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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손 도장 - 2010 대표에세이
최민자 외 49인 지음 / 에세이스트사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발행인의 말씀에 만나는 사람마다 "수필을 쓰라고 이야기 하셨다"는 말이 가슴에 다가온다. 모든 분야가 다 수필이 된다는 것에는 글 쓰는 것이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예전에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하였을땐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편지를 쓰도 되고 일기를 쓰도 되고 무엇인가를 주제로 잡아서 쓰기만 하면 수필이 되고 글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땐 치기때문에 쓸수가 없었다. 지금은 또 어떠한가... 지금은 감추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글 쓰기가 되지 않는다. 글은 꾸밈없이 있었던 일을 쓰야지 거짓없는 글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쓰려면 이것이 걸리고 저것을 쓰려면 저것이 부끄럽게 여겨진다. 하다못해 남들이 열심히 써 놓으신 글을 읽고 난뒤 서평 쓰는 것도 쉽지가 않다. 하물며 내 글을 쓰는 것은 당근 너무나 어려운 작업이다. 왜 그것을 그리 쉽게 생각했는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젊은 날의 치기일 뿐이다.
수필은 우리 주변에 일어난 이야기가 많다.
가족들 이야기에서는 아이들과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우리집을 보는 듯 하기도 했다. 우리 어렸을 땐 아버지가 한없이 어려웠다. 말을 하더라도 조심히 해야 했고 이야기를 하더라도 함부로 하지 못했다. 동생이랑 나이차가 조금 나는데 그들은 아버지를 대하는게 나랑 달랐다. 반말도 하고 농담도 하고.. 아버진 나랑 나이차가 덜 나는 데도 불구하고 동생들에겐 거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으신 것 같다. 어릴땐 그렇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그러한 것 같았다. 그것이 동생과 나의 관점의 차이일 것이다. 나는 아버진 무조건 권위를 세워줘야 한다는 예전 방식이고 동생들은 아버지는 가족이니 함께 웃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존재. 요즘의 세태에 맞추어 가는 것이리라. 내가 세태에 따라가지 못했다는 생각이 그 책에서 얼핏 들어 못남을 탓해 본다.
주변 생활 이야기도 읽으면서 함께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파지를 주우러 다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많이 본다. 그 꾀죄죄한 모습으로 다니면서도 자식 자랑을 하신다. 다들 알만한 대기업에 다니고 한 술 더 뜨면 간부로 재직중이다. 그리고 다들 함께 살기를 원한다. 그렇지만 본인이 원해서 가지 않는다란 이야기를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오라 할까란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은 내가 순수하지 못해서 일것이다. 생활고를 함께 꾸려나갈 나이가 되면 머리와 경제를 다른 곳으로 분산시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것을 알게 된다. 예전엔 나두 그런 할머니를 내버려 둔 자식들을 욕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무슨 사정이 있겠지란 이해를 하게 된다. 물론 그 이해란것이 나를 위한 변명일 확률이 더 많다.
이렇게 글들을 읽으면서 예전의 치기보단 나의 못남을 더 많이 깨닫는다. 그래서 수필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묘미를 느낀다는 말이 나오는가 보다. 젊은날의 치기는 그저 비평하게 되고 비하하게 되는데 이젠 동감을 하게 되니 말이다. 그 만큼 나에게도 글 거리가 쌓여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두 언젠가는 글을 한 번 써볼까?....이러는 거 보면 여전이 철 든건 아닌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