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괜찮아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북로드 / 2020년 4월
평점 :
품절


 

 

'사노 요코'란 작가의 이름을 처음 들었던 건 몇 년 전, 그림책 수업을 들었을 때였다. 그때 강사님이 극찬을 하시며 수업 시간에 읽어주셨던 <100만 번 산 고양이>를 보면서, 어쩜 저렇게 재미있고 감동적일까 인상깊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 이후 <사는 게 뭐라고>라는 사노 요코의 에세이집이 나왔다길래 직접 사서 읽어보고 편안하게 읽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새로 나온 <그래도 괜찮아>(사노 요코 글, 이지수 옮김 / 북로드 / 2020) 역시 보기 전부터 마음이 편안해지는 효과를 누렸다. 핸드백에 들어가는 아담한 사이즈, 부담스럽지 않은 두께. 나는 이 책을, 하루를 마감하는 퇴근길 지하철에서 자주 읽었다.

역시 사노 요코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단어나 문장이 유려하거나 힘을 팍 준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런데도 편안하게 술술 잘 읽히는 걸 보면 그녀는 천상 작가이구나 싶다. 사노 요코 할머니라고 부르고 싶은 친근함과 괴짜같은 매력이 이 책에도 곳곳에 숨어 있었다.

제목을 보면 아래와 같다. 자세히 보면, 제목이 아무리 길어도 열 글자 내외이다. 얼마나 쉬운 표현인가. 그리고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궁금하게 만드는 제목이다. 이런 분이 카피라이터를 해야 하는데. 지금은 세상에 안 계시니 안타까울 뿐.

 

 

<사는 게 뭐라고>가 나이가 좀 지긋한 사노 요코의 이야기라면, 이 책은 (역자의 말처럼) 좀 더 젊은 사노 요코의 이야기이다. 어렸을 적 추억과 젊은 시절의 기억을 찬찬히, 그리고 서정적으로 그려냈다. 물론, 거친(?) 스토리도 있다. 야쿠자와의 거침 없는 대화가 바로 그것인데, 무서워서 벌벌 떨 것만 같았던 야쿠자 앞에서도 서스럼 없이 질문을 쏟아내는 걸 보며 '괴짜'라는 단어가 절로 떠올랐다.

중간중간 사노 요코의 어릴 적 꿈과 바라는 점이 드러났다. 선생님이 좋아서 선생님처럼 지시고가 교양을 익히는 직업을 갖고 싶어했던 어린 날의 사노 요코. 그 꿈은 열매를 맺어서 그녀를 유명한 그림책 작가이자 에세이스트로 만들어 주었다.

 

 

이 책을 보면서 느낀 건 남들에겐 별 것 아닌 이야기도, 이야기 마술사가 표현하면 또 하나의 스토리가 된다는 것이다. 자칫 묻힐 수 있는 이야기를 특별하게 말해주는 재주꾼. 슬프고 힘든 상황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노 요코 할머니의 무한긍정 에너지에 나 역시 힘을 얻게 되었다.

 

세상을 떠났지만 글은 영원하기에, 앞으로도 사노 요코 할머니의 책이 기다려진다. 마치 돌아가신 할머니가 옛날 이야기를 녹음해두고 하나씩 하나씩 이야기 주머니를 풀어주는 것처럼, 또 많이 기다리고 기대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래도 괜찮아>는 거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따뜻한 에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틸리 서양철학사 - 소크라테스와 플라톤부터 니체와 러셀까지
프랭크 틸리 지음, 김기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공자가 아닌 이상, 나와 같은 범인(?)이 철학을 가까이하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와 같은 경우의 수가 가 될 것이다. 당장 실행 가능한 실용서나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자기계발서와는 달리, 지금 당장 내 삶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학문이 아니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은 나의 편견이었다.

800페이지가 넘는 두께의 압박(!)으로 쉬이 표지를 넘기지 못했던 <틸리 서양철학사>(프랭크 틸리 지음, 김기찬 옮김 / 현대지성 / 2020). 마치 대학 시절 교양수업의 교과서를 보는 느낌이었다. 최근, 철학에 대한 책을 몇 권 집중해서 읽으면서, 한번쯤 제대로 철학사를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펼쳐본 책이 바로 <틸리 서양철학사>였다.

이 책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 플라톤에서 니체, 러셀에 이르기까지 고대 철학부터 근현대 철학까지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철학 역사책이다. 단순히 연대기순 철학자의 나열이 아닌, 철학자의 사상과 말, 시대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철학 이야기책이다. 말 그대로 '자신만의 철학'을 갖고 논리를 펼친 많은 철학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로만 기억했지, 그가 했던 말이 자세히 무엇인지, 어떤 생각을 가진 철학자인지지 접해볼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흥미로운 그의 멘트가 나온다. 소크라테스가 재판에서 했던 최후의 말.

 

 

 

그래도 나는 그들에게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자 합니다. 나의 아들들이 자랄 때, 오 나의 친구들이여, 여러분이 그들을 벌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그들이 덕보다 재산이나 다른 어떤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처럼 보일 때, 내가 여러분을 괴롭게 만들었듯이 여러분이 그들을 괴롭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혹은 그들이 사실상 아무것도 아니면서 대단한 사람이 된 것처럼 행세하면, 그들이 마땅히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며 자신이 사실상 아무것도 아닌데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므로 내가 여러분을 질책했듯이 그들을 질책하십시오.

 

 

시대는 다르지만, 대부분 철학자는 삶과 죽음에 대한 끊임없는 사유와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거기에서 파생되는 생각들을 종합해 자신만의 철학을 완성하였다. 그러므로 철학과 종교는 뗄래야 뗼 수 없는 관계로 보였다. 죽고나서 어떤 세상이 오는지, 이를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사상을 중심으로 살아야 하는지 대한 고민이 필요함을 알려 주고 있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면서 유용했던 점은 니체, 흄, 러셀 등 근대 철학자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고대와 중세 철학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접할 기회가 적었던 이들의 철학사상을 한번에 읽어내려가면서, 머리속에서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모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누가 누구와 생각의 궤를 같이 하는지에 대해서도 간략하게나마 알 수 있어서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 책을 한번에 모두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8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대한 압박도 여전하다. 하지만 살면서 이렇게 철학사를 한번에 훑어내리기란 쉽지 않기에, 이 책을 용기내어 열어보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밀리터리 세계사 1 - 고대편
이세환 지음, 정기문 감수 / 일라시온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요즘 들어 역사에 부쩍 관심이 높아졌다. 연대기순으로만 나열되어 배워온 역사 이야기 말고, 마치 옛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처럼,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그 속에 감춰진 역사적 사실을 함께 듣는 걸 좋아한다. 역사를 '전쟁'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또한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 수 없다.

<밀리터리 세계사>(이세환 지음 / 일라시온 / 2020)는 인기 유튜브 채널인 <토크멘터리 전쟁사> 이세환 기자가 쓴 '전쟁으로 본 역사 이야기'책이다. 군대와는 거리가 멀고, 특히 전쟁은 영화에서만 보는 장황한 대서사시로만 기억하고 있는 내게, 이 책은 현실적이고 생생한 전쟁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런데, 이 전쟁 이야기가 무섭거나 끔찍한 것이 아니라 흥미롭고 친근한 것이었다. 특히 재미적인 요소를 가미한 저자의 상상력이 중간중간 도드라졌다.

이번에 읽은 '1. 고대편'은 고대사를 뒤흔든 열한 가지 거대한 전쟁에 대해 다루고 있다. 서로 싸우고 통합하고 또 영역을 넓혀가는 전쟁의 역사. 그 안에 '무기'가 있었다. 시대에 따라 어떤 무기를 쓰는지 세세하고 정밀하게 묘사가 되어 있는 게 이 책의 특징이다. 저자의 디테일하면서도 방대한 학식에 입이 딱 벌어졌다.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살라미스 해전, 펠로폰네소스 전쟁,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전쟁, 진시황의 통일전쟁, 한무제의 흉노 정벌, 포에니 전쟁, 로마 전쟁과 팍스 로마나, 위촉오 삼국전쟁, 고구려-수나라 전쟁, 고구려-당나라 전쟁...

11개의 챕터 제목에서 보듯, 이 책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 시대의 전쟁에 대해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교과서처럼 따분하거나 장황하지 않고, 마치 옆에서 보듯 세밀한 묘사가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효과를 만들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전쟁은, 우리가 흔히 '마라톤'의 기원으로 알고 있는 '마라톤 전투'이다. 아테네군의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42.195킬로미터를 뛰어가서 극적인 소식을 전하고 사망했다고 알려진 이야기. 주인공인 페이디피데스는 실제로 240킬로미터를 달렸다고 한다. 그것도 단 2주 만에. 가능한 이야기인가. 게다가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처럼 '죽음'을 맞이한 것이 아니라, 멀쩡하게 살아서 돌아왔다고 한다. 왜 이렇게 다르게 알려졌을까.

저자에 따르면, 근대올림픽 창시자인 쿠베르탱 남작이 올림픽 개최를 위한 극적인 이야깃거리가 필요했기에, 이 페이디피데스에 관한 이야기를 픽션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오~ 놀라운 이야기다. 그 옛날에 어떻게 42.195킬로미터를 뛰었을까, 누구라도 뛰었으면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론 6배의 거리를 더 뛰고 멀쩡하게 살아서 돌아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 책은 '밀리터리 세계사'답게 전쟁과 전쟁에 쓰인 무기에 관한 이야기가 자세히 나온다. 무기의 변천사를 통해 전쟁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눈에 띄는 것이 페이지마다 들어 있는 삽화와 이미지이다. 아무리 자세하고 긴 설명이 있어도, 실제로 어떤 모양인지 보지 못한다면 잘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무기라는 분야가 나와 같은 일반인에게는 친숙한 분야가 아니니까. 그래서 이 책을 가득 채운 삽화가 더 반가웠다.

 

 

 

 

"어마나, 폐하! 스윗가이."

이게 고대 중국에서 한무제의 후궁이 한무제에게 한 말이라니. 물론 작가의 상상이지만, 무척 재미있었다. 이렇듯 과거 정사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곁들인 이야기를 풀어냄으로써 역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내가 영화 시사회로 접했던 '안시성'에 대한 역사적 사실까지. 어쩜 이렇게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막힘 없이 술술 풀어냈을까.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놀랍고 놀라웠다.

사실 나는 <토크멘터리 전쟁사>란 영상을, 이 책을 보고 알게 되어 실제로 찾아서 보았다. 영상과 재미있는 설명이 곁들어지니 머리속에 쏙쏙 들어왔다. 책을 보면서, 영상을 보면서 저자인 이세환 기자가 전쟁과 무기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 마음이 느껴졌다. 좋아하지 않으면 결코 할 수 없는 연구들. 대단하다.

역사를 알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봐야 할지 모르는 사람, 늘 똑같은 역사책이 지겨웠던 사람, 아이들과 함께 재미있는 무기 이야기를 배워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밀리터리 세계사>가 좋은 길을 열어줄 것이다. 이제부터 <토크멘터리 전쟁사> 정주행을 시작해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은하 세무사의 부동산 절세 오늘부터 1일 - 2020 최신개정
이은하 지음 / 스마트북스 / 202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부동산은 정보가 생명이다. 최신 뉴스도 필요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정보는 정보로서의 가치가 더 이상 없다. 그래서, 한시라도 빨리, 또 유용한 정보를 습득해서 이를 적극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

 

작년 여름에 읽어서 많은 정보를 얻었던 부동산 절세책을, 이번에 2020 개정판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바로 <이은하 세무사의 부동산 절세 오늘부터 1일>(이은하 지음, 신똥 그림 / 스마트북스 / 2020). 내가 좋아하는 '오늘부터 1일' 시리즈라는 것도 좋았지만, 더 좋은 건 나처럼 일반인(!)도 부동산 절세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되어 있다는 것.

 

2019년에 출간된 이후로 몇 번의 부동산 정책이 발표되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부동산 가격을 잡는다는 정부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발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세금 부담이 한없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국면을 맞이하게 되므로, 빠르고 정확한 부동산 절세방법이 필요했다.

 

특히 비과세 혜택에 대한 요건이 자주 바뀌다 보니 헷갈리는 부분도 많고, 양도세에 대한 부담으로 부동산을 매도하고 싶어도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또한 나처럼 부모 세대와 합가 중인 사람들에겐 어떤 절세방법이 있을지에 대한 궁금점도 생겼다.

 

 

이 책을 보면, 일단 원하는 유형별로 챕터가 나눠져 있어 원하는 정보를 빨리 찾기에 유용하다. 1주택자와 다주택자의 비과세, 다주택자의 양도소득세 절감, 재개발 및 재건축 주택의 양도소득세, 주택 보유세, 증여세, 농지 양도소득세, 토지 수용과 세금, 법인 절세 등등... 부동산을 보유 중이거나 관심이 많은 사람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중요한 정보가 많았다.

 

특히, 인포그래픽이나 도표 등 시각적인 자료를 자주 활용하여 이해를 돕는 부분이 참 좋았다. 텍스트로 쭉 보는 것보다 하나의 이미지로 보는 게 보기에도 좋고 이해하기도 좋다. 이러한 이미지는 오랜 기간 내 머리속에 기억될 것으로 확신한다.

  

종부세에 대한 3가지 질문을 통해 어떤 세제 혜택이 있는지 알게 되어서 좋았다. 또한 부담부증여, 공동명의 등 세금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제안하여, 밑줄을 치고 메모를 하면서 읽었다.

 

 

사업용토지 vs. 비사업용토지.

이 섹션은 내가 요즘 가장 관심이 많은 분야이기도 하다. 주택 부동산에 비해 토지 부동산에 대한 정보는 상대적으로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뭐가 궁금한지조차 알 수 없는 영역이었다. 사업용토지를 보유하고 있지만, 정작 농사를 짓지 않거나 주말 농장 등으로 이용하고 있을 때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물론 '된다, 안 된다'라고 판결을 내려주면 좋다. 하지만, 부동산 보유와 거래에는 워낙 많은 케이스가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엔 이런 조건이 필요하고, 이런 요건을 충족하면 어떤 절세 혜택이 주어진다'는 사례 중심의 설명이 많이 등장함으로써, 나의 사례는 어떻게 적용되는지 직접 대입해볼 수 있었다.

 

 

아는 만큼 아낄 수 있다. 부동산 절세방법이 궁금하다면, 그리고 부동산 세금이 너무 어려운 영역이라 느껴진다면 이은하 세무사의 <부동산 절세 오늘부터 1일>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가 봄이었어요
나태주 지음, 더여린 그림 / 문학세계사 / 202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자세히 봐야 예쁘다

오래 봐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나태주 시인의 <풀꽃1>

광화문 교보문고의 현판에 적힌 이 시를 보고, 출근을 하던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한참 그 시를 올려보았던 기억이 있다. 딱 세 줄의 시인데, 글자도 100자가 채 되지 않는데. 신기하게도 글자가 살아서 내 마음을 움직였다. 그래서 <풀꽃1>은 나의 인생시가 되었고, 주변에도 이 시를 '인생시'로 꼽는 사람이 꽤 많은 걸 알게 되었다. 이 시의 시인인 나태주 시인. 오랜 기간 초등학교 교사로 생활하여, 평생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 온 친근한 할아버지 같은 분이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동시집을 출근했다고 해서 더 큰 관심이 갔다.

<엄마가 봄이었어요(나태주 시, 더여린 그림 / 문학세계사 / 2020>.

두 아이를 키우면서 깜짝 놀라는 순간이 많다. 특히 같은 상황과 사물을 보더라도, 자신만의 관점에서 독특하게 풀어내는 능력을 보면서, 역시 아이들의 마음은 '때묻는' 어른들과는 많이 다르구나 깨닫는다. 나태주 시인의 동시도 그러했다. 쉬운 말로 씌여진 시에 생동감이 넘친다.

  

커다란 배

우리 아빠

동글동글한 사과

우리 엄마

귀여운 레몬

나.

 

- 나태주 <가족>

이 시를 보자 일곱살 아이가 '어? 이거 우리 가족 이야긴데?'라면서 몇 번이고 읽어보더라.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동심이 아니면 결코 생각할 수 없는 동시이리라.

 

 

 

어린이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겠지? "너는 커서 무엇이 될래?"

나는 혼자서 생각해 봐요.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나는 그냥 사람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냥 내가 되고 싶어요.

꼭 뭐가 되어야 할 것은 아니라는 걸, 아이의 목소리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내 아이는 꼭 어떤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는 엄마, 아빠의 욕심이 때론 아이의 꿈을 가로막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사람 같은 사람, 그냥 나'로 자라고 싶은 아이의 마음을 다시 한번 들여다봐야겠다.

 

  

이 동시집의 제목은 <엄마가 봄이었어요>이다. 이제 볼 수 없는 엄마 생각에, 이 동시들을 잘 읽어낼 수 있을까 염려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른의 마음을 싹 걷어내고 온전히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엄마의 모습은 사랑이고 포근함, 따뜻함 그 자체였다. 나 역시 엄마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자랐기에, 어른이지만 동시를 읽으며 힐링이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부디, 내 아이들도 엄마인 나를 이런 모습으로 기억할 수 있기를.

 

 

 

특히 나에게 위로가 되었던 시는 '좋은 날'이란 동시이다.

아침 창가 나뭇가지에

새 한 마리가 찾아와 운다

엄마 잃은 새

얘야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넓은 하늘을 주마

아침 햇살이 말했다

얘야 나도 약속하마

내가 넓은 길을 열어주마

아침 바람이 말했다

새는 고운 소리로 지저귀며

멀리 날아갔다.

- 나태주 <좋은 날>

엄마를 잃어 세상을 잃은 기분이 된 '새'에게 아침 햇살과 아침 바람이 말해 준 건, 엄마 잃은 나에게 해주는 말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중간중간엔 마침표가 없지만, 맨 마지막에 찍힌 마침표 하나. 엄마를 잃어 갈팡질팡 갈피를 잡지 못한 새가 햇살과 바람의 약속을 듣고 마침내 힘차게 날아오르는 '다짐'처럼 느껴졌다.

 

 

요 몇 개월 전부터 아이들과 동시 쓰기 놀이를 하고 있다. 자신만의 시 노트를 만들어, 쓰고 싶은 내용을 시로 표현하는 것. 그리고 각자 쓴 시를 읽다보면 그 표현력에 놀라게 된다. 그리고 생각한다. 동시는 아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구나. 시가 꼭 어려울 필요는 없구나. 마지막에 나태주 시인이 남긴 에필로그를 보면서, 앞으로도 동시를 자주 접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부디 동시를 많이 읽기를 권합니다. 자기 자신의 행복과 평화로운 마음을 위해서 동시 읽기를 권합니다. 어린이들이 동시를 많이 읽게 되면 분명히 마음이 맑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고 남들도 생각해 주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