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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아주 먼 섬
정미경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월
평점 :
작가는 생전의 소설집(1) 말미에서 “글을 쓰는 동안만은 언어와 빛이 동일해 진다. 언어로도 삶에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다는 것, 순간과 영원을 동시에 붙들 수 있다는 것, 그 가능성이 미치도록 나를 매혹한다.”라고 썼다. 그래서인지 태양과 바람이 있는 그곳, 섬의 언덕에 도서관을 함께 만들어가는 이들이 빚어내는 무언의 행위들에서 작가의 숨결을 읽는다면 혹여 외람된 것일까?
이 소설은 내겐 삶을 지탱해주는 것들, 사랑, 같은 이야기도 매번 새로운 듯이 들어주는 사람, 마주하기 버거울지라도 내 성장의 삶이 배어있는 고향, 그리고 바다와 섬과 바람과 몽돌들의 부딪힘 소리에 이르기까지, 그 모두에 들려주는 유한자로서의 마지막 위로의 말들처럼 느껴졌다. 아니, 우리들에게 영원히 드리워질 빛이라는 삶의 언어로 다가왔다.
아무런 말(語)없이 누군가의 옆에 앉아 들어주는 ‘판도’처럼, 때론 모른 척 제 혼자 힘으로 이겨나가리라 기다려주는 ‘정모’와 같이, 혹은 “혼자 뭘 먹고 사는지 모르겄다. 이거 좀 갖다주고 와라.”라며 반찬을 챙겨주는 ‘이삐 할미’처럼, 그리고 “죽는다는 건 영혼이 저 멀리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곁에 나란히 있는 것”이라 말하는 ‘이우’와 같이 사랑하는 이들의 손바닥에 따뜻한 체온의 글씨를 한 글자씩 써주는 어머니의 사랑의 언어, 그것만 같았다.
“애잔하게 나부끼는 뻘기, 하늘, 바다, 섬과 섬, 섬 뒤의 섬, 정모에게 이것들은 풍경도 색채도 아닌 시간이다. 언젠가 이 시간은 멈출 것이다. 그때도 바람은 남아 있을 것이다. 자글자글 몽돌이 파도에 쓸리는 소리 역시.” (P 58)
실명의 두려움과 이후의 불가해함을 잊기 위해 고향 섬을 찾아든 ‘정모’의 이 말조차 내겐 혹여 어머니일까 스쳐가는 바람에 애틋한 그리움을 말하던 어느 시인의 문장에 가닿고 말았으니까.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늘 함께 할 것이라는.
사랑하는 이를 잃어 동굴처럼 커다란 구멍을 가슴에 지닌 열아홉 살 소녀 ‘이우’가 ‘태이’를 향해 끝없이 보내는 애절한 사랑의 음성과 사진, 문장들, 그리고 ‘판도’에게 스스럼없이 쏟아내는 사랑했던 이에 대한 그 수없는 말들에서 좀처럼 씻기지 않는 그리움이 아릿하게 스며들지만, 그 통렬(痛烈)한 애도 또한 떠나보내야 하는 ‘이삐 할미’와의 의식(儀式)으로서 또다른 사랑의 의미로 정화되는 위안을 얻게 된다. 남아 있는 이들의 아픔조차 안쓰러워했을 어머니의 사랑으로.
그래서였을까? 섬 언덕에 줄지어 서있는 소금창고, 기억보다 약간 더 무겁고 저항하는 것처럼 느껴지던 그 창고의 문을 열고, “시간도 중력도 없는 장소에 서 있는 느낌”과 그곳에서 “책들이 채우고 있는 풍경”의 백일몽을 떠올리곤 그곳을 도서관으로 만드는 ‘정모’의 행위는 책들에 깃든 시간, 존재의 무한한 시간성의 축조처럼 다가온다.
“천국이 있다면 그것은 도서관”이라한 ‘보르헤스’의 그것처럼, “백 년 전이 바로 내 발아래 있고 천 년이 산자락에 남아 있”는 섬의 자태처럼, 생의 일회성을 비웃는, 유구한 책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공간 만들기는 영원한 교감의 지대, 함께하고 있음의 또 하나의 위무(慰撫)로써.
이 마지막 위로 같은 이야기 속에 보이지 않는 듯 드러나는 인물, ‘모래 언덕 배(舟)에 기거하는 ’판도‘를 쫓으면서 그저 묵묵히 들어주기만 하는 ‘아주 먼 섬’을 발견하게 된다. 옆에 앉아 그 누구든, 어떤 이야기가 되었든 말없이 듣는 이, 하지만 “에미 가난이 들어서 남의 에미를 훔쳐올 듯이 쳐다”보는 그 누구보다 커다란 상실의 구멍을 가슴에 안고 사는 청년에게서.
“판도 쟤, 너(태이)하고 닮은 데가 있어.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다 들어 주지. 들어준다기보다는 옆에 앉아 있어. .... 그렇게 떠들고 있으면, 잊고 싶은 순간들이 저만치 밀려가.” (P 103)
‘정모’와 ‘이우’는 ‘판도’에게 자신들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마음껏 발설한다. 그가 말없는 사람이기 때문이기만 해서일까? 비밀이 없으려면 그 대상에 아낌없이 마음을 줘야만 하는 것이지 않은가? 서로 무한히 열린 마음, 아마 사람에 대한 사랑이어야 할 것이다. 그의 이러한 받아들임, 수용적인 태도가 두 사람에게 투명한 마음의 이야기들로 가득 차게 하고, 그것은 다시금 판도에게 되먹임 된다. 모든 추오가 사라진 순백의 아름다움이 그득한 소설로 읽히는 이유일 것이다.
“이 섬이 도서관이야. 시간의 도서관”, ‘아주 먼 섬’은 이렇게 모든 것들을 안아주는 시간이자 공간이 되고, 밀물과 썰물을 받아들이듯, 받아들이는, “터무니없는 죽음도, .... 억센 슬픔의 순간이 지나면 곧 일상이” 되는 순화의 장소가 된다. 어쩌면 ‘바람을 보러 바다’로 나가는 ‘정모’는 바람의 진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것은 사랑하는 이의 숨결과 손길임을. 결코 곁에 있음을.
注(1) 소설집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정미경 作2, 006, 생각의 나무刊) P338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