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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합성 인간 - 낮과 밤이 바뀐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린 생체리듬과 빛의 과학
린 피플스 지음, 김초원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8월
평점 :
우리 안의 ‘고대 시계‘를 깨우는 법.
혹시 충분히 잠을 잤는데도 아침에 몸이 천근만근 무겁거나, 유독 오후만 되면 무기력과 우울감에 시달린 적 없으신가요? 우리는 그 원인을 스트레스나 번아웃에서 찾곤 하지만, 어쩌면 진짜 문제는 우리 몸의 가장 근원적인 시스템, 바로 ‘생체시계‘가 고장 났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린 피플스의 책 《광합성 인간》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해 ‘일주기 과학‘이라는 흥미로운 렌즈를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생명의 리듬을 되찾는 여정으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모든 것의 시작은 아주 소박했습니다. 18세기 프랑스, 한 과학자는 빛이 완전히 차단된 상자 속에서도 미모사 잎이 낮에는 활짝 펴지고 밤에는 오므라드는 것을 발견합니다. 외부의 빛이 없는데도 식물 스스로 시간을 알고 있다는 이 놀라운 발견은 생명체 내부에 ‘시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증명한 순간이었죠.
《광합성 인간》은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일주기 과학의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냅니다. 책에 따르면 이 ‘내면의 시계‘, 즉 일주기 리듬(Circadian Rhythm)은 지구의 자전에 맞춰 약 24시간 주기로 진동하며 우리의 수면, 호르몬 분비, 신진대사 등 거의 모든 생명 활동을 관장합니다. 한때는 미신처럼 여겨졌을지도 모를 이 개념은 2017년, 생체시계의 분자적 원리를 밝혀낸 과학자들이 노벨상을 받으며 현대 과학의 핵심 분야로 자리 잡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시계는 지금 안녕할까요? 저자는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현대 문명이 만든 ‘어두운 낮‘과 ‘너무 밝은 밤‘이라는 말합니다.
책에 따르면,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실내에서 보내며 자연광을 충분히 쬐지 못합니다. 이는 생체시계를 깨우는 가장 강력한 신호인 ‘아침 햇빛‘을 놓치는 것과 같습니다. 반대로 밤에는 스마트폰과 인공조명의 블루라이트에 무방비로 노출되죠. 우리 뇌는 환한 밤을 낮으로 착각해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를 멈추고, 몸의 재충전과 회복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할 기회를 잃어버립니다.
《광합성 인간》은 이처럼 망가진 리듬이 단순히 ‘피곤함‘을 넘어 우울증, 비만, 당뇨, 심지어 암과 같은 심각한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수많은 과학적 근거를 통해 논리적으로 증명합니다. 인체 유전자의 10~30%가 일주기 리듬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은 충격적이기까지 합니다. 책의 제목인 ‘광합성 인간‘은 결국 인간도 식물처럼 빛에 의존해 생명력을 유지하는 존재임을, 그리고 현대인은 ‘빛 영양실조‘에 걸린 상태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탁월한 비유입니다.
이 책은 개인적으로 저에게도 무척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아침마다 겪는 멍한 느낌과 가벼운 시각적 혼란, 입 마름, 기운 없음, 의욕없음 같은 증상들이 왜 일어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만성피로이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죠. 하지만 책을 통해 그 모든 것이 제 안의 ‘생체시계‘와 세상이 요구하는 ‘사회적 시계‘가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는 명쾌한 증거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전형적인 ‘올빼미형 인간‘입니다. 저녁이 될수록 정신이 맑아지고 창의력이 솟아나지만, 아침은 늘 힘겹습니다. 사회는 아침형 인간을 미덕으로 여기기에 억지로 그 시간에 맞추려 애썼지만, 결국 저의 생체적 피크 타임과는 어긋나 비효율과 피로감만 쌓여갔던 것입니다.
이 책은 그런 저에게 ˝당신이 게으른 것이 아니라, 당신의 유전자에 새겨진 시간표가 다를 뿐˝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 큰 위안을 받았습니다. 제가 왜 올빼미형 인간으로 태어났는지, 그리고 그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특성임을 이해하게 된 것은 정말 기쁜 발견이었습니다.
《광합성 인간》은 과학서지만, 딱딱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풍부한 사례와 자연스러운 문체로 우리를 설득하며, 당장 창밖의 햇살을 바라보게 만드는 실질적인 힘을 가졌습니다. 이 책을 덮고 나면, 아마 당신도 스마트폰 대신 아침 햇살을, 환한 조명 대신 고요한 어둠을 찾게 될 것입니다.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