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에어 동서문화사 세계문학전집 17
샬럿 브론테 지음, 박순녀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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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 자연스레 어렸을 때가 떠오른다.


과거 부모님이 나의 논술 실력을 향상하기 위해 '어린이 논술 대비 세계 명작 동화' 시리즈를 사주신 적이 있었는데, 많고 많은 작품 중에서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작품이 바로 '제인 에어'였기 때문이다.

확실히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서 엮다 보니 기타 자세한 설명은 제외하고 대략적인 스토리만 나와 있었는데, 그래서일까, 다 큰 성인이 되어서 다시 읽어보니 '이게 정말 제인 에어였다고?'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동안 알고 있었던 '제인 에어'라는 작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도 몇몇 사람 중에는 '제인 에어'를 단순한 로맨스 소설일 뿐, 고전 소설의 반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분도 있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면 전혀 다르다.


일단 스토리를 간략하게 설명해보자면,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은 주인공 '제인'은 외숙모에 해당하는 '리드 부인'네 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나 말이 같이 사는 거지, 사실상 얹혀사는 꼴이라 리드 부인은 물론 그곳 집안 식구들, 심지어 하녀들에게까지도 무시당하며 살아간다. 어느 날, 리드 부인네 아들과 크게 싸운 제인은 귀신이 나온다는 '붉은 방'에 강제로 감금당하는 사건을 겪게 된다. 이를 계기로 제인은 숨겨왔던 반항심을 불태우게 되고, 리드 부인은 그런 그녀가 '악독하다'라며 '브로클허스트 목사'가 운영하는 '록우드'라는 기숙사 학교로 보내버린다. 학교를 운영하는 브로클허스트 목사는 매우 엄격했기 때문에 록우드 또한 매우 엄격한 규칙과 열악한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곳에서 제인은 야단을 맞거나 간혹 절망할만한 일을 겪기도 하지만 친구인 '헬렌'과 사귀면서 어찌어찌 버틴다. 하지만 얼마 못 가 학교에 전염병이 유행하기 시작하고, 친구 헬렌 역시 이에 대한 합병증으로 인해 제인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한편, 그 사건 이후 제인은 약 8년 가까이 록우드에서 보내며 성인이 되었을 무렵에는 학교 교사로서 일하기도 한다. 그러나 록우드에서의 생활에서 답답함을 느낀 그녀는 자유를 꿈꾸며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것을 다짐한다. 그리하여 제인은 신문에 가정교사 관련 광고를 게재하게 되고, 얼마 못 가 '페어팩스 부인'이라는 사람이 제인을 가정교사로 채용하겠다는 답장을 받는다.

기숙학교로 떠나 손필드에 위치한 저택(말이 저택이지 거의 성 수준 ㄷㄷ)에 도착한 제인은 자신을 채용하겠다는 편지를 보내고 그곳을 관리하는 페어팩스 부인과 자신이 가르칠 프랑스 출신의 소녀 '아델라'와 만나게 된다. 페어팩스 부인은 주인은 잠시 여행을 갔다고 대답하며 그녀를 극진히 대접한다. 마음씨 좋은 부인과 정신 사납지만, 착한 아델라를 가르치며 만족해하던 제인은 어느 날 마을에서 편지를 부치고 돌아오는 길에 말과 함께 넘어진(빙판길에 미끄러짐) 남자를 도와주게 된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떠난 그는 알고 보니 손필드의 주인이자 제인을 고용한 주인인 '에드워드 로체스터 페어팩스'라는 사람이었고, 독선적이며 독특한 성격을 가진 그는 제인을 불러 심문(면접)하는 등 그녀에게 이상하리만큼 관심을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제인은 저택에서 수상한 비명소리를 듣게 되는데, 한두 번이 아니라 자주 들리는 소리였기 때문에 의아해한다. 로체스터를 비롯해 다른 고용인들은 그게 과묵한 '그레이스'라는 중년 하녀의 혼잣말이라며 안심시키지만 비슷한 시기에  있던 침실에 불이 나는 등의 괴상한 일이 벌어진다. 이때 제인은 자고 있던 로체스터를 깨워 불 속에서 구해주는데, 역시나 이상하리만큼의 고마움을 표시하는 그에게 그녀는 점차 호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러나 한낱 가정교사가 신분이 높은 사람과 사귄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고, 로체스터가 친분이 있던 귀족과 그의 딸을 불러 즐겁게 노는 모습을 통해 자신은 거기에 낄 자리가 없음을 뼈저리게 느낀 제인은 로체스터가 결혼한다면 자기는 떠나겠다고 말한다. 이에 로체스터는 어째서인지 가지 말라고 말린 뒤 그녀를 따로 불러 사실 자기는 제인을 좋아하며 그녀에게 결혼해 달라고 고백한다. 서로의 마음을 고백한 그들은 곧바로 결혼식을 올리려 하지만 식이 끝나기 직전, 누군가가 달려와 그들의 결혼을 방하면서 그동안 로체스터가 숨기고 있었던 비밀이 드러난다. 그리고 제인을 절망하며 도망치듯 손필드 저택을 떠나게 되는데….


스포라서 여기까지만 말하겠다.

이렇듯 제인 에어는 스토리만 보면 거의 오늘날 '로맨스 소설의 전형'이라 불릴 만큼의 스토리를 담고 있다. 그러나 막상 읽어보면 제인과 로체스터의 로맨스뿐만 아니라 주인공인 제인의 섬세한 심리묘사와 18, 19세기 영국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파격적인 장면들이 나오는 걸 볼 수 있다. 오죽했으면 책이 출판되었을 당시에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고, 인권운동가이자 나름 진보적인 사고를 가졌던 '엘리자베스 개스켈' 또한 딸에게 20대가 될 때까지 이 책을 읽지 못하게 했다고 하니, 그 충격이 어마어마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파격적이라는 걸까?

그건 내가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이기도 한, 주인공 제인의 성격에 있다.

일단 제인이라는 캐릭터는 순종적이고 수동적이었던 당시 여성들과 달리 자립심과 독립심, 그리고 자유에 대한 열망이 매우 강하다. 그녀는 리드 부인 밑에 있을 때도, 록우드 학교에 있었을 때도, 심지어 사랑하는 로체스터의 곁에 있을 때도 자립심을 지키고자 했으며(제인을 그 앞에서도 결코 순응적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면 때문에 로체스터가 반했다), 리드 이모와 브로클허스트 같이 상대방을 제어하고 억압하려는 자들에 대해선 격렬히 저항한다. 물론 그렇다고 거칠게 저항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불만과 반감을 숨기지 않아 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당시 어린애들에겐 '귀찮은 간섭자', 고용인들에겐 '굳이 숙녀 대접을 해야 할 필요가 없는 존재', 그리고 하인과 하녀들에겐 '자신과 비슷한 처지면서 주인과 같은 대접을 받은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던 '가정교사'라는 위치에서 자신보다 윗사람인 주인에게 '나도 감정이 있고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결국엔 그 사랑을 쟁취한다는 점에서도 역시나 그 시대의 편견을 깨려고 한 모습을 볼 수 있다(소설 마지막 부분에서 제인이 '로체스터 씨는 나와 결혼했습니다'라는 말 대신 '나는 그와 결혼했다'라며 자기를 주어로 삼았다는 문장 역시 유명하다). 이러니 당시에는 얼마나 파장이 있었을까는 예상하기 쉽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다른 의미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브론테 자매'의 일원이라 불리는 저자 '샬럿 브론테'에 대한 것이다. 아시다시피 영국 문학사에 많은 영향을 미친 '브론테 자매'로는 <폭풍의 언덕>을 쓴 '에밀리 브론테'와 <아그네스 그레이>를 쓴 '앤 브론테', 그리고 이 <제인 에어>를 쓴 '샬럿 브론테'가 있다. 그녀들은 폭풍이 자주 일고 황량한 영국 시골 벌판(?)에서 태어났다. 그래서인지 그녀들의 작품들 대다수는 거칠고, 야성적이다. 특히 에밀리 브론테가 쓴 <폭풍의 언덕>이 그러하다. 샬럿이 쓴 <제인 에어>는 그에 비해 양반이지만 그래도 역시나 작중엔 이들의 성향을 볼 수 있는 설정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자신의 성향을 '히스'에 비유하는 제인의 말이라든지, 여느 캐릭터들과 달리 자연적이고 거친 성격을 가진 로체스터라는 인물(그가 살던 '손필드'는 '산사나무'라는 뜻과 함께 '가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음), 그리고 앞서 말한 자유로움에 대한 갈망과 거친 반항심 깊은 캐릭터 등등이 곳곳에 나타난다.


또한 <제인 에어>는 샬럿의 자전적인 소설이라 불릴 만큼 그녀의 실제 삶과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가령 록우드 학교는 실제로 샬럿과 에밀리가 다녔던 기숙사 학교를 모티브로 하고 있으며, 친구 헬렌 역시 기숙학교에서 일찍 요절한 언니 중 한 명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로체스터 또한 작가 본인이 벨기에에서 유학했을 당시 다녔던 학교 선생이자 교장이었던 '에제'라는 인물에서 따왔다고 할 수 있다(근데 에제는 유부남이었고 성격이 더럽기로 유명했던지라 샬럿의 구애 따윈 저 멀리 던져 버렸다고... 그리고 에제의 부인은 거기에 질투해서 남편이 찢어버린 샬럿의 러브레터를 하나하나 붙여서 읽었다고 하는데, 그 흔적이 오늘날까지 남아있어 사람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고 한다 ㅋㅋ).


<제인 에어>라는 작품은 '로맨스 소설'이라는 틀 안에서 겉으로만 살짝 맛보기엔 너무 아까운 책이다.  제인의 성격, 그리고 그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떠올리며 읽는다면 고전 소설다운 면모를 충분히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제인의 사촌이자 훗날 그녀에게 청혼하는 '세인트 존'과의 이야기도 로체스터와의 로맨스 못지 않게 재미있으니 꼭 읽어보시길!)

왜 나만이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가, 왜 항상 야단을 맞고, 항상 책망당하고 항상 처벌을 받아야 하는가? 왜 나는 남의 호감을 살 수 없는가? 남의 마음에 들게 하려고 해도 왜 그것이 보답을 받지 못하는가?
"불공평하다! 불공평해!" 내 이성은 괴로움에 찬 격정에 떠밀려, 비록 잠시나마 나이에 걸맞지 않은 힘을 얻어 이렇게 외쳤다.
나는 게이츠헤드 저택에는 어울리지 않는 존재였다. 그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사실 그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로서도 서로 마음이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 대정을 쏟을 의무는 없는 것이다. - P23

이글이글 불꽃이 타오르는 히스의 언덕, 그것은 내가 리드 부인을 비난하고 위협하고 있는 동안의 심정을 잘 나타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불길이 꺼진 후 검게 탄 히스의 언덕, 그것은 반시간쯤의 침묵과 반성에 의해서 자기의 행위가 얼마나 미친 짓과 같은 것이었는가를 깨달았을 때의, 미움을 받고 미워하는 입장의 외로움을 알았을 때의 상태를 잘 나타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잔혹하고 심술궂은 사람들이 하라는 대로 항상 얌전하게 따르기만 하면 나쁜 사람들은 더욱 자기들 마음대로 할 거야. 무섭다는 감정도 생기지 않아. 따라서 마음을 고쳐먹는 일도 없고 더욱더 조장해 나갈 수 밖에 없어. 이유 없이 얻어맞으면 과감하게 앙갚음을 해 줘야 해. 단연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 - 과감하게 말이야. 두 번 다시 그런 짓을 못하도록 알게해줘야 해.
난 이렇게 생각해, 헬렌. 내가 상대를 기쁘게 해 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나를 싫다고 하는 사람은 나도 싫어해야 한다고. 무턱대고 벌을 주는 사람에게 저항해야 해.

나는 저 경계를 넘을 수 있는 상상력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고, 그것으로 저 변화한 세상이나 거리, 이야기로는 들었어도 아직 본 일이 없는 활기에 넘치는 지역이 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이제까지 얻었던 것과 같은 일상적인 경험을 지금까지보다도 더 많이 겪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의 성격 속에는 변화를 구하는 욕구가 숨어 있다. - P136

사람은 안온한 생활에 만족해야 한다는 건 부질없는 일이다. 사람은 마땅히 활동을 해야 한다. 그 목표를 찾아낼 수 없으며, 그것을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운명보다도 더 평탄한 운명을 짊어지고 있는데, 그들은 그 운명에 대해 무언의 저항을 시도하고 있는 데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적인 반역 외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반항이 이 지구에 사는 무수한 사람들 사이에서 무르익어가고 있는가? - P136

여자는 일반적으로 얌전해야 한다고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여성에도 남성과 같은 감정이 있다. 여성도 그녀들의 형제와 마찬가지로 그 능력을 발휘할 장이 필요한 것이고 노력하기 위한 장이 필요하다.
여성도 또한 남성과 마찬가지로 가혹한 속박이나 심한 정체에 괴로워하고 있다. 여성은 집에서 푸딩을 만들고 양말 짜고 피아노를 치고 주머니에 자수를 하고 있으면 좋다고 하는 것은 보다 더 많은 특권이 주어진 남성의 좁디좁은 일방적인 자기들의 생각이다. 인정하고 있는 이상의 일을 여성이 하고 싶다.
배우고 싶다고 하면 그것을 비난하고 비웃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 P136

단순히 저보다 연상이라는 이유나 저보다 세상을 더 많이 보셨다는 이유로 저에게 명령하실 권리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 저보다 우얼하시다는 주장은 자신의 시간과 경험을 어떻게 유효하게 쓰셨는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로체스터와의 면담에서)

저도 당신과 같은 영혼을 갖고 있어요! 마찬가지로 감정도 갖고 있어요! 만일 하느님께서 제게 얼마간의 아름다움과 넘치는 재산을 베풀어 주셨다면 당신도 저를 떠나는 것이 괴로우실 겁니다. 몸을 염두해두고 하는 말도 아닙니다. 저의 영혼이 당신의 영혼에게 직접 말을 건네고 있는 겁니다. 두 사람이 무덩으로 들어간 후 하느님 앞에 평등하게 섰을 때처럼, 사실 우리는 평등합니다!

로체스터 씨로부터 인형처럼 옷을 입히다니 견딜 수 없는 일이고, 매일 황금 소나기를 맞아 가며 다나에처럼 앉아 있는 것도 질색이다. (중략) "만약 당신이 후궁들을 들이시면 저는 그녀들에게 자유를 설교하는 선교사를 지원하겠어요. 그녀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가서 반란을 선동하겠어요"

세인트 존은 좋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언젠가 자기는 냉정한 사람이라고 말한 것은 진실이구나 하고 느끼기 시작했다. 인정이나 생활의 쾌적함과 같은 것에는 거의 아무런 흥미도 없는 것이다. 그는 위대한 것만을 갈망하면서, 사는 보람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다. 선한 것, 위대한 것을 추구하고 있는 사람이다. 더욱이 결코 쉬려고 하지 않았고 주위 사람들이 쉬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라는 인간은, 자연이 영웅을, 율법자를, 정치가를, 정복자를 만들어 낼 때 쓰일 그런 소재로 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위대한 사업에는 의지할 만한 부동의 성채지만,‘가정의 난롯가에서는 음침하고 자리를 잘못 잡은 방해가 되는 기둥‘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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