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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할머니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나라 요시토모 그림,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또 비가오는 날이었다.
갑자기 책이 미친듯이 보고 싶었다. 옆에 있는 시우에게도 책을 펼쳐주고 난 이 책을 펼쳐들었다.
요시모토 바나나란 작가는 내게 참으로 슬픈 기억을 주는 작가이다. 그의 작품과는 전혀 상관없이 말이다. 아무튼 난 다시 그녀의 책을 손에 잡았다.
이 책의 주인공은 엄마를 잃었다. 그리고 난 후에 커다란 선물을 받았다는 이 주인공의 글에서 나는 또 충격을 받았다.
엄마의 몸에서 엄마의 혼이 떠났을 때, 나는 그 싸늘한 몸을 보면서 몇 번이나 생각했다.
'아아, 엄마는 이걸 타고 여행을 했던 거야.'
그래서 나 역시 내 몸을, 자동차를 꼼꼼히 정비하듯 소중히 다루게 되었다. <p. 12>
이 저자의 생각처럼 모든 아픈 사람들은 사람들의 저주로 빨리 낫지 않는 것일까? 이 작가의 생각은 한참을 생각하게 만든다.
아빠는 비석과 정원석을 새기는 장인이시다. 그도 시대의 흐름에 거스르지 못하고 그 일을 그만두게 된다. 결국 아르헨티나 할머니라고 불리는 동네 괴짜 할머니네 집으로 가서 살게 된다. 이런 사실을 소문으로 드던 이 주인공은 아빠가 엄마를 잃어서 잠시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생각한다.
상상 속에서 아빠를 시설에 수용시키면, 나는 아빠의 무언가를, 아빠와 나 사이를 잇는 끈과 그에 연관된 아빠의 혼을 시설에 보내는 셈이 된다. 이런 게 옛사람들이 흔히 말하던 저주는 아닐까? 그런 끔찍한 일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었다. ...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숨을 쉬고 살아 있는데, 일찌감치 온 사방에서 밀려드는 그런 사소한 저주들 때문에 이미 죽은 사람 취급당하고 만다. <p. 23>
아빠의 새로운 여자. 엄마가 아닌 아르헨티나 할머니라고 불리는 40세 여자. 잘 씻지도 않지만 그녀의 집에가면 편안해지는 이 주인공은 아빠가 왜 이 여자를 사랑하는지 알것 같다고 한다. 글쎄 나라면... 돌아가신 엄마를 배신하는 거라고 아빠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은데 이 주인공... 아니 일본인들은 이런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일까? 이해하는 것일까? 나 그네들의 생각이 너무 궁금해진다.
터키에서 그리스 산도리니섬으로 배를 타고 들어갈 때였다. 한 일본여자와 남자를 만났다. 둘다 블랭킷은 물론 슬리핑백까지도 없기에 내가 하나 빌려줬다. 도착할 시간이 다 되어서 일어나 세수하고 왔는데 일본 여자애가 남자애가 일어날 때까지 옆에 앉아서 물그러미 쳐다보며 기다린다. 거의 다 도착했다는 소리에 남자가 일어났는데 그때까지도 그 남자의 단잠을 깨우지 않았다. 그리고 내 블랭킷을 양손 높이 울려서 내게 건네주었다. 그때 난 그녀의 친절함에 엄청 당황을 했었다. 난 그 일이 오래토록 내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일본인들의 배려? 그렇게 생각해야하나?
아빠의 인생과 사랑도 인정하려는 이 주인공의 태도를 보면서 갑자기 그 생각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정말 아름다운 여자는, 보고 또 봐도 어떤 얼굴인지 기억할 수 없는 법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