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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대의 쇼 - 진화가 펼쳐낸 경이롭고 찬란한 생명의 역사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09년 12월
평점 :
인터넷 서점에서 고전과 신간을 아우르는 브라우징은 내게 만만치 않은 즐거움이다. 그러다 보면 구매예정 도서 목록이 점점 길어지게 되고 어떤 책들은 새로 발견한 책에 순위가 밀려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슬픈 처지가 되곤 한다. 반면에 기라성 같은 도서들을 제치고 상위에 랭크되는 신성같은 책들이 간혹 발굴되기도 하는데 바로 이 책 지상최대의 쇼가 1년에 몇 안되는 그런 책이었다. 만만치 않은 두께와 가격쯤은 문제가 아니다. 리처드 도킨스라는 그 이름 만으로도 모든것을 상쇄할 수 있었기에 우선 구매하였고 책이 배달 되던 시점에 읽고 있던 책도 만만치 않은 책이었기에 그 책을 읽는 며칠간 이 책을 읽고싶은 충동을 누르느라 힘들었고 결국 그 책을 더 부지런히 읽을 수 밖에 없었다.
무신론자이자 진화론자인 내게 리처드 도킨스 교수(지금은 교수직을 은퇴했지만 계속 교수로 부르고 싶고, 그의 은퇴가 안타깝다)는 당연히 훌륭한 사람이다. 그 박식함도 박식함이려니와 자신의 신념에 대한 확고한 자세와 투사로서의 자질과 투쟁이력 모두 그야말로 존경심이 들 수 밖에 없다. 이런식으로 말하면 유신론자(특히, 유일신을 지지하고 따르는 사람들), 역사 부인주의자 측에서는 이 리뷰 자체가 균형된 시각을 벗어난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상관없다. 이 행성 지구에서 우리 생명체는 진화의 역사를 이루어 냈으며 그 어떤 절대자나 설계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말보다는 진실이라는 말이 적절하겠다)을 눈꼽만큼도 양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킨스는 이 책의 서두에서도 밝히고 말미에서도 또다시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데, 미국을 위시한 유럽국가들(이들 국가들은 소위 문명국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나라들이다)에 만연한 잘못된 시각이 상상외로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있고 심지어 제도권 교육에서 진화론에 대한 교육이 위협받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 얼마나 한심하고 위험한 상황인가! 개인적으로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중에도(소위 자연과학 교육을 받았다는 사람들중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 물론 대부분 그리스도교도들이다. 그리스도교도들은 인류에게 엄청난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이 책은 그저 소파나 침대에 누워 한번 쓱 읽어볼 만한 책은 아니다. 정신을 꽂꽂하게 세우고 읽어도 빨리 읽히는 책이 아니다. 그렇다고 심각하게 어려운 책은 아니다. 다만 인문사회과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좀 이해가기 어려울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바로 그런사람들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기도 하다. 도대체 진화론에 대해 제대로 알고 진화론을 부정하는 사람이 과연 그들(진화론을 부정하는 사람들)중 몇 퍼센트나 될까? 내 생각에는 아무리 넉넉히 잡아도 5%도 되지않을 것 같다.
아들녀석이 고등학생인데 인문사회계열(문과)를 선택했다. 과학적 소양이 부족하여 걱정인데, 그녀석만 그런게 아니다. 요즘 고등학생들을 보면 그렇게 눈코뜰새 없이 바쁘게 공부하는데 왜 일반적인 교양이 형편없는지 개탄스럽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미 30대에 진입한 세대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다들 똑똑하고 말도 잘하는데 인문, 사회, 자연과학의 기본이 되는 교양지식이 그 위세대에 비해 약하다. 이래서는 한계가 있다. 일류국가는 고사하고 이류자리도 지키기 힘겨울 것이다.
이야기가 너무 거창한데로 갔다. 책으로 돌아와서, 이 책은 결코 쉬운 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해 못할 정도로 어려운 책도 아니다. 저자가 자신의 동료나 제자들을 독자로 설정하고 이 책을 쓴것이 나기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기본적으로 저자는 글을 재미있게 쓸 줄 아는 사람이다. 그저 저자가 안내하는 대로 정신만 좀 바짝 차리고 따라가다 보면
1) 진화론이 과연 어떤것인지 2) 진화론은 과연 어떤 적들과 싸우고 있는지 3) 진화론이 싸우고 있는 적들의 주장이 무엇이며 그것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소린지 알 수 있다. 단돈 몇만원과 조금 정신을 차려 읽는 독서의 댓가로 이런 것들을 얻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환상적이지 않은가?
또한가지 부수적으로 이런 즐거움도 얻을 수 있다. 이 것은 주로 번역서인 이 책에서는 괄호 안에 있는 형식을 표현했는데, 도킨스가 그의 적들(나는 과감히 이렇게 부르고 싶다)에게 냉소를 보내거나 우아한 경고를 표현할 때 사용한 문구들이다. 어쩌면 그렇게도 내 생각을 도킨스가 그리도 잘 표현했는지 감탄할 지경이다. 물론, 나라면 훨씬 더 거칠고 격한 표현을 썼겠지만.
아무튼 이 책 이거 요즘 흔히 쓰는 말로 짱이다. 반드시 읽어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