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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본 이 거리를 말하라 - 서현의 우리도시기행
서현 지음 / 효형출판 / 1999년 9월
평점 :
절판
서 현이라는 한 건축가가 쓴 우리나라의 도시기행기이다.
나는 이 책을 거두절미하고 강추하고 싶다.
기행기는 대부분 너무 가볍거나 대부분 너무 전문적인 것이 특징인데 이 저자는 그 중간지점에 서서 명확하고 명쾌하게 지적하고 표현력이 너무 지적이다.
정말 옮길수만 있다면 다 이곳에 메모해 놓고 싶을 정도로 표현력이 좋다. 내가 이 책에 빠져든 것은 첫째는 표현력이지만 둘째는 내가 잘 알고 있는 종로의 거리 구석구석에 대해서 지명과 역사의 흔적들을 다뤘다는 점에서이다.
흔히 지나가고 지나치고 걷고 있으면서 알지 못했던 곳들에 대한 저자의 눈으로 말하는 향기가 가득하다.
여행기를 좋아하지 않더래도 서울에 사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서울기행부분만이라도 읽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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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가 도시를 수직으로 확장시켰다면 자동차는 수평으로 확장시켰다. 13
이 길은 사람과 자동차가 어깨동무할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57
"나는 공주다. 훗날 태종으로 불리는 우리 아버지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둘째 딸이 혼인할 때 여기 집을 지어 주셨다. 이 동네는 그래서 작은 공주골이라고 불렸다. 대국의 문자로는 소공동이라고 쓰이는 곳이다." 65
인사동 통문관(1930) 앞에서는 나이 자랑을 하지 말라. 87
도심으로 자동차를 불러들이는 일이 마약임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 도시의 주위를 순환하는 고속도로는 필요해도 관통하는 고속도로는 위험하기만 한 발상이다.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은 3.1 빌딩에는 주차장도 없는데 자동차를 불러들이기만 했다. 121
이 거리에서는 무단횡단도 사라졌다. 좀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자유횡단이다. 이 길의 가치는 좁다는데 있다. 길 저편도 길 이편도 같은 공간으로 엮인다. 162
이 길은 자동차를 위해 존재하는 길이 아니다. 꾸짖을 것은 자동차의 무단 종단이다. 163
푸른 숲 속의 용산 미군기지는 그만큼이나 푸른 멍으로 한국근대사가 남겨놓은 상처다. 이태원길은 그 상처가 터져 나온 흔적일 뿐이다. 188
"스님, 저희가 극락의 문을 찾지 못할까봐 그리도 큰 현판을 내거셨습니까. 내리누르는 현판의 무게에 문루가 무너질까 두렵습니다. 어찌 저희를 이리 사바의 언저리로 내몰려고만 하십니까." 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