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감성 장인 임영웅의 힘
서병기 지음 / 성안당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임영웅 공연에는 3무 無와 3유 有 가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3무' 는 초대권, 초대 게스트,. 빈좌석이다. '3유'는 임영웅의 세세한 배려와 '영웅시대'의 따뜻한 마음, 스태프들의 친절함이다. 임영웅의 배려에는 편안한 방석과 곳곳에 설치된 넉넉한 간이 화장실, 자녀 대기소 '효도존' 등이 있다. 어르신들을 위한 배려가 느껴질 수 밖에 없다. 공연을 다녀온 사람은 환대를 받았다고 말한다. (-34-)

"영웅이는 어떤 소리를 내고 어떤 호홉을 했을 때 사람들이 반응하는지를 알고 있는 영리한 가수다.'보라빛 엽서'는 경연에서 위험할 수도 있지만, 이야기하는 듯한 가사 전달 능력이 탁월한 임영웅이 하면 된다. 아직은 음악적 변신을 할 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74-)

"<미스터트롯> 을 보면서 아직도 tv 매체의 유효한 시장이란 걸 발견한 게 반갑다. 기획 단계에서 '젊은 애들이 볼까?' 라는 생각을 서혜진 pd와 많이 했다.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은 엄마가 죽어라 보면 자식이 한 명 정도는 들어올 것이라는 점이다. 엄마를 미치게 하면 '우리 엄마가 뭐에 빠져 있는 거야' 하면서 들어올 것이다. 이를 송가인을 통해 확인했다. (-117-)

KBS <겨울연가> 가 2003~2004년 nhk에서 방송되자 일본 중년 여성들이 마치 대동단결하듯이 뛰쳐나왔다. 당시는 도쿄 시부야 등이 10대들의 천국이 돼 있었고, 중년들이 대중문화에서 철저히 소외돼 있을 때다.

tv조선 <미스터트롯>이 KBS 도 못한 일을 해낸 것도 새로운 소비자들을 유입시켜 새로운 팬덤을 형성하게 한 것이다. 능동적인 소비를 하느 '팬슈머'인 이들은 음악 산업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소비 지형도를 바꿔 나가고 있다.<미스터 트롯>으로 돈을 벌게 된 무명 트로트 가수가 적지 않다. 고용 창출 효과가 대단하다. 대중문화 시장은 앞으로도 40~60 대 여성을 주목해야 한다. 그 중심에 임영웅 팬덤이 있다. (-165-)

지인 중에 임영웅 팬이 있다. 주말이면, 가족보다 임영웅을 더 우선한다. 임영웅이 어떤 스케줄이 있는지 꿰뚫고 있다. 50대 중년 여성 임영웅 팬이며, 임영웅의 음색, 트롯 가수로서, 개성 뿐만 아니라. 임영웅이 가수로서,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서포트하고 있었다. 월차를 내서라도, 임영웅 콘서트는 꼭 참석하는 임영웅 찐팬이다.영웅시대 팬으로서, 스스로 팬이라느 것을 적극어필하고 있다.

2000년 가을 동화가 방영되었고,2022년 겨울연가가 방영되었다.그리고 두 드라마가 읿본에서 대히트를 쳤으며, 원빈과 배용준을 응원하는 읿본 팬문화가 자연스럽게 나타났다 .대중문화가 1020 세대를 우선하다 보니, 4060 중년 여성들은 소외되었다. 가을동화,겨울 연가는 그들의 마음을 읽은 대표적인 드라마였다.이런 트렌드가 한국에도 나타나고 있으며, 새로운 트렌드의 트롯 가요가 인기를 끌고 있다. <미스 트롯>에 이어서 <미스터트롯>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다.

임영웅,이찬원,김호중 팬들이 중년 여성들을 중심으로 팬문화가 형성되고 있으며,물질적인 서포트 뿐만 아니라. 가수 이름을 걸고, 지역 봉사활동, 나눔활동도 이어지고 있다.이런 여성중년 맞춤형 팬문화가 새로운 트렌드가 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이 책 한 권을 통해 정리하고 있으며,앞으로 우리의 성숙된 팬문화의 변화는 어떤 분위기로 변하게 될지 분석해 볼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류가 차린 식탁 -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50가지 음식 인문학
우타 제부르크 지음, 류동수 옮김 / 애플북스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식단은 눈에 띌 정도로 식물성으로 바뀌었다. 수렵을 많이 하지 않으면서 집 근처에서 가축을 키우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말하자면, 돼지, 소양, 또는 염소고기는 그저 이따금씩 상에 올랐다. 가장 중요한 양식은 밀이었다. 참으로 무모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제부터 곡식을 저장할 수 있다고는 해도 그 물량은 수확물 중 상해버린 것을 상쇄할 만큼 충분하지는 않았으며, 그런 상황에서 무자비한 기아 사태가 일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1-)



열에 녹은 돼지기름을 음식과 함께 먹거나 채소 위에 끼얹어 먹는 것은 해롭지 않지만, 바삭하게 구운 뱃살은 해롭다. 하지만 생뱃살은 , 내가 듣기로는 , 프랑크족이 즐겨 먹곤 한다는데, 누가 그들에게 그런 치료제를 알려주었는지, 그래서 다른게 필요 없도록 만들었는지 무척 궁금하다. (-64-)



부글부글 끓고 사방으로 뒨다. 기름 솥 여러 곳에서 기름이 끓는다. 뜨거운 기름거품이 솟구치면서 좁은 주방의 허공 속으로 기름이 튀어 오른다. 기다리는 이의 머리카락과 옷에 이 기름이 내려앉는다. 자그마한 가게는 영국의 한 타운하우스 밀집지역에 자리해 있다. (-145-)



기원전 1만 년 경,북아메리카에는 거대한 메머드가 살았다. 메머드를 굽는 야생동물 사냥꾼이 존재하였고, 독소를 제거하고, 굽고, 훈제하며, 음식을 즐겼다. 돌로 만든 날카로운 창촉으로 사냥했던 클로비스 문화의 주인공들은 그 시대에 , 구운 고기 위해 , 향신료 없이 날고기 그대로 입안에 들어간다.



로마 제국 치하 팔레스타인, 빵과 포도주가 나온다. 성경 속의 최후의 만찬을 느낄 수 있는 식문화다., 납짝빵, 렌틸 콩, 올리브유, 양고기를 즐겨 먹었던 그 시대에 ,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즐겨먹었던 요리가 어떤 종교적 의미로 다가갈 수 있었는지 확인해 볼 수 있다.



1200년 경, 원나라가 세워졌다. 중국의 뛰어난 문화에, 유목민족 몽골인이, 전세계를 지배하였다. 서로 다른 두 나라 간에 ,식문화가 섞이게 된다.몽골족은 그 당시, 투구에 부를 올려서, 국물을 붓고, 작은 양고기를 넣어서 먹었던 풍습이 훠궈 요리로 발전되었다.물론 후추 알갱이, 고추 이외에 다양한 양념들이 섞이면서, 요리의 풍미를 부각시켰다.



대한민국은 스타벅스의 천국이다. 스타벅스에 오래 있어도, 카공족을 쫒아내지 않기 때문에, 스타벅스 가격이 비싸도, 커피 맛이 다른 카페에 비해 못하더라도, 스타벅스를 찾는다. 이러한 티타임은 1700년 경,영국 잉글랜드에서 시작하였다. 은 쟁반에, 찻 주전자.티타임 안에,우아함과, 품격이 있었으며, 영국은 빅토리아 시대가 바뀌면서, 티타임,티문화가 영국의 자부심이 될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려견 긍정교육 특강 - 반려동물 행동지도사의 가장 윤리적인 훈련 바이블
스티븐 만.마틴 로치 지음, 이희경 옮김 / 동글디자인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러면 양념을 잘 쳐둔 담요로 감싼 따뜻한 물병은 어디에 두어야 할까요?은신처에 두면 됩니다. 강아지가 하루 동안 먹을 맛있는 간식을 어디에 찾게 해야 할까요? 은신처에 두면 됩니다. 강아지는 집에서 가장 편한 침구를 어디서 발견하게 될까요?은신처입니다. 강아지는 아침, 점심, 저녁을 어디에서 머거양 할까요? 그렇죠,은신처에서 먹습니다.(-47-)



해야 할 일이 많은지 사회화의 목표를 두 가지 그룹으로 나눠 보겠습니다. 바로 '환경' 과 '사물'입니다. 환경은 '사물'로 가즉 찬 장소이며,'사물'은 고급 훈련사들이 '자극'이라고 부르는 것을 말합니다. 자극이란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강아지가 이러한 자극에 반응하는 방식은 강아지의 감정 및 사회화 정도에 따라 결정됩니다. (-117-)



놀이가 최고입니다. 포유류, 특히 어린 포유류에게 놀이는 어디에나 있는 것입니다. 놀이는 우리아 가아지들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줍니다. 놀이는 순간적인 대처 능력, 사회성, 좌절에 대처하는 능력, 충동조절 능력을 발달시킵니다. 이 모든 것이 강아지가 나중에 예기치 않은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술입니다. (-144-)



견주의 성향과 기질에 따라서, 키우는 반려견이 선택된다. 운동을 좋아하는 주인이면, 강아지와 함께 운동하고 싶다. 대형견을 키우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소형견을 키우는 이들은 견주가 소형견을 감당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설 때, 견주와 반려견은 서로 공감하고, 교감할 수 있다. 나의 지인은 시골에서 살고 있으며, 반려견은 자연과 벗하고, 길거리에 떨어진 과일을 주 먹거리가 될 때가 있다. 주인이 감을 던저주면, 반려견이 견주의 행동에 따라서,움직이며, 감을 넙죽 받아먹는다. 놀이와 사회화 훈련이 동시에 일어난다.


책 한 권 속에서, 반려견을 다루는 밥, 반려견과 함께하는 것에 대해서, 꼼곰하게 체크할 수 있다.

반려견의 습성이 책에 나오고 있다. 은신처를 만들어 줄 때,반려견은 편한한 일상을 즐길 수 있다. 은신처를 만들어서, 환경을 바꾸고, 사물을 바꾼다. 강아지에게 최걱화된 환경을 만들어 나간다. 좁은 아파트에서, 반려견을 키울 때, 항상 놓치는 것이 반려견을 위한 은신처다. 인간과 강아지가 공용하는 베란다가 은신처가 될 수 없다. 그 은신처에서, 먹고 자고, 식량을 보관하고, 나만의 일상을 자유롭에 만들어 간다.



반려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놀이와 사회화다. 이 두가지는 분리될 수 없으며, 서로에게 불가분한 관계다. 이 책에서, 우리는 새로운 것을 느낄 수 있고,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부여한다. 인간에게 필요한 뇌발달, 사회성을 반려견 또한 놀이를 통해서, 얻는다. 순간적인 대처 능력, 사회성, 좌절에 대처하는 능력, 충동조절 능력을 사회화 훈련을 통해서배워 나간다. 반려견에게 충분한 놀이가 제공되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반려견은 심리적인 억압으로 문제의 행동을 반복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낮달의 시간
가랑비메이커 지음 / 문장과장면들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낮에는 달도 희미하다.

나른한 오후에 블라인드를 걷다가 마주친 희미한 낮달을 오래 바라본다. 까만 모니터에 비친 야윈 얼굴 위로 하얀 낮달이 어른거린다.

아직은 기다려야 할 때다. 환한 빛을 발할 때까지 조금 더 차오를 떄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 나만은 아니다. (-15-)

동산

지독한 수족냉증을 앓는 탓에 손이 따듯한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이 겨울, 내 손을 녹이는 건 나보다 더 차가운 손을 지닌 사람이다. 꽝꼬아 얼어붙은 손과 손에 선명한 사랑과 약간의 견딤이 더해지면 마침내 온기가 번지기 시작한다.

얼어붙은 몸과 몸이 엉기면 빙산이 아니라 동산이 된다. (-50-)

분수에 맞지 않는 유난한 삶을 살았다. 누군가의 시선을 받는 삶, 환대와 경계를 모두 그러 안는 삶, 좁은 엘리베이터 한가운데서 수많은 곁눈질과 침묵의 말을 견디는 삶.겨우 십여초의 시간.

겨우 십여 초의 시간이 쌓이고 쌓이면 누군가의 한 시절이 된다. 한 시절은 한 인생의 좌우명을 바꿔 놓을 수 있다. (-89-)

나를 서운하게 만들던 사람들은 종종 서운하다는 말마저 새치기를 하듯 가로채갔다. (-139-)

책 『낮달의 시간』 은 작가 가랑비메이커의 열 번째 책이름이다. 책 한권 속에 '단상집'을 메인 타이트로 내세우고 있다. 이른 아침에, 우연히 본 달은 산허리에 걸쳐 있었다. 그 낮달을 보면서 흘렀던 눈물이 , 책 한 권을 쓰게 된 이유다.

우리는 자연 속에서 많은 것을 놓치며 살아간다. 행복도, 침묵도, 여유도,시간도, 이 모든 것이 제자리에 놓여질 때, 우리는 행복한 삶과 즐거운 삶을 살아갈 수 있으며,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어떤 삶인지 성찰할 수 있다.기다리지 않아서, 우리는 후회하는 삶을 살아가며, 후히가 아픔이 되고, 슬픔의 흔적이 되고 있다. 잠시 심호홉을 통해서, 내가 버려야 할 것을 버릴 줄 아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서운하다는 것, 서운하지 않는 관계를 만들어 간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매려와 존중이 우선되어야 한다. 소중한 것을 놓치며 살아가다가. 머뭇거리다가 ,시간을 놓치고, 관계를 놓치고, 감정을 놓칠 수 있다. 고요한 고독을 글로 옮겨 놓았고, 외로운 슬픔을 글을 통해,즐거움과 아픔을 잠시 멈추게 된다. 고요함 속에, 사랑과 배려가 존재하며, 일상 속의 단상들, 시간의 편린들이 모여서, 우리는 행복한 삶 속에서, 만족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다. 따스한 삶, 즐거움 속에서, 눈물을 머금으면서, 살아갈 때,내 주변에 사람이 하나하나 보이고,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며, 소중한 가치들을 느낄 수 있다. 잎상 속에 의식하지 않으면, 보지 않는 낮달은 우리에게 삶의 틈을 만들고 ,관계의 틈을 만들고, 행복한 관계를 알게 해주곤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전쟁의 기원 2-2 - 폭포의 굉음 1947~1950 현대의 고전 16
브루스 커밍스 지음, 김범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의 무력 분쟁은 1949년 여름과 1950년 여름 옹진과 개성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시작됐다. 현장도, 등장인물도 , 첫 충돌도 비슷했다. 그러나 한 사건은 전쟁을 불러왔고, 다른 사건은 그렇지 않았다. 이 장에서는 대한민국이 미국의 방어 또는 미군이 한국군을 공동으로 통제한다는 보장을 받지 못한 전후 역사의 1년인 1949년에 일어난 전투와 그것을 유발한 쟁점을 분석할 것이다. (-13-)

맥아더도 비슷한 생각이었다.1948년 3월 그는 케넌과 중요한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이 생각한 방위선 체계의 의미를 분명히 밝혔다.미국은 "공격" 을 봉쇄하는 'U자 형 지역"을 설정했다. 거기에는 미드웨이, 알류샨 열도, 필리핀의 클라크 공군기지 그리고 "핵심 요새"인 오키나와가 포함됐다. 그러나 일본에는 기지나 군대를 두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71-)

유엔 한국위원회는 한국에 체류한 미국의 부속적 존재일 뿐이었다. 아니, 그래야 했을지도 모른다. 맥아더는 대표들이 탈 비행기를 보내줬고, 주한 미군 군사고문단은 지프차를 제공했으며, 주한 미국 대사관은 그들이 체류하는 동안 안내와 숙박과 식사를 담당하고, 서울 생활에 관련된 끝없는 불평을 처리해줬다. 남한에는 외국인 시찰자를 다루는 유명한 방법이 있었는데, 1949년 유엔한국위원회가 방문했을 때 그 방법이 널리 사용됐다. 1950년 초 유엔한국위원회 사무국이 38도선 시찰에 나서자, 기관총을 장착한 헌병대가 가득 탑승한 지프차가 행렬의 선두에 섰다. (-152-)

앞서 그리피스는 중국 정책을 둘러싼 불안이 고조된다면 애치슨은 "퇴진할 거라고" 웰링턴 구에게 말한 바 있다.앞서 본 대로 매카시가 이끈 반격 세력은 에치슨의 권한을 약화시켰고, 매카시 이후로도 존슨, 도너번, 콜버그 등의 인물이 계속 있었다. 6월 7일 그리피스는 웰링턴 구와 둥셴광에게 애치슨은 사임해야 한다는 의견을 계속 주장했다. (-232-)

개성에서 더 동쪽에 위치한 38도선 부근 도시인 춘천에 있던 사람들은 6월 25일에 전투가 시작된다는 정보를 미리 알았음이 분명했다. 당연하게도 남한과 미국 자료에서는 그것을 북한의 공격에 대한 사전 경고라고 서술했다. 월러비의 한국 연락사무소(KLO) 소속으로 여겨지는 주한 미군 군사고문단 정보 장교 토머스 D.맥파일은 자신이 북한 지역으로 보낸 남한 공작원들로 부터"풍부한 정보" 를 얻고 있었다. (-293-)

이런 사실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상대편에게 보내는 매우 중요한 신호였다. 1980년대에도 공산국가의 현실정치는 미국의 힘에 맞서기보다는 특정 동맹국을 희생시키는 것을 선택했고, 소련은 자국의 실제적인 군사 억제력을 믿는 지역에서도 명확한 한계를 두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한국 전쟁 관련 기록을 검토하면 북한은 군사 억제력 행사 지역이 아니었음을 엿볼 수 있다. 소련은 전투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처음부터 확실히 했다.그러므로 우리는 스탈린이 전쟁을 시작했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다는 ,미국에 널리 퍼진 추정과 그가 소련의 이익, 위신, 군사력을 한국의 분쟁 상황으로부터 멀리 거리를 두고 궁극적으로 미국이 북한을 분쇄하도록 내버려 두었다는 명백한 증거를 조화시켜야 한다. (-373-)

남한에 유격대가 만연한 것은 미국이 적과 민간인을 구별할 수 없는 새로운 종류의 전쟁에 직면했다는 뜻이었다. 인민군은 군복을 벗고 전형적인 농민의 흰 옷을 입은 뒤 그들 안으로 섞여 들어갔다. 할머니나 10살 짜리 아이가 보따리에서 총을 꺼내 당신을 죽일 수도 있는 것이다.그 결과는 아주 더러운 전쟁이었다.

한국에 도착한 보통의 미군은 자신이 어디에서 누구와 왜 싸워야 하는지 거의 몰랐다. 그들은 한여름의 찌는 듯한 습기와 잦은 폭우, 질척이는 땅에서 전개된 전투 속으로 던져졌다. 미군은 인분이 비료로 사용된 논을 묵묵히 걸었다. 그 냄새는 농촌에서는 일상적이었지만 처음 맡는 사람에게는 경악스러웠다. 목이 말라 논에 고인 물을 마시면 이질에 걸렸다. (-433-)

유엔군이 38도선을 넘는다면 중국 공산 세력은 북한을 원조할 것이다. 그 이유는 중국 공산 세력은 북한에 빚을 지고 있는데, 특히 국민당과 싸울 때 이홍관이 린뱌오를 지원한 것이다. 유엔군이 북한을 점령하는 것은 중국 영토에 위협이 될 것이다. 소련은 중국에 참전을 명령하고 있다. (-498-)

앞서 본 대로 한국전쟁이 끝난 뒤 남한과 북한은 부흥했으며, 특히 남한은 세계 많은 나라에 필요한 물푼을 좋은 가격에 판매함으로써 큰 주목을 받았다. 내가 사랑하는 조국-내 조상은 1632년(한국과 연결지어 생각하면 히데요시가 침략한 직후) 스코틀랜드에서 이주했다-은 수십 년 동안 어리석고 무의미한 전재을 계속한 결과,나치를 무찔러 얻은 국제적 지위와 거대한 도덕적 권위를 스스로 실추시켰다., 봉쇄체제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은 급증했지만 그동안 비교적 소수의 투자가와 실업가는 자신들의 힘과 활력을 해외에 계속 수출했으며, 폴라니가 말한 "영광스러운 허구"와 크로더가 말한 "기묘한 치매" 또는 비어드가 말한 "도박에 가까운 모험"을 추구했다. (-547-)

브루스 커밍스가 쓴 『한국전쟁의 기원 2-2』는 전두환 정권 당시 대표적인 금서로 지정되었으며, 이제서야 온전한 『한국전쟁의 기원』 시리즈로 번역될 수 있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한 것에 대해서,한국인이 생각하는 남침에 대해서, 북한이 생각하는 북침에 대해서,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있으며, 한국인 특유의 국수주의를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전쟁이 하루 아침에 갑자기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1949년 북한의 도발이 옹진 서해 앞바다에서 일어났고, 그것이 첫 시작으로, 1950년 6월 25일 우리가 최악의 비극이라 말하는 6.25 한국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북한이 남한으로 밀고 들어온 것은 치밀한 계산에 의한다. 북한의 전쟁 개시 이전에, 남한의 전시 상황에 대해서, 채점을 하였으며, 1950년 전쟁을 수행하여, 남한을 삼킬 수 있다는 계산을 가지고 있었다.이 과정에서, 애치슨Dean Goodenham Acheson 이 깊이 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애치슨은 1941년 국무 차관보로서 뉴딜 정책에 활약하였으며, 1945년 국무 차관에 승진하여 반스ㆍ마셜 양 국무 장관을 보좌하였다. 그리고 동아시아, 일본 , 한국, 중국 주변 국가들에 대해서, 제 2차 대전의 전전(戰前) 전후(戰後)의 중요 문제 처리를 담당하였다.하지만, 애치슨은 6.25 전쟁으로 인해 , 1947년 사임하였으며, 1971년 사망하였다.

한반도는 38도선을 중심으로 유엔연합군과 미군이 주둔하고 있었으며, 두 나라가 서로 경게를 넘지 않도록 중재하였댜. 하지만, 우익이 주도하였던 이승만 정권의 1948년 남한 단독정부 수립과 남한의 좌익세력들이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였으며, 미국이 내세운 무능한 지도자 이승만의 제스처가 북한을 자극시킨다.그 과정에서, 북한과 북한 뒤에 있는 소련은 남한과 전면전을 치루기로 하였으며, 1945년 6월 25일 새벽을 기점으로 서울 수도권 뿐만 아니라 한순간이 부산까지 물밀듯이 북한군이 남한을 침범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CIA의 예측과 북한의 도발을 예측하였건만, 묵살되고 만다. 북한과 남한의 전면전, 멕아더가 이끄는 미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전세가 역전되었다.하지만, 중공군의 인해전수로 인해 다시 남으로 물밀듯 밀리는 전쟁 형세가 나타났다.그 결과 유엔과 미군의 오판 뿐만 아니라, 일본 오키나와에 있는 미군 공국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였다. 그 과정에서, 제공권을 장악한 유엔연합군은 네이팜탄 86만 6914 갤런을 B-29에 실어서, 폭탄으로 사용요하였다. 전쟁의 결과물, 네이팜탄 폭격으로 무고한 민간인이 겪은 고통 뿐만 아니라, 북한 군은 군인이 아닌 ,군복을 벗어 버리고, 흰 농민이 입는 옷으로 바꿔 입은 뒤, 유격대로 자신을 바꿈으로서, 농민들 사이에 자신을 은폐하였다.그 결과 약자,여성, 유소년이 타깃이 되고, 싹쓸어 버리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고 만다.한반도 전역에 일어난 한국 전쟁은 실재로 한국인의 전쟁이 아니라, 1950년대 두 열강, 소련과 미국의 패권의 구축과 재편을 위한 명분 없는 전쟁이며, 이후 1962년 10월 쿠바 핵미사일 위기와 미국 간의 전면전으로 인해, 제3차 세게대전을 초래할 뻔 했다.

ㅂ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