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이란 어떤 병이구나 하는 걸 여실히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DSM-5니 뭐니 하는 것보다 훨씬 와닿고 이해하게 해주었다.

글도 잘 썼고, 이해도 잘 되지만 책을 펼치고 넘기는 게 아주 편하지만은 않다. 조울증이라는 것에 대한 불편함 때문인지 타인에게 관심을 쏟지 못한 내 죄책감 때문인지 모르겠다.

조울이란 사막과도 같은 병이라는 표현이 아주 가슴에 와닿는다.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 지글거리는 사막의 태양. 밤이면 영하로 내려가는 극단적 추위. 다양한 생명체의 활극이 펼쳐지는 바다와 달리, 사막의 극한 환경은 생명을 품을 만한 곳이 못 된다. 별자리 읽는 법을 익히지도 못한 채 사막을 헤매는 것은 고립과 죽음을 의미한다... 정신질환으로 세상과 소통할 방도를 잃어버린 이들은 외로운 사막에 놓여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 다음과 같이 표현된 것을 보면서 조증이란 거 어떤 느낌인가도 알 수 있었다.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자 상대방이 집으로 데려다주겠다며 택시를 태웠다. 견딜 수 없었다. 멀미가 아닐까 싶어 차를 세웠지만 더 심해졌다. 그동안 겪었던 일들, 생각, 느낌, 감각 그 모든 것이 너무나 빠른 속도로 휘몰아쳤다. 토네이도처럼 밀려와 나를 한가운데로 밀어넣었다. 숨이 가빴다. 생각들에 치여 숨을 쉴 수 없었다. 이렇게 생각들에 휩쓸려 죽는구나. 몸이 붕 떠오르더니 곧 전신에 불이 붙는 느낌이 들었다. 입안까지 온통 검게 타버렸다고 생각했다. 이제 죽는구나, 이게 숨이 막혀 죽는 거구나, 하는 순간 암전이 됐다.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머리 위에선 하얀 깃발이 나부꼈다. 조증에 항복하고 만 것이다.˝

“그때 나는 바다를 쳐다보았고 동시에 창문에 튄 피가 석양 속으로 녹아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어떤 것이 피이고 어떤 것이 석양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폐가 찢어져라 비명을 질렀다. 더 이상 그 피로 얼룩진 광경, 원심분리기가 점점 더 빨리 돌아가면서 쟁그랑거리는 소리를 감내할 수가 없었다. 내 생각은 거칠게 맴돌았고 그것은 주마등같이 변했다. 내 인생, 내 마음이 완전히 절단되는 순간이었고 도무지 통제할 수 없었다.”

조증 때 느끼는 이해하지 못할 활력과 에너지에 대해 읽으면서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 나오는 뚜렛증후군의 묘사와도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뚜렛증후군이 나타나는 동안은 (마치 조증 상태일 때처럼) 자신의 창의력이 뿜어져 나오고 특별함을 느낄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의 표현과 유사한 느낌이 있었다.

책의 2/3부분은 약간 잘 넘어가지 않는 느낌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재미있게 읽고 도움이 되었다. 특히 마지막 주치의 선생님과의 인터뷰는 조울병을 앓고 있거나 의심하는 사람과 주변인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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