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부터 마음을 울린다.
낯선 나와 마주치는 순간이 오지 않기를...

비극은 ‘나는 남들과 다르다’고 믿는 데서 출발한다. 내가 만약 노예제 사회에서 태어났다면 노예로도, 주인으로도 ‘잘’ 살았을 것이다. 지주 밑에서 마름 역할도 유능하게 해냈을지 모른다. ‘소작농에게 나만큼 잘해주는 마름은 없을 것’이라고 자부하면서. 인간이란 어떤 관계 속에 들어가면 그 관계에 따라 쉽게 변형되기 마련이다. 물이 그릇에 들어가면 그릇 모양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듯이.

우리 인간은 ‘같음’보다 ‘다름’에 주목해 나누고, 차별하려 든다. 아마 그것이 생활에 유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사람은 같게, 다른 사람은 다르게 대하는 편이 편하고 효율적일 것이다. 우리는 원시 시대의 식별법에서 그리 멀리 진화하지 못했다.

‘나도 별수 없다’는 깨달음. 인간을 추락시키는 절망도, 인간을 구원하는 희망도 그 부근에 있다. 바라건대, 스스로를 믿지 않기를. 낯선 나와 마주치는 순간 서늘한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믿는 순간 편견의 구렁텅이에 굴러떨어지고, 믿는 순간 맞은편 차량과 추돌한다. 한 고비 돌 때마다 가능한 길게 클랙슨을 울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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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하루키 - 그만큼 네가 좋아 아무튼 시리즈 26
이지수 지음 / 제철소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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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수없이 되풀이해서 읽었던 하루키도 어렴풋한 기억밖에 남아있지 않다. 어릴 땐 특별해보였던 하루키도 어느 나이가 되면서는 전혀 읽지 않게 되었고, 내가 댄스댄스댄스와 태엽감는 새를 아주 좋아했었다는 기억만 남아 있다.
이 책은 읽었더니 불현듯 내책장 어느구석에 꽂혀 있는 하루키의 글들은 다시 읽고 싶다는 충동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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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하야마 아마리 지음, 장은주 옮김 / 예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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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환타지인가? 어째 할리퀸 소설이나 한 때 유행하던 일본배경의 전형적인 야쿠자소설이나 웹소설 같은 느낌도 있다. 제1회 일본감동대상을 받은 소설이라고 하는데, 실화라기엔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 나라와 일본의 문화차이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희망을 가득채워주는 컨셉의 성장소설(?) 같다.
이 책이 100퍼 실화라는 전제 하에서 본다면 목표를 가진 개인의 노력에 대해 박수쳐 줄만 하다.

책을 다 읽는데는 80분 가량이 걸렸고,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술술 넘어갔다. 읽는 중에 계속 다른 색으로 표시된 문장들이 있을 때마다 중요하니까, 감동적이니까 밑줄쳐 하고 강요하는 느낌이라 조금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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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끊임없이 방울방울 이어질 때 가만히 누워 있기는 괴로운 일이다. 특히 부정적 생각이 휘몰아칠 때 누워 있으면 스스로 몸을 묶고 소리 없이 아우성치는 일과 같다. 걷기는 이 ‘셀프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주변 풍광을 보면서 걷다 보면, 깊은 우물 속에 빠져 있던 괴로움이 스르르 몸을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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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울증이란 어떤 병이구나 하는 걸 여실히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DSM-5니 뭐니 하는 것보다 훨씬 와닿고 이해하게 해주었다.

글도 잘 썼고, 이해도 잘 되지만 책을 펼치고 넘기는 게 아주 편하지만은 않다. 조울증이라는 것에 대한 불편함 때문인지 타인에게 관심을 쏟지 못한 내 죄책감 때문인지 모르겠다.

조울이란 사막과도 같은 병이라는 표현이 아주 가슴에 와닿는다.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 지글거리는 사막의 태양. 밤이면 영하로 내려가는 극단적 추위. 다양한 생명체의 활극이 펼쳐지는 바다와 달리, 사막의 극한 환경은 생명을 품을 만한 곳이 못 된다. 별자리 읽는 법을 익히지도 못한 채 사막을 헤매는 것은 고립과 죽음을 의미한다... 정신질환으로 세상과 소통할 방도를 잃어버린 이들은 외로운 사막에 놓여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 다음과 같이 표현된 것을 보면서 조증이란 거 어떤 느낌인가도 알 수 있었다.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자 상대방이 집으로 데려다주겠다며 택시를 태웠다. 견딜 수 없었다. 멀미가 아닐까 싶어 차를 세웠지만 더 심해졌다. 그동안 겪었던 일들, 생각, 느낌, 감각 그 모든 것이 너무나 빠른 속도로 휘몰아쳤다. 토네이도처럼 밀려와 나를 한가운데로 밀어넣었다. 숨이 가빴다. 생각들에 치여 숨을 쉴 수 없었다. 이렇게 생각들에 휩쓸려 죽는구나. 몸이 붕 떠오르더니 곧 전신에 불이 붙는 느낌이 들었다. 입안까지 온통 검게 타버렸다고 생각했다. 이제 죽는구나, 이게 숨이 막혀 죽는 거구나, 하는 순간 암전이 됐다.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머리 위에선 하얀 깃발이 나부꼈다. 조증에 항복하고 만 것이다.˝

“그때 나는 바다를 쳐다보았고 동시에 창문에 튄 피가 석양 속으로 녹아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어떤 것이 피이고 어떤 것이 석양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폐가 찢어져라 비명을 질렀다. 더 이상 그 피로 얼룩진 광경, 원심분리기가 점점 더 빨리 돌아가면서 쟁그랑거리는 소리를 감내할 수가 없었다. 내 생각은 거칠게 맴돌았고 그것은 주마등같이 변했다. 내 인생, 내 마음이 완전히 절단되는 순간이었고 도무지 통제할 수 없었다.”

조증 때 느끼는 이해하지 못할 활력과 에너지에 대해 읽으면서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 나오는 뚜렛증후군의 묘사와도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뚜렛증후군이 나타나는 동안은 (마치 조증 상태일 때처럼) 자신의 창의력이 뿜어져 나오고 특별함을 느낄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의 표현과 유사한 느낌이 있었다.

책의 2/3부분은 약간 잘 넘어가지 않는 느낌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재미있게 읽고 도움이 되었다. 특히 마지막 주치의 선생님과의 인터뷰는 조울병을 앓고 있거나 의심하는 사람과 주변인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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