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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 달러 - 달러, 코인, CBDC의 미래와 새로운 통화 질서의 탄생
폴 블루스타인 지음, 서정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7월
평점 :
매일 뉴스란을 뒤덮는 트럼프의 반시장주의적 발언과 정책 드라이브에 짜증을 느낀다. 미국 대통령이라면 애초 시장과 글로벌 질서를 지킬 책임이 있어야 하건만, 관세 폭탄에서 환율·통화 압박, 기업에 대한 사기업·해외기업 개입까지, 트럼프식 ‘파격’은 자유시장 경제라는 이름 자체를 무색케 한다.
최근 그 정점으로 꼽히는 이슈는 반도체 패권을 둘러싼 미국의 정책 압박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실제로 대만 TSMC 등 외국 반도체 업체에 대해 “미국 내 투자 확대”와 함께 “인텔과 협업 또는 지분 인수”를 압박한 바 있다. 대만 현지 언론과 미국 유수의 매체도 이를 보도했는데, 구체적 지분율(20~49%) 등은 확정된 사실이 아니나, 미국 정부가 관세, 투자, 공급망 법안을 지렛대로 외국 사기업을 직접 압박 및 유도한 것은 분명하다. 타국의 민간기업에 미 정부가 특정 기업의 주식 매입이나 협업을 요구하는 풍경은 글로벌 자본주의의 기본 질서—특히 소유권과 경영의 독립성, 각국 법률의 보호—와 상충한다는 비판이 크다.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약달러 지향, 금리 인하 압박, 저유가 유도 정책도 비슷한 맥락이다. ‘환율 전쟁’과 ‘관세 전쟁’은 미국의 적자 해소나 일자리 창출에 국한되지 않고, 중장기적으로는 시장의 신뢰라는 달러 패권의 근본을 흔드는 모순적 정책이다. 실제로 트럼프는 약달러가 미국 제조업과 수출 강진에 유리하다고 언급했으나, 정부 내부엔 강달러와 약달러 정책이 혼재되기도 했다. 저유가 정책, 암호화폐(스테이블코인) 합법화, 규제 완화에 이르기까지 트럼프의 정책 기조는 시장의 자율과 예측가능성 대신 정치적 목적과 미국식 우선주의를 우위에 두는 모습이 뚜렷하다.
그런데 이런 혼돈의 시대에 폴 블루스타인의 《킹 달러》가 그리는 ‘달러는 영원하다’라는 서사는 과연 현실적일까? 저자는 글로벌 금융 인프라, 페트로달러 순환, 위기 시 연준의 ‘최종 대부자’ 기능 등 달러의 구조적 힘을 낙관적으로 해설한다. 암호화폐, CBDC, 스테이블코인 등 신흥 대항마들의 전략도 촘촘히 해부하지만, 궁극적으로 달러 중심 질서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통찰을 갖는다.
하지만 오늘의 트럼프식 개입주의, 글로벌 기업 압박, 시장 원리와 신뢰 훼손의 반복은 이 책의 낙관과 충돌한다. 실제로 미국이 ‘질서’ 대신 ‘힘’을, 예측가능성 대신 정치적 목적을 선택할 때 달러의 신뢰는 서서히 마모될 수 있음을 독자들은 피부로 느낄 것이다. 달러 패권은 제도의 하드웨어, 금융 인프라 못지않게 시장의 신뢰라는 소프트웨어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킹 달러》는 여전히 세계경제의 혈관이 달러라는 명제를 뒷받침하지만, 이 시대의 현실은 그 혈관 속을 흐르는 ‘신뢰’의 질이 예전만 못하다는 점도 조명하게 한다. 달러가 영원할지는 오히려 미국 자신의 시장·정책 선택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지금 우리가 보는 트럼프 시대가 달러 패권의 의미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한 번 더 곱씹게 된다.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