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블루>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
-
크로아티아 블루
김랑 글.사진 / 나무수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크로아티아 블루 - 파란 세상의 나라를 구경하다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가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으면 술술 진행되어 나간다.”
알랭 드 보통이 그의 여행 에세이 <여행의 기술>에서 한 말입니다. 생전 보지 못한 물건을 사고 음식을 경험하는 것은 멋진 여행의 묘미입니다. 또 자신의 분야와 목적에 어울리는 주제를 따라 ‘순례’를 하는 것도 훌륭한 여행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 알랭 드 보통은 ‘생각을 만드는 여행’을 권하는군요. 생각을 만드는 여행이라...그러면 이렇게 하면 좋겠네요. 혼자서 되도록 멀리가는 겁니다. 내 집으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고립’이라는 단어는 뚜렸해집니다. 세상은 결국 혼자 살아가는 것이라면, 새로운 환경에서 홀로 아침을 맞고 밤을 보내면서 낳은 생각들은 온전히 ‘나 만의 생각’이 되겠네요. 여기에 더한다면 ‘말이 통하지 않는 곳’이라면 더욱 좋겠네요(하지만 저 같은 겁쟁이는 죽을 때까지 시도하지 못할 방법이라죠).
여기 한 사내가 배낭을 메고 카메라를 손에 쥐고 낯선 땅 ‘크로아티아’로 떠납니다. 저~엉말 낯선 곳이네요. 내 생에 이 단어를 몇 번을 들어봤을까 싶습니다. 거의 대부분은 월드컵 축구를 통해 들어본 것 같네요. 아, 얼마 전 본 영화 <하이레인High Lane>의 촬영장소가 그곳이라 했던가요? 끝이 보이지 않는 계곡 사이에 걸린 ‘죽음의 다리’를 넘어서면서 끔찍깜찍한 일들이 벌어지는데요, 영화를 보면서 ‘이거 세트아냐? 저런 곳이 있단 말이야?’ 생각했던 곳입니다. 아무튼 크로아티아는 제게 어떤 곳일지 상상하기가 힘든 나라입니다. 아니 여행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우주’같은 나라입니다. 이 책을 펼친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내게 우주같은 곳을 배낭 하나 덜렁 매고 다녀온 사내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던거죠. 소개합니다. <크로아티아 블루>입니다.
크로아티아는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이루던 여섯 국가중 하나로 유럽사람들에게도 ‘유럽 속의 아주 특별한 유럽’으로 불리는 독자적인 슬라브 문화를 가진 나라입니다. 이곳은 이탈리아보다 잘 보존된 고대 로마의 유적이 가득한 곳이라고 하네요. 저자인 김랑은 ‘랩소디 인 블루‘라는 글로 책을, 크로아티아 여행을 시작합니다. 온통 푸르름으로 가득한 이 나라를 잘 표현하기도 하는 글이네요.
랩소디 인 블루
‘푸름’에는 그 색깔만큼이나 셀 수 없는 감정들이 담겨 있다.
풋풋한 사랑이 있고,
햇살 같은 웃음과 위안이 있고,
바다 같은 그리움이 있고,
부서지는 파도 같은 아픔이 있으며,
짜디짠 슬픔도 있다.
아드리아가 품고 있는 크로아티아는
세상에 존재하는 그 모든 ‘푸름’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 이름조차 파래서 건드리면 생각만 해도 금세 ‘푸름’이 번지는 곳.
나의 감정을 홀로 만나고,
구겨진 기억을 다려 펴고,
사람의 기억을 매만지는 게 여행이라면,
크로아티아는 여행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 세상의 모든 푸름이 다 모여 있는 곳, 크로아티아. 김랑은 크로아티아가 가진 도시들, 이스트라, 자그레브, 디나라 알프스, 달마티아를 돌면서 푸름을 이야기하고, 푸름 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글과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그림에서나 볼 것 같은 낯선 풍경은 놀라움 그 자체네요. 특별한 색의 더 특별한 구조로 만들어진 건축물 위엔 늘 푸른 하늘이 있습니다.
디나라 알프스에서 이 사내는 한 일본 여행객을 만납니다. 물론 혼자죠. 영화 비포 선 라이즈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네요. 홀로 떠나는 모든 여행객의 로망이 아닐까요? 그녀가 이곳에 온 이유가 재미있습니다. “사막은 너무 아플 것 같았어요. 난 겁이 많은데. 그래서 여기였어요. 사무실 책상 맞은편에 늘 이곳 사진이 붙어 있어서 괜찮을 것 같았거든요.” 여행사에서 일한 그녀가 이곳을 온 이유는 7년 간 사귀었던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회사를 관두고 이곳으로 온 것이 ‘여행의 이유’였습니다. “난 태어날 때부터 반쪽짜리였어요. 그 반쪽을 메워줬던 사람이 떠나고 나니까, 나는 다시 반쪽이 돼버렸어요. 이곳에 오면 좀 나을 줄 알았는데, 나는 여전히 반쪽일 뿐이에요.” 싸구려 와인 두 병을 비우고 이들은 돌아서 다시 혼자가 됩니다. 새벽녘에 부는 바람은 그녀의 한숨 같았다고 하네요. 그녀에게는 ‘채움’보다는 ‘비움’이 필요한 여행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저자가 어디에서 잠을 자고 어디서 먹고, 무엇을 먹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나에게는 별로 상관없는 일이니까요. 또 그런 종류의 사진들이었다면 이 책을 들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가 생각한 내용들에도 별로 관심은 없었죠. 난 그를 모르니까요. 하지만 그가 담은 사진들은 내 눈을 사로잡습니다. 내가 그곳에 간다고 해도 남기지 못할 것 같은 사진들이 매력적이었습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크.로.아.티.아. 낱말 하나 하나가 맞춰지는 듯 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 들어가 있는 나를 생각합니다. 난 파랑색을 좋아합니다. 특히 인디고 블루를 좋아하죠. 가슴에 ‘콕’ 심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색입니다. 그래서 크로아티아가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참 가보고 싶어지는 나라더군요. 그의 사진이 절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뽀샵처리를 해도 이렇게 나올까요? 알 수 없죠. 그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니까요. 한 보름 정도만 있다가 오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까무러치게 파란 하늘과 터키옥 같은 바다를 보면서 마음을 파랗게 물들여오면 좋겠습니다.
흑백의 바다를 바탕으로 그가 쓴 글이 마음에 듭니다.
“모든 게 정리됐다고 해도 떠나고 보면
아무것도 정리된 것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는 기억들도 분명 있습니다.
인간이기에 내일도 어제와 똑같은 기억을 안고 갈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지구를 몇 바퀴쯤 돌아온 이곳에서,
내일은 오늘과는 분명 다를 거라고 나는 믿습니다.“
만약 여행을 떠난다면 카메라 없이 떠나볼까 합니다. 눈과 마음에 담아 아무에게도 보이지 못한 채 말로만 설명할 수 있는 여행을 하고 싶습니다. 아마 그녀가 비웃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기억을 오래 담지 못하는 편이라 결국 아무 말도 못할 거라 흉볼지도 모릅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입으로 말하는 여행담은 거의가 거짓말이다‘라는 말이 있죠. 기억하지 못하면 꾸며서라도 해야죠. 여행은 원래 그런 거잖아요. 아무리 사실대로 설명한다 해도 듣는 사람은 또 다시 상상으로 들을테니까요. 결국 떠나본 사람들에게만 존재하는 ’특별한 경험‘. 그게 여행이 아닐까요? 잠시 크로아티아에 다녀왔습니다. 내가 있는 천고마비의 하늘보다 조금 더 파란 하늘을 구경했습니다. 즐거운 상상은 덤이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