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단련법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성관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실용독서의 대가, 다치바나 다카시의 생산적 지식습득 비법을 밝힌 책!

  

  지知의 거인, 일본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꼽히는 다치바나 다카시立花 隆 <지식단련법>을 읽었다. 이 책은 일본 최고의 저널리스트라는 그의 명성보다는 '다독가'와 '고양이 빌딩'이라는 그의 서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가 1984년에 출간한 책으로 자신의 정보의 수집과 가공및 정리 그리고 활용법에 대해 적은 글이다. 그의 수많은 베스트셀러 중에서 초기 저서에 속하는 이 책은 일본에서 40쇄를 넘기며 지금도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다. 나는 그가 '저널리스트'인 것에 관심을 둔 것이 아니라 '다독가'인 그에게 접근하고자 이 책을 읽었다. 국내에 이미 출간된 바 있는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에서도 그를 만났지만, 그의 독서와 지식활용법이 좀 더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소득은 생각 외로 컸다. 그가 이 책을 통해 한 말들은 '실용독서'를 즐기는 나에게는 전작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에 버금가는 훌륭한 책이었다. 원제목은 「知」のソフトウェア ; 지의 소프트웨어 다.  

"독서는 정신적 식사다"

 
  그의 독서활동 즉 읽고, 배우고, 활용하는 측면을 입력하는 방법, 인풋Input 과 출력하는 방법, 아웃풋Output 그리고 입력에서 출력에 이르는 과정인 프로세스Process 를 나누어 이 책의 전체 이야기로 꾸몄다. 그는 정보의 입력은 결국 인간의 오관을 통해 이뤄진다고 했다. 오관 중에서 지적 정보는 전적으로 눈과 귀를 통해 들어오고, 눈으로는 문자 정보와 도면 정보가, 귀를 통해서 들어오는 음성 정보가 지적인 정보의 주요한 형태인데, 정보의 입력에는 시간이 소요되는데 우선 음성 정보의 입력 속도는 발화자가 아나운서인 경우 1분에 300자 정도를 읽는다고 하면, 1권을 낭독을 통해 듣기 위해서는 6시간에서 8시간이 소요되는 셈이다.

 

  눈으로 읽는 속도는 읽으면서 이해할 수 있는 평이한 내용이라면 좀 느린 사람은 귀로 듣는 속도의 두배, 빠른 시람의 경우에는 네 배의 속도정도 읽게 되는데, 이렇게 놓고 본다면 하루에 정보 입력(독서)를 할 수 있는 양을 계산할 수 있게 되고, 또한 평생 얼마나 많이 입력할 수 있는가 즉 몇 권을 읽을 수 있는가를 짐작하게 된다. 이는 극히 적은 양이고, 자기가 읽고 싶은 책 모두를 죽기 전에 읽어낸다는 것은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한 꿈이라는 것을 수식으로도 도출하게 된다. 하루 두세 끼의 밥을 규칙적으로 먹듯, 책을 하루에 몇 권을 읽을 수있는가를 가늠하는 그를 보면서 '독서는 정신적 식사다'라고 한 그의 말이 '식자識者'의 허장성세는 아님을 짐작하게 했다.

 

  저널리스트인 다치바나 다카시가 소설을 읽지 않는 이유, 그리고 < 피가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살도 안되는 100권>이라는 책을 쓸 만큼 책의 선택에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는 이유는 바로 '읽고 싶은 책을 다 읽을 만큼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지적 생산자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그가, 세상에는 아직 밝히고 알려야 할 것이 많이 남겨져 있음을 아는 그가 읽으며 즐기는 지적생활을 하기는 낭비로만 보인 것이다. 자신의 관심사에 대해 모두 읽어내기도 힘든 현실에, 아무 책이나 읽을 수 없다는 그만의 현실적인 선택인 셈이다. 이순간 '세상에 있는 책을 다 읽지 못해 늘 우울하다'는 괴테의 말이 떠오르는 것은 '책벌레'인 그들만의 코드가 일치하는 때문은 아닐까?

 

  1940년생, 즉 70의 나이가 된 그가 책을 가려서 할 이유는 이 책을 낼 때인 1980년대보다 더욱 더할 것이고, 더욱 필사적으로 책을 가려서 읽고, 집중해서 읽겠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있어서 독서는 '지적 시한부인생의 투병생활'로까지 느껴지게 했다. 애초에 책에는 관심조차 없던 내가 책을 읽게 되면서 지식정보체계라고는 제로베이스Zero Base에 다름 없기에 모든 정보가 곧 피가 되고 살이 될꺼라 믿고 닥치는대로, 틈나는대로 장르를 불문하고 책을 읽고 있었는데 그를 통해 남겨진 시간들을 유추하면서 제 흥미에 맞는 책, 정말 좋은 책만을 선택해서 읽어야 함, 즉 선독選讀해야 함을 배우게 되었다. '피도살도 안되는 책'은 비록 피같은 돈을 줬더라고 중도에 읽기를 그만두고 폐기처분해야 할 것은 당연할테고...

 

  이 책에서 가장 주목을 한 부분은 입력에서 출력까지의 과정이었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전체적인 흐름을 놓칠 수 있고, 또한 물리적인 독서시간까지 낭비할 수 있어 책을 읽는 도중에는 노트를 하지 않는다. 대신 기억하고 싶은 부분이나 따로 노트가 필요한 부분은 밑줄을 치고, 페이지를 접고, 책의 앞면에 따로 페이지와 간단한 메모로 적어두어 또 다시 살펴보거나, 노트를 할 때 찾기 쉽도록 하고 있었다. '책을 훼손함'은 그만의 프로세싱 과정이고, 그 이유 때문에 책을 꼭 사거나, 중요한 자료를 복사해 제본을 하거나 스크랩을 하는 이유기도 했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자신이 강연한 내용과 잡지 원고 중에서 '책'을 주제로한 글들만 추려 모아 1995년에'문예춘추'를 통해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를 펴내 96년 3월 말까지 단 몇 개월만에 37만 부가 팔리는 베스트셀러로 만들었는데, 이 책에서 그만의 독서법에 대해 밝힌 바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그의 치열하고 집요한 입력프로세싱을 짐작하게 한다.

 

1. 책을 사는데 돈을 아끼지 말라. 책이 많이 비싸졌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책 값은 싼 편이다. 책 한권에 들어있는 정보를 다른 방법을 통해 입수하려고 한다면 그 몇 십 배, 몇 백 배의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2. 하나의 테마에 대해 책 한권으로 다 알려고 하지 말고, 반드시 비슷한 관련서를 몇 권이든 찾아 읽어라. 관련서들을 읽고 나야 비로소 그 책의 장점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또한 이 과정을 통해 그 테마와 관련된 단단한 밑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3. 책 선택에 대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실패 없이는 선택 능력을 익힐 수 없다. 선택의 실패도 선택 능력을 키우기 위한 수업료로 생각한다면 결코 비싼 것이 아니다. 

4.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 책은 무리해서 읽지 말라. 수준이 너무 낮은 책이든, 너무 높은 책이든 그것을 읽는 것은 시간 낭비이다. 시간은 금이라고 생각하고 아무리 비싸게 주고 산 책이라도 읽다가 중단하는 것이 좋다. 

5. 읽다가 중단하기로 결심한 책이라도 일단 마지막 쪽까지 한 장 한 장 넘겨보라. 의외의 발견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6. 속독법을 몸에 익혀라. 가능한 한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한 한 많은 자료를 섭렵하기 위해서는 속독법밖에 없다. 

7. 책을 읽는 도중에 메모하지 말라. 꼭 메모를 하고 싶다면 책을 다 읽고 나서 메모를 위해 다시 한 번 읽는 편이 시간상 훨씬 경제적이다. 메모를 하면서 책 한 권을 읽는 사이에 다섯 권의 관련 서적을 읽을 수가 있다. 대개 후자의 방법이 시간을 보다 유용하게 쓰는 방법이다. 

8. 남의 의견이나 북 가이드 같은 것에 현혹되지 말라. 최근 북 가이드가 유행하고 있는데, 대부분 그 내용이 너무 부실하다. 

9. 주석을 빠뜨리지 말고 읽어라. 주석에는 때때로 본문 이상의 정보가 실려 있기도 하다. 

10. 책을 읽을 때는 끊임없이 의심하라. 활자로 된 것은 모두 그럴듯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지만, 좋은 평가를 받은 책이라도 거짓이나 엉터리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11. '아니, 어떻게?' 라고 생각되는 부분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을 발견하게 되면 저자가 어떻게 그런 정보를 얻었는지, 또 저자의 판단 근거는 어디에 있는지 숙고해보라. 이런 내용이 정확하지 않을 경우, 그 정보는 엉터리일 확률이 아주 높다.

12. 왠지 의심이 들면 언제나 원본 자료 혹은 사실로 확인될 때까지 의심을 풀지 말라.   

13. 번역서는 오역이나 나쁜 번역이 생각 이상으로 많다. 번역서를 읽다가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머리가 나쁘다고 자책하지 말고 우선 오역이 아닌지 의심해 보라.
 

14. 대학에서 얻은 지식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사회인이 되어서 축적한 지식의 양과 질, 특히 20, 30대의 지식은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중요한 것이다. 젊은 시절에 다른 것은 몰라도 책 읽을 시간만은 꼭 만들어라.



  이렇듯 다소 유별나고 집요한 그만의 독서법은 그에게 있어서 독서는 입력선행형, 즉 책을 읽고 즐기는 지적생활형이라기 보다는 책을 만들고, 저널을 펴내는 집필을 위한 출력 선행형, 다시 말해 지적 생산형 독서이기에 책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어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는 독서를 통해 창조형인간이 되기를 꿈꾸는 독서인에게는 제대로운 롤 모델roll-model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그만의 지식 축정과정의 산물인 고양이 서재(빌딩)이 존재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고, 다독가들이 그 빌딩을 부러워하는 이유도 단순히 책이 쌓인 건물이어서가 아니라 건물 속 책속 내용이 그의 머리 속에 들어있음을 예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자신의 저서보다 책이 가득한 고양이 서재로 유명하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에서 언급되면서 주목을 받게 된 고양이 빌딩은 고서점과 서가를 소개한 어느 작가의 책에서 도면과 함께 소개가 되면서 화제를 낳았는데, 책이 너무나 많아 감당할 수가 없어 장서를 보관하기 위해 도쿄에 빌딩을 지었다.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의 ‘고양이 빌딩’ 은 보시는 바대로 도쿄 거리 한복판에 서 있다. 10평 정도 되는 자투리땅에 철근으로 세운 4층 건물로, 내부 서가의 총 길이를 합하면 무려 700 m에 이른다고 한다. 골목과 골목 사이의 맨 끝자락의 대지에 건축법에 맞게 제한적으로 지은 건물인지라 모양이 얇고도 특이한 빌딩이 생기게 되었는데, 뾰족한 건물의 모서리에 고양이의 얼굴을 그려 '고양이 빌딩'이 탄생했다. 자신의 서재에 있는 만여 권의 책은 따로 색인을 두지 않고 관련 범주에 넣고 있는데, 자신만의 사서법으로 원하는 책을 찾아낼 수 있다고 했다. '우리 뇌는 그만큼은 감당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인간의 뇌에 대해서도 책을 냈던 그가 한 말이라 신뢰는 가지만 한 번도 시도해보지 못한 일이거니와 저자만큼의 내공이 쌓여야 가능할 법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끝끝내 털어지질 않았다.

 

  이 책이 지금까지 꾸준히 읽히는 이유는 '저널리스트'로서의 지적 생산의 기술을 밝혔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비롯해 신문, 잡지, 그리고 관청정보와 기업정보에 대해서도 이들 책자를 수집하는 요령, 그리고 스크랩하고 모아두었다가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었다. 아마도 일본에서 저널리스트가 되기를 꿈꾸는 이들이 대선배의 족적을 추적하고자 이 책을 만나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이 그만의 지적 생산과정을 소개함과 동시에 지금의 그가 있게 한 <일본 공산당 연구>나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 그리고 <우주로부터의 귀환>등의 유명한 저널들의 탄생과정에 대한 회고록도 될 수 있어서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우리나라 작가가 쓴 '일본'에 대한 책의 내용 중에 일본이 '기록문화'가 발달한 이유는 얕은 역사에 대한 정통성을 기록을 통해 확고히 하기 위해서, 그리고 섬나라만의 심리적인 공간적 제한성을 극복하기 위해서 사물과 생각에 대해 '경박단소'를 지향한 결과일 것 비슷한 글을 읽고 한편 공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창작은 기존것의 또 다른 모습의 모방'이라는 생각을 새삼하게 되었다. 새로운 지식의 확장은 기존의 것을 어느 정도까지 추적하는가 얼마나 근원에 가까이 다가가는가에 따라 그 모습과 내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닐까? 한 번의 인터뷰를 위해 60만 엔(현재 환율로는 900만원 정도)의 책을 읽어 준비를 해서 인터뷰한 결과에 대한 고료를 받으니 60만 엔이더라는 그에 대한 에피소드는 '지적 생산자'들이 추구해야 할 생산적 책임성을 느끼게 했다. 하나의 인터뷰로 그에게는 고료가 남겨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에 대한 지식이 남겨졌으리라. 그리고 그 모든 엑기스들이 인터뷰 내용을 읽는 자들에게는 또 다른 새로운 지식과 생각으로 전파되었으리라. 이 책에서 참다운 지식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가 많은 책을 읽는 이유는 "좋은 문장을 쓰고 싶으면 가능한 한 좋은 문장을, 가능한 한 많이 읽어야 하기 때문" 자신에게 필요한 책을 골라서 읽는 이유는 "좋은 책을 읽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며, 광적일 정도로 많은 자료를 스크랩하고 분류하는 이유는 "이미 배운 자로서 앞으로 배울 자들에게 좀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지식을 베풀어주고자 하는 때문"이었다. 이 책을 통해, 아니 다치바나 다카시를 통해 '책읽는 이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었다. 'Well-being'이 시대적인 흐름이라면, 독서는 'Well-reading'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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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rme 2009-04-12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릉고출신인가요??
저도 강고...

다치나바 다카시상 책을 읽으면 덩달아 책을 읽고 싶어진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