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부터 마음을 울린다.
낯선 나와 마주치는 순간이 오지 않기를...

비극은 ‘나는 남들과 다르다’고 믿는 데서 출발한다. 내가 만약 노예제 사회에서 태어났다면 노예로도, 주인으로도 ‘잘’ 살았을 것이다. 지주 밑에서 마름 역할도 유능하게 해냈을지 모른다. ‘소작농에게 나만큼 잘해주는 마름은 없을 것’이라고 자부하면서. 인간이란 어떤 관계 속에 들어가면 그 관계에 따라 쉽게 변형되기 마련이다. 물이 그릇에 들어가면 그릇 모양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듯이.

우리 인간은 ‘같음’보다 ‘다름’에 주목해 나누고, 차별하려 든다. 아마 그것이 생활에 유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사람은 같게, 다른 사람은 다르게 대하는 편이 편하고 효율적일 것이다. 우리는 원시 시대의 식별법에서 그리 멀리 진화하지 못했다.

‘나도 별수 없다’는 깨달음. 인간을 추락시키는 절망도, 인간을 구원하는 희망도 그 부근에 있다. 바라건대, 스스로를 믿지 않기를. 낯선 나와 마주치는 순간 서늘한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믿는 순간 편견의 구렁텅이에 굴러떨어지고, 믿는 순간 맞은편 차량과 추돌한다. 한 고비 돌 때마다 가능한 길게 클랙슨을 울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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