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자 나탄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 지음, 윤도중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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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이슬람교, 그리고 유대교 간의 화해를 다룬 레싱의 작품이다. 교리를 떠나 인간적인 순수한 감정과 사랑을 바탕으로 종교를 대해야 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바와 달라서 아쉽다. 전체적으로 약간 인위적인 느낌이 강하달까. 어색한 부분이 없지않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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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기적 - 프랑스 떼제와 신한열 수사 이야기 나와예수 2
신한열 지음 / 신앙과지성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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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떼제'라는 곳을 아는가? '떼제'는 프랑스의 어느 시골 마을의 이름이다. 하지만 요즘은 시골 마을의 이름보다는 특정 단체의 이름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 바로 '초교파 기독교 공동체'인 '떼제'이다.


내가 '떼제'를 처음 만난 건 유튜브에 올라온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종교의 역사라든지 관련 다큐를 자주 보기 때문에 알고리즘으로 떴던 것 같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보기 시작했는데, '떼제'라는 공동체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의문으로 점차 빠져들게 되었다. 신앙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강한 여느 기독교 단체와 달리 믿음을 강요하지 않고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저마다 다른 국적의 젊은이들이 모여 솔직한 마음으로 서로를 알아가는 이들의 모습들이 꽤나 신선했달까.


https://youtu.be/H7Eik5hgw5M

그들이 부르는 노래 또한 인상적이었는데, 보통 1,2,3절까지 가는 긴 찬송가 대신 한 두 구절로 된 아주 간단한 가사로 된 찬송가를 쓰며 누구나 부를 수 있게 했다는 점, 그리고 하나의 언어가 아닌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일본어, 심지어 한국어 등등 여러 나라 언어로 부른다는 점 같은 부분이 새로웠다. 이는 떼제라는 곳 자체가 어느 하나에 머무는 곳이 아닌, 여러 국가와 언어, 종파를 넘어 모두가 하나 됨을 추구하는 초교파적인 특징을 지니기 때문으로 보인다. 거기다 떼제는 기독교의 교리를 강의나 가르침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참가자(신자든 비신자든 상관없이)들이 하느님을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기다려준다(물론 중간에 교리 관련한 강의도 하지만 30분에서 1시간 정도만 하고 나머지는 묵상과 기도를 함). 위에서 말한 떼제의 노래는 이에 더해 조용하면서도 차분함 느낌을 주어 잠시 마음을 비울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준다.


아무튼, 이러한 이유 때문에 개인적으로 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신자든 비신자든 차별하지 않고, 믿음을 강요하지 않으며, 국적이나 종파에 상관없이 누구나 받아주는 이 단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어떤 이유로 이런 단체가 만들어졌으며, 그 목적은 무엇인가 궁금했다. 아쉽게도 국내에 알려진 떼제 관련 책은 거의 없다. 있더라도 절판되었거나 찾아보기 힘들다. 아무래도 앞서 말했듯, 떼제가 어떤 교리나 가르침을 통해서가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따로 없는 것일 수도 있고, 주로 가톨릭 매체를 통해 가톨릭 단체로 잘못 알려져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잘 퍼지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행히 현제 떼제에서 활동 중인 '신한열 수사'가 펴낸 <함께 사는 기적>이라는 책이 있었고, 이참에 읽어보게 되었다.


일단 '떼제'라는 곳은 무엇이며 그곳에서 살아가는 '수사'라는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 책 속에서 신한열 수사는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떼제의 존재를 '공동체의 비유'라고 소개한다. 떼제의 창립자인 '로제 수사'는 혼돈 그 자체였던 세계대전을 직접 몸으로 겪은 사람이다. 개신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전쟁을 치르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죽고 죽이고, 미워하고 증오하는 모습을 보며 '어떻게 같은 인간들끼리 이럴 수 있는가'하는 충격과 그 원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로제 수사는 이것이 상호 간의 이해와 화해가 부족했기 때문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는 상대가 누구든, 어느 나라 사람이든, 어떤 종파든 조건에 상관없이 화해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고 '떼제'라는 곳에서 동명의 단체를 만들었던 것이다.


다큐에서 로제 수사는 말한다, <우리는 다 같은 인간이고, 인간은 다른 인간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라고. 책에서도 떼제는 단순히 시골 산속에서 파묻혀 세상과 단절된 수도원 같은 곳이 아니라 모두가 모여 같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공동체의 모습을 몸소 보여주면서, 동시에 세상 속 다툼을 겪는 이들을 이곳 떼제에 모이게 하여 그들에게 화해와 이해의 중요성을 느끼게 해주는 것. 이것이 떼제의 존재 의의라고 나온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 같이 살아가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님을 '예시로서' 보여주는 공동체인 것이다. 종교적으로도 가톨릭, 개신교, 정교회로 나뉜 기독교들의 화합을 중요시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떼제에서 중요시하는 건 하나 더 있다.

바로 젊은이이다. 떼제에선 매년 수만 명의 젊은이들이 모인다. 국적이나 나이, 종교에 상관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데, 이는 떼제에서 열리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말하는 프로그램 중에는 기도하고 묵상하는 것도 있지만 거기에 한정되지 않은 여러 행사들이 있다. 개최 장소따라, 현재 세계적으로 큰 이슈가 된 사건 사고(분쟁 사례)들을 바탕으로 함께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는 식의 프로그램도 있다. 이때 대다수의 사람들이 젊은이들인데, 모두가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있지만 떼제를 찾은 가장 큰 이유는 <이곳은 종교를 강요하지 않고 상대가 누구든 평화롭게 소통하며 평화를 꿈꿀 수 있다>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요즘 기독교에서 젊은이들의 빠져나가는 일이 다반사가 된 한국에선 젊은이들이 제 발로 찾아온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일까, 책을 보면 지금까지 알고 있는 기독교인들 중에서 젊은이들에 대한 이해도가 굉장히 높아 보이는 구절이 많이 보였다.

떼제의 수사들은 독신 생활을 하며 사유 재산도 없이 오로지 공동체 형제들과 더불어 살아간다고 한다. 속세를 떠나 살아가는 듯해 보이는 그들이지만 저자인 신한열 수사가 말하는 '오늘날 젊은이들'에 대한 생각을 보면 웬만한 보수 종교인들의 마인드보다 한결 현실적이라 할 수 있다.


책에서 신한열 수사는 젊은이들에게 어떠한 것을 강요해선 안된다고 말한다. 젊은이들은 결정보다는 질문이 더 많은 시기이고, 무언가를 스스로 선택하는 자유로움이 필요한 세대라고. 우리같은 어른들은 그저 옆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며, 때로는 위로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떼제에서 왜 기독교적 가르침보다는 대화와 경청, 묵상의 시간이 많은가는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한 가지 더 흥미로웠던 건 떼제 특유의 기도 방식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떼제에선 묵상과 기도가 중요하다. 다 같이 모여 기도하는 곳을 보면 의자도, 높은 단상도, 심지어 기독교적 상징물도 거의 없다. 사람들은 아무 곳에서 앉아 기도를 드리며 수사들 역시 가운데에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앉아 기도를 드린다. 앞에는 꺼지지 않은 희망과 신앙을 상징하는 촛불이 그득하며 묵상의 마지막엔 서로 촛불을 나누며 희망의 씨앗을 나눈다. 그 누구도 다른 이들보다 높은 위치에 있지 않으며 모두가 평등하게 기도한다. 이는 약자를 중시하고 소박한 삶과 무한한 용서를 보여준 예수의 모습을 본받고자 하는 것에서 왔다고 한다. 떼제에선 신앙은 '신뢰'이며 그 신뢰란 거창하게 교리를 설명하거나 성대한 기도를 올리는 게 아닌, <우리는 그런 게 없어도 언제나 주님 곁에 머물러있겠습니다>라는 소박한 마음가짐이다. 이 역시 거창한 교리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우리나라의 몇몇 사이비 교단이나 무자비하게 십일조나 뜯어가는 여느 기독교인들과 전혀 다른 모습이라 신선했다. 이게 진정한 기독교가 아닐까?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건 그들의 세상을 넘어서서 종교계에서의 화해와 일치 운동이었다.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한 분이시다>라는 사실을 통해 가톨릭과 개신교, 정교회 모두 싸우지 말고 화해하길 바라는 떼제. 그렇다고 혼합주의로 치우쳐지지 않은 채 저마다의 다름을 인정하며 적대적으로 대하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흔히 떼제를 기독교를 중심으로만 화해를 추구한다고들 하는데, 이슬람교, 유대교, 심지어 불교 등등 여러 종파와도 마찬가지로 화해를 추구한다.

한 번은 내전을 피해 프랑스로 망명해 온 이슬람교 난민들이 있었는데, 떼제에선 임시 거처가 필요한 이들을 기꺼이 초대해 정착을 위한 프랑스어 교육 주선은 물론이고, 그들이 따로 기도할 수 있도록 자리 또한 마련해 줬다고 한다. 이때 마침 프랑스에서 이슬람교도로 추정되는 테러리스트들이 테러를 벌여 수많은 사상자를 만들어낸 일이 발생했는데, 떼제에 머물던 이슬람교 난민들은 이렇게 말했다.

<저들은 진정한 이슬람교도가 아닙니다. 수사님, 저희가 저들을 대신해 무고한 희생자들을 위해 사과의 기도를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리고 그들은 마련해 준 자리에서 한참을 기도했다고 한다. 그 밖에도 스님들이 부르는 성가라든지 세계 각국의 언어로 부르는 찬송가에 대한 에피소드들은 뭔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비신자였던 내가 기독교 관련 책을 읽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화해와 평화에 대한 희망을 얘기하는 본 책은 종교를 떠나 이와 비슷한 바람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헛된 희망이 될 수도 있는 이러한 바람을 누군가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바람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 사람이 예수를 믿는 진정한 기독교도라면 더더욱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언젠가 프랑스에 가게 된다면 이 떼제라는 곳을 한번 찾아가 보고 싶기도 하다.



우리는 ‘공동체의 비유‘이다.

우리는 분열된 그리스도인들 사이, 갈라진 민족들 사이에서 화해의 징표를 우리의 삶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그분 안에서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결혼을 하든 독신 생활을 하든, 한국에서 살든 프랑스 혹은 어디에서 살 건, 하느님과 함께 그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나의 길이다.

우리 떼제의 형제들은 이곳에 오는 젊은이들에게 신앙을 주입하거나 일방적으로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그들 스스로 모색하고 성찰하고 해답을 찾도록 얘기를 들어주고 질문을 던지고 함께 기도할 뿐이다. 사랑과 믿음을 어떻게 강요할 수 있겠는가? 사랑이신 하느님은 우리 각자의 자유로운 응답을 기다리신다.
젊은이들은 현대의 절대적인 가치인 자유와 개성을 추구하면서도 공동체와 친교를 동경한다. 그래서 수도원이든 결혼이든, 공동생활에 투신함으로써 자유와 개성을 잃어버리고 단체나 가족에 얽매이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 많은 젊은이들의 공통적인 우려인 듯 하다.

한국 청년들의 고민과 어려움에 관해 듣다 보면, 문제의 본질이 개인보다는 사회(통념)나 제도, 부모나 기성세대에 있는 경우도 많다. 소수만 성공하며 다수가 좌절감을 맛보는 구조를 만들어 놓고 실패하면 자기 능력 부족으로 돌리며 자책하게 만드는 것도 같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자신의 경제적 삶이 부모들보다 못할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는 첫 세대다. 내가 볼 때 한국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에 비해 훨씬 더 개방적이고 융통성 있고 포용적이다. 이들은 거창한 꿈이나 대단한 성취가 없더라도 작은 것들에 감사하고 만족하며 행복을 찾을 줄도 안다. 또 거대한 구호를 외치지 않아도 일상의 구체적인 일에서 공정하지 않은 관행을 고쳐 나가려 애쓴다. 이들은 혈연, 지연과 학연에 매이지 않고 훨씬 더 자유롭다. 이들은 선배나 상사, 어른들이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보다 지금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본다. 젊은이들의 눈에는 과거의 민주 투사보다 지금의 비민주적인 상사의 모습이 더 현실적이다.

예나 지금이나 젊은이들은 목마르고 배고프다.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물으며 삶의 의미를 찾는다. 삶과 신앙에 대해 해답보다는 질문이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오늘날의 보통 젊은이들이다.

그것(신앙)은 강의를 통해서가 아니라 아름다운 공동기도와 침묵, 단순 소박한 생활 가운데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았다. 평화롭고 신뢰하는 분위기에서 며칠을 보낼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줄 뿐이다. 기도 시간에도 누구나 편안하게 참여하도록 배려한다. 어렵고 긴 말이 전혀 없다. 짧은 한두 마디를 여러 차례 반복해서 노래하면서 묵상한다. 때로는 말보다 침묵을 통해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발견할 수 있다.


기도는 생각을 채우는 것이기보다 비우는 것이다. 그 빈자리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분", "우리와 전혀 다른 분"이 찾아오신다. 기도는 내 처지와 상황에 대해 하느님께 설명하고 설득해서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시도가 아니다. 신뢰하는 마음으로 그분 앞에 머무는 것이다. 가난한 이의 기도를 하느님께서는 들어주신다. 가난한 마음, 부서지고 깨진 마음으로 그분께 향하는 사람, 절실한 마음으로 당신을 바라보는 인간을 하느님께서는 외면하지 않으신다.

희망은 함께 찾아가는 것이다. 고립되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가 ‘하느님‘이라도 하든 ‘하나님‘이라고 하든, 기도를 들으시는 이는 한 분이다. 다른 교파의 신자들이 비록 번역을 달라도 같은 성경을 읽고, 똑같은 ‘주님의 기도(주기도문)‘를 드리고, 같은 신경을 고백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충분히 알고 있지 않는가? 그들 모두가 하느님(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들이다.

그렇다, 평화(샬롬, 안녕)는 이미 주어졌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자애로우신 하느님은 무엇보다 참을성 있는 분이시다. 분명한 것은, 이 땅 위의 불의와 배고픔이 있는 곳, 억압과 소외가 있는 곳, 사람들이 안녕하지 못한 곳에서 그분은 오늘도 지극히 가난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태어나고 계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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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동서문화사 세계문학전집 17
샬럿 브론테 지음, 박순녀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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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 자연스레 어렸을 때가 떠오른다.


과거 부모님이 나의 논술 실력을 향상하기 위해 '어린이 논술 대비 세계 명작 동화' 시리즈를 사주신 적이 있었는데, 많고 많은 작품 중에서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작품이 바로 '제인 에어'였기 때문이다.

확실히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서 엮다 보니 기타 자세한 설명은 제외하고 대략적인 스토리만 나와 있었는데, 그래서일까, 다 큰 성인이 되어서 다시 읽어보니 '이게 정말 제인 에어였다고?'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동안 알고 있었던 '제인 에어'라는 작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도 몇몇 사람 중에는 '제인 에어'를 단순한 로맨스 소설일 뿐, 고전 소설의 반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분도 있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면 전혀 다르다.


일단 스토리를 간략하게 설명해보자면,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은 주인공 '제인'은 외숙모에 해당하는 '리드 부인'네 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나 말이 같이 사는 거지, 사실상 얹혀사는 꼴이라 리드 부인은 물론 그곳 집안 식구들, 심지어 하녀들에게까지도 무시당하며 살아간다. 어느 날, 리드 부인네 아들과 크게 싸운 제인은 귀신이 나온다는 '붉은 방'에 강제로 감금당하는 사건을 겪게 된다. 이를 계기로 제인은 숨겨왔던 반항심을 불태우게 되고, 리드 부인은 그런 그녀가 '악독하다'라며 '브로클허스트 목사'가 운영하는 '록우드'라는 기숙사 학교로 보내버린다. 학교를 운영하는 브로클허스트 목사는 매우 엄격했기 때문에 록우드 또한 매우 엄격한 규칙과 열악한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곳에서 제인은 야단을 맞거나 간혹 절망할만한 일을 겪기도 하지만 친구인 '헬렌'과 사귀면서 어찌어찌 버틴다. 하지만 얼마 못 가 학교에 전염병이 유행하기 시작하고, 친구 헬렌 역시 이에 대한 합병증으로 인해 제인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한편, 그 사건 이후 제인은 약 8년 가까이 록우드에서 보내며 성인이 되었을 무렵에는 학교 교사로서 일하기도 한다. 그러나 록우드에서의 생활에서 답답함을 느낀 그녀는 자유를 꿈꾸며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것을 다짐한다. 그리하여 제인은 신문에 가정교사 관련 광고를 게재하게 되고, 얼마 못 가 '페어팩스 부인'이라는 사람이 제인을 가정교사로 채용하겠다는 답장을 받는다.

기숙학교로 떠나 손필드에 위치한 저택(말이 저택이지 거의 성 수준 ㄷㄷ)에 도착한 제인은 자신을 채용하겠다는 편지를 보내고 그곳을 관리하는 페어팩스 부인과 자신이 가르칠 프랑스 출신의 소녀 '아델라'와 만나게 된다. 페어팩스 부인은 주인은 잠시 여행을 갔다고 대답하며 그녀를 극진히 대접한다. 마음씨 좋은 부인과 정신 사납지만, 착한 아델라를 가르치며 만족해하던 제인은 어느 날 마을에서 편지를 부치고 돌아오는 길에 말과 함께 넘어진(빙판길에 미끄러짐) 남자를 도와주게 된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떠난 그는 알고 보니 손필드의 주인이자 제인을 고용한 주인인 '에드워드 로체스터 페어팩스'라는 사람이었고, 독선적이며 독특한 성격을 가진 그는 제인을 불러 심문(면접)하는 등 그녀에게 이상하리만큼 관심을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제인은 저택에서 수상한 비명소리를 듣게 되는데, 한두 번이 아니라 자주 들리는 소리였기 때문에 의아해한다. 로체스터를 비롯해 다른 고용인들은 그게 과묵한 '그레이스'라는 중년 하녀의 혼잣말이라며 안심시키지만 비슷한 시기에  있던 침실에 불이 나는 등의 괴상한 일이 벌어진다. 이때 제인은 자고 있던 로체스터를 깨워 불 속에서 구해주는데, 역시나 이상하리만큼의 고마움을 표시하는 그에게 그녀는 점차 호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러나 한낱 가정교사가 신분이 높은 사람과 사귄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고, 로체스터가 친분이 있던 귀족과 그의 딸을 불러 즐겁게 노는 모습을 통해 자신은 거기에 낄 자리가 없음을 뼈저리게 느낀 제인은 로체스터가 결혼한다면 자기는 떠나겠다고 말한다. 이에 로체스터는 어째서인지 가지 말라고 말린 뒤 그녀를 따로 불러 사실 자기는 제인을 좋아하며 그녀에게 결혼해 달라고 고백한다. 서로의 마음을 고백한 그들은 곧바로 결혼식을 올리려 하지만 식이 끝나기 직전, 누군가가 달려와 그들의 결혼을 방하면서 그동안 로체스터가 숨기고 있었던 비밀이 드러난다. 그리고 제인을 절망하며 도망치듯 손필드 저택을 떠나게 되는데….


스포라서 여기까지만 말하겠다.

이렇듯 제인 에어는 스토리만 보면 거의 오늘날 '로맨스 소설의 전형'이라 불릴 만큼의 스토리를 담고 있다. 그러나 막상 읽어보면 제인과 로체스터의 로맨스뿐만 아니라 주인공인 제인의 섬세한 심리묘사와 18, 19세기 영국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파격적인 장면들이 나오는 걸 볼 수 있다. 오죽했으면 책이 출판되었을 당시에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고, 인권운동가이자 나름 진보적인 사고를 가졌던 '엘리자베스 개스켈' 또한 딸에게 20대가 될 때까지 이 책을 읽지 못하게 했다고 하니, 그 충격이 어마어마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파격적이라는 걸까?

그건 내가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이기도 한, 주인공 제인의 성격에 있다.

일단 제인이라는 캐릭터는 순종적이고 수동적이었던 당시 여성들과 달리 자립심과 독립심, 그리고 자유에 대한 열망이 매우 강하다. 그녀는 리드 부인 밑에 있을 때도, 록우드 학교에 있었을 때도, 심지어 사랑하는 로체스터의 곁에 있을 때도 자립심을 지키고자 했으며(제인을 그 앞에서도 결코 순응적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면 때문에 로체스터가 반했다), 리드 이모와 브로클허스트 같이 상대방을 제어하고 억압하려는 자들에 대해선 격렬히 저항한다. 물론 그렇다고 거칠게 저항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불만과 반감을 숨기지 않아 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당시 어린애들에겐 '귀찮은 간섭자', 고용인들에겐 '굳이 숙녀 대접을 해야 할 필요가 없는 존재', 그리고 하인과 하녀들에겐 '자신과 비슷한 처지면서 주인과 같은 대접을 받은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던 '가정교사'라는 위치에서 자신보다 윗사람인 주인에게 '나도 감정이 있고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결국엔 그 사랑을 쟁취한다는 점에서도 역시나 그 시대의 편견을 깨려고 한 모습을 볼 수 있다(소설 마지막 부분에서 제인이 '로체스터 씨는 나와 결혼했습니다'라는 말 대신 '나는 그와 결혼했다'라며 자기를 주어로 삼았다는 문장 역시 유명하다). 이러니 당시에는 얼마나 파장이 있었을까는 예상하기 쉽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다른 의미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브론테 자매'의 일원이라 불리는 저자 '샬럿 브론테'에 대한 것이다. 아시다시피 영국 문학사에 많은 영향을 미친 '브론테 자매'로는 <폭풍의 언덕>을 쓴 '에밀리 브론테'와 <아그네스 그레이>를 쓴 '앤 브론테', 그리고 이 <제인 에어>를 쓴 '샬럿 브론테'가 있다. 그녀들은 폭풍이 자주 일고 황량한 영국 시골 벌판(?)에서 태어났다. 그래서인지 그녀들의 작품들 대다수는 거칠고, 야성적이다. 특히 에밀리 브론테가 쓴 <폭풍의 언덕>이 그러하다. 샬럿이 쓴 <제인 에어>는 그에 비해 양반이지만 그래도 역시나 작중엔 이들의 성향을 볼 수 있는 설정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자신의 성향을 '히스'에 비유하는 제인의 말이라든지, 여느 캐릭터들과 달리 자연적이고 거친 성격을 가진 로체스터라는 인물(그가 살던 '손필드'는 '산사나무'라는 뜻과 함께 '가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음), 그리고 앞서 말한 자유로움에 대한 갈망과 거친 반항심 깊은 캐릭터 등등이 곳곳에 나타난다.


또한 <제인 에어>는 샬럿의 자전적인 소설이라 불릴 만큼 그녀의 실제 삶과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가령 록우드 학교는 실제로 샬럿과 에밀리가 다녔던 기숙사 학교를 모티브로 하고 있으며, 친구 헬렌 역시 기숙학교에서 일찍 요절한 언니 중 한 명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로체스터 또한 작가 본인이 벨기에에서 유학했을 당시 다녔던 학교 선생이자 교장이었던 '에제'라는 인물에서 따왔다고 할 수 있다(근데 에제는 유부남이었고 성격이 더럽기로 유명했던지라 샬럿의 구애 따윈 저 멀리 던져 버렸다고... 그리고 에제의 부인은 거기에 질투해서 남편이 찢어버린 샬럿의 러브레터를 하나하나 붙여서 읽었다고 하는데, 그 흔적이 오늘날까지 남아있어 사람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고 한다 ㅋㅋ).


<제인 에어>라는 작품은 '로맨스 소설'이라는 틀 안에서 겉으로만 살짝 맛보기엔 너무 아까운 책이다.  제인의 성격, 그리고 그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떠올리며 읽는다면 고전 소설다운 면모를 충분히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제인의 사촌이자 훗날 그녀에게 청혼하는 '세인트 존'과의 이야기도 로체스터와의 로맨스 못지 않게 재미있으니 꼭 읽어보시길!)

왜 나만이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가, 왜 항상 야단을 맞고, 항상 책망당하고 항상 처벌을 받아야 하는가? 왜 나는 남의 호감을 살 수 없는가? 남의 마음에 들게 하려고 해도 왜 그것이 보답을 받지 못하는가?
"불공평하다! 불공평해!" 내 이성은 괴로움에 찬 격정에 떠밀려, 비록 잠시나마 나이에 걸맞지 않은 힘을 얻어 이렇게 외쳤다.
나는 게이츠헤드 저택에는 어울리지 않는 존재였다. 그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사실 그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로서도 서로 마음이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 대정을 쏟을 의무는 없는 것이다. - P23

이글이글 불꽃이 타오르는 히스의 언덕, 그것은 내가 리드 부인을 비난하고 위협하고 있는 동안의 심정을 잘 나타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불길이 꺼진 후 검게 탄 히스의 언덕, 그것은 반시간쯤의 침묵과 반성에 의해서 자기의 행위가 얼마나 미친 짓과 같은 것이었는가를 깨달았을 때의, 미움을 받고 미워하는 입장의 외로움을 알았을 때의 상태를 잘 나타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잔혹하고 심술궂은 사람들이 하라는 대로 항상 얌전하게 따르기만 하면 나쁜 사람들은 더욱 자기들 마음대로 할 거야. 무섭다는 감정도 생기지 않아. 따라서 마음을 고쳐먹는 일도 없고 더욱더 조장해 나갈 수 밖에 없어. 이유 없이 얻어맞으면 과감하게 앙갚음을 해 줘야 해. 단연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 - 과감하게 말이야. 두 번 다시 그런 짓을 못하도록 알게해줘야 해.
난 이렇게 생각해, 헬렌. 내가 상대를 기쁘게 해 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나를 싫다고 하는 사람은 나도 싫어해야 한다고. 무턱대고 벌을 주는 사람에게 저항해야 해.

나는 저 경계를 넘을 수 있는 상상력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고, 그것으로 저 변화한 세상이나 거리, 이야기로는 들었어도 아직 본 일이 없는 활기에 넘치는 지역이 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이제까지 얻었던 것과 같은 일상적인 경험을 지금까지보다도 더 많이 겪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의 성격 속에는 변화를 구하는 욕구가 숨어 있다. - P136

사람은 안온한 생활에 만족해야 한다는 건 부질없는 일이다. 사람은 마땅히 활동을 해야 한다. 그 목표를 찾아낼 수 없으며, 그것을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운명보다도 더 평탄한 운명을 짊어지고 있는데, 그들은 그 운명에 대해 무언의 저항을 시도하고 있는 데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적인 반역 외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반항이 이 지구에 사는 무수한 사람들 사이에서 무르익어가고 있는가? - P136

여자는 일반적으로 얌전해야 한다고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여성에도 남성과 같은 감정이 있다. 여성도 그녀들의 형제와 마찬가지로 그 능력을 발휘할 장이 필요한 것이고 노력하기 위한 장이 필요하다.
여성도 또한 남성과 마찬가지로 가혹한 속박이나 심한 정체에 괴로워하고 있다. 여성은 집에서 푸딩을 만들고 양말 짜고 피아노를 치고 주머니에 자수를 하고 있으면 좋다고 하는 것은 보다 더 많은 특권이 주어진 남성의 좁디좁은 일방적인 자기들의 생각이다. 인정하고 있는 이상의 일을 여성이 하고 싶다.
배우고 싶다고 하면 그것을 비난하고 비웃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 P136

단순히 저보다 연상이라는 이유나 저보다 세상을 더 많이 보셨다는 이유로 저에게 명령하실 권리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 저보다 우얼하시다는 주장은 자신의 시간과 경험을 어떻게 유효하게 쓰셨는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로체스터와의 면담에서)

저도 당신과 같은 영혼을 갖고 있어요! 마찬가지로 감정도 갖고 있어요! 만일 하느님께서 제게 얼마간의 아름다움과 넘치는 재산을 베풀어 주셨다면 당신도 저를 떠나는 것이 괴로우실 겁니다. 몸을 염두해두고 하는 말도 아닙니다. 저의 영혼이 당신의 영혼에게 직접 말을 건네고 있는 겁니다. 두 사람이 무덩으로 들어간 후 하느님 앞에 평등하게 섰을 때처럼, 사실 우리는 평등합니다!

로체스터 씨로부터 인형처럼 옷을 입히다니 견딜 수 없는 일이고, 매일 황금 소나기를 맞아 가며 다나에처럼 앉아 있는 것도 질색이다. (중략) "만약 당신이 후궁들을 들이시면 저는 그녀들에게 자유를 설교하는 선교사를 지원하겠어요. 그녀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가서 반란을 선동하겠어요"

세인트 존은 좋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언젠가 자기는 냉정한 사람이라고 말한 것은 진실이구나 하고 느끼기 시작했다. 인정이나 생활의 쾌적함과 같은 것에는 거의 아무런 흥미도 없는 것이다. 그는 위대한 것만을 갈망하면서, 사는 보람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다. 선한 것, 위대한 것을 추구하고 있는 사람이다. 더욱이 결코 쉬려고 하지 않았고 주위 사람들이 쉬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라는 인간은, 자연이 영웅을, 율법자를, 정치가를, 정복자를 만들어 낼 때 쓰일 그런 소재로 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위대한 사업에는 의지할 만한 부동의 성채지만,‘가정의 난롯가에서는 음침하고 자리를 잘못 잡은 방해가 되는 기둥‘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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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코난 13
아오야마 고쇼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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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코난과 헤이지의 아슬아슬한(?) 케미를 볼 수 있었던 권이었다. 그 외에도 사건을 풀이해나가는 코난의 추리도 여전히 재미있었다. 다음 권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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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철학사 - 개정판
S.P.램프레히트 지음, 김태길 외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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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껍지만 서양철학의 대략적인 역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그러나 글자크기가 작아서 읽기 힘들다는 점, 그리고 제본 문제인지 아니면 너무 두껍다보니 책 자체가 버티기 힘든건지 운이 안좋으면 새책임에도 벌어진 책을 받을 수 있다 ㅠ 이것말고는 좋은 책이니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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