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1
마크 레비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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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체물리학자와 고고학자의 학자다운 이야기와 사랑이야기. 너무나 재밌고도 재밌다.
무엇인가를 밝힌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그것이 아주 옛날 옛날 이야기일때는 더더욱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를 보면서 그냥 땅만 파는 고고학자로만 알았던 사람들에게 흥미가 생겼었다. 한번 해봄직한 일이라는 것을. 하지만 쉽지는 않다. 아무도 관심같지 않고 아무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그런 이야기들을 홀로 알아내야 한다는 것이 말이다. 

이 책안에 두 학자는 다른 사람들이 다 기피하는 그런 일들을 한다. 고고학자는 최초의 인류가 누구인지. 어디서 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알고자 작업한다. 다른 사람들이 정착하라고 할때 오지를 향해서 출발을 한다. 천체물리학자도 마찬가지다. 태초에 어떤 별이 시작되었는지. 그 별은 지구별 하나인지. 태양계가 여러개는 아닌지. 지구를 떠나서 다른별에서 살 수는 없는지를 밝혀내려 한다. 그것때문에 목숨까지 위태하지만 개념치 않는다. 그렇게 자기가 알아내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는 누가 뭐라 해도 파고 파고 또 판다.
그런 두사람에게 태초에 비밀을 밝힐 수 있는 열쇠고리가 나타난다. 그것을 밝혀내기 위해서 목숨걸고 여행한다. 그것을 밝혀내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피해가면서 진실을 밝힌다. 그 진실이 밝혀졌을때 세상이 어찌 변할지. 어떤 세상이 올지는 생각지 않는다. 오로지 진실만 밝히려고 노력한다. 하나 하나 밝혀질때마다 성과의 희열을 만끽하기도 하면서...

하나의 숙제가 떠오른다. 아주 옛날에 우리가 성경적으로 생겨나지는 않았을 거란 사실은 모두 안다. 과학이 우선인지.. 진화가 우선인지는 삶을 살아가는 데는 그리 필요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나 공부하는 사람에겐. 그리고 사실을 받아먹는 우리 인류에겐 커다란 숙제이기도 하다. 성경에 바벨탑 이야기처럼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서 인류가 그냥 바보처럼 살아졌다면.. 그것을 새롭게 밝히고 새우는 것이 정답인지. 아님 지금 상태로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정답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될 것을 밝히는 것을 밝히는 것은 또 어떤지. 알권리와 그냥 현상태를 유지하는 것 중에 어떠한 것이 옳은 일인지도 알지 못한다. 다만.......그것으로 인해 우리에게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란 결론만 낼 뿐이다.

현재 1,2권으로 나와 있지만 앞으로 이야기는 더 전개될 것 같다. 완성이 되었을 때 무지 기대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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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차일드
김현영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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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한장을 넘겼을때 놀라웠다. 무섭기까지 했다. 뭐 이런 경우가 있어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네가 현재에도 행하는 일인것이다. 경악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사람은 태어나고 나이들어 힘 없으면 죽는다. 그래서 예전부터 죽지 않고 영원히 살기를 갈망한다. 죽지 않으려면 늙지 않아야 한다. 늙지 않기 위해서 진시황도 불로초를 찾아 멀리 사람들을 내보내기도 했다. 이 책안에 그 모든것이 다 담겨져 있다. 어머니 뱃속에서 의료 폐기물로 버려진 아이들. 늙고 힘없어서 부양받지 못하고 버려진 늙은이 수. 늙고 싶어도 영원히 늙지 않고 사람들의 놀림감이 된 진. 그들의 이야긴 우리의 현재이기도 하고 미래 이기도 하다.

의료 폐기물이란 말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경지를 침범한 한 예인 것이다. 사람을 살리고 죽일 수 있는 것.. 누구나가 꿈꾸는 신의 경지를 많은 사람이 침범하고 싶어한다. 일반의 사람들은 누군가의 생사 여탈권을 가진다면 범죄가 되지만 낙태를 시키는 부모나 의사는 범죄가 되지 않는다. 다만 의료폐기물을 정리할 뿐이다.
한때는 낙태도 일종의 범죄라고 부르짖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의 머리속에선 잊혀져 갔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본인 이야기가 아니면 흔히 망각이란 곳에 넣어두고 아무일 없는 듯이 평상을 살아간다. 그러니 어느 한 쪽에서는 누군가때문에 아파하고 울부짓는다. 의료폐기물로 취급되는 아이들도 그렇다. 세상에 태어나 보지 못했기에 무엇이 되었을지 무엇을 할지는 알지 못한다. 그들은 의사도 될 수 있고 또 다른 의료폐기물을 창조하는 사람도 될 수 있다.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그들에겐 기회가 없다. 존재감 없이 이세상 나타나 폐기장으로 사라진다.

힘없고 늙은 사람들을 예전부터 고려장이란 이름으로 버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들이 살면서 얻은 지혜를 활용함으로서 그들의 가치가 살아났다. 유교때는 그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과학이 사회를 책임지고 기계로 생활하는 요즘엔 지혜의 가치가 인정을 받지 못한다. 그들은 부양을 해야하는 후손들에겐 짐일 뿐이다. 사람이 사람이 아니고 짐으로 전락되어지면 더이상의 인격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쓰레기일 뿐인 것이다. 부모라는 이름도 할아버지 할머니란 이름도 없다. 손자 손녀라는 명칭도 사라진다. 친구끼리 생기는 우정도 없고 사람들간의 사랑 또한 없다.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서 부와 기계만이 대우 받는다. 사람들에게 감정이 사라지면 희망도 사라진다. 황폐할 뿐이다.

이런 세계가 우리의 멀지 않는 미래라면 정말 끔찍할 뿐이다. 바꾸고 싶다. 부양해야하는 사람보다 부양받아야 할 사람이 많은 사회라도 더불어 생활 하는 방법을 연구하여 사람이 사람으로 행사하는 사회였으면 한다. 우리 모두 미래를 위해서 지금이라도 노력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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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필요 없어 - 싱글맘과 여섯 살 아들의 평범한 행복 만들기
김양원 지음 / 거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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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손가정, 편부, 편모, 한부모 가정, 싱글맘, 싱글대디 .. 이모든 것이 이혼을 했거나 사별했거나 해서 한쪽 부무와 사는 가정을 일컬음이다. 왜 한쪽 밖에 없는 가정이 결손가정으로 불리는지는 몰랐지만 아주 어릴때부터 자연스럽게 받아왔고 불러왔던 말이다. 그러면서 그들을 볼때 한번쯤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었다. 울아들 다니는 학교는 아이가 작아 학급수는 작지만 촌인지라 그런 아이들이 많다. 그 과정에서 아이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한쪽 부모를 따라 그동안 지내던 친구들과 헤어지기도 한다. 그 과정을 지켜본 울아들도 어머니 아버지는 이혼하지 말라고 이야길 한다. 그건 자신들의 친구를 친구부모의 이혼으로 헤어짊을 경험하여서 그랬을 것이다.
 
이 책..."아빠는 필요없어"는 결혼3년만에 이혼하고 정인이란 남자아이를 키우는 싱글맘 이야기다. 처음 이혼하고 가족들 곁으로 돌아갔을때 무조건 잘못했다는 죄인(?) 비슷한 눈총을 받았다. 명절때 갈곳 없어 헤메이다가 오후에 친정으로 들어갔는 이야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이 우리네 잘못된 관점에서 비롯된 행동인 것 같다. 이혼하면 세상이 바뀌는 것 같이 크게 생각하는 부모님이 계신 사람들이 많이 계시니까..
정인이와 함께 아빠없이 살아가는 모습을 이야기한다. 평상시에 지낼땐 잘 모르겠지만 유치원에서 5월만 되면 하는 가족 호구조사.. 누군가를 처음으로 만나면 하게 되는 호구조사.. 남자들과 상대할때 남편의 부재를 느끼는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많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한다. 요즘 남편들은 솔직히 집안에 이름만 올려놓을 뿐 전혀 아이와 엄마가 살아가는데 도움을 크게 주지 않는다는 거다. 그래서 이혼후 남편의 부재를 느끼는 것은 우리나라의 사고에서 자라난 엄마가 괜시리 찔리는 것이지 아이에겐 크게 상처가 될 것 같지않다. 물론 없는 것 보단 있는 것이 좋긴 하겠다. 그렇지만 존재하면서 못해주는 아빠가 있는 것 보다는 아예 없어서 못해주는 아빠가 아이들에겐 더 그리움의 대상이 되지 않을 까 싶다. 한부모 가정에서 한쪽을 아이에게서 항상 가지고 있는 그리움이 보통의 가정에선 없기도 하지만 원수로 남는 경우도 많이 있으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부모 밑에서 자라난 아이가 모두 성공하지도 않고 말이다.
 
우리네 사회의 시각을 바꾸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가부장적 제도에서 아버지는 꼭 있어야 하는 것으로 치지 말고 말이다. 집에서 병풍이 되고 부모가 항상 싸움으로 시끄러운 모습을 보여 주는 것보단 이혼이라는 제도로 살짝 비켜나서 아이를 키우는 것도 괜찮은 방법인 것 같다. 서로에게 고통을 주는 것 보단 헤어져서 다른 밝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면 아이의 교육문제도 해결 되리라 본다. 싸우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정서적으로 더 피폐해지니까 말이다. 이혼했다고 해서 아빠나 엄마가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아닌 것처럼 이혼한 부모 밑에서 자라난 아이가 무조건 나빠지는 것은 아니다. 이혼한 부모주 아이와 함께 지내는 부모가 세상에서 중심을 잘 잡아 혼자 서는 것을 잘하면 아이도 잘 따라 올 것이다.
 
우리나라에 사는 한부모 가정 의 가장들에게 힘을 내라고 화이팅을 외쳐본다. 당신들의 생각처럼 많은 사람들이 혼자 되었다고 손가락질 하지는 않는다는 사실만 알아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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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비 2010-05-18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보았습니다^^
 
물음쟁이 생각쟁이 논리쟁이 1 - 바른 습관.바른 생활
박원석 지음 / 소금나무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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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쉬운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이곳에 있는 것처럼 연습하고 노력하면 할 수 있을 것이다. 뭐든 이렇게 말하면 하나 하나 본인의 행동으로 만들어 갈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실행은 해봐야 하겠지만..

여기 13가지의 예문중에 절반 이상이 울 꼬맹이에게 해당되는 것 같아 순간적으로 얼굴이 화끈거렸다. 울꼬맹이가 물음쟁이가 되지 못한 것은 내 탓이기도 하다. 나 자신이 말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꼬맹이는 말을 늦게 배워 말 트임과 동시에 많이도 질문을 했다. 하지만 우리 어릴땐 일일이 어른들에게 묻지도 않았고 어른들 또한 그것을 설명해 주지 않았다. 다 자기들이 주위를 보고 듣고해서 그대로 행동을 한 것 같다. 그것이 머리에 박혀 있던 나로서는 당연 아이에게 무엇인가를 차근 차근 알려주기 보다는 윽박지르는 것이 먼저였었다. 물음또한 황당한 질문이 많기에 설명을 해 주지 못했고. 일상적인 것은 그것을 말로 풀어 설명을 하지 못했기에 그냥 조용히 하라고만 했다. 그것이 지금의 결과인 것 같아 무척이나 안타깝다.

왜 아이들은 알려줘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했는지. 그냥 당연히 할 수 있다고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못하는 아이라 화가 먼저 올라와서 그런가 보다. 울 꼬맹이는 다른 집의 차분한 아이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하나 하나 타이를 생각을 못했다. 오히려 하지 못하는 것이 먼저 속상하였나 보다. 그러니 아이와는 항상 전쟁이고 아이는 여전히 바른습관과 생활이 몸에 베이지 못했다. 그 결과가 항상 커다란 소리가 오가는 전쟁이다..

물음쟁이 생각쟁이 논리쟁이는 아이에게 뿐 아니라 엄마에게도 도움이 되는 책이다. 아이는 아직 모든 것을 배워서 해야 한다는 것도 알려준다. 차분히 이야기 해도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엄마의 인내와 노력이 많이 필요하고 덜 필요하고 차이뿐일 것이다. 그래서 아이 스스로가 본인의 중요성을 깨닫고 생활해 갈 수 있다면 엄마와의 전쟁은 더이상 필요하지 않으리라. 본인이 논리적으로 생각해서 어느것이 나쁜 것인지 판단을 할 수 있을 테니까. 본인의 생활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살필 줄 아는 아이로 자랄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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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손 도장 - 2010 대표에세이
최민자 외 49인 지음 / 에세이스트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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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의 말씀에 만나는 사람마다 "수필을 쓰라고 이야기 하셨다"는 말이 가슴에 다가온다. 모든 분야가 다 수필이 된다는 것에는 글 쓰는 것이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예전에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하였을땐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편지를 쓰도 되고 일기를 쓰도 되고 무엇인가를 주제로 잡아서 쓰기만 하면 수필이 되고 글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땐 치기때문에 쓸수가 없었다. 지금은 또 어떠한가... 지금은 감추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글 쓰기가 되지 않는다. 글은 꾸밈없이 있었던 일을 쓰야지 거짓없는 글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쓰려면 이것이 걸리고 저것을 쓰려면 저것이 부끄럽게 여겨진다. 하다못해 남들이 열심히 써 놓으신 글을 읽고 난뒤 서평 쓰는 것도 쉽지가 않다. 하물며 내 글을 쓰는 것은 당근 너무나 어려운 작업이다. 왜 그것을 그리 쉽게 생각했는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젊은 날의 치기일 뿐이다.

 수필은 우리 주변에 일어난 이야기가 많다.
가족들 이야기에서는 아이들과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우리집을 보는 듯 하기도 했다. 우리 어렸을 땐 아버지가 한없이 어려웠다. 말을 하더라도 조심히 해야 했고 이야기를 하더라도 함부로 하지 못했다. 동생이랑 나이차가 조금 나는데 그들은 아버지를 대하는게 나랑 달랐다. 반말도 하고 농담도 하고.. 아버진 나랑 나이차가 덜 나는 데도 불구하고 동생들에겐 거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으신 것 같다. 어릴땐 그렇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그러한 것 같았다. 그것이 동생과 나의 관점의 차이일 것이다. 나는 아버진 무조건 권위를 세워줘야 한다는 예전 방식이고 동생들은 아버지는 가족이니 함께 웃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존재. 요즘의 세태에 맞추어 가는 것이리라. 내가 세태에 따라가지 못했다는 생각이 그 책에서 얼핏 들어 못남을 탓해 본다.

주변 생활 이야기도 읽으면서 함께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파지를 주우러 다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많이 본다. 그 꾀죄죄한 모습으로 다니면서도 자식 자랑을 하신다. 다들 알만한 대기업에 다니고 한 술 더 뜨면 간부로 재직중이다. 그리고 다들 함께 살기를 원한다. 그렇지만 본인이 원해서 가지 않는다란 이야기를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오라 할까란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은 내가 순수하지 못해서 일것이다. 생활고를 함께 꾸려나갈 나이가 되면 머리와 경제를 다른 곳으로 분산시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것을 알게 된다. 예전엔 나두 그런 할머니를 내버려 둔 자식들을 욕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무슨 사정이 있겠지란 이해를 하게 된다. 물론 그 이해란것이 나를 위한 변명일 확률이 더 많다.

이렇게 글들을 읽으면서 예전의 치기보단 나의 못남을 더 많이 깨닫는다. 그래서 수필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묘미를 느낀다는 말이 나오는가 보다. 젊은날의 치기는 그저 비평하게 되고 비하하게 되는데 이젠 동감을 하게 되니 말이다. 그 만큼 나에게도 글 거리가 쌓여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두 언젠가는 글을 한 번 써볼까?....이러는 거 보면 여전이 철 든건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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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해요 2010-05-14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한 서평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