수님이신지 모르겠지만)가 마치 내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사람 같다니까요 ^^ 사진들도 유명지의 멋진 광경들만 있는 게 아니라 그저 평범한 우리 형, 누나, 동생, 조카, 자식 같은 사람들 사진이 많이 있습니다.
아무튼 올 가을에는 다만 1박 2일 이라도 시간을 만들어 봐야 할텐데 올 휴가도 다 써버리고 해서 고민입니다.
책에 대한 리뷰 보다는 개인적인 넋두리를 늘어놓게 되었는데요, 제 생각에는 바로 제가 이러고 있는 것이 이 책을 읽은 후유증(?)이 아닌가 합니다. 모르는 사람들과도 속내를 약간 드러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하는 마력 같은 것이 제주올레 걷기 뿐만 아니라 그것을 소개한 이 책을 읽기만 하여도 있는 것 같습니다. 서너시간만 시간을 내서 읽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