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떼제'를 처음 만난 건 유튜브에 올라온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종교의 역사라든지 관련 다큐를 자주 보기 때문에 알고리즘으로 떴던 것 같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보기 시작했는데, '떼제'라는 공동체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의문으로 점차 빠져들게 되었다. 신앙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강한 여느 기독교 단체와 달리 믿음을 강요하지 않고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저마다 다른 국적의 젊은이들이 모여 솔직한 마음으로 서로를 알아가는 이들의 모습들이 꽤나 신선했달까.
https://youtu.be/H7Eik5hgw5M
그들이 부르는 노래 또한 인상적이었는데, 보통 1,2,3절까지 가는 긴 찬송가 대신 한 두 구절로 된 아주 간단한 가사로 된 찬송가를 쓰며 누구나 부를 수 있게 했다는 점, 그리고 하나의 언어가 아닌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일본어, 심지어 한국어 등등 여러 나라 언어로 부른다는 점 같은 부분이 새로웠다. 이는 떼제라는 곳 자체가 어느 하나에 머무는 곳이 아닌, 여러 국가와 언어, 종파를 넘어 모두가 하나 됨을 추구하는 초교파적인 특징을 지니기 때문으로 보인다. 거기다 떼제는 기독교의 교리를 강의나 가르침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참가자(신자든 비신자든 상관없이)들이 하느님을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기다려준다(물론 중간에 교리 관련한 강의도 하지만 30분에서 1시간 정도만 하고 나머지는 묵상과 기도를 함). 위에서 말한 떼제의 노래는 이에 더해 조용하면서도 차분함 느낌을 주어 잠시 마음을 비울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준다.
아무튼, 이러한 이유 때문에 개인적으로 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신자든 비신자든 차별하지 않고, 믿음을 강요하지 않으며, 국적이나 종파에 상관없이 누구나 받아주는 이 단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어떤 이유로 이런 단체가 만들어졌으며, 그 목적은 무엇인가 궁금했다. 아쉽게도 국내에 알려진 떼제 관련 책은 거의 없다. 있더라도 절판되었거나 찾아보기 힘들다. 아무래도 앞서 말했듯, 떼제가 어떤 교리나 가르침을 통해서가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따로 없는 것일 수도 있고, 주로 가톨릭 매체를 통해 가톨릭 단체로 잘못 알려져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잘 퍼지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행히 현제 떼제에서 활동 중인 '신한열 수사'가 펴낸 <함께 사는 기적>이라는 책이 있었고, 이참에 읽어보게 되었다.
일단 '떼제'라는 곳은 무엇이며 그곳에서 살아가는 '수사'라는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 책 속에서 신한열 수사는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떼제의 존재를 '공동체의 비유'라고 소개한다. 떼제의 창립자인 '로제 수사'는 혼돈 그 자체였던 세계대전을 직접 몸으로 겪은 사람이다. 개신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전쟁을 치르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죽고 죽이고, 미워하고 증오하는 모습을 보며 '어떻게 같은 인간들끼리 이럴 수 있는가'하는 충격과 그 원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로제 수사는 이것이 상호 간의 이해와 화해가 부족했기 때문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는 상대가 누구든, 어느 나라 사람이든, 어떤 종파든 조건에 상관없이 화해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고 '떼제'라는 곳에서 동명의 단체를 만들었던 것이다.
다큐에서 로제 수사는 말한다, <우리는 다 같은 인간이고, 인간은 다른 인간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라고. 책에서도 떼제는 단순히 시골 산속에서 파묻혀 세상과 단절된 수도원 같은 곳이 아니라 모두가 모여 같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공동체의 모습을 몸소 보여주면서, 동시에 세상 속 다툼을 겪는 이들을 이곳 떼제에 모이게 하여 그들에게 화해와 이해의 중요성을 느끼게 해주는 것. 이것이 떼제의 존재 의의라고 나온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 같이 살아가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님을 '예시로서' 보여주는 공동체인 것이다. 종교적으로도 가톨릭, 개신교, 정교회로 나뉜 기독교들의 화합을 중요시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떼제에서 중요시하는 건 하나 더 있다.
바로 젊은이이다. 떼제에선 매년 수만 명의 젊은이들이 모인다. 국적이나 나이, 종교에 상관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데, 이는 떼제에서 열리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말하는 프로그램 중에는 기도하고 묵상하는 것도 있지만 거기에 한정되지 않은 여러 행사들이 있다. 개최 장소따라, 현재 세계적으로 큰 이슈가 된 사건 사고(분쟁 사례)들을 바탕으로 함께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는 식의 프로그램도 있다. 이때 대다수의 사람들이 젊은이들인데, 모두가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있지만 떼제를 찾은 가장 큰 이유는 <이곳은 종교를 강요하지 않고 상대가 누구든 평화롭게 소통하며 평화를 꿈꿀 수 있다>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요즘 기독교에서 젊은이들의 빠져나가는 일이 다반사가 된 한국에선 젊은이들이 제 발로 찾아온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일까, 책을 보면 지금까지 알고 있는 기독교인들 중에서 젊은이들에 대한 이해도가 굉장히 높아 보이는 구절이 많이 보였다.
떼제의 수사들은 독신 생활을 하며 사유 재산도 없이 오로지 공동체 형제들과 더불어 살아간다고 한다. 속세를 떠나 살아가는 듯해 보이는 그들이지만 저자인 신한열 수사가 말하는 '오늘날 젊은이들'에 대한 생각을 보면 웬만한 보수 종교인들의 마인드보다 한결 현실적이라 할 수 있다.
책에서 신한열 수사는 젊은이들에게 어떠한 것을 강요해선 안된다고 말한다. 젊은이들은 결정보다는 질문이 더 많은 시기이고, 무언가를 스스로 선택하는 자유로움이 필요한 세대라고. 우리같은 어른들은 그저 옆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며, 때로는 위로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떼제에서 왜 기독교적 가르침보다는 대화와 경청, 묵상의 시간이 많은가는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한 가지 더 흥미로웠던 건 떼제 특유의 기도 방식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떼제에선 묵상과 기도가 중요하다. 다 같이 모여 기도하는 곳을 보면 의자도, 높은 단상도, 심지어 기독교적 상징물도 거의 없다. 사람들은 아무 곳에서 앉아 기도를 드리며 수사들 역시 가운데에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앉아 기도를 드린다. 앞에는 꺼지지 않은 희망과 신앙을 상징하는 촛불이 그득하며 묵상의 마지막엔 서로 촛불을 나누며 희망의 씨앗을 나눈다. 그 누구도 다른 이들보다 높은 위치에 있지 않으며 모두가 평등하게 기도한다. 이는 약자를 중시하고 소박한 삶과 무한한 용서를 보여준 예수의 모습을 본받고자 하는 것에서 왔다고 한다. 떼제에선 신앙은 '신뢰'이며 그 신뢰란 거창하게 교리를 설명하거나 성대한 기도를 올리는 게 아닌, <우리는 그런 게 없어도 언제나 주님 곁에 머물러있겠습니다>라는 소박한 마음가짐이다. 이 역시 거창한 교리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우리나라의 몇몇 사이비 교단이나 무자비하게 십일조나 뜯어가는 여느 기독교인들과 전혀 다른 모습이라 신선했다. 이게 진정한 기독교가 아닐까?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건 그들의 세상을 넘어서서 종교계에서의 화해와 일치 운동이었다.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한 분이시다>라는 사실을 통해 가톨릭과 개신교, 정교회 모두 싸우지 말고 화해하길 바라는 떼제. 그렇다고 혼합주의로 치우쳐지지 않은 채 저마다의 다름을 인정하며 적대적으로 대하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흔히 떼제를 기독교를 중심으로만 화해를 추구한다고들 하는데, 이슬람교, 유대교, 심지어 불교 등등 여러 종파와도 마찬가지로 화해를 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