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발견해도 입이 헤 벌어지게 하는 작가가 있다. 행복 바이러스가 내 몸 속에 잔뜩 주입되어 절로 유쾌한 기분이 온 몸을 돌게 하는, 그래서 얼굴이 발그레해지고 윤이나는 듯 하며, 밝은 인상으로 어께가 쫙 펴지는 자신감으로 가득하게 하는 이야기가 그저 그려지는.

 

일상의 언어를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사람, 가슴 따뜻한 시선과 건강성이 유쾌하게 지면을 꽉 채우는 그런 소설을 보여주는 작가. ‘에릭 오르세나는 내겐 그런 작가이다.

국내에 이미 소개되어 잘 알려진 오래 오래』에서 가브리엘 부자(父子)의 미소가 뚝뚝 떨어지게 하는 우아함 넘치는 쾌활함의 기억, 두 해 여름의 섬을 가득 채우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에이다>번역에 열중하는 섬마을에 퍼진 기운의 기발한 은유의 문장은 잊혀지지 않는다.

 

섬의 어디에나 색정의 기운이 감돌고 있음을 느낌으로 알고 있었다. (中略) 향긋한 냄새로 미루어 근처 어디에선가 교접이 한바탕 벌어지고 있으려니 짐작하고 있었다.”ㅋㅋ (두해 여름 에서)

 

그의 최근 출간작 프랑스 남자의 사랑의 국내 번역 출간 소식은 정말 반갑기 그지없다. 역시 'happy Virus'를 예상케 하는 출판사 홍보 문구가 시선을 끈다.

 

 “종횡무진 뻗어나가는 유머와 지성의 향연, 프랑스적 재치와 수다로 버무려진 사랑의 유전학이란다.

 

어찌 지르지 않을 수가 있던가작가 엠마뉘엘 카레르는 자신의 어머니가 너도 에릭 오르세나처럼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던 기억을 고백할 정도이니, 그의 허구에 담긴 사랑의 이야기가 발산하는 정체의 위력은 가히 진실을 삼킬 만큼 위력적임을 그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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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 다이닝 바통 2
최은영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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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 선집의 기획 의도는 계속 살아가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으로서의 요리 행위에 대한 것이라고 한다. 7인의 작가가 써낸 질 높은, 참 맛의 식사 모두에 입맛이 맞으면 좋겠지만 사실 이런 욕심은 과욕에 그친다. 물론 입이 짧은, 익숙한 것들에 다스려진 내 탓도 있겠지만.

 

황시운이 쓴 매듭의 한 자극적인 이미지는 다른 어떤 작품보다 그 인상을 깊게 남긴다. ‘펄펄 끓는 육수에서 격렬하게 꿈틀대는 낙지의 몸부림이란 문장이 빙벽등반 추락사고로 사지가 마비된 남편 윤을 거두어야 하는 여자의 신산(辛酸)한 삶의 모습에 비추어져, 잊고 지내던 통증이 확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이 장면을 바라보는 아이는 그 살아있는 것의 고통에 엄마의 옷자락 뒤로 숨어들기도 하지만, 그 고통의 몸부림을 싱싱한 생명력이라고 탄성을 내지르며 환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마지막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 그 격렬한 움직임에 대해 진정 내가 아는 것이 있기나 한 건지...

 

이처럼 지극히 현실적인 살아감의 감각을 깨우는 것과는 달리 삶의 인간적 형태에 대한 물음을 하는 김이환의 배웅은 요즘의 주관심사이기도 한 생명의 의미를 반추하게 한다. 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순간을 말하는 특이점의 시대, 신체를 버리고 영혼(정신)을 저장하여 영원히 존재하겠다는 그 기술중심주의 세계에서 자신들만의 종교적 공간에서 살며 오롯이 육체의 죽음이란 길을 걷는 사람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소설이다. 그런데 이 공간은 폐쇄 공간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따라 언제든 도시라 불리는 포스트휴먼의 사회로 나아가 영혼 저장의 영원한 존재의 믿음을 선택할 수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중 요한이란 인물이 도시로 가기로 결정함에 따라 일종의 송별모임에 달콤한 맛의 상징인 초콜릿의 등장이다. 아마 신체의 감각을 일깨우려는 상징이겠지만, 이것 또한 생체의 존속을 위한 기계적 알고리즘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기술자들의 낙관론에 의하면 너무 하찮은 저항 같기만 하다. 어쨌든 우리네 젊은 소설가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문제 제기의 작은 출발처럼 보인다.

 

어쩌면 이 작품집을 가장 강렬하게 각인시키는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최은영의 선택은 슬그머니 내 기억에서 사라져버린 것에 대한 추궁처럼 들려 괜스레 회피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게 한다. KTX가 우리 사회에 등장할 때 초고속으로 달리는 기술의 우월감에 도취한 권력의 귀족성이 잉태한, 부자연스러운 희생양이 되어버린 여성 승무원들의 비도덕적 해고에 도사린 우리들의 무지를 환기시키고 있다. (2018) 5월이면 그 투쟁이 시작된 지 12년이 되는 것 같다. 2년 뒤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던 채용공고를 무시하고 위탁계약자에게 책임을 떠넘김으로써 저항하던 근로자들을 무더기 해고했던 사회적 참변으로 기억되는 사건이다.

 

우리는 옳다고 해서 이기고, 옳지 않다고 해서 지는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강한 쪽은 어떤 경우에도 모든 것을 잃지 않습니다. 그러나 약한 쪽은 최소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전부를 걸어야 해요.” (P 25)

 

고작 이러한 불의에 공감할 수 있다는 자위의 내적 만족에 머물면서, 외부에서는 이러한 부당함에 노출된 채 그저 당하고 좌절하는 이들에 아무런 위안도 되지 못함을 안다는 것은 정말 수치스러움이 밀려와 눈을 질끈 내려 감게 된다. 인간이 같이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 mille-feuilles nabe, 밀푀유나베 ]

 

여성주의의 거센 물결은 이 선집에도 그 모습을 드러낸다. 윤이형의 승혜와 미오인데, 퀴어 여성인 승혜의 한없는 자기 왜소화라는 갇힌 내면을 뚫고 나오기를 응원하고 격려하게 하는 소설이다. 육식을 거부하는 연인 미오를 위해 채식의 식단을 준비하던 승혜가 이웃 여자의 도움요청에 따라 그 집 아이를 위해 사뭇 과시적인 소고기를 넣은 밀푀유나베를 만드는 장면은 정말 아름다운 것은 이런 것이야! 라고 말하고 싶어지게 한다. 폐쇄된 껍질을 깨고 나오는 이 땅의 모든 승혜에게 박수를.

 

끝으로 마음을 한없이 푸근하게 해줬던 이은선의 커피 다비드의 소회로 마무리하여야겠다. 독특한 향취와 맛을 지닌 원두와 커피에 어느 섬마을 사람들의 저마다의 이야기가 상응하여 펼쳐진다. 고기잡이를 나섰던 사랑하는 남편을 여읜 여인네의 애틋한 그리움에서, 시집온 인도네시아 여인의 순박한 적응의 장면, 9급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23살 아가씨의 예쁜 질투와 섬사람들의 투박한 일상의 이야기, 그리고 아들의 출소 만기 전에 죽음을 앞둔 해녀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셔보는 핸드 드립 커피에 얹어진 소박하고 애절한 이야기까지 동화적 아름다움으로 더럽혀진 마음이 세탁되어 마치 어린아이의 마음이 되는 듯한 가뿐함을 느끼게 해준다.

 

소설, 문학의 힘이란 참으로 대단하다. 이처럼 일상의 진부함에 빠져 허우적대느라 쉽게 망각하고, 혹은 외면하거나 무시하며, 알지 못했던 것들을 되찾게 되거나, 새로이 알게 되며, 어떤 비로소의 자각이 생기게 하여 현실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니 말이다. 이 선집은 그야말로 질 높은 식사’, ‘참 맛의 식사를 충분히 제공해 주었다고 해야겠다. 한없이 편협해졌던 내 시선에 양질의 영양분이 흡수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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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vages - song by 'marina and the diamonds'

 

 

 

 

영국의 가수 마리나(Marina and the Diamonds)의 이 노래를 듣다보면 곡의 흥겨움과 세련된 리듬에

빠져들기도 하지만, 그 가사가 말하는 오늘의 인류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이 예사롭지 않음에 더욱 매혹된다.

DNA에 각인된 인간의 특성에 대해서, 이 신랄한 야만성과 동물성, 그리고 수많은 모순을 지닌 인간의 모든

행동양식과 학습의 미명하에 이루어지는 졸렬한 본성의 본색에 대해서...

신(神)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녀가 인간은 두렵다고 노래한다...

 

Murder lives forever

And so does war

Its survival of the fittest

Rich against the poor

At the end of the day

Its a human trait

Sewn deep down inside of our DNA

One man can build a bomb

Another run a race

To save somebodys life

And have it blow up in his face

Im not the only one who

Finds it hard to understand

Im not afraid of God

I am afraid of Man

 

Is it running in our blood

Is it running in our veins

Is it running in our genes

Is it in our DNA

Humans arent gonna behave

As we think we always should

Yeah, we can be as bad as we can good

 

Underneath it all, were just savages

Hidden behind shirts, ties and marriages

How could we expect anything at all

Were just animals, still learning how to crawl

 

We live, we die

We steal, we kill, we lie

Just like animals

But with far less grace

We laugh, we cry

Like babies in the night

Forever running wild

In the human race

 

Another day, another tale of rape

Another ticking bomb to bury deep and detonate

Im not the only one who finds it hard to understand

Im not afraid of God

Im afraid of Man

 

You can see it on the news

You can watch it on TV

You can read it on your phone

You can say its troubling

Humans arent gonna behave

As we think we always should

Yeah, we can be as bad as we can good

 

Underneath it all, were just savages

Hidden behind shirts, ties and marriages

How could we expect anything at all

Were just animals, still learning how to crawl

Underneath it all, were just savages

Hidden behind shirts, ties and marriages

Truth is in us all, cradle to the grave

Were just animals still learning how to behave

 

All the hate coming out from a generation

Who got everything, and nothing guided by temptation

We were born to abuse, shoot a gun and run

Or has something deep inside of us come undone

Is it a human trait, or is it learned behavior

Are you killing for yourself, or killing for your savior

 

Underneath it all, we’re just savages

Hidden behind shirts, ties and marriages

How could we expect anything at all?

We’re just animals still learning how to crawl

Underneath it all, we’re just savages

Hidden behind shirts, ties & marriages

Truth is in us all, cradle to the grave

We’re just animals still learning to beh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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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8
에밀리 브론테 지음, 김종길 옮김 / 민음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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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이란 제목을 접할 때마다 아주 오랜 세월 영혼에 새겨졌던 어떤 감동이 불려 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아마 이러한 인상은 어린 시절에 보았던 영상이 주었던 영향이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나무의 뿌리를 뽑아 낼 듯 거세게 휘몰아치는 바람과 고딕풍의 외딴 저택이 있는 흑백의 음울한 어떤 시원의 풍경이 일으키는 스산함이다.

    

 

이 기억에는 가까이 다가가기 어렵게 만드는 수심으로 일그러진 냉정한 얼굴의 남자가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히스클리프였을 것이다. 집요하게 어린 사랑의 광기, 거세게 몰아치는 증오와 복수의 정념으로 타오르는 사람. 그래, 이 작품을 빈번히 읽게 되었던 이유는 히스클리프라는 인물에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매료되어있었음을 시인해야겠다. 그의 영혼을 지배했던 캐서린에 대한 사랑의 집념?, 천대와 모욕에 대한 복수의 방법들이 보여주는 무한한 적의?, 혹은 죽은 연인의 환상을 애처로이 부르며 죽어가는 그의 모습에 감성이 장악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보일 수 있는 광기의 모든 것에 대해서.

 

그런데 이 소설을 새롭게 읽게 하는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이 사회에 폭풍처럼 거세게 불고 있는 여성주의의 시선인데, ‘언쇼린튼두 집안의 3대에 걸친 광대한 이야기를 그네들의 보모이자 가정부였던 넬리(엘렌) 이라는 여성이 구술함으로써 객관적 화자의 지위를 갖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남성이 권위를 독점하고 있는 가부장제에 저항하기 위해 고아이며 하인과 같은 존재인 히스클리프와 부농인 대지주의 딸이지만 상속권이 없는 캐서린이 공조하여 아버지의 죽음 이후 재산을 차지한 오빠 힌들리의 억압에 대항하는 장면들이다. 가부장제의 바깥에 있는 히스클리프가 캐서린의 해방자로서, 자유의 수호신으로서의 역할을 지니게 하는 것은 에밀리 브론테의 시대에 대한 도전의 야망을 읽게 한다. 양성(兩性)연대의 전략을 도입함으로써.

 

34장에 이르는 결코 적지 않은 분량과 인물의 관계가 복잡하게 뒤얽힌 작품임에도 거침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는 것은 아주 기막힌 암시와 은유의 장치들을 노골적으로 해독케 하는 작가의 은밀함을 가장한 의도이며, 또한 뻔한 복수의 스토리텔링이 던지는 통속적 재미와 자신의 본성을 배반함으로써 야기되는 비극적 갈등에 속수무책으로 허우적거리는 연인들의 심리 등 인간의 무한한 기만적 본성들이 저마다의 진지한 의미를 지니고 독자를 압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테면 소설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화자의 보조자 격인 록우드가 세입자로서 주인인 히스클리프를 방문했다가 뜻하지 않게 워더링 하이츠에서 자야하는 장면이다. 안내된 방에서 캐서린 언쇼’, ‘캐서린 히스클리프’, ‘캐서린 린튼이라는 구분할 수 없는 낙서된 이름을 발견하는 것인데 이 이름들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 자체가 이미 소설 전체의 구조와 의미일 수 있다는 점이다.

캐서린 언쇼는 히스클리프와 성장기를 함께 한 영혼의 짝이지만, 자신의 집안인 농장기반의 야성적인 언쇼집안과 대비되는 세련미와 우아한 문화를 가진 린튼집안에 대한 동경은 그녀의 당대 여성들이 지녔던 관습적인 속물성을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에드거 린튼과의 결혼을 선택한다. “히스클리프는 나 자신 이상으로 나야!”라고 선언하면서도 무일푼의 가난뱅이 히스클리프는 결혼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소설의 비극적 여정, 히스클리프의 분노와 증오, 복수의 행보로 가득한 소설은 이 지점에서 시작되고 맺는다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캐서린 린튼이 된다.

    

 [ 민음 북클럽 Special Edition ]

 

치안판사인 에드거 린튼은 성실한 남편으로서 아내에 대한 사랑과 배려를 아끼지 않지만, 전통적 가족제도에 얽매여 사회적 현실 속의 여성으로서의 캐서린은 내면의 목소리, 주위의 시선과 갈등하게 된다. 천국같이 아름답고 우아한 응접실의 삶은 야성적 자연으로 채워진 여자에게 감옥이자 지옥일 뿐이다. 히스클리프는 그녀의 정신이며 육체이다. 그를 향한 사랑의 열정은 결혼이라는 속박에서 첨예하게 부딪히며 그 불만족은 그녀를 육체의 지옥 속에서 자연으로 돌아가게 한다.

 

창밖에 서 있는 전나무를 잡아 흔들던 그 바람소리, 그 바람을 쐬게 해줘. 바로 저 벌판으로 불어오니까, 그 바람을 한 번만 들이마시게 해줘!” (P 232)

 

캐서린은 자기 생명의 본질, 자연이라는 무한 세계로 해방되며, 또 다른 캐서린을 낳는다. 캐서린 언쇼는 캐서린 린튼으로서 죽었다. 캐서린의 소유를 갈망하던 히스클리프는 이제 캐서린 린튼으로 시작하는 에드거의 딸을 이용한 복수의 계획을 실천해 간다. 힌들리 언쇼를 자멸하게 함으로써 워더링 하이츠를 손에 넣은 히스클리프는 린튼가문의 드러시 크로스마저 손아귀에 넣기 위해 에드거의 여동생인 이사벨라를 유린함으로써 얻은 병약한 아들, ‘린튼 히스클리프를 앞세워 에드거의 딸인 캐서린을 감금하고, 마침내 자신의 아들과 강제 결혼을 시킴으로써 에드거의 죽음과 함께 모든 재산을 갈취한다.

 

히스클리프의 이러한 복수는 자신의 사랑을 빼앗긴 연인으로서의 분노 표현이지만 한편으로는 가지지 못하고 소외된 자로서 대지주인 두 집안에 대한 증오의 발현이기도 하다. 그런데 복수를 끝낸 히스클리프는 자신이 가장 혐오했던 가부장의 권위와 물적 자산을 수단으로 하고 있음에, 또한 복수의 성과인 두 집안의 마지막 인물들인 헤어튼 언쇼와 캐서린 린튼의 완벽한 파멸로의 방치가 두 젊은이의 사랑으로 진행되는 것처럼 의도와 다른 형태를 보인다는 점에서 당황한다. 결국 자기 본성에 대한 배반을 자각하는 것이고, 그가 죽은 연인 캐서린의 유령을 보고 급기야는 음식을 거절함으로써 죽음에 이르는 것은 , 산과 자연이자 폭풍이었던 히스클리프자신의 본질로 회귀하는, 감옥이었던 삶으로부터의 영원한 해방, 연인과 함께하는 자유의 초월적 세계로의 선택으로 이해된다.

 

마지막 장면은 소설의 도입부에서 록우드가 발견했던 세 이름 캐서린에 대한 정리, 캐서린 린튼에서 캐서린 히스클리프가 되었다가, ‘헤어튼 언쇼와의 결혼으로 캐서린 언쇼가 됨으로써 언쇼와 린튼 집안으로 대별되는 야만과 문명, 권위와 평등, 억압과 자유라는 서로 다른 가치관의 통합, 조화와 균형, 가부장제 속박의 해제라는 결과를 제시한다. 이러한 결말은 이 작품을 에밀리의 남성중심 사회에 대한 야심찬 도전이라 하는데 주저치 않게 한다. 이처럼 고전의 새로 읽기는 전혀 뜻하지 않은 결론을 내게 보여준다. 언제부턴가 나는 내 인생의 거센 폭풍이 잦아들고 있음을 은근히 깨닫는다. 히스클리프의 젊은 날에 휘몰아쳤던 사랑의 열정, 분노와 혐오와 모욕의 세기를 끝내고 평온하게 환상의 그림자를 그려보는 그런 시간을 누릴 줄 알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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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마리암 마지디 지음, 김도연.이선화 옮김 / 달콤한책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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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 유년의 기억, 춤추는 추억들...., 그곳에 묻혔던 글과 말, 행위들이 깨어나고, 이야기가 싹을 틔우고 향기로운 꽃이 되어 자신의 뿌리, 외면할 수 없는 곳, 페르시아의 아픈 사랑을 시리게 퍼뜨린다. 이것은 이별과 죽음의 냄새만이 피어오르던 곳, 도망치듯 조국 이란을 떠나 낯 선 프랑스에서 망명자의 삶을 시작해야 했던 아이였고, 소녀였으며, 여인이 된 작가 마리암 마지디의 이 자전적 소설이 발산하는 느낌이다.

 

소설의 첫 페이지는 한 남자가 감방에 홀로앉아 작은 돌에 아기 마리암의 이름을 새기는 장면이 펼쳐지고, 곧 이어 옛날 옛적에 어머니....’로 시작하는 임신 칠 개월 여자의 필사적인 공포로부터의 도주가 묘사된다. 시위대에 참여했다 3층 건물에서 뛰어내린 어머니의 이 행위는 아기에 대한 미친 양육자, 다정한 암살자의 무모함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옛날 옛적에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네가 정말 미쳤구나! 하마터면 너도, 내 첫 손녀도 죽을 뻔 했다고!”, “애를 낳을 때까지 너를 가둘 거니까 그리 알아라!” 아기 마리암의 생은 이렇게 구원되고 시작된다.

    

Maryam Madjidi évoque l'Iran au salon du livre

 

스냅장면 같은 일화와 소환된 조각조각의 추억 이야기들이 모여 사랑과 증오, 이해와 부정, 불어와 페르시아어와 같이 망명자의 자식으로서, 또한 이방의 나라로 내몰았던 조국, 다름을 배척하는 문화배타주의 방책을 견고하게 두른 이방의 나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경계를 혼란스럽게 서성거려야만 하는 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이 떠도는 이야기임에도 그 방황해야 했던 여정을 유쾌하고, 때론 사춘기 소녀의 시니컬함으로, 그리고 성숙한 지성의 포용과 관대함으로 지펴낸다.

 

프랑스 망명의 길에서 발생한 경찰의 여권 압수, 아빠를 보러가야 한다고 줄기차게 울부짖음으로써 경찰의 마음을 돌렸던 여섯 살 꼬마의 맹랑하기만 했던 아찔한 추억에서부터 숨을 헐떡이며 도착한 15제곱미터 7층 다락방의 문을 열던 아버지의 어색한 웃음의 기억, 미풍양속의 수호라는 이름아래 샌들 사이로 보라색 매니큐어가 보인다고 무력으로 젊은 여자를 끌고가는 이란의 파트메 특공대원들의 폭력성과 여기에 도사린 도덕적 위선에 짓눌린 사회의 단면이 스치듯 지나가고, 어린 딸아이의 늦은 언어 적응력에 노심초사하던 아버지와 낯 선 곳에서의 삶을 위해서 필수적이어야 하는 프랑스어를 드디어 입 밖으로 쏟아냈을 때 환하게 웃던 부모의 모습이 한 컷의 사진처럼 이어진다.

 

망명자의 얼굴에는 흉터가 있다. 조국을 떠남으로써 두동강 나버린 흉터다. 나는 그 흉터를 감쪽같이 붙여서 남들과 똑같아지고 진짜 프랑스인이 되어 내 이야기를 다시 쓰고 싶었다.”

그래서 소녀는 프랑스가 요구하는 광범위한 세탁과정, 그들의 문화와 다름을 완전히 지워야 하는 정체성 박탈과정을 이행하고 프랑스인으로서 그 사회의 일원이 되리라 노력한다. 그러나 이 이방의 나라 프랑스는 자신들과 다른 것은 모두 거부되는 사회임을 자각한다.

무슨 일을 하세요?”

전 프랑스어 교사예요.”

프랑스어는 프랑스인이 가르치는 것 아닌가요?”

소르본대학 문학석사 마리암은 프랑스인이 아닌 것이다.

 

이렇듯 끊임없이 이어지는 일화들의 조각이 아마 일백여 단원은 될 듯하다. 이것들 모두의 단 한 쪽도 그저 넘길 수 없는 메시지들로 아우성을 쳐댄다. 그것에는 기괴한 컬렉션으로 뒤 덮인 땅으로 묘사되는 반정부 시위대원들의 주검으로 쌓인 저주 받은 조국, 심장이 감당 못할 만큼의 사랑으로 충만해서 그 분출된 사랑이 세상을 온통 물들일 것 같았던 어느 청년의 죽음에 대한 기억, 한없이 슬픈 눈을 한 아버지의 페르시아어 학습의 요구를 거부했던 어린시절 어리석음의 안타까움, 어머니의 서툰 프랑스어가 부끄러워 친구들을 집에 부르지 못했던 이기심, 옛 페르시아의 신비와 관능성을 떠올리는 서구에 장악된 오리엔탈리즘의 여전한 무지의 왜곡 등이 정체성의 경계를 오가며 하나의 방향으로 향한다.

 

내 이야기를 쓰겠다던 마리암의 꿈은 바로 이처럼 페르시아어 수업을 프랑스어 소설로 실현해내고 있다. 주의 깊게 듣는 귀에 선사하고 싶다던 그녀 이야기의 청자(聽者)가 온통 나이고 싶을 만큼 이 페르시아어 수업의 풍성한 감동으로 빼곡한 아름다움에 몰입한다. 고통스럽고 아픈 추억과 일화와 이야기가 이란과 프랑스, 중국과 터키까지 행보하며 마침내 그녀의 영원한 조언자이자 말동무였던, 아니 그녀의 탄생을 구원했던 외할머니, 그의 몸에 머리를 묻고 유년의 냄새를 들이킴으로써 비로소 조국, 뿌리에 대한 이해와 삶의 균형, 견고한 자신의 정체를 단단하게 축조하는 것은 덩달아 안도의 숨을 내쉬게 한다. 그녀를 항상 기다려주는 가족, 그 뿌리가 있는 모국(母國), 이란과 그녀의 일상적 삶을 형성하는 또 다른 뿌리로서의 프랑스에 대한 사랑과 이해의 이야기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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