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해 여름
에릭 오르세나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번역자들과 언어, 그리고 소중한 섬에 바치는 경의”라는 산뜻한 소개의 말 이상은 외려 이 작품을 누추하게 표현할 것 만 같다. 그럼에도 여기에 감히 덧붙인다면 우아함 넘치는 쾌활함과 코끝을 스치는 봄바람에 실려 오는 아득한 추억의 향수를 가득 품고 있다고 할까? 얼마간의 거드름조차 순수와 고움이 묻어나는 프랑스 서부 브르타뉴의 작은 섬사람들의 가슴 따뜻한 시선과 건강성이 유쾌하게 지면을 꽉 채운다.

 

섬이라는 고독과 고립에 자유를 입히고 대양의 드넓은 상상력을 품고 있는 토속적 투박함이 물씬한 B섬에, 죽었기에 더 이상은 간섭할 수 없는 이들의 작품만을 느릿느릿 번역하는 번역 작가 '질'은 어렵사리 둥지를 튼다. 우연히 마주한 사제의 초대에 응하고, 본당 신부와의 대화를 통해 영어를 불어로 번역하는 자신을 빗댄 사나포선(私拿捕船)선장이란 소문은 마을 사람들에 퍼지고 그렇게 그는 섬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다.

 

섬 자연의 풍광에 매료되어 “애쓰거나 권태를 느낄 새도 없이 시간이 미끄럼을 타며 가뭇없이 달아”나는 시간을 보내던 질에게 출판사에서 계약안과 계약의 현실성을 입증하는 거액의 수표, 그리고 살아있는 작가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작품이 동봉된 번역의뢰 편지가 날아든다. 번역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지 않는 죽은 작가의 작품만을 작업하던 질에게 살아있는 그것도 번역에 까다롭기로 유명한 나보코프의 작품이 “저는 곧 부당한 명성을 누리는 졸렬한 번역가들을 상대로 한바탕의 전쟁을 벌일 생각입니다. 운운”하는 자부심과 교만에 찬 편지들과 함께 도착한 것이다.

 

 

비가 줄줄 새는 집수리와 바닥이 보이는 생활고에 질은 나보코프의 작품 번역을 수락하지만, 이내 “어려서부터 포충망을 들고 나비를 쫓아다닌 탓에 노벨문학상 후보라는 이 성격 장애자의 문체에는 나비의 교태가 배어있었다.” 번역가는 나비의 그 가벼움과 자유로움과 변덕을 옮겨야 하는 끔찍한 장애에 부딪친다. 한 문장도 손을 대지 못한 채 우울한 날을 보내던 그에게 극(極)지대를 탐험하는 남편과 떨어져 지내며 화단을 가꾸던‘생텍쥐베리’여사의 친절이 다가온다. 여름이면 박사논문을 쓰고, 무언가를 연구하기에 더없이 매혹적인 섬의 환경 탓에 몰려든 학자, 교직자들, 하물며 아이들 돌보미로 고용된 영국인 처녀들까지 “가족사이자 근친상간의 연대기인”나보코프의 소설 『에이다』의 번역에 돌입한다.

 

출판사가 있는 파리에 적개심을 가득품고, 번역가 질을 압박하는 무례에 저항하기라도 하는 듯 마을 사람들은 각기 나누어진 몫에 매달려 열성을 쏟는다. 그러나 그것엔 무언가 향긋한 관능이 맴돈다.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모녀가 나란히 우리 원고를 들여다보고 있을 때면, 우리는 되도록 조심스럽게 두 여자의 비누 냄새를 맡곤 했다.”

“<She had been prevailed upon to clothe her honey-brown body.> 정말 옮기기가 쉽지 않군요.”

 

섬의 본당 신부가 이러한 섬의 기운을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다. 성당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그 부도덕성을 질책하고 손에 쥐고 있던 『롤리타』를 집어던지며, 신성모독자인 나보코프에 매달리지 말아야 함을 역설한다. 이것은 작품의 면면에 감도는 친화력과 유쾌함, 그리고 관능과 엘레지(élégie)풍의 서정성을 더욱 부추기는 기발한 에피소드로 마음에 들어찬다. 여기에 아르헨티나를 떠나 섬의 고독에 잠겨있는 ‘호세 마리아 페르난데스’의 감각을 통해 이 야릇한 섬을 가득 채우던 기운이 더해진다. “섬의 어디에나 색정의 기운이 감돌고 있음을 느낌으로 알고 있었다. (中略) 향긋한 냄새로 미루어 근처 어디에선가 교접이 한바탕 벌어지고 있으려니 짐작하고 있었다.” 『에이다』가 발산하는 번역의 열기로 채워진 섬의 분위기가 이보다 잘 묘사될 수 있겠는가?

 

이윽고 호세의 무선통신기 TS801, 즉 전리층, 하늘까지 공모자로 활용하는 아마추어 번역가들은 전 세계의 불어권 사람들을 향하여 난해한 문장의 도움을 받는다. 일상의 언어를 풍부하고 아름답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번역가들의 고뇌의 한 단면이리라.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의 전환, 아마 ‘노스탤지어’를 그저 ‘향수(鄕愁)’라고만 번역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듯이, 또한 자칫“생동감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데다, 너무나 밍밍하고 시르죽은”것이 되고 말기에 까다롭기 이를데없는 번역가의 고충이 이렇듯 상징적으로 그려진다.

 

독촉에 시달리는 번역가, 다행스럽게도 나보코프는 매해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되지 못하고 의뢰 받은지 3년이 넘어서고, 드디어 수상자 선정이 임박했을 때 출판사 편집위원이 섬에 최후의 통첩을 위해 찾아든다. 이 파리로부터의 인물에 막연한 적대감을 지닌 섬사람들은 질을 위해 이 사자(使者인 동시에 死者)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그리곤 노벨상 선정 발표일에 맞추어 출판될 수 있는 더 이상 변명을 꾸며댈 수 없는 이유있는 구체적인 최후의 날자가 통보된다. 낱말, 고양이, B섬의 사람들..., 자유와 오만불손한 독립성이 닮아 있는, 그러나 상상력과 사랑이 풍성한 그것이 『에이다』의 번역 완성본이 되어 폭풍우가 몰아치는 해안에서 섬을 떠난다. 마치 본당 신부의 저주에 답을 보내듯이, 아니 번역의 고통스런 시련을 지워버리려는 듯이. 자연과 언어가 주는 행복의 장면들이 우아함과 경쾌함, 그리고 익살맞은 웃음에 실려 한바탕 소동의 즐거움, 막연한 옛 추억에 묻히는 시간이 된다. 자신들의 토착어를 지키는 사람들, 돛배로 항해하는 법과 떠나는 법을 아는 사람들, 고독과 사랑이 풍성한 섬 ‘브레아’에 대한 작가의 경의에 독자의 경의를 보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