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그리고 무한 - 칼링가 상 수상자 대표작 김영사 모던&클래식
조지 가모브 지음, 김혜원 옮김, 곽영직 해제 / 김영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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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과 생명, 우주적 영감을 발견케 하는 최고의 교양과학서

 

자연 현상에 대한 많은 의구심들, 혹은 가늠할 수 없어 막연한 장벽에 부딪게 하는 최초의 탄생과 그 종말에 대한 무시할 수 없는 호기심의 문제들, 그렇다. 어떤 우주적 영감을 찾고자하는 것은 우리 인간들의 영원한 관심사일 것이다. 나는 이 책에서 이것들을 찾으려했고, 그리고 이 욕심은 달성됐다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열악한 지적 상상력이 이해하지 못했던 4차원의 세계, 유기체와 무기물의 그 경계, 나란 생명이 발을 딛고 있는 작은 행성과 태양계, 그리고 은하와 우주의 생성과 그 모습을.

 

수(數)의 발명과 수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자연을 이해하려는 요구의 인간의 탐구심, 그것이 물질을 규명하고 그 규명된 지식이 우주의 섭리를 이해하는 초석이 되고 물질과 생명의 근원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주며, 어린 시절 막연한 과학의 원리로만 주입되었던 것들이 어떤 의미와 배경을 가진 것이었으며, 바로 그것들이 우주의 모든 물질과 생명의 탄생과 소멸을 말하려는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내가 밖에서 볼 수 있는 것들, 내 육안으로 확인 할 수 있는 것들, 아니 과학적 도구를 통해서라도 볼 수 있는 것들의 경계를 초월한 것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구성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비로소 배웠다고 해야 하겠다.

 

길이와 너비와 높이로 이루어진 입면체인 3차원을 벗어나 4차원은 시간이 더해진다는 것은 누누이 들어왔던 상식이지만 그 형태를, 그리고 단위가 다른 시간을 어떻게 다른 세 개의 단위인 거리로 변환하고 이 과정의 의미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인지 선명하게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우주 공간 전체에 미치는 시간의 표준 속도화는‘광속’, 즉 1초에 30만Km, 1피트 입방체라는 공간은 단지 0.000000001초에 불과하다는 것을, 바로 공간의 존속기간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 존속 기간이 길어지려면 시간축의 방향으로 길게 잡아 늘려야 하며, 그것은 이 비틀린, 또는 휜 공간의 모습을 그리게 하고, 광활한 우주의 형태를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한편 제곱해서 -1이 되는 허수 'i(√-1)'의 탄생, 그것의 소용을 보게 된 것도 이 책의 미덕일 것이다. 4차원의 공간에서 시간거리를 표현하는데 얼마나 적절한 개념인지를 말이다. 단지 수학 그 자체의 계산방법으로서만 이해했던 것을 세계를 이해하고 상상하는 수단으로서 눈을 뜨게 해준 것이다. 이렇게 이 책은 내 감겼던 눈을 뜨게 해주는 설명들로 가득하다. 빛의 파동 운동처럼 아무런 느낌도 전해주지 않던 것이 모든 물체의 원자들 사이뿐 아니라 성간공간(星間空間)을 균일하게 채우고 있는 물질, 바로 ‘빛을 나르는 에테르’라는 가설적 물질을 매개하고, 분자, 원자, 그 안의 전자들의 운동을 가늠하는 데로 이어진다. 궁극의 물질을 이해하는 귀중한 개념으로서.

 

이렇게 빛과 그 속도의 무한한 개념의 영역을 여행하다보면 그 여정들, 과학적 설명의 과정에서 순간순간 SF적 상상의 세계를 그리는 몽상에도 빠져들게 된다. 달리는 열차의 식당간에 앉아있는 내가 줄어든 모습을 그려보기도 하고, 광속으로 지구에서 18년 떨어진 시리우스 별로 항해하고 온 내가 주변 사람들의 폭삭 늙은 얼굴에 당혹해하는 장면도 떠올려 본다. 시간과 공간의 그 상대성의 세계를. 이것은 신비의 영역도 환상의 세계도 아니다. 바로 입증 가능한 과학의 세계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양자 물리학’? , 뉴턴의 고전 물리학도 다 이해하지 못하겠는데, 양자물리학이라니! 그러나 고전 역학의 개념들이 원자의 세계에 적용되지 않는 물체들의 운동을 이해하기 위해서, 즉 물체의 실제 운동에 대한 진실을 규명함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요긴한 접근임을 알고서는 그 낯섦과 이질감을 벗어던지게 된다. 그 설명들이 어찌나 친절한지, 가모프가 자신의 아들을 염두에 두고 집필했기에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비록 초고를 읽게 한 당시 그의 초등학생 아들이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욕심 부리지 않고 천천히 숙독하면 오히려 가모프가 말해주고자 하는 과학의 세계에 푹 빠져들고 말 것이다.

 

그리고 조금만 더 이해를 증진시키면 물리학의 개념들이 인문,사회학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는 용어들의 전(前)개념으로서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즐거움도 맛볼 수 있다. 일례로 어떤 주의나 이념의 충돌과 소멸의 현상을 말하는 ‘쌍형성 과정’이 반대 전하(電荷)를 가진 두 전자의 소멸 과정이라는 것을 통해 모호했던 이해가 분명해지기도 하고, ‘핵변환 과정’이나 ‘열해리’와 같은 분자간의 충돌 현상에서 사회적 변환에 대한 어떤 상상적 은유와 통찰의 빛을 발견할 수 도 있다.

 

온도란 분자 운동의 정도에 불과하다는‘브라운 운동’으로부터 섭씨 6000도의 태양 표면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나아가 태양내부의 엄청난 온도로 인해 모든 전자껍질이 벗겨져 원자조차도 존재하지 못하는 벌거벗은 핵과 자유전자들의 혼합물을 상상하는데 어려움 없이 도달하게도 된다. 그리고 그 무질서의 상태, 불규칙 운동에서 조차 확산이라고 부르는 거리를 측정할 수 있음을 보고는 인간의 그 상상의 지적 능력, ‘생각’의 능력,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아마 이 책이 주는 최고의 미덕일 것이다. 미처 우리네 학교교육이 가르쳐주지 않는 과학적 탐구, 무언가를 알고자 할 때 어떻게 생각해야 했는지를 규명하기 위해 창안해낸 도구들의 원리와 상상적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노력의 실체들을 접하게 해주는 것이다.

 

70만 Km의 반지름을 가진 태양의 중심에서 빛이 표면 밖으로 나오는데 30만Km 의 속도를 지닌 빛이 2초여 만에 나오지 못하는 이유, 소금과 같은 결정체의 성장이 왜 생명현상으로 간주되지 않는 것인지, 순전히 물리적 화학적 과정인 분자의 이성변화와 생물학적 현상인 돌연변이가 얼마나 동등한 물질적 현상인지, 다양한 화학원소의 결합인 전기 인력이 행성계의 결합인 중력과 얼마나 유사한지,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발견케 한다. 또한 태양계를 포함한 은하계에서 태양계는 수억 개의 별들로 구성된 원반의 가장자리에 놓인 작은 행성계라는 사실, 나아가 이러한 은하계가 수없이 우주에 존재한다는 사실, 그 우주의 휘어진 모양에 이르기까지가 물질의 최소 단위인 핵자와 중성미자, 전자의 운동을 통해 유려하게 설명되고 있다. 단지 과학의 걸출한 고전적 입문서의 지위를 넘어 우리가 우주자연의 존재를 이해하는데 더할 나위없는 지적 소양을 지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나는 분명 이 책에서 내가 부렸던 우주적 영감에 대한 욕심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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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2-05-24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필리아님의 리뷰를 읽어보니 문득 '과학의 형식'이 지니는 본질적인 한계(?)를 지적한 어느 철학자의 글 내용이 떠오릅니다. 다소 길지만 재미삼아 한번 읽어 보셔요~

* * *

과학이라는 것

세상에서 흔히 과학이라는 것은 철저하고 확실한 전제에서 나온 옳은 추리에 의거한 것이다. 그러므로 무조건 참된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순수하게 논리적인 추리의 연쇄로 얻어지는 것은 아무리 그 전제가 참되다고 해도, 그 전제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의 명료화나 상세한 풀이 이상은 아니다. 따라서 함축적으로 이해된 것을 설명해 내보이는 것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것으로 칭찬받는 학문은 수학적인 것, 특히 천문학이다. ······

그러나 천문학에서 가장 근본적인 진리의 근원은 사실 귀납이다. 즉, 많은 직관 속에 주어진 것을 정리하여 직접 기초한 옳은 판단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판단에서 후에 가설이 만들어지며, 가설이 경험에 의해 완전성으로 다가가는 귀납으로서 확정되면, 최초의 판단이 증명된다. 가령 여러 유성이 운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이 유성 궤도의 공간적 관련에 대해서 많은 가설이 있었지만, 결국 옳은 가설이 발견되었고 다음에는 그 운행을 지배하는 법칙(케플러의 법칙)이 발견되었으며, 마지막에는 그 운행의 원인(만유인력)도 발견되었다. 주어진 모든 사례가 가설과 일치하고, 또 그 가설에서 나온 결론, 즉 귀납과 일치한다는 것이 경험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이 가설들은 모두 확실성을 얻게 되었다. 가설을 발견하는 것은 주어진 사실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그것을 적당히 표현하는 판단력의 작업이지만, 귀납, 즉 여러 가지 직관이 그 가설의 진리성을 확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우주를 자유로이 뛰어다닐 수 있고, 또 망원경과 같은 눈이 있다고 하면, 오직 하나의 경험적 직관에 의해 이 가설의 진리성이 직접 기반을 얻는 일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 추리는 인식의 본질적이고 유일한 원천이 아니고, 사실은 응급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

그 밖에도 과학적인 형식은 특수한 모든 것을 보편적인 것에 종속시키고, 그렇게 하여 점점 위로 올라가는 것이지만, 이러한 형식의 당연한 결과로서, 많은 명제의 진리는 논리적으로만 기초를 이룬다는 것, 즉 다른 명제에 의존함으로써 동시에 증명으로 나타나는 추리에 의해 기초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이 형식은 모두 인식을 쉽게 하는 수단이지 더 큰 확실성을 얻기 위한 수단은 아니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떤 동물의 성질을 그것이 속하는 종(種)에서 다시 올라가서 속(屬)과 과(科), 목(目)과 문(門)에서 인식하는 것은 그때그때 주어진 동물을 그것만 독립시켜 연구하는 것보다 쉽다. 그러나 추리로 이끌어 낸 모든 명제의 진리성은 언제나 진리가 아니고 직관을 기초로 하는 어떤 진리에 제약되며, 결국은 거기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러한 직관을 기초로 하는 진리가 추리에 의한 연역과 언제나 같은 것처럼 명백하다고 한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직관을 기초로 하는 진리를 택해야 할 것이다. ······

따라서 어떠한 경우에도 직관적인 명증성이 증명을 거친 진리보다 훨씬 훌륭하며, 증명을 거친 진리는 직접적인 명증성의 근원이 아주 먼 경우에만 용인되어야 하는 것이므로, 이것이 증명을 거친 진리와 같은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경우나 더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경우에는 한층 더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

우리의 신념은 직관이 모든 명증의 제1 원천이며, 여기에 직접 또는 간접으로 관계를 갖는 것이 절대적인 진리라는 것이다. 또 개념에 의한 매개에는 많은 착각이 따라다니기 때문에, 이 절대적인 진리에 가장 가까운 길이 언제나 가장 확실한 길이다. 그런데 확신을 갖고 되풀이하여 말하지만, 유클리드에 의해 과학으로 확립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수학'을 보면, 수학이 걸어가고 있는 길이 이상한 것이고 전도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들이 원하는 것은 모든 논리적인 기초를 직접적인 기초로 환원하는 데에 있다. 그런데 수학은 도처에서 수학 특유의 직관적인 명증을 제마음대로 물리치고 여기에 논리적 명증을 대치시키고 있다. 이것은 지팡이에 의지하여 걷기 위해 스스로 다리를 절단하는 것과 같다. 또는 괴테의 《감상주의의 승리(Triumph der Empfindsamkeit)》에 나오는 왕자가 현실의 아름다운 자연을 외면하고는 자연을 모방한 무대 장치를 보고 기뻐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나는 논리적으로 주어지는 수학적 진리의 단순한 인식 근거와 공간 및 시간의 각 부분이 직관적으로만 인식될 수 있는 직접적인 연관인 존재의 근거 사이의 차이를 새삼 설명하지 않고, 여기 언급한 소견을 앞에서 말한 것과 결부시키는데, 이 연관을 통찰해야만 참된 만족과 근본적인 지식이 얻어진다. 그런데 단순한 인식 근거는 언제나 표면에 머물고 그것이 '그렇다'는 지식은 줄 수 있지만 '어째서 그런가'라는 지식은 줄 수 없다. · · · · · ·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분석론 후편(Analyt. post)》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물이 그렇게 있다는 것과 왜 그렇게 있는가 하는 것을 동시에 가르치는 지식은 이것을 따로 가르치는 지식보다 더 정밀하며 우수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물리학에서 어떤 것이 그렇게 있다고 하는 인식이 '왜' 그렇게 있는가 하는 인식과 하나가 된 경우에만 만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中에서


필리아 2012-05-26 16:17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읽은 글입니다. 적절한 인용이네요. 고맙습니다. 가모프의 이 책이 만족스러운 것도 바로 왜 그런가와, 어떻게 그런가를 이해시키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여전히 이유를 설명할 수 없을 때 그것은 불확실한 가설로 남겨두고 있어요. 또한 미래의 지식에 기대하고 있기도 하구요. 제겐 그런 그가 믿음직스러운 과학자인 거죠...