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정호승 지음, 황문성 사진 / 비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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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삶이니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 사는 것이 힘겹게 느껴질 때면 이런 소리가 절로 나오곤 한다. 이런 상념이 반복되는 데에도 면역력이 생기지 않는 것을 보면 반백년 가까이 살아왔음에도 내면의 수양이 멀어도 한참이나 먼 것임을 깨닫는다. 그렇다고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인지를 전혀 모르는 바도 아닌데 말이다. 마침 깊고 넓은 수렁에 빠져 이것을 헤쳐 나오는 데 기력이 많이 쇠잔해 있어 그만 멈추고 그저 영원한 안식에 몸을 맡기는 것이 어떨까하는 즈음에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은 내게 주어진 어떤 계시 같은 것일까?

 

난 용기까지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조금 더 갈 수 있는 힘이 내게 남아 있는지, 과연 그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싶을 따름이다. 내가 왜 힘겨워 하는 것인지, 지금의 수렁이 어떤 실체인지, 내부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외부에 있는 것인지, 과연 빠져나와야 할 만큼 삶의 가치란 것이 존재하기는 한 것인지를.

시인의 목소리는 고독처럼 내게 가까운 그것이었다. 나 역시 그처럼‘영원한 외로움과 기다림의 고착물’이라 설명되었던 그의 詩, <입산>의 ‘골짜기’가 되곤 했으니까. 친구가 들려주는 같은 종(種)으로서의 위로 같은 것이라고 할까? 그래서 알고는 있었으나 잊어 버렸던 삶의 이해들을 다시금 상기하고 그것들의 정말의 의미를 가슴 깊숙이 받아들이는 이 과정은 내겐 절실함의 밧줄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 힘겨움의 본질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책은 절로 나를 이렇게 이끌고 있었다. 마음을 장악하고 있던 질문들 - 그악스럽게 탐욕에 차 소유의 집착을 부리는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를 취함을 위한 좌절은 아니었을까? 아님 주변의 온갖 것들에 분노를 뿜어내다 지레 지쳐 버린 것은 아닐까? 아직 견뎌낸다는 것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너무 나를 완전하게 채워두려고 욕심을 부리는 것은 아닐까? 혹여 온통 상상속의 걱정거리가 산처럼 쌓여 미리부터 질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의 답변이 아니라 그냥 듣고 토닥여주는, 바로 그 위로의 언어와 행위만으로도 족했으니까. 그러다 무심히 보았을 문장들이 내 가슴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고 나는 그것에 밑줄을 긋는다. “내 몫을 그저 있는 그대로 내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기 시작했다.”

 

내가 내 몫에 만족하고 있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의 일화가 어떤 공명을 일으켰다. 그리곤 ‘빈손’과 “바늘 하나 찌를 곳이 없는 충만을 뜻한다”는 ‘여백’의 가득함과 여유의 이해가 비로소 내 관념의 바다에 안착했음을 느끼게 된다. 손에 많은 것을 쥐고 있어도 한 손은 늘 비워둬야 한다는 것과 영혼의 공간이 형성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의미하는 것을. 문득 오랜 친구가 언젠가 테이블 위의 주먹 쥔 내 손위에 자신의 손을 살며시 포갰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녀는 벌써 여백과 빈손이라는 삶의 이해를 가지고 있었던 것 아닐까하고.

 

나는 시인의 문장들을 다시 좇는다. 거기엔 “칼날 인(刃)자와 마음 심(心)이 합쳐진 합성어” 인(忍)자가 “가슴에 칼이 꽂힌 상태를 그냥 견디어내다.”는 뜻과 함께 놓여있다. 세상에 이렇게 고통스러운 글자라는 말의 의미가가 새롭게 다가선다. 내가 생각하는 인내는 아직 어설픈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준비하기 위한 오랜 시간의 견딤이 무엇인지를 내게 새겨두라고 다짐한다. 어부가 찢어진 그물 깁는 것처럼 준비하고 인내하는 것의 의미를. 조급하게 깁지도 않은 그물로 바다에 나가는 내 모습이 그려진다. 지금까지의 내 모습은 그러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주어 담을 과실의 적음에 좌절하는 어리석음의 반복이 아니었는지를. 인생이란 바로 준비하는 과정임을.

 

이제 어느 소설가가 썼던 돌돌 흐르는 산 속‘여울물 소리’의 실체가 시인이 말하는 내면의 소리임을 알게 된다. “초가지붕 추녀 끝에 매달린 고드름 떨어지는 소리”, 그 진리의 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쥐었던 주먹을 펼치고, “허공으로 날아간 화살은 허공으로 날아간 화살일 뿐”임을, 채움이 아니라 빈 공간을 새겨두게 된다. 삶의 의미와 향기가 그득한, 그리고 위로의 힘이 되어 준 책으로 오래 기억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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